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주름 잡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큰 변곡점이 됐다. 2009년에도 이 여파가 계속될 것이란 점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파국의 결말이 어찌해야 하는 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현 상황이 '위기'인지, '위기'라면 어느 수위인지 분열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 대응책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힘들다. 정부마저도 합의를 유도하기 보다는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이념적 선명성을 떠나 진정한 의미의 실용적 이해타산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새해 들어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전 환경대학원장)이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이 교수는 한국의 환경경제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원로 경제학자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 모두에 정통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이 교수는 현재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 공동대표, 환경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저서 <두 경제학의 이야기>(1993), <환경경제학>(2000), <시장은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가>(2002), <토지경제학>(2005) 등. 편집자. |
▲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 |
우선, 저는 4대강 정비사업이 위장된 대운하사업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 사업 자체를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정비사업의 주목적으로 홍수예방, 수질개선,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세 가지가 4대강 정비사업의 목적이 될 수 있는지부터 매우 의심스러웠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이 그 세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사업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사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수년간을 돌이켜보면, 4대강의 지류나 4대강 밖에서 큰 홍수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만, 4대강 본류에서 큰 홍수가 났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더라도 홍수피해가 컸던 지역은 거의 대부분 지방 군소 하천 유역이었습니다. 홍수피해는 대부분 인재이지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홍수피해의 주원인이 도시지역의 무계획적 난개발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은 마구 땅 파고 시멘트를 콱 부어대는 식이라서 비가 와도 옛날처럼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지표를 흐르다보니 홍수가 커질 수밖에 없고, 게다가 하수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홍수피해를 키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4대강에 부을 것이 아니라 군소 지방하천의 정비에 투자하고 환경친화적 도시개발에 투입하는 것이 홍수피해도 효과적으로 예방할 뿐만 아니라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4대강 정비와 수질개선 목적은 더욱 더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4대강 본류의 수질은 그런대로 양호한 편입니다. 환경부의 자료를 보면, 고도정수처리를 해야만 생활용수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수질이 나쁜 곳(III급수 이하)은 4대강 본류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4대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에는 정말 형편없이 더러운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강의 지천인 중랑천이나 탄천, 굴포천, 등은 특수 처리를 하더라도 공업용수로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질이 아주 나쁘고 안양천은 고도 처리 후 공업용수로나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더럽습니다. 지천의 더러운 물은 결국 4대 강 본류로 흘러들어 갑니다. 지천의 물이 더러운데 본류가 깨끗할 리가 있겠습니까? 12월 22일 서울대학교 교수 모임에서도 모 교수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토해양부가 주장하듯이 4대강 본류에 물을 더 많이 흐르게 하는 것은 근원적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국토해양부가 진정 4대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싶으면 4대강 본류가 아닌, 지류에 집중 투자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4대강 정비사업이 일자리를 과연 얼마나 창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을 토목건설업의 일종으로 본다면, 분명히 일자리 창출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필 토목건설업에 그렇게 많은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느냐 입니다. 토목건설업보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월등히 큰 산업들이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면, 농축산업의 일자리 창출효과는 토목건축업의 4배 내지 7배에 이릅니다. 굳이 일자리를 걱정하신다면, 토목건설업보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월등히 큰 산업들을 여럿 선택하여 골고루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농축산업의 육성은 대외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4대강 정비사업이 우리의 대외의존도를 낮추는데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창출되는 일자리의 성격도 중요합니다. 토목건설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일용직이고 외국노동자의 비중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4대강 정비사업이 끝나면 그 사람들은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4대강 정비사업에 쓸 돈을 차라리 기업의 고용보조금으로 돌려서 기업으로 하여금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게 만들고 일자리를 나누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더 큰 고용창출효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토목건설부문은 이미 너무 비대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토목건설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보고 "토건국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토목건설업은 대폭 체중감량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봅니다. 이왕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국민의 혈세를 쓴다면, 다이어트가 필요한 산업보다는 차라리 허약한 산업을 육성하는데 쓰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일자리 창출도 중요합니다만, 경제성이나 생산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일수록 돈을 아껴 써야하듯이 이렇게 국가 전체로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일수록 경제성이나 생산성을 더욱 더 꼼꼼히 짚어가면서 돈을 효과적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토해양부가 이번 4대강 정비사업의 경제성을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만, 그 동안 우리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SOC사업에 헛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얘기가 무성합니다. 달리 말하면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겁니다. 지난 수년 동안 건설된 수많은 지방 비행장들이 벌써 몇 년째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는 도로들이 수없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국토해양부는 경제성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말썽 많던 새만금간척사업도 비록 졸속이었지만 1년에 걸쳐 경제적 타당성 검토를 거쳤는데, 14조나 들어가는 4대강 정비사업은 왜 그런 경제적 타당성 검토 없이 추진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요즈음 위헌소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만, 경제적 타당성 검토 없이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이 경제성 없는 사업을 추진되는 것이 위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이번 세계적 경기침체가 앞으로 2, 3년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뒤집어 보면 이 말은 2, 3년만 참고 기다리면 세계 경제가 다시 풀리고 그러면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위기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서 지금은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은인자중하면서 힘을 기르고 비축할 때입니다. 지레 겁먹고 부산을 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국토해양부의 4대강 정비사업은 경박한 인기작전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 걱정스럽습니다. 멀쩡한 4대강에 삽질을 해봐야 2, 3년 후 우리가 다시 도약하는데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다시 기회가 올 때 우리가 도약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를 해주시는 것이 대통령께서 지금 하셔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를 할 것인가? 지난 반세기 우리 국민은 온 세계가 놀랄만한 전대미문의 경제기적을 이루었는데,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정말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국민입니다. 땅이 넓기를 합니까, 자연자원이 풍부합니까. 돈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많이 가진 것이라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우수한 인력, 그것 뿐입니다. 우리국민이 이룩한 경제기적의 원동력은 바로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점차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우리의 공교육에 실망한 나머지 외국으로 이민가는 가정도 많고 자녀를 조기 외국유학 시키는 가정도 많습니다. 매년 30조원이 넘는 돈이 사교육에 쓰인다고 합니다. 일반 서민들은 사교육비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공교육에 집중 투자해서 우리의 교육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교육을 없애는 것 하나만이라도 대통령께서 확실하게 해주신다면 아마도 그 업적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삽질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인재를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나라가 살아나갈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대통령의 현명하신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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