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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 'TV 책' 스캔들, 이건 아니다"

[우석훈 칼럼] 책 안 읽으면 경제위기 극복 어렵다

책에 대해서 나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포디즘이 90년대 초중반에 붕괴되기 시작한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탈포디즘의 경제 국면에서 책의 역할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최근 경제 추세는 창의성(creativity)이라고 번역되는 '창조의 시대'가 점차적으로 전면화되고 있는 중이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10년 전에는 '혁신(innovation)'이라는 말이 그렇게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IMF 경제 위기 때에 한국을 뒤덮었던 경제 분야의 키워드 세 개를 꼽자면, 다운사이징, 혁신 그리고 정보화라는 용어였다.

왜곡된 다운사이징은 한국의 실물경제를 이상한 모습으로 바꾸어갔고, 혁신은 다음 정권에서 이상하게 '개혁(reform)'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는데, 사실 혁신이라는 용어는 탈포디즘의 변화 속에서 나온 용어다.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기계적 의미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개혁과 동의어로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그리고 정보화는 결국 한국을 인터넷 최강국으로 만들기는 했는데, 이게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제적 창의 과정의 발전을 더디게 만든 측면이 있다.

경제구성원이 필요한 정보들은 인터넷으로 다 구할 수 있을테니까 책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전자책과 아카이브 형태로 책의 구성이 바뀌고, 지금 우리가 보는 종이책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다소 세기말적 느낌이 드는 IT의 찬송이 울려퍼지던 시절, 이건 좀 곤란하다고 2001년경 KBS에서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가 새로 만들어졌다.


▲ <TV, 책을 말하다> 홈 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프로그램 폐지를 비판하는 의견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프레시안

인터넷으로 모든 국민들이 몰려가던 시절, 공중파의 TV 프로는 지식의 균형을 잡고, 온라인 정보와 함께 오프라인 서적이 균형이 있어야 국가 혁신체계(NIS: National Innovation System)가 정상적인 작동을 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거시경제적인 시각에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한 때, MBC의 <느낌표>를 필두로 KBS와 EBS에 책 소개 프로그램들이 디자인되고, 절찬리에 방영되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책을 읽게 하자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계몽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지만, 21세기 혁신에서 창의로 경제 파라다임이 전환하는 이 시절, 탈포디즘을 구성하는 '지식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 중의 하나가 책과 독서라는 사실에 이견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빌 클린턴의 '뉴 이코노미'가 붕괴한 이후에 단순히 인터넷과 정보통신만으로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번영으로 이끌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이후에, 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여러 가지 형태로 시선을 끄는 중이다.

당장 문학만 보더라도, 2008년 노벨문학상이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에게 수여된 이후, 왜 영미권에 잘 번역되지 않은 사람에게 노벨상이 갔느냐, 왜 영미권은 이런 중요한 작가의 소설도 잘 번역하지 않느냐라는, 번역문학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서 요즘 한참 신경전이 오고가는 중이다. 물론 이 사건은 단순한 노벨상 수여나 번역문학의 크기가 아니라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전환과 관련된 문제다. 이 전환과정에서 어떠한 나라가 헤게모니를 잡고, 그 헤게모니가 어떤 유형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대리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나라 출판의 크기와 시장의 다양성이 지금 국제 패권의 전개에 대한 1차 요소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선진국 사이에서는 총칼을 들고 싸우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으니, 출판, 문화, 이런 것들이 우선적으로 경합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책은 근대화 시기의 계몽주의에서 최근 거시경제학의 '경제의 창의성 체력'이라는 경제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그 이해가 전환되는 중이다. 물론 지독한 경제논리이기는 하다. 책도 경제적인 이유로 읽어야 하는 것이야? 이렇게 원천적인 질문을 할 수 있지만, 하여간 양상은 그렇다. 영국에서 수 년 전에 시작한 것처럼 독서 교육 프로그램은 동시에 부의 사회적 편차를 줄여주기 위한 복지 정책이기도 하며, 스스로 책을 사보고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기 어려운 빈곤층 자녀들에게 어떻게 책에 접근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가 예산 규모는 크지 않아도 중요한 복지정책이 되는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1월 1일 자로 327회를 마지막으로 KBS의 <TV 책을 말하다>가 전격적으로 폐지됐다. 이는 스캔들이다. 보통 방송국에서는 봄 개편과 가을 개편, 두 번의 정기개편이 있고, 프로를 신설하는 것과 폐지하는 것은 이 때 공개적인 논의와 함께 진행하게 된다. KBS는 사장이 바뀌면서 가을 개편이 제 날짜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봄 개편을 곧 앞두고 있으니까, 프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논의와 함께 자연스럽게 폐지해도 될 일인데, 공영방송에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사사로운 방식으로 프로를 폐지한 것은 일단은 스캔들이다.

만약 사장이 출자자이거나 혹은 오너가 있는 방송에서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사용하면서 이런 짓을 했다고 하면 난리가 났을 일이다. 게다가 KBS는 국민들의 수신료를 받아서 움직이는 공기업 아닌가?

어쨌든 이 스캔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대해 이 자리에서 다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장수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밤 12시 대로 옮겨놓고,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프로그램의 생명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좀 말이 맞지 않는다. 한국에서 12시에 하는 프로 중에서 1.5%라는 시청률을 넘기는 유일한 방송은 내가 '손석희 쇼'라고 부르는 '100분 토론' 외에는 없다. 이 프로도 최근에는 시청률이 많이 떨어져서 고생 중이라고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 얘기하면, 우리나라 시청률 조사 중 애국가가 보통 1% 정도 나온다. 12시 대 방송은 손석희처럼 장관급 인사들을 데려다놓고 가장 민감한 논의를 할 때, 그야말로 끝장 토론 정도 되면 4% 가까이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 12시 이후의 프로들은 애국가보다 조금 높은 시청률이 나온다. 책소개 프로를 이 시간대에 밀어넣고,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잘 성립하지 않는 얘기다.

하여간 'TV 책을 말하다'는 이미 폐지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방송 혹은 그의 후속 방송을 곧 올 봄개편 때 공영방송에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국민경제로서는 타당하다는 얘기를 지금 하고 싶다.

김대중 시절의 국가혁신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몇 개의 TV 소개 프로를 공중파에서 만드는 것이었고, 노무현 시절에는 혁신을 행정개혁 용어처럼 많이 사용했지만 책에 대한 촉진 정책 특히 공중파에서의 촉진 정책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서 노무현 시절, 대부분의 공중파에서의 책 소개 프로그램들이 폐지됐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TV 책을 말하다'라는 최장수 프로그램은 이명박 정권에서 결국 죽었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는 국가혁신시스템의 시대에서 국가창의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통해 돌파구가 찾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 지독할 정도의 경제치라고 할 수 있는 KBS 사장이 눈에 보기 안 좋다고 책 소개 프로그램을 친위 쿠테타처럼 제작 담당자들과 아무 상의 없이 3일 전에 서류 통보하면서 폐지한 것이 사건의 실체이다. 물론 좋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쓰겠다는데, 이 민주주의의 전면적 퇴보의 시점에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건 좋다.

그러나 어쨌든 우파식 혹은 이명박식이라도 좋으니 국가창의시스템의 일환으로 책에 대한 촉진 프로그램은 다시 만들어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고 싶다. 우리나라 책 시장은 대체적으로 3조 원 규모인데, 이 중에 아동용 도서 1조 원 규모를 빼고 나면 2조 원짜리 시장이다. 다시 여기에서 참고서들을 빼고나면 얼마나 남을까? 차마 민망하게 1조 원 미만이라는 게 내 추정이다. 이 조그만 시장을 3~4배로는 키울 때, 국가창의시스템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게 되고, 그게 한국 경제가 선진국 경제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 나의 이해이다.

어쨌든 'TV 책을 말하다'가 사장 측의 친위 쿠데타에 의해서 전격 폐지된 지금, 한국에 남아있는 간판급 책 소개 프로가 뭐가 있을까? 한국경제TV 즉, 전경련이 출자한 케이블 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스타북스'라는 게 있다.

참 웃기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책을 놓고 공중파의 TV 프로그램과 전경련의 '스타북스'가 경쟁한 셈이고, 이 경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간판 책 소개 프로그램이 전경련이 운영하는 것이라니.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 '스타 북스'를 KBS로 옮겨주시기 바란다. 프로의 성격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기술적 논의이며 동시에 우아한 토론이기는 한데, 맘에 안 든다고 아예 없애버리는 친위 쿠데타는 좀 너무한 처사다. 전경련도 국민들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데, 지금 이 처사는 우파들도 안 하는 일이다. 한국의 우파는 국민들이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이미 친위 쿠데타에 의해 전격 폐지는 이뤄진 것이지만, 여기에 대한 절차적 합리성과 결정의 투명성과 같은 행정적 논의와는 별개로, 대체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하나 KBS 측에서 열어주면 고맙겠다. 양서와 고전 그리고 문제 서적, 그런 것들을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공중파가 공공의 방송으로서 해야하는 최소한의 수신료에 대한 서비스 아닌가?

기왕에 진행된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자면, 국민들에게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면 좋을지, 넓고 크게 물어보고, 그런 소통을 통해서 국민인기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보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지금의 경제위기를 장기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재의 경제 위기에 분명히 KBS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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