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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잊혀진 용산 참사, 그들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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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잊혀진 용산 참사, 그들이 웃고 있다"

[기자의눈] 용산에서 숨진 이들을 세 번 죽일 텐가?

용산에서 여섯 사람이 불에 타 숨진 지 열흘이 넘었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힘 펴냄)을 떠올리며 절망했다. 어찌 이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도시 빈민의 스산한 삶은 나아진 게 없단 말인가?

책임자 경질은커녕 사과 한 마디 없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이번 참사를 '꼭 필요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과연 그런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뉴타운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인 '지금과 같은' 도시 재개발 사업은 정말 꼭 필요한 사업인가?

"우리가 못한 일을 신께서 하셨다"

도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주거 환경 개선'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몇몇은 이런 말도 덧붙인다. "아무리 서민이라도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초토화된 뉴올리언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얼핏 들으면 그럴싸해 보이는 이 말 뒤에 숨은 탐욕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유나영 옮김, 이후 펴냄)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뉴올리언스의 진실을 알려준다. 데이비스의 고발을 보면, 뉴올리언스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의 희생양이 아니라 '살해'당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뉴올리언스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형 허리케인이 덮칠 경우 "대부분 가난한 동네에 몰려 있는 대규모 인원"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경고가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런 "냉담한 태도"의 이유는 카트리나 참사가 발생하자 곧바로 드러났다.

전 세계가 이 선진국에서 일어나 참사에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을 때, 몇몇 현지 지역 인사는 이렇게 논평했다. "마침내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가난한 흑인의 주택을 쓸어 냈다. 우리가 못한 일을 신께서 하셨다." "처음으로 이 도시에서 마약과 폭력이 사라졌다. 앞으로 뉴올리언스는 이 상태를 쭉 유지할 것이다."

이런 인식은 뉴올리언스를 지배하는 기업과 결탁한 권력의 공공연한 생각이었다. 주로 흑인이 살았던 약 12만5000가구가 파손된 지 반년이 지나도록, 대통령이 약속했던 발 빠른 복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유서 깊은 흑인의 거주지를 도시의 홍수로부터 보호할 저수지로 만드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진행되었다.

데이비스가 간파한 대로, 권력을 쥔 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은 재개발을 통해서 "뉴올리언스를 미시시피 강 유역의 라스베이거스"로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한때 흑인 주택 단지를 뒤흔들었던 "격렬한 흑인에서 유래한 음악의 에너지는 "루이지에나 음악 체험장'에서 안전하게 방부 처리된 채로 관광객에게 선보일 것이다."

▲ 2월 1일 용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청계광장에 모인 약 5000명의 유가족, 정치인, 시민들. 용산 참사, 벌써 잊혀지고 있는가? ⓒ프레시안

"용산 철거민은 두 번 살해당했다"

이런 뉴올리언스의 예를 염두에 두면 이른바 뉴타운을 건설한다며 진행 중인 서울의 도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의 의중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뉴타운'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서민의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니라 서울에서 "빈민을 없애려는" 데 있다. 빈민을 없애는 과정에서 건설 기업의 이익도 도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실제로 많은 철거민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런 분석이야말로 진실에 가깝다. 기업 입장에서 재개발 예정지는 아파트를 건설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땅덩어리일 뿐이다. 또 그곳에 들어갈 일부 외지인에게는 '대박' 꿈을 실현시킬 재테크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원주민에게 재개발 예정지는 사실상 목숨과 같다.

재개발 예정지는 철거민에게 단순한 집이 아니다. 그곳은 경제 활동을 지탱할 공동체가 모여 있는 삶의 터전이다. 실제로 이번에 목숨을 잃은 이상림(71) 씨는 용산 재개발 예정지에서 30년간 식당을 운영하면서 3남매를 키웠다. 이 씨와 같은 이들에게 용산을 떠나는 것은 사실상 앞으로 경제 활동을 포기하라는 얘기와 같다.

또 이 지역 공동체는 오랜 이웃 사이에 생기게 마련인 정서적 유대감에 기반을 둔 갖가지 상호부조를 통해 빈약한 사회의 안전망을 대신하는 역할도 해왔다. 뉴타운 사업으로 '살해'당한 은평구 한양 주택도 그랬다. 예를 들면 한양 주택에 살던 한 주민은 마당 우물을 이웃에게 공유했다. 한양 주택 사람은 누구나 그 우물물을 공짜로 사용했다.

한양 주택이 헐리면서 원주민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 나이든 이들 몇몇은 이웃 없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정든 동네, 정든 집의 가치는 몇 푼 보상금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용산을 비롯한 서울 곳곳의 재개발 예정지 원주민 상당수는 그 보상금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한다.

이번에 용산에서 숨진 이들은 두 번 살해당했다. 삶의 토대를 박탈당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살해당한데 이어서, 경찰의 강경 진압 때문에 '육체적으로' 살해당한 것이다. 서울 곳곳의 재개발 예정지 원주민 역시 이렇게 똑같이 살해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재개발 예정지 주민에게 보상금을 얼마나 쥐어줘야 적정한가, 이런 질문은 본질과 무관하다. 지금과 같은 도시 재개발 사업을 계속 용인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토론 주제다.

"'거대 슬럼'으로 전락할 아파트, 이대로 방치할 텐가?"

이런 주제는 새롭지 않다. 이미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 중인 각종 재개발 사업을 비판하며 '정부, 기업은 꼭 원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해당 지역에 가장 적합한 개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실제로 한국의 도시 재개발 사업은 근본적인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

우선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건설부터 재고해야 한다. 지역, 주민 특성에 따라서 다가구, 다세대 주택 공급이 최적일 수도 있고, 기존 주택을 개·보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합할 수 있다. 애초 그들도 주장하지 않았나? "주거 환경 개선"이야말로 도시 재개발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앞에서 언급한 한양 주택은 마당마다 수십 년간 기른 나무, 화초가 가득한 영화 촬영 장소로 쓰일 장도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1996년 서울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에도 뽑혔다. 이런 한양 주택이 없어진 자리에는 아무런 특징 없는 아파트가 들어선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을을 없애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를 짓는 꼴이다.

도시 재개발을 할 때 아파트 건설을 고집하는 이유가 건설 기업의 이윤 담보에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이 가져오는 재앙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짐이 되는 건설업계의 부실 문제는 여러 번 거론됐으니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한 번 눈을 감고 20~30년 후를 상상해 보자. 서울시 곳곳에 세워진 수십 년된 흉측한 고층 아파트, 고층 주상 복합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도 정점을 찍고 하락 추세일 텐데…. 외곽의 신도시로 부자들이 떠난 그 아파트, 건물이 거대 슬럼의 온상이 될 게 뻔하다. 그때 또 재개발을 한다면서 서울시 곳곳을 공사판을 만들고 '빈민과의 전쟁'을 선포할 텐가?

일단 아파트 건설을 포기하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환경 도시로 유명한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 보봉 마을은 좋은 예다. 애초 프라이부르크의 가난한 이들이 옛 군 병영 건물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이 마을은 기존 건물을 개·보수해 에너지 효율을 높임으로써 친환경 마을로 거듭났다.

현재는 개·보수한 구옥 옆에 새로운 친환경 주택 단지가 들어서 원주민과 이주민이 다양한 친환경 주택에서 어울려 사는 마을로 거듭났다. 보봉 마을이 이렇게 친환경 마을로 거듭난 데는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생태 마을의 밑그림을 프라이부르크 시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잘 잊는 국민, 지금 그들이 웃고 있다"

용산의 비극이 또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계속 화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원주민을 살해하는 재개발을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듯하다. 벌써 많은 사람은 보름도 안 된 참사를 잊은 모양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 시민·사회단체가 연 1일 추모 집회에는 고작 수천 명만이 모여서 망자의 넋을 위로했다.

우리는 용산에서 숨진 이들을 세 번째 죽일 것인가? 언제나 잘 잊는 국민을 내려다보면서 그들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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