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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금사·카드사 망친 재벌, 은행은 잘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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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금사·카드사 망친 재벌, 은행은 잘 할 거라고?"

[김태동, '병든' 한국 경제를 말하다] '금산 분리 완화'는 금융 분야 '대운하'

최근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정부의 외압에 의해 물러났다.

민간연구원에서 이견을 내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을 만큼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 역설적으로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는 그만큼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가의 경제정책은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시장 참여자들의 갈등을 거중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반대'에 맞서는 논리로, 반대를 설득하고 무마하는 게 또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무작정 '힘'으로만 억누르려고 한다. '말'로, '소통'을 통해서는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왜? 민간 기업이 아닌 한 국가의 정부가 우선해야할 '공익'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 최근 물러난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금융연구자로서 도저히 합리화할 논거를 만들 재간이 없다"면서 사퇴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뉴시스
금산분리 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은 지난달 29일 이임사에서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다"고 현 정부의 재벌 친화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세계 금융위기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정책을 강행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이동걸 전 원장만이 아니다. 상당 수의 경제학자가 우려하고 있다.

재벌들에게 금융회사를 맡겨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97년 외환위기 당시 대거 무너진 종금사, 2003년 경제위기를 야기한 카드사 등 모두 재벌들의 무리한 투자와 실적 경쟁이 빚어낸 비극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삼성 사건'을 통해 증권사, 보험사 등이 재벌 총수의 사금고로 활용됐음이 드러났다. 이런 전례들이 있는데 은행은 사금고화가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김 교수는 반문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중 가장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는 김 교수의 주장은 "금산분리 완화는 금융분야의 대운하"라는 이동걸 전 원장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 금산분리 가장 안 된 나라"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지난 연말에 이어 이번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법안 중 하나가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이다. 현재도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를 재벌들이 다 소유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마지막 제한선이었던 은행도 소유가 가능해진다.


▲ 김태동 교수. ⓒ궁리
김태동
: 은행은 증권회사나 보험회사와 달리 예금을 받을 수 있다. 이건 다른 비은행 금융기관과 대단한 차이다.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면 대출이 예금으로 들어와 또 대출을 하는 이런 과정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한국은행의 본원통화는 50조 원대이지만, 일반은행의 예금은 700조 원이다. 기업이나 가계에 신용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한은의 14배 역할을 일반은행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것을 재벌이 소유·지배할 수 있게 된다? 산업자본인 재벌은 지금까지는 은행 지분의 4%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법이 통과되면 은행지분의 10%까지 소유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라 자산 5조 원 이상 재벌이 출자한 사모펀드(PEF)는 아예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 사모펀드를 통해 간접적인 소유가 가능한 셈이다.

현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금산분리가 안 된 나라다. 은행 소유를 제외하고는 다 된다. 그런데 마지막 보루라고 보는 상업은행도 재벌이 소유 지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연기금과 PEF의 은행 소유만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2단계로 잡았던 은행 소유 지분 한도를 10%로 늘리는 것도 포함해 추진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소유지배하는 곳은 3군데에 불과하다. 이들 산업자본도 우리나라 식의 문어발식 재벌은 아니다. 세습경영이 되는 재벌도 아니다.

은행이 제조업체를 소유 지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이나 유통업을 기반에 둔 자본이 은행을 야금야금 지배해가는 그런 나라는 없다.

프레시안 : 재벌들의 은행 소유가 왜 그렇게 위험한가?

김태동 : 금산분리 완화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중 가장 위험하고 나쁜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직후 청와대 경제수석을 하고 그 뒤 정책기획위원장을 하면서 2-3년간 본 경험에서 말씀드리면, 당시 40여 개 정도 종금사가 있었는데 전부 망했다. 살아남은 것은 2-3개 정도에 불과했다.

은행이 아닌 종금사를 예로 들면, 종금사는 예금을 받지 않는다. 그 당시 단자 회사를 종금사로 전환해서 40개 정도였는데 전부 다 망했다. 여신에 해당하는 대출의 위험평가를 제대로 못해 자본금이 잠식돼 망하게 됐다. 그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 바로 10년 전 얘기다. 이 종금사를 누가 소유하고 있었나? 다 재벌이다.

또 2003년 카드위기도 재벌들이 일으킨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1-2등을 다투는 삼성과 엘지가 매출 경쟁을 하다 카드 부실이 일어났다. 카드사보다는 종금사가 더 경영이 어렵고, 종금사보다 은행이 더 어렵다. 카드사는 대출을 한 사람에게 많이 내 주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도 경영을 잘못해서 2003년 우리 경제가 크게 후퇴됐었다. 민간소비가 5-6분기 계속해서 마이너스가 됐는데, 이는 1차 외환위기 직후보다 경기위축이 더 오래 지속된 것이다.

이런 일들을 저지른 재벌이 은행을 소유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항상 돈을 버는 게 아니다. 1차 외환위기 때 은행들이 손실을 많이 봐서 자본이 잠식되고 BIS 비율을 못 맞춰 공적자금이 87조 원이나 투입됐다. 이를 통해 은행들이 신용경색을 풀고 신용창조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용창조를 너무 많이 했고 감독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 지금 또다시 공적자금이 대거 투입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하는 말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감독을 제대로 하게 됐으니까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하더라도 사금고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지표로 증명된 바 없다.

금산분리 완화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처음 얘기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은 10년 전 외환위기, 4-5년 전 카드대란 경험에 비춰 비은행 금융업도 되도록 산업자본과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행히 엘지, 에스케이, 동원 등 몇몇 재벌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특히 삼성의 경우 일등주의에 사로잡혀 있는데, 일등을 매출액으로 따진다. 은행 경영에서 일등을 하려면 어떻게 하겠냐. 또 그룹 계열사는 좀 더 쉽게 대출을 받는 반면, 다른 재벌들은 그 은행을 이용 안할 것이다. A라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했다면 B라는 재벌은 그 은행에서 대출 받을 일이 없다. 대출을 받으려면 경영 정보를 제출해야 하는데 경쟁사에 정보를 넘기는 셈이 되지 않나. 그러니 B재벌, C재벌도 경쟁적으로 은행을 소유하려 할 것이다. 재벌들이 증권사, 종금사, 보험사의 경우에도 경쟁적으로 다 하나씩 갖고 있지 않았나. 은행은 그렇게 될 유인이 더 많다.

이는 평상시에 걱정되는 부분이고, 문제는 경제위기 때다. 지금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온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나빠지는 것은 금방이다. 한달, 한주가 틀리게 급격히 나빠진다. 은행을 소유한 A라는 재벌은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역으로 A라는 재벌에서 한 계열사가 부실이 커지면 그때 소유은행이 얼마든지 사금고가 돼서 계열사 지원을 할 수 있게 된다. 평소에도 감독당국의 모니터링이 허술한데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앞서 보험사, 증권사도 전부 사금고화 됐는데, 은행은 안 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세계적으로 제조업을 하는 기업 중 상업은행도 하는 곳은 없다.

"삼성 자동차도 망했는데…은행 소유는 몇십배 위험한 일"

프레시안 : 금산분리 완화론자들은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사례를 들기도 하는데?

김태동 : GE가 하는 금융업은 할부금융업무다. 이는 카드사 비슷한 업무이지 은행과는 전혀 다르다.

A라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 지배하는 즉시 그 재벌은 망할 것이다. 제조업과 은행의 경영모델은 공통점이 없다. 돈줄이 생겼으니까 재벌의 투자계획이 다시 방만해질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과 은행을 같이 하는 모델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만약 삼성이 상업은행을 소유하려 한다면 삼성 구성원들이 나서서 말려야할 일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자동차에 투자한다고 할 때 못 말려서 결국 어떻게 됐나. 상업은행을 소유하겠다는 것은 자동차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몇십배 위험하다. 삼성이 진짜 인재로 이뤄진 조직이라면 이런 일에 대해서 '노'라고 하고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할 것이다.

또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은행 주가가 비싸서 재벌들이 소유하려면 적어도 20조 원은 드는데 삼성일지라도 그 정도 자금을 감당하겠냐는 반론이 있었는데, 요새 은행 주가가 반의 반토막이 나서 그런 논리도 먹히지 않는다.

프레시안 : 삼성은 지난해 4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비자금 등 일부 비리가 드러남에 따라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그때 은행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될 경우 증권사 등에 지급결제기능이 부여돼 굳이 은행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태동 : 자통법이 시행되면 소액지급결제 기능을 금융투자회사가 가질 수 있다. 소액이라는 게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개인사업자는 물론이고 금융회사가 아닌 법인이 금융투자회사에 예치하면 다 소액이다.

그래도 은행처럼 직접 한은 결제망에 들어가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한다리 건너서 들어가기 때문에 재벌의 은행 소유욕을 별로 감퇴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금융투자회사는 미국 투자은행을 모델로 한 것인데, 이번 금융위기에서 투자은행들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상업은행을 소유해야겠다는 욕구가 더 커졌을 수도 있다.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과연 지킬까? 필요하면 법을 어기는 경우도 수다한데 법률이 허용하는 은행 소유를 하지 않을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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