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의 노동자협의회 위원장 선거에 대한 회사 측의 개입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던 강대우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인 김승철 씨가 지난 12월 24일 징계 해고됐다. 이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해 항의하고 개표 결과 공고를 늦춰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자해하겠다"며 선관 위원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선거 과정에서의 논란은 현재 법정 다툼으로 넘어간 상태다. 강대우 후보 측이 '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해고된 김승철 씨는 인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가라앉지 않는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부정 선거 파문과 관련해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프레시안>에 다시 글을 보내왔다. 김성환 위원장은 김승철 씨에 대한 해고가 "노동자협의회 부정 선거 논란을 잠재우고 더 나아가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한 회사 측의 협박용"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
끝내 김승철 씨가 해고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7일 치러진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 선거가 회사 개입에 의한 부정 선거였음을 폭로한 강대우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그는 개표 당시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사람이 투표를 하고, 서울 병원에 입원 중인 사람이 거제까지 내려와 투표를 하는 등 선거인 명단에 문제가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혹을 제기했다.
당연히 해고 사유 가운데 '그날 일'이 포함됐다. 김 씨가 중선위에 '선거 결과를 발표하지 말라'며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다. 회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인사위원회를 열고 김 씨가 경영진과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형사 고발된 상태이며 이미 2006년에도 징계를 받은 바 있다며 총 6가지의 죄목을 붙여 해고해 버렸다.
현재 김 씨는 인사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낸 상태다. 결과는 오는 13일 나오지만, 이제까지의 삼성중공업의 '행태'로 봤을 때 어렵지 않게 추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더 김 씨의 해고는 단지 한 사람의 '불운한' 사태로 넘기기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수십 년간 삼성재벌의 '무노조 경영'을 합리화했던 노사협의회, 즉 노동자협의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협의회는 처음부터 '타협'이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에서의 노동자협의회는 노동조합의 모습을 띤 사실상의 노동자 관리 기구다. 이는 지난 1988년 삼성중공업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의 투쟁이 시작된 1988년 4월 16일로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해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임금인상액은 고작 25000원에 불과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대우조선은 이보다 2배가 넘는 68000원 인상에 타결했을 때였다.
그 당시에도 노사협의회가 있었지만 노동자 편은 아니었다. 노사협의회 대표들은 오직 회사 눈치만 보고 있었다. 끝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났다. 4월 16일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오전 9시 내업부 노동자 50여 명이 작업거부를 외치며 현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시위 대열은 금방 1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전 10시부터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기 위한 서명을 받기 시작해 금세 7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파업이 시작됐다. 회사는 23일까지 휴업하겠다고 알렸다. 강제 휴업 중이던 그곳에서 바로 그날 7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거제군청에 설립신고를 접수했다. 서명을 받은 700여 명보다 앞선 노조 설립이었다. 당연히 회사가 개입돼 있었다. 한 마디로 '유령노조'였던 것이다.
한 발 늦은 700여 명은 다음날인 17일 계획대로 노조 설립식을 치렀다. 200여 명의 전투경찰과 '구사대'의 저지를 뚫고 거제군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조 설립 신고서 접수조차 거부하던 거제군청은 700여 명의 항의에 부딪혀 "20일까지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삼성에게 군청을 움직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한 사람은 칼로 자해하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다른 사람은 거제군청 옥상에 올라가 "민주노조를 인정하라"고 절규하며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
지금의 노동자협의회에 1988년의 정신은 남아 있는가?
그해 4월의 격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 건설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투쟁은 소위 '노동3권'을 형식적으로나마 보장하는 지금의 노동자협의회를 만들어냈다. 겉모습만 보면 일반 노동조합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여느 노조처럼 다수의 상근자를 두고 때로는 파업을 하기도 한다.
다만 파업을 할 때 행정관청에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대표 이사에게 파업 신고를 한다는 것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차이점이다. 소위 '파업 기금' 역시 절대 노동자 개인에게 걷지 않는다. 일체의 쟁의기금도 모두 회사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동자협의회가 웬만한 노조보다 낫다"는 얘기까지 한다. 또 이마저 허용되지 않는 삼성계열사 노동자들은 "삼성중공업은 그래도 삼성 노동자의 해방구"라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착각이다. 이번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부정 선거 논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 삼성중공업의 노동자협의회 안에 1988년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없다. 자주적인 노동자 활동과도 아예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자주적인 노사협의회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발맞춰 노동자협의회를 통해 관리와 통제를 시도하는 삼성의 뿌리 깊은 '반노조 철학'만 있을 뿐이다.
노동자협의회 내부 문제에 대체 왜 회사가 나서는 것일까?
현재 이 문제는 법정으로 넘어갔다. 부정선거의 시비를 가리기 위한 '당선 결정효력정지 등 가처분' 재판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회사는 인사위를 열어 김승철 씨를 해고했다. 이 '초강수'의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현장에서는 "회사가 별로 현장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고 강대우 후보 측에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분분하다고 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추론이다. 위원장 선거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우선 노동자협의회에서 스스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정작 노동자협의회를 가만히 있는데 이 일에 대해 회사가 나서 인사위를 열고 해고까지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구구한 억측과 오해의 책임이 회사 측에 있는 까닭이다. 현장 노동자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이런 배경을 다 알고 있다.
더욱 한심한 일은 현 조성만 집행부 측에서 김승철 씨에 대한 해고 사태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징계를 방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현 집행부를 보는 현장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비록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노동자협의회가 진정 노동자를 위한 곳이라면, 설령 반대편 후보 선거운동본부의 본부장이라 할지라도 말도 안 되는 해고에 함께 나서야 한다. 더욱이 회사의 탄압에 의한 해고 아닌가. 선거 개표 당시 김승철 씨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흉기를 들었던 행동이 지나쳤는지 여부는 그 이후에 함께 판단한 일이다.
이는현 집행부가 과연 지난 1988년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절규했던 그 정신을 계승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려 하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새해, 아무쪼록 삼성중공업 노동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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