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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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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교환

[이정전 칼럼] '법질서 확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채와 연예인의 자살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는 하루에 약 33명꼴로 자살하였다. 2007년 우리나라의 자살률(10만 명당 자살하는 사람의 수)은 24.8명으로서 OECD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미국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다. 일본의 자살률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낮았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의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앞으로 경제가 더욱 더 나빠지면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2008년에는 인기 탤런트였던 A씨가 자살을 해서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잊혀질 즈음 한때 인기 정상의 배우였던 C씨가 자살을 해서 온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C씨 자살의 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A씨의 경우에는 사채업자의 협박이 원인이라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랐다. 그러지 않아도 사채업자의 고리대금과 폭력적 빚 독촉에 몰려 자살하거나 자살소동을 벌이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던 터에, A씨의 자살사건으로 사채업의 비리가 또 다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보통 사채업이라고 하면 은행이나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사업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채업이 하는 일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채업자들은 기업의 어음이나 양도성 예금증서, 채권, 비상장 주식 등을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일도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특히 큰 손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사채업체들은 검은 돈을 깨끗한 돈으로 '세탁'해주는 작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채업은 불법자금 세탁의 온상이다. 그러나 사채업체의 자금세탁이 워낙 은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규모나 정체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채업에 관해서 표면상으로 들어나는 가장 큰 사회적 문제점은 살인적 고리대금이다. 고리대금과 관련된 폭력이 난무하고 각종 사회적 비리들이 빈발하자 사채업의 건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2006년에 법이 만들어지고 대출이자율을 연 66%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해야 법적으로 등록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채업에 해당하는 얘기일 뿐 사채업의 폭리행위는 여전히 법 밖에 있다.

연예인의 자살사건이 터지면서 주요 일간신문은 사채업 폭리의 구체적 사례를 파헤치기 시작하였는데, 열흘에 10%의 살인적 고율이 적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10일에 10%라면 하루에 1%요, 일 년이면 365%다. 예를 들어서 사채업자로부터 1000만 원을 빌렸다고 하자. 그러면 10일마다 이자만 100만 원을 내야 한다. 일단 한 번이라도 연체를 하면 밀린 이자가 원금에 포함되면서 빚이 불어나고 여기에 고율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불어나는 것이다. 3개월간 대여섯 번 연체를 하면 갚아야 할 원금이 2000만 원으로 불어나고 10일마다 내야 하는 이자는 200만 원이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돈을 빌린 사람들 대부분이 상환을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계속 이자를 내지 못하면 결국 애당초 1000만 원의 빚이 7개월 후에는 5000만 원을 넘게 된다. 불과 7개월 사이에 빚이 5배 이상 불어난다.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사채업자의 온갖 박해와 폭력에 시달리게 되며 결국 재산까지 빼앗긴다. 그래서 자살소동까지 벌어지게 된다.

사채업자의 변

물론, 사채업자들도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사채를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 소득이 일정하지 않으며 담보 잡힐만한 확실한 재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채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일종의 신용불량자들이다.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떼일 위험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사채업자들은 돈 떼일 위험을 무릅쓸 만큼 충분히 높은 대가가 있어야만 돈을 빌려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고율의 이자를 요구하게 된다. 돈 떼일 위험을 보상하기 위해서 추가로 요구하는 이자를 위험가산금리(위험프리미엄)라고 한다.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높을수록 위험가산금리는 높아진다. 사채업자가 요구하는 높은 이자율은 돈 떼일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 즉 높은 위험가산금리를 포함한 것이다.

시장의 원리를 굳게 신봉하는 경제학자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사채업자의 이런 변명에 한 마디 더 거들어 준다. 우선, 이들은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 합의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따라서 사채업자가 강압적으로 돈을 빌려주었거나 사기를 치지 않은 이상 돈을 빌린 사람과 사채업자 사이의 자발적 거래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해당사들 사이의 자발적 거래는 양쪽 모두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요긴한 용처에 돈을 쓸 수 있어 좋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이자를 받아서 좋다. 그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려줄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높은 이자를 지불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거래당사자들이 알아서 합의할 사항이지 제3자가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사항이 아니다. 너무 높은 금리를 징수한다고 해서 사채업에 대하여 정부가 억지로 규제하는 것은 시장의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 효과도 없다. 오히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돈 빌리기 어렵게 만들어서 이들을 더욱 더 곤경에 빠지게 할 뿐이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이런 식의 주장이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사채업의 경우 돈 떼일 위험이 높기 때문에 높은 위험가산금리가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위험만이 그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많은 경우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급한 일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가족이 갑자기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당장 돈이 없다든가,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도 없고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없을 경우에는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사채업자에게 달려가 매달리게 된다. 사채업자는 이렇게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만 채운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을 여지가 많다. 궁지에 몰린 사람과 여유 있는 사람 사이의 거래는 결코 대등한 입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절망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

이와 같이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말려드는 거래가 비단 사채뿐이 아니다. 예를 들면, 큰 대학병원의 화장실에 가보면, 장기를 팔겠다는 글이나 쪽지가 가끔 보인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몸의 일부를 때내어 팔려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40여 년 전 우리나라가 무척 가난했을 때만 해도 피를 팔아 끼니를 때우려는 사람들이 큰 병원 앞에 늘 장사진을 쳤다. 피를 팔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고 자리다툼까지 벌어졌다. 피를 너무 자주 뽑았기 때문에 더 이상 피를 뽑으면 위험하다고 병원 측이 거절해도 피를 뽑아달라고 조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죽지 못해 그랬을 것이다. 몸을 파는 성매매 종사자들, 장기를 파는 사람들, 심지어 어린 자식을 파는 사람들, 오죽하면 그랬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우리 옛말이 있듯이, 아마도 절망적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사실상 강요된 거래'로 몰고 갔을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매달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절망적 교환'을 최소화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사진은 지난 21일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순천향대병원 분향소에서 통곡하는 유족. ⓒ프레시안

어떤 학자들은 비참한 상황에서의 거래를 "절망적 교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리 절망적이라고는 하지만 몸을 팔고, 장기를 팔고, 자식을 파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인간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하는 짓임은 분명하다. 특히, 생계에 직결된 거래 중에 사실상 강요된 거래가 많다. 적지 않은 성매매 행위가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입에 풀칠하기 위한 강요된 선택이며, 후진국에서 흔히 보는 생계비 이하의 비참한 노동 역시 사실상 강요된 거래라는 것이다. 어디 후진국뿐이겠는가. 그런 절망적 교환을 놓고 상호이익을 도모하는 거래이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사채업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채업자들에게 혼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간적 모욕과 인간성 상실을 호소한다.

이런 인간성 상실 및 인간모독 때문에 몸, 혈액, 장기, 유아, 등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절망적 교환이 몰고 올 인간성 상실이나 인간비하를 사회전체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채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절망적 교환을 무조건 금지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정통경제학자나 신자유주의자들은 반발한다. 예를 들어서, 장기를 파는 사람들은 주로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장기를 팔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은 그런 비참한 상황을 참고 견딜 것을 강요하는 것에 진배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장기거래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장기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장기를 팔아 돈을 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이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절망적 교환이 존재한다는 것, 예컨대 생계를 위해서 몸을 팔거나 장기를 파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징후로 보아야 한다. 살인적인 고금리로 사채를 빌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금융제도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나아가서 우리 사회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절망적 교환을 허용하느냐 않느냐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절망적 교환을 초래하는 사회의 상황부터 바로 잡을 생각을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용산 철거민 참사

구정을 1주일 여 앞두고 발생한 용산 철거민참사를 놓고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철거민의 극한투쟁과 경찰의 강제진압이 불법이었는지 아닌지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철거민들을 그런 극한투쟁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정치권, 특히 여권은 별로 관심 없다. 불법인지 합법인지를 따지기에 앞서서 그렇게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극한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를 가슴 아파하고 문제 삼는 태도가 아쉽다.

이제 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실업이 늘어나고 절망적 상황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법질서의 확립은 그 다음의 일이다.

여권의 정치가들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 미국 뉴딜정책의 핵심이 공공토목사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황 타계를 위해서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역점을 둔 사업은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이었다. 사회보장제도는 미국인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지만, 루트벨트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으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스페인의 투우가 순전히 대중의 오락을 위해서 만들어진 경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투우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구제하기 위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돈을 모으기 위해서 고안된 일종의 모금방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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