민주노총 간부가 조합원을 성폭행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주일이 지났다. 민주노총은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가 전원 사퇴했으나, 여전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피해자 회유" 등의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인사는 "언론이 부풀린 알려지지 않았어야 할 사건"이라는 볼멘 소리도 하는 상황이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극우 언론과 정부 기관이 민주노총 흠집내기에 이 사건을 활용하고자 피해자에게 전형적인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심지어 피해자가 나서서 "민주노총에 이어서 언론, 정부의 2차 가해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호소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많은 이들은 "민주노총이, 혹은 진보 운동이 어찌 이 지경까지…" 라며 놀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정작 여성 인권에 대한 무지와 무시, 더 나아가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는 진보/보수가 따로 없다는 것을 생생히 온 몸으로 체험한 다수의 여성 활동가/여성운동가는 이런 반응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 진보 진영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추적한 <오빠는 필요 없다>(이매진 펴냄)의 저자인 전희경 씨도 마찬가지다. 전 씨는 <프레시안>에 보낸 기고에서 "'진보/보수'의 틀로 이번 사건을 봐서는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하나도 없다"며 "'민주노총 편이냐, 아니냐'와 같은 질문은 '피해자 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기고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
▲ 민주노총 지도부는 부끄러움의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반(反) 성폭력 운동 역사와 피해자들의 용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부끄러워해야 할 '조직의 망신'이다. 사진은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에 앞서 열린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지도부 거취 문제를 논의 중인 이용식 전 사무총장(왼쪽)과 진영옥 위원장 직무대행(오른쪽). ⓒ연합뉴스 |
글쎄,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분노? 경악? 실망? 아니다.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추이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지리멸렬함이었다. '또?' '여전히?' 라는 심정 말이다. 물론 성폭력과 그에 따른 2차 가해들, 그로 인해 피해자와 그녀를 돕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지리멸렬과 전혀 관련이 없다. 지리멸렬한 건, '진보' 조직의 행태이고, 우리 사회가 반응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피해, 반복되는 조직의 압력, 반복되는 이야기들. 이 와중에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참담함은 어느 자리에 놓여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토론해야 하는가?
'진보 운동'은 진보했는가?
"우린 평생 똑같은 얘기만 하다가 죽지 않을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놓고 전화 통화를 하던 와중에 페미니스트 동료가 지나가듯 뱉은 말이다.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허탈하게 같이 웃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정말로 그렇게 되진 않을까 순간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녀도 나도 한 때 운동 사회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참여해본 적이 있었다.
'동지'에게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자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는 것에 경악하고, 믿고 신뢰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밤잠 못 이루다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리고, 사회를 좀 더 살 만하게 변화시키고 싶었던 그 마음이 초라하게 닳아 없어져 버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다가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믿었던 것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악에 받쳐 몸을 일으키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대체 성폭력 사건에 "해결"이란 있는 걸까' 자문하게 되었던 나날들.
물론 거의 십년 전에 겪은 그 경험들이 지금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단언하거나 세상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 사건, 장원 사건, '나눔의 집' 혜진 사건, 일명 '새천년 NHK 술판 사건', 개혁당 사건, <시민의신문> 이형모 사건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발설이 금기시되어 왔던 운동 사회 성폭력 사건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말 운동사회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했던 '100인위'를 비롯해,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폭력 사건에 맞서 왔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부터 운동조직에 성폭력 관련 내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성폭력은 당사자끼리 조용히 합의할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발 벗고 나서야 마땅한 문제라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사람들이 '2차 가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 민주노총 간부들이 내세운 '조직보위론'이 대대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달라진 면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치른 고통에 비해 변화가 너무나 느리다.
민주노총에게 실망하지 않은 이유
성폭력 사건이 민주노총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경악하고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수잔 손택의 어떤 글귀를 떠올렸다. 세상의 온갖 악행과 인간의 잔인함을 알게 될 때마다 매번 놀라고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며,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고 그녀는 썼다.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사실 난 민주노총에 실망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비슷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어떻게 진보진영에서 이런 일이!"라고 외칠 만큼 순진한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를 포함한 어떤 여성들이 민주노총에게 실망하지 않았던 건, 민주노총을 여전히 지켜야 할 '진보 조직'이라고 굳게 믿어서도 아니고, '시대가 흉흉하니 미워도 다시 한 번' 때문도 물론 아니다. 민주노총의 '진보'는 젠더 문제에 대한 진보가 아니라는 오래된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노총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 은폐와 2차 가해는, 사실 운동 사회 성폭력에서 흔히 나타나는 '뻔한 수순' 중 하나였다. 너무 뻔하고 너무 전형적이어서 지겨울 정도다. 사회 변혁이라는 운동의 '대의'를 위해 참으라는 '대의론' (여성 인권은 '대의'가 아닌가?), 위기 상황이니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덮어야 한다는 '조직 보위론'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때문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침묵당한 사건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것은 단순히 '운동권도 똑같군' 하고 냉소하며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냉소는 무척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쉬운 선택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보 vs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독립적 개인/시민이기 보다는 남성(집단)의 소유물이자 상징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래서 성폭력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 자신에 대한 인권 침해가 아니라) '민족의 수치', '집안 망신', '지역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 '조직의 명예 실추'로 여겨진다.
작년 말, 광복회를 비롯한 32개 독립운동 유관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박물관 건축에 대해,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결사 저지를 했던 것, 2004년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서 "밀양 망신 다 시킨다"며 피해자를 비난했던 사람들, 성폭력 피해를 당한 딸/누이는 '집안의 수치'이기 때문에 그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명예 살인'…. 상황은 다르지만 여성 인권 침해를 '집단의 망신'으로 치환해버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사건이 드러나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며 피해자를 압박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의 문제다.
처음에는 '진보' 조직에 의해, 그 다음에는 '보수' 일간지와 정부기관에 의해 차례로 2차 가해가 자행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성폭력을 그 자체 중대한 인권 사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보'나 '보수'의 대의(?)를 지키거나 훼손할 수 있는 '빌미'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최연희의 복당 논의를 하고 있다는 지난 1월말 보도에서 보듯, 성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것도 '진보'나 '보수'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진보/보수' 라는 틀로 이 사건을 해석하는 한 변하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과 용기로부터 배우라
그러니까, '조직'을 위해 조직의 일원을 희생시키려 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집단주의보다, 성폭력 사건을 거의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보수 세력의 철면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거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정말 고민하고 배워가야 할 것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이 무엇이며 그 고통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이다. 성폭력은 기존의 진보/보수 구도 속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고통이며, 해석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해결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나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부끄러움의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반(反) 성폭력 운동 역사와 피해자들의 용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부끄러워해야 할 '조직의 망신'이다. 여성인권을 조직이 추구해야 할 '대의'로 사유하기 시작할 때, '진보 집단'이 젠더이슈에 대해 정말 '진보'하기 시작할 때, 그 때야 비로소 우리가 느끼는 이 답답함과 참담함은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0일, 여성운동단체들의 <입장과 제언>이 발표되었다.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이고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한 이 제언이, 민주노총 안에서 피해자 입장에 서서 싸우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잘 쓰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구체적인 고통이 진보/보수의 틀로 동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노총 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피해자 편이냐 아니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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