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던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소속 반정부 시위대원들이 지난 3일 점거 농성을 풀고 공항을 떠나면서 환호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
금년 1월 팔랑쁘라차촌당(PPP) 집권 후 태국 정국은 극도로 불안했다. 반 탁신 세력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탁신의 대리인 정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총리 퇴진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정부청사 점거, 비상사태 선포, 헌법재판소의 싸막 총리 직위 박탈 판결, 쏨차이 총리 취임, PAD의 국제공항 점거, 헌법재판소의 PPP 등 집권 3개 여당 해체 판결 등 정국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집권당 해체라는 미증유 사태 후 태국 의회는 임시회를 열고 민주당의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재를 제27대 총리로 선출했지만 그 전도는 밝지만은 않다.
단기적으로 민주당 정권은 이전보다는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국불안의 최대변수였던 PAD뿐 아니라 왕실, 군부, 사법부, 기득권층의 심정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정국 불안요인은 도처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친 탁신파와 반 탁신파 간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양 측은 지역적으로 친 탁신 세력이 우세한 북부, 동북부와 반 탁신 세력이 우세한 기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계층적으로는 농민, 도시빈민층과 중산층, 왕정파로 나뉘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PAD가 정국 불안의 제일 변수였다면 이제부터는 독재 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같은 친 탁신 세력이 주요 변수로 대두될 전망이다. 이미 탁신 지지자 수 백명은 아피시트 민주당 총재의 총리 선출 소식이 전해지던 날 그것이 불법임을 주장하며 의사당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의원들이 탄 차의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폭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실상 친 탁신 세력으로서는 민주당 정권의 출범은 용납하지 못 할 일이다. 금년 초 PPP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도 탁신의 대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차례 씩이나 총리가 물러나고 정당해산까지 당했으며 여전히 의회 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했으니 그 억울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탁신도 군부의 지지를 통해 출범한 민주당 정권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군부는 이전부터 PPP 정부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었다. 사막과 솜차이 총리가 두 차례씩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PAD 해산을 명했지만 따르지 않아 결과적으로 정권퇴진에 기여했을 뿐 만 아니라 민주당 주도 연립정부 구성과정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 사실이다.
연립정부 구성도 정국 불안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PPP 당보다 의석수가 훨씬 적은 민주당 정부는 구 집권 여당인 찻타이당, 마치마티빠따이당, 루엄짜이타이 찻파타나당, 프어팬딘당 뿐 아니라 PPP 당 일부 파벌과 연정을 구성했다.
과거부터 만성적 정국불안 요인 중 한 가지는 다당제에서 기인하는 연립정부의 취약성이었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절대 다수당이 부재한 가운데 소수당과의 불안정한 내각 구성으로 연립정부의 평균수명은 1년 남짓이었다. 2007년 12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차지한 의석수는 165석(총 480석)이었으며 PPP 는 232석이었다. 비록 PPP는 소수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했지만 과반수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차지했다.
민주당 연립정부는 235석(총 437석)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5개 정치파벌과 연립함으로써 취약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부 구성에서 나타난바 같이 태국 정당들은 당파의 이해에 따른 이합집산이 격심하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주로 내각직이나 지역구 예산분배 등과 같은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어 왔다.
지금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PAD의 입장변화도 정국 불안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PAD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부패정치를 뿌리 뽑기 위해서 현재와 같은 1인 1표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태국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임명직 의원 70%, 선출직 의원 30%로 하는 새로운 선거제도로의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현 정권 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PAD는 정치적 지지를 철회 할 수 도 있다. PAD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헌법개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데 친 탁씬 세력들은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부패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고 망명 중인 탁씬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또 다른 목적으로 현행헌법의 개정을 요구함으로써 정국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도 정국의 안정을 크게 해 칠 수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대외적 요인은 물론이고 국내정치 불안에서 기인한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2%, 실업자는 100만 명이 예상된다. 국제공항 점거사태로 관광, 수출, 수입, 운송, 항공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사실상 민주당이 2001년 총선에서 탁신의 타이락타이당에게 참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 문제였다. 민주당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불만을 규합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탁신의 타이락타이당이었다. 집권 후 탁신이 실시한 경제정책은 비난도 받았지만 큰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 정권 출범 직후 태국의 경제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한 탁신은 앞으로 경제 CEO 총리였던 자신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다시 불러일으키려 애쓸 것이며 민주당 정권의 경제위기 해결능력은 정국안정에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의 다양한 정국 불안요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 탁신과 반 탁신 세력간의 갈등에서 기인한 정치적, 사회적 분열 현상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사회통합의 중심 역할을 해 온 푸미폰 국왕의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 할 수 있다. 이미 반 탁신 세력에 의해서 선점 돼버린 국왕이 갖는 정당성은 과거와 다르게 축소되어 있다.
앞으로 정치 불안은 입헌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질서와 체제변화에 대한 요구까지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이와 관련해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반 국왕파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탁신의 언급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격주간으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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