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1년(2월25일)에 즈음하여 연속기획 '이명박 정부의 1년 평가와 2년 전망'을 마련했습니다. 12회에 걸쳐 이명박 정부의 국정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전망하려는 이 기획의 네 번째 글로 홍종학 경원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연재순서 1. 기대와 환멸의 이명박 정부 1년 (바로가기) 2. 실용적 리더십의 그늘 (바로가기) 3. 섬기는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가기) 4. 한국경제의 역주행 1년 (2월9일) 5. 노동정책 평가와 전망 (2월11일) 6. FTA와 대외정책 (2월13일) 7. 거꾸로 가는 사회복지 (2월16일) 8. 환경정책 (2월19일) 9. 교육정책 (2월20일) 10. 언론정책 (2월 23일) 11. 대미/남북관계 (2월24일) 12. 총괄 좌담 (2월25일) |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한국경제
과거 한국경제가 가장 큰 위기를 겪은 시기로 1980년과 1998년을 들 수 있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던 1980년과 외환위기로 인해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며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1998년에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존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충격을 겪었다.
그런데 현재 겪고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이 두 시기보다 훨씬 강도가 세고 오래 갈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과거와 달리 전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금융위기와 심각한 경기침체상황을 맞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1980년의 극심했던 경기침체와 비교하지 않고 있으며 반면 흔히 1929년 시작된 대공황과 대비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경제위기는 80년 만의 최악의 경제위기다.
둘째, 현재 한국경제에 건전한 경제주체는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했던 일부 대기업과 지난 몇 년간의 거품기에 재산을 축적한 일부 고소득층뿐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며,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 있다. 서민층은 카드 사태로 타격을 입었으며, 중산층은 부동산과 펀드에 물려 있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부담하기에는 한국경제 자체가 너무 취약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는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었으며, 1998년에는 환율의 급락이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높여 위기의 극복을 쉽게 하였다. 지금은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사실과 연관이 있다. 단기적 처방만으로는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없고, 그렇다면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내적인 금융시장 붕괴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의 공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중국은 단기적으로 과잉설비로 인한 타격을 가장 많이 입을 것이며, 그로 인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반면 경제위기의 큰 전환점을 지나면서 세계경제가 안정을 찾아가면, 중국은 다시 제조업의 강국으로 우뚝서게 될 것이며 한국의 경쟁기업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물론 중국의 정치적 안정성 문제가 변수라는 단서는 붙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지 못한다면, 미래의 희망을 찾기 어려운 순간이다.
거꾸로 가는 경제정책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념적으로 레이거노믹스를 따르면서 실행에 있어서는 한국의 70년대로 대표되는 개발연대 당시의 강압적 통제 방식을 택했다. 경제 관료들은 외환의 인위적 조정을 공공연히 거론하여 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대통령은 난데없이 생필품 물가를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려 모두를 난감하게 만들었으나, 경제 관료들은 52개 품목을 선정하여 MB지수를 만드는 충성심을 보였다. 대운하에 집착하는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모습에서는 시대착오적 행태의 극치를 보게 되어, 우려를 더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레이거노믹스를 추종하여 부자들을 위한 감세와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를 분석하다보면 레이건 시대 이후의 미국은 1929년 이전의 미국과 유사한 경로를 거쳤음이 명확해 지고 있다.
1920년대 재무부장관 멜론의 감세와 상무부장관이자 후에 대통령이 되는 후버의 규제완화 및 친기업정책으로 미국의 소득분배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이것이 결국 유효수요의 부족을 초래하여 대공황을 불러왔다. 레이건 시대 이후의 친기업적 규제완화와 감세가 부시 이후 악화되어, 미국의 소득분배가 정확하게 1928년 수준으로 악화된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하였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에서 엄청난 경제위기를 초래한 정책을 소규모 개방국가에 적용하는 무모함은 그 합리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70년대의 경제정책은 경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용도폐기된 정책이다. 경제 관료들이 가격변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에는 시장의 규모가 이미 매우 커졌다. 이미 해외에서 선물시장이 개설되어 있는 외환시장에 상시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무모한 정책의 표본일 뿐이다. 품목당 두세 제품밖에 없던 70년대의 물가통제방식을 수없이 많은 품목이 시장마다 다른 가격에 거래되는 현대에 적용하는 방식의 비효율성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강행했다.
▲ ⓒ청와대 |
사실상 따지고 보면 레이거노믹스와 시장통제의 잘못된 조합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재벌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인해 과잉투자를 불러왔지만, 그것을 사전에 조정할 시장에 대한 개입으로 시장의 자정능력이 상실된 것이 외환위기를 촉발했었다. 바로 그 외환위기 당시의 경제 관료를 대거 중용하여, 한국의 외환위기와 미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한 정책을 구사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한국경제를 극한의 위험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반면 친기업적인 정책을 쓰면서 국가가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수단을 구사하게 되면, 정부의 결정에 따라 민간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지게 된다. 실제로 외환시장에 대한 잘못된 개입으로 인해 수출대기업은 이익을 보았지만, 나머지 내수기업과 부품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큰 손실을 보았다. 특정 재벌에 유리한 규제완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는 당연히 기업의 로비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가 공공연히 친기업을 들고 나오면서, 이명박 정부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것이다.
참담한 서민 경제
금년도 국내총생산이 전년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것이 경기침체의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위중한 상태이다. 국내총생산보다 현실경제를 더 잘 반영하는 개인소득은 상황이 훨씬 나쁘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소득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현재 세후소득 기준으로 OECD국가 중에서 최악에 가깝다. 그 결과 하위소득자들은 평균적으로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빚을 얻어 생활해 왔다. 저소득층의 이러한 어려운 상황과 함께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한국의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수준은 이미 경제위기가 발생한 미국을 넘어섰다.
서민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주거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것을 제대로 반영하는 통계는 없다. 세계 최고수준의 사교육비 역시 공식통계로 잡히지 않고 있음을 고려하면, 외형상 최악인 서민들의 실질 소득조차 과대평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높은 의료보험비가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면, 한국은 이런 주거비용과 사교육비로 인해 실질임금은 매우 낮다.
다시 OECD 최고 수준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려하고, 일부 재벌 대기업을 제외하면 이자를 감당할 능력조차 안 되는 기업이 태반인 한국의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감당하기는 벅차다. 한국경제가 내일 급격히 붕괴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미래에 경쟁력을 회복하고 발전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기에 더욱 절망적이다.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는커녕 부자와 재벌, 건설족 챙기기에 바쁜 정부와 함께 이 경제위기를 겪어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끝났다
2004년 8월 필자는 '노무현 정부를 떠나보내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분노와 증오에 찬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부'는 더 이상 정부가 아니며, 정부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필자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일찍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이미 2003년도에 카드 사태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재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정부의 모습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탄핵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한 번 기대했지만 역시 시장원리 운운하며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했을 때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시장원리에 맞는 부동산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그 발언으로 누가 좋아하고 누가 가슴아파할 것인지 최고의 정치인인 대통령이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정부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8.31대책을 내놓을 때였으나, 그마저 건설족의 요구에 맞춤으로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불안했다. 마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양, 혹은 자신들이 섬기는 국민이 따로 있는 양, 수없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특정집단을 대변하는 정부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전개된 이후에도 부자와 재벌, 건설족만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에 몰두해 있는 모습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세계적 경제위기 한 복판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려있다. 카드 사태 이상으로 수없이 많은 희생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민들의 '밥'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밥'이 절박한 서민들에게 대책이라고 운하나 하천정비사업, 금산분리를 내놓는 정부는 더 이상 정부로서 기능할 수 없다. 집권 1년 만에 단행한 개각으로 들어선 새로운 경제팀 역시 환란의 주범들로 이루어졌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이, 집권 1년 만에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끝났다.
국민에게서 멀어져간 노무현 정부를 되돌리지 못한 것이 진보의 업보라면, 이제 이명박 정부를 다시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업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 노력하는 건전한 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들도 노무현 정부와 함께 몰락한 진보의 뒤를 쫓을 것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졌고, 향후 만들어질 온갖 악법은 일주일이면 폐기시킬 수 있다. 금산분리 다시 강화할 수 있고, 규제완화 다시 정비할 수 있고, 누구나 집 걱정 하지 않는 경제 만들 수 있다. 카드사태 당시에도 경제관료들의 끈질긴 반대를 극복하고 우리는 개인파산법을 만들어냈다. 경제위기를 맞아 한 단계 더 승화된 개인회생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대적인 서민지원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 함께 잘 사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기적의 한국경제를 일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보수의 과제가 되었다. 반면에 진보는 진정으로 위기의 한국경제와 국민들을 어떻게 살려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진보는 현장으로 돌아가 막다른 길에 다다른 서민들의 애환을 진심으로 공감해야 한다. 기득권층의 유혹에 넘어갔던 과거와 단절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신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한국경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진보는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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