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와 같은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경인운하 추진 와중에 왔다갔다한 비용편익 수치들이다. 비용편익분석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생소했던 개념이었는데 한반도 대운하 논란을 통해서 고작 정부가 전 국민에게 '대운하 스펀지' 혹은 '대운하 지식in'으로 톡톡히 활약한 점만큼은 칭찬해줘야겠다. 비용편익분석에서 '1.0을 넘으면 경제성이 있다'는 전제는 다분히 신화라는 것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기법은 균질화된 공간을 가정하고,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을 쥐락펴락 추정할 수 있다는 신고전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매트릭스 내부에서의 모든 현상들을 데이터화, 수치화 할 수 있다는 가정과 같다. 물론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운하건설로 초래될 생태계변화와 파괴, 후속세대 영향까지 수치화할 수 있는 가에 있어서 회의적이다. 경인운하의 비용편익에서는 물론 이들 항목은 고려조차 안됐다.)
더 큰 문제는 비용편익 분석의 방법론적 문제점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석기법을 사용하는 데 '마사지(massage)'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란에서의 비용편익분석 논란에서 참여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미FTA 논쟁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GE 모델을 통해서 한미 FTA체결로 인한 거시경제효과가 한국에 이득이 될 거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그 원(raw)데이터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과연 어떠한 지표들을 사용하고, 얼마나 각 변수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부과했는지를 보아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시작할 수 있는데 데이터 공개조차도 안하고서, 결과만 내놓고는 한미FTA가 한국에 유리하다고 단정 짓고 추진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 데이터의 공개조차 안하는 행위는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신고전경제학의 제살 깎아먹기며, 탈정치적이어야 할 학문에 정치적인 얼룩을 남기게 됐다.
이번 경인운하의 본격적인 추진계획의 지원사격을 한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사실 KDI는 이번 보도기사처럼 경인운하와 첫 인연이 아니다. 90년대 경인운하 논쟁에서 비용편익을 둘러싸고, 자그마치 2.2를 주장한 경인운하 주식회사에 대해서 환경단체들은 자체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 비용편익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갈등이 첨예해지자 결국 객관적 판단자로서 KDI에 의뢰했었다. 그래서 2002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의 의뢰로 경인운하의 비용편익 산출결과는 0.8166으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런데 이 수치도 건교부에서 경제성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를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1"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경인운하 ⓒ환경정의 |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KDI가 경인운하에 대한 분석을 맡으면서 국토해양부는 KDI의 위상이라는 후광을 업고 추진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KDI에서는 분석에 사용한 기본 데이터의 공개도 제대로 안되고, 구체적인 논평조차 없으며 단지 국토해양부만 말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 근자에 KDI는 경인운하 사업을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바꿀 것을 권고한 바 있다. KDI의 위상에 비출 때 이러한 공공사업 전환 권고는 경인운하가 이익이 안 되고,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인운하가 경제성이 없던 결과를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바꾸는 동시에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의 전환을 권고하는 이 정신분열적인 판단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임기가 4년 남은 정부가 40년 가까이 쌓아놓은 신뢰와 객관성을 담보한 국책싱크탱크인 KDI의 명성을 이렇게 한 순간에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에서 국책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신뢰도가 추락했고, 한반도 대운하 논쟁에서 김이태 박사가 징계를 받고, 다시 4대강 정비사업 용역을 유치한 마찬가지로 국책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마찬가지의 길을 밟았다. 이제 KDI마저 신고전경제학적 접근의 미덕마저도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나 KDI의 영향력이 삼성경제연구소(SERI)에 밀렸다는 일련의 최근 보도기사를 의식해서 이러한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 KDI는 자신들이 분석했던 결과를 뒤집고, 정권에 맞장구를 치는 것을 통해 다시 SERI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까? 도리어 그 추락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 대운하의 사업성이 없음을 양심 고백한 연구원이 갑작스레 징계를 받고,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라는 의혹이 짙은 4대강 정비사업이 화끈하게 추진되며, 덩달아 KDI의 후광을 입고서 경인운하까지 추진되고 있다. 각 사건들은 국토해양부 관료들의 말대로 정말 '우연'하고, 상호 무관하게 벌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단 난 사업들의 부활을 어떻게 경제학적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 상황을 단순히 예외적 변수로 처리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우연으로 보이는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변수들 간에 상관관계를 도출하고, 분석에 포함시켜야만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여기서 이 우연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정치다.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발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고, 그렇다고 계산도 안 되는데, 이명박 정부를 소실점으로 한 복잡한 권력관계들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한데 단순히 '경제'의 영역으로 고립시키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니까, 논의의 진행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더하여 국회를 점거한다고 며칠을 숭고하게 외박한 민주당도 앞에서 밝혔듯이 운하를 비롯한 토건지향성을 강화시켰다는 점에서는 결코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대항마라고 생각한 민주당도 딱히 대항마로 삼기에는 탐탁치가 않은 게 현 상황이다.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이러한 현 정세에 맞춰서 시기적절한 접근과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줄 듯하다. 이광일 교수의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메이데이)는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그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급진적, 진보적 운동이 민주화에 발목을 잡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과 동시에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프레임화한 '경제', '정치'로 나누는 이분법적 틀이 도리어 민주화를 정체시켰음을 밝혀낸 수작이다. 여기서 정치와 경제의 갈림길은 다시 정치경제적 시각으로의 만남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경인운하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서도 우리는 경제와 정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책은 역설적으로 경인운하 추진의 꼭두각시가 되었던 KDI 소속의 유종일 교수가 펴낸 <위기의 경제>(생각의나무)다. 이 책에서도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면서 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시대흐름에 조응한 이 두 책을 통해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무~~~한! 도전!!
촛불집회를 통해서 가까스로 얻어낸 대운하 사업 철회와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은 경인운하를 통해서 어떻게 그 불꽃이 짓밟히는지를 확인했다. 김이태 박사의 징계, 이데올로기 기구로 전락한 KDI, 부활된 대운하 사업까지 이 우연들은 단순한 우연들의 열거가 아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와 더불어 보수양당체제가 깊이 연루된 (밥 제솝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연적 필연성'이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결말에 있어서 백낙청 선생은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다! 신년 초 백 선생은 따뜻한 봄날에 노동자만의 운동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하는 춘투(春鬪) 가능성을 예측했었다. 그러나 더욱 뛰어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명박 정부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굳이 왜 '녹색뉴딜'을 강조하면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됐는데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따뜻한 봄날은커녕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면서 거리로 나오기 좋은 날씨 때문에 제2의 촛불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켜질 것을 진작부터 간파한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제2의 촛불 예측능력에 있어서만큼은 백낙청 선생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본다.
그렇다면 녹색뉴딜을 통해서 차가운 겨울을 되돌리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각고의 노력으로 추운 겨울이 돌아 올 때까지 집에서 <무한도전>이 재방송만 한다고 푸념만 늘어놓을 것인가? 대신에 MBC를 비롯한 언론노조들의 투쟁에 동참하러(물론 다른 불만사항들도 좋다) 광화문이나 여의도로 가기에는 거리가 멀다면 4대강 정비사업 각 추진지역에서 산책을 겸한 연대를 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예상보다 빨리 새로운 <무한도전>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진정한 결말의 그 끝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유재석의 목소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예리한 예측대로 다함께 거리에서 "무~~~한! 도전!!"을 외쳐볼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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