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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의 귀환, 소녀들의 '시대'는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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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소녀시대'의 귀환, 소녀들의 '시대'는 계속될까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이제 '캐릭터'를 넘어서라"

'소녀시대'가 돌아왔다. 떠난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The First Mini Album - Gee]을 들고 브라운관에 생기를 채워 넣고 있다. 요란한 등장과 새침한 은둔을 오가며 단편적인 근황만 흘리는 신비주의의 시대는 지나갔다. 소녀시대가 보고 싶으면 리모컨을 들고 TV를 켠 후 채널버튼을 몇 번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그 안에서 연기자로, DJ로, 예능인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쓸데없는 노이즈 마케팅도 필요치 않다. 괜한 염문설을 뿌리며 노이즈 자체를 마케팅 하는 수법은 인기가 시들해진 연예인의 애절한 구애일 뿐이다.

신곡이 발표되자 언론은 앞 다투어 히트를 (예상이 아니라) 예고했다. '베토벤바이러스' 덕에 서양고전음악 열기가 인다는 것처럼 억지스럽긴 했다. 방송사와 마찰도 빚었는데, KBS 연말특집에 SM 소속 가수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녀시대의 출연이 연기되었던 것이다. 자사 공헌도를 따지는 방송사와 기획사의 힘겨루기였던 가요시상식들을 떠올린 행태였지만, 소녀시대의 <Gee>가 치고 올라오는 기세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그 와중에 소녀들 중 세 명만 기억난다는 한 웹툰 작가로 하여금 독자에게 사과하도록 만든 시대착오적인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구두를 벗어 소녀들에게 집어던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소녀시대'에 대한 일반적인 호감의 이유

예전에는 카메라가 방청석을 향하면 가을 태풍에 벼가 눕듯이 몸을 숨기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소녀시대가 등장하면 남학생 팬클럽의 중저음 대합창이 장관을 이룬다. 군부대 위문공연에선 군가로 목청을 단련한 장병들이 굵직한 열창으로 화답한다. 성인음악이 흘러간 가요나 트로트로 통하는 상황과 연관지을 수 있지만, 30대 이상의 팬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스토커처럼 사소한 제스처를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로 착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소녀들은 사실상의 신분제 사회인 한국에서 절묘한 위치에 있다. 그룹사운드의 음반에 학적을 적던 시절처럼 아직도 학벌을 홍보에 활용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심지어 인디밴드나 레이블을 소개하면서까지 유명대학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데 소녀들은 이 틀에서 자유롭다.

아이돌의 조건은 캐릭터(포장)와 노래(음악)다. 과거에 일부 비평가들이 그들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면 캐릭터 외엔 말할 거리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항상 손에 뭔가를 들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 같은데 효과라곤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략부재는 무수한 걸작(乞作)을 남기는 선에서 사명을 다했다. 그런데 박진영과 용감한형제 등에 의해 괜찮은 노래가 곁들여지고, 나름의 정교화 과정을 거치며 아이돌이 비평의 범주에까지 들어왔다. 문학작품에 버금가는 가사라 해도 출발지이자 귀로는 음악이며, 정치적 노래도 마찬가지여서 메시지가 머리라면 음악은 날개이다. 이런 이야기는 1.5리터 페트병에 담아 팔아도 해가 되지 않는다.

파일럿프로와 같은 떼거리 그룹의 시행착오 끝에 한때 "연습생대방출"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소녀시대는 성공했다. 필연적인 부산물인 거품이 빠진 환경에서 거둔 성과는 음악 상품으로서 기본 조건은 갖췄다는 증명이다. 또 매체의 독점력이 약화되고, 개그 등 다방면에 나타난 세대공존 양상을 대중음악이 먼저 제시하고 있었다. 꾸준했던 인디, 환경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릴 만큼 기다리다 복귀한 프로듀서형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아이돌의 3각 구도가 형성되었다. 다른 영역에 대한 견제는 지지 대상을 보호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됨을 생각할 때 그만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에 인디밴드들까지 자주 출연할 정도의 구도재편에 의하여 양질이라면 호의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소녀들의 캐릭터는 어디에서, 그리고 어디까지

캐릭터의 힘은 강하다. 히틀러가 콧수염을 다듬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은 덜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돌의 캐릭터는 반항아·섹시스타·뮤지션을 아울렀고, 대놓고 클리셰를 표방하기도 했다. '종합예술인'의 캐릭터를 그대도 믿는다면 TV드라마를 실제상황으로 받아들였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대를 잇는 셈이고, 지하철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갈아 끼우더라는 소리를 믿는 격이다. 그런데 소녀시대는 자연스럽고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로 등장했다. 밝은 표정과 친절은 자신감의 세련된 표현이다. 또 화장실까지 같이 다닐 듯한 소녀들은 은근히 판타지를 건드리는 장치들까지 장착했다. 벗는다고 섹시함이 아니라는 건 상식이다. 부연을 하면 전자계산기로 셈을 하고 주판으로 검산을 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통념이 되어버린 환상, 즉 '소녀=명랑·순수' 등식은 무엇을 의미할까? 돈으로 신분을 사는 명품소비처럼 소비자는 이미지를 구입한다. 할 수 있다면 1400년 전 경주에 살았던 한 소녀(보희)의 민망한 꿈이라도 팔려들 테고, 사람들이 살 능력이 없더라도 비싸게 파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소녀시대에서 그건 미성숙(≠순수)에 대한 동경이다. 타점을 설정한 타겟팅은 공격적이다. "어린 것들"이란 농담으로 경쟁심리를 유머러스하게 웃어넘긴 여성들에겐 '빅뱅'과 '샤이니'가 선물로 주어졌다. 비단 아이돌에 국한되지 않는다. '재주소년'을 '어떤날'과 비교하지만, 두 명의 남자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음악만 제외하면 똑같다는 식의 주장일 뿐이다. 물론 동의를 구할 수는 있다. 단, 아무도 어떤날을 모른다면.

남성 아이돌의 복합적인 이미지에 반해 여성 아이돌의 평면성은 사회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 소녀시대는 그 울타리 안에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두통이나 불면증 때문에 약을 달고 다니고, 이혼 등의 가족문제를 겪는 인물로 설정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웅이 인간적이거나, 심지어 우습기까지 한 캐릭터로 등장했을 때엔 파격이었지만, 그것이 보다 사실적이며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소녀 아이돌이 장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명확한 타겟팅과 동질감을 유발하지 못하는 캐릭터에 머물기 때문이다.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다.

나아가 이번 미니앨범이 한국형 아이돌 자체를 소재로 활용하는 점이 흥미롭다. 대중은 아이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연습생이 되고, 부모는 이런저런 동의서를 쓰고, 매니저와 함께 성형외과를 찾는 일에 대해 들어왔다. 쇼윈도에 진열된 마네킹으로 분한 <Gee>의 뮤직비디오와 <Dear Mom>의 노랫말은 초·중학생 때부터 기획사에서 데뷔를 준비해온 소녀시대 자신들과 겹친다. 이러한 자가 증식은 배우가 만국기를 배경으로 걸음으로써 여행을 축약해버리는 영화나 음악인을 소재로 하는 음악에는 흔한 것이다.

다들 나풀거리며 춤출 때 격렬한 군무로 무장한 '베이비복스'가 등장했던 것처럼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소녀시대에겐 변신을 통해 롱런하거나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두 가지의 선택이 주어진다. 이미 방송 등의 공급루트가 구축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등지에 꽤 알려져 있다. 물론 후자의 선택이 예정되어 있을 테고, 그러면 멤버들의 역할도 바뀔 것이다. 한국에서 얼굴 역할을 하는 멤버들 대신 중국어와 일어에 능통한 멤버를 부각하는 식이다. 언제 그런 준비를 하겠냐고 걱정해주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소녀시대의 미니앨범 [The First Mini Album - Gee] ⓒ프레시안

좋은 노래들이 더 필요하다

소녀시대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싱글과 앨범 발표, 그리고 휴식기를 통해 강력한 경쟁자들과의 대결을 미루었다가 다시 미니앨범으로 컴백하는 활동방식에 따르고 있다. 한국 음악계에도 EP(미니앨범)가 일반화되었다. 차기작의 일관성을 위해 정리하고 넘어가는 징검다리, 또는 다음 구상을 세워가는 교각으로서 EP가 중요해졌다. 스튜디오 뮤지션과 브라운관에 갇힌 가수는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이와 같은 단계의 정착은 긍정적이다. [The First Mini Album - Gee]을 통해 소녀시대도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할 것이다.

가요계의 추세인 중독성 라인의 반복과 쉼박의 효과적인 활용으로 흥을 돋운 <Gee>는 재미있는 곡이다. 문제는 <Gee>와 <Destiny> 정도를 빼면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이라기엔 예쁜 리본으로 둘러쳐진 심심한 종이상자처럼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TV만화 주제가 같은 분위기로 '받침대' 역할을 한 <힘내>는 다분히 어려운 시절을 의식한 응원가였지만, 정작 힘을 냈어야 하는 건 <힘내> 자신이었다. 나머지 곡들 역시 향상된 근래 댄스가요들에 미치지 못한다. 만약 모두 좋게 들린다면, 그렇게 들리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것이다.

물론 하나의 잣대만을 들고 다니는 것이 일관성은 아니다. 문화적 관점에선 장터를 따라다니는 메들리 가수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모든 영화에 작품성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니아들은 대체로 감독을 중심으로 작품을 고르고 평가하지만, 배우가 제작자로서 감독을 선택하고 시나리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에선 배우가 중요한 영화도 많다. TV드라마는 몇몇 스타작가의 이름이 무게를 좌우한다. 미니앨범의 주인공은 소녀시대 자체이고, 음반에 실린 화보는 노래만큼이나 구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빅뱅의 태양 역시 솔로앨범에 몸매를 과시한 반라의 사진들을 담아놓았다.

그러나 음악이 핵심이 아니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몇몇 좋은 곡들도 무시하자는 말이 된다. 이렇게 미약한 권위에 맞서 벌이는 앙증맞은 투쟁을 대신 변명해줄 수는 있다. 철지난 이론도 변호하려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설득여부는 별개이다. 이러한 이상열기가 비판적인 지적을 하려는 팔뚝을 붙들고 있다. 학예회 수준의 연기와 사이코스릴러 같은 드라마에도 고정 팬이 있다고 방관한다면, 그리고 한국형 드라마를 웃음거리로 패러디하는 코미디가 없다면, 막장드라마가 환경다큐멘터리보다 시청률이 우수한 만큼 더 권장되어도 좋다고 주저 없이 말하게 될 것이다. 사실 다 알면서 볼 때 묘한 재미를 얻는 것 아닌가.

아이돌이 태생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은 태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투입비용부터 다르다보니 명절에 꼬마들이 어떤 노래와 춤으로 재롱을 부리는가에서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처럼, 이른바 '국민가수'를 지향하게 되는 구조이다. 연예인과 운동선수마저 '시청자'와 '팬'이 아니라 '국민' 운운하는 지경이지만, 그런 식의 표현을 빌리면 '국민스타'가 되어야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환경 덕분에 아이돌이 진화해야 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댄스가수 비주얼로 노래방용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정 수용자와 몇 개의 히트곡이 중시되는 아이돌 시장은 트로트와 멀면서도 가깝다. 그런데 트로트의 사멸을 막아낸 장윤정은 2008년에 발표한 [장윤정 트위스트]를 들을만한 노래들로 채움으로써 <어머나>의 반짝가수가 아니라고 항변할 자격을 얻었다. 음반만 놓고 보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My Style]은 모범적이었다. 가창력으로 승부하던 팀이 시류에 영합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런 수준의 영합이라면 권장하고 싶다. 반면 안이하게 외국 곡을 번안했을 뿐인 '쥬얼리'의 <One More Time>는 ET의 손가락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이상형에 다가서거나, 주변을 맴돌거나

"이상형이 뭐예요?" 그런 게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주는 이런 질문은 답보다 먼저라서 답이 완성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가요계도 건축이 아니라 건설에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양산된 배드타운(bad town)의 폐해가 대중음악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다가 모처럼 이상형에 다가간 그룹들이 등장했다. 지금도 '공사중' 팻말을 차고 있긴 하지만 소녀시대 등에 비하면 시행착오기의 아이돌은 연습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과점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현상이다. 하지만 단서조항이 필요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한 기준을 제시하고 무엇은 잘하지만 어떤 면에선 부족하다는 식의 얘기는 평자의 직업병일 수 있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찬양하는 것보다는 증상이 가벼운 질병일 것이다. 무엇이든 완성이 선행되어야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더구나 소녀시대 바람의 한 축이었던 고령(?)의 남성들은 불황기에 들어서면 대중문화를 위한 지갑을 닫는 경향이 있으므로 데뷔 때처럼 탄력을 받기는 힘들다.

새삼스럽지만 소녀시대가 활동한지 고작 1년 반이다. 짧은 기간 동안 불쑥 커졌지만 더 짧은 시간 안에 잊혀질 수도 있다. 성공요인이 퇴보원인이어서 시작에 종말이 내포되어 있다. 시작과 함께 끝이 시작되는 것이다. 좀 이른 말이겠지만, 지금처럼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옆걸음질을 한다면 소녀시대 역시 훗날 웃어넘길 '자료화면' 속에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팬들 역시 냉철하고 현명한 애정을 선물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얼음이 두껍다고 강하진 않다. 늦겨울 두꺼운 얼음은 천천히 녹는 대신 갑자기, 그리고 순식간에 부서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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