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은은 왜 '비상 외화통장'의 자금을 인출하는 걸까? 시중의 달러 가뭄 현상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의 환율하락으로 외환시장이 안정 기조에 들어갔다고 평가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제2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환율 폭등, 외환보유액의 급감 등 경제학 논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판단 기준으로 볼때 이미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한국은 외환위기에 진입했으며, 현재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내년 봄 미국과 통화스왑 연장 등이 또 한번의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정부가 현재 시장의 엄청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는 외채 만기연장 비율을 밝히는 때가 돼야 비로소 '제2의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김태동 교수는 이번 '제2 외환위기' 특징은 외채 만기연장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이후 급격히 낮아진 만기연장비율은 아직까지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시장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궁리 |
김태동 : 한국은 이미 외환위기에 진입했다. '제2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고 본다. 외국 논문들을 보니까 외환위기를 환율 폭등, 외환보유액의 급감, 또는 위 두가지 변동률의 합계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다.
변동환율제인 나라에서 표준편차기준으로 평상시 환율 변동 폭의 2-3배 이상 환율이 폭등했으면 외환위기다. 고정환율제 국가에서는 환율이 잘 안 움직이므로 외환보유액의 급감으로 외환위기 여부를 판단한다. 평상시 표준편차의 2-3배 감소가 있으면 외환위기라고 볼 수 있다. 관리변동환율제의 경우 환율도 올라가고 외환보유액도 줄어들 수 있다. 환율상승률과 외환보유액 감소율의 합계가 평상시 표준편차의 2-3배 이상이면 외환위기다. 세 가지 중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한국은 외환위기 상황이다.
97년 1차 외환위기와 비교해보면, 당시 환율은 800원 대에서 2000원 대로 급등했다. 이번에는 900원대 초반에서 1500원을 두 번 돌파했다. 11년 전 외환위기에 비해서는 변동폭은 작지만 최대 60%넘게 올랐다는 점에서 국제적 표준으로 따졌을 때 외환위기는 분명하다.
미국과 통화스왑 체결을 하기 직전에 환율 급등 정도를 보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보다 변동 폭이 더 컸다. 그 이유는 IMF 구제금융 직전보다 외채 만기연장 비율이 낮다. 구제금융을 받기 전달인 97년 10월의 7대 시중은행의 만기연장비율이 87%, 구제금융을 받은 11월은 59%, 받은 직후인 12월은 32%로 가장 낮았다. 하지만 이듬해 1월 80%로 다시 올라서 2월 93%, 3월 97%, 4월 98%로 금세 회복했다.
반면 제2의 외환위기라고 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시장이 가장 궁금해 하는 만기연장비율에 대해 정부는 공표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도산 직후 만기연장비율은 추산해보면 40% 이하라고 할 수 있다. 연장되더라도 기한이 단축되는 것까지 따지면 실질 연장비율은 10%이하로 보인다.
정부가 공표해야지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미국과 통화스왑 등을 통해 비상 외환통장을 1000억 달러 이상을 확보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못하는 게 사태가 굉장히 엄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97년에는 만기연장비율이 50% 이하로 내려간 것은 11월 하순부터 12월말까지 약 5주 동안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만기연장비율이 50% 이하로 내려간 게 석달째 계속되고 있다. 97년에는 단기간에 굉장히 큰 충격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만기연장이 안 된다는 충격이 석달이나 계속되고 있다. 외화 수급 위기라는 측면에서 97년보다 더 악화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외환보유액 감소분은 97년보다 더 많다. 그때는 300억 달러 정도 있던 것을 다 소진했다. 지금은 700억 달러 정도 줄었다. 미국과 통화스왑 자금 중 인출한 것까지 따지면 실질적 외환보유액 감소분은 더 늘어날 것이다.
프레시안 : 11월에 다시 1500원 선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1200원대로 환율이 떨어졌다. 정부는 최악의 국면은 지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태동 : 이번 외환위기의 1차 고비는 미국과 통화스왑 체결이었다. 통화스왑 효과가 2주 정도 가고 다시 상황이 악화됐다. 환율이 잠시 안정됐다가 다시 11월말에 1500원을 재돌파했다.
정부가 12일 일본, 중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했지만, 미국과 통화스왑에 비해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루하루의 환율동향보다, 우리에게 외채를 빌려준 외국 채권금융기관들이 만기연장을 해주느냐 계속 안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앞으로 내년 봄 치앙마이 협정이 어떻게 되느냐, 또 미국, 일본의 통화스왑 만기 연장이 또 한 번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출한 스왑 자금을 갚느냐, 아니면 안 갚고 만기 연장하느냐, 오히려 확대하느냐 등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크게 달라질 있다.
그때까지 국제금융시장 신용경색이 현저하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외채 만기연장 회복 시점이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3-4배 더 길어지게 된다. 그러면 환율 등 외환위기 지표들이 종합적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하기 어렵다.
설사 지금보다 상황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한국이 지난 9월 제2의 외환위기에 진입해서 10월에 본격화됐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외환위기의 최악의 국면이 끝나는 시점은 정부가 만기연장비율을 발표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은 발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기연장비율을 발표 못하는 것은 지금도 외환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다.
게다가 외채가 많은 기업이 환차손 많이 나는 것을 줄여주기 위해 기존 회계기준을 변경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정부의 행태가 제2 외환위기에 와 있음을 국내외에 확인시키는 결정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또 실물경제 위기가 시작됐고, 금융위기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외환위기 정도가 완화될 수 있지만, 다른 부분의 위기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위기의 종합지수를 지수화한다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정책당국도 대외적, 대내적으로 점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주 2009년 경제전망 발표를 급작스럽게 금융통화위원회 뒤로 미룬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은이 12월 금통위 이틀 전에 내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게 관례였는데, 이를 갑자기 미뤄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중앙은행이 내년 전망을 제대로 발표 못하고 허둥지둥 하는 것은 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은행이 청와대는 물론,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밑에 존재하는 것처럼 청와대 서별관 회의가 공식화되고, 정책의 선후가 결정되는 것은 제1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이렇게 관련 고위직들이 시장의 신뢰 하락도 아랑곳하지 못할 정도로 허둥대는 것이 바로 위기가 심각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프레시안 : 위기의 진행과정과 관련해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누리엘 루비니 교수(뉴욕대)의 '금융위기 12단계설'이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도 이 12단계설이 적용 가능한가?
김태동 : 루비니의 얘기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외부 영향이 큰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쇼크를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받는다.
루비니의 금융위기 12단계론 1단계 : 미국 역사상 최악의 주택시장 침체 2단계 :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 확대 3단계 : 신용카드 대출 등 소비자 신용 부실 4단계 : AAA 등급 채권보증업체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 5단계 :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붕괴 6단계 : 대형은행 파산 7단계 : 금융기관의 무모한 차입매수(LBO)로 인한 대규모 손실 8단계 : 기업의 연쇄부도 및 신용부도스왑 손실 확대 9단계 : 헤지펀드처럼 자금 추적이 어려운 금융기관의 붕괴 10단계 : 주가 급락 11단계 :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고갈 12단계 : 금융기관의 강제청산 |
루비니의 '12단계론'은 서브 프라임 사태가 표면화되기 1년 전인 2006년 9월 처음 발표됐다. 당시는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서 피크에 도달했던 부동산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각 단계가 계단 올라가듯 순차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 맞물려가는 것이다.
우선 주택시장의 침체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2007년에 터졌다. 또 주택 가격 상승기에 주택담보 대출을 받기 쉬워져 개인들이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다른 소비를 했다. 그런데 주택가격이 떨어지면서 은행들의 대출이 까다로워지니까 신용카드 대출이 늘어났다. 이런 신용카드 대출의 연체가 늘어났다.
부동산가가 급락하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기반으로 유동화한 채권 등 가치도 떨어지고 채권보증업체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MBIA, 암박 등 대형업체만 'AAA'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5단계 일반 상업용 부동산 붕괴 지금 진행 중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대형 은행 파산 단계에 도달했다.
이후 11단계까지는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 12단계인 금융기관의 강제 청산만 안 일어났는데, 대공황 전문가인 버냉키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하면서 대규모 개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먼 브라더스 이후 큰 금융기관이 더 망할 수 있었는데 몇 개월째 막아나가고 있다. 연준이 전통적인 정도만 최종 대부자 역할 정도에 그쳤다면 많은 대형 금융기관이 퇴출됐을 것이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1% 저금리 정책을 쓴 것이 현 금융위기를 불러온 것처럼 버냉키의 무리한 대응도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경제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위기 심화 과정을 미국과 비교하면 어떤 측면에서 차이가 있나?
김태동 : 한국은 미국에 비해 실물경제 규모가 약 1/15이다. 최근 환율상승을 감안하면 1/20이다. 미국의 중간규모 주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국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기란 쉽지 않다.
한국은 외환시장과 부동산 두 군데에서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시작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시작했다. 2006년 중반이 되면서 비수도권 아파트의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7년 초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 하락이 시작됐다. 최근 버블 세븐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이 고점 대비 40%까지 떨어진 곳도 이미 나왔다. 건설 PF는 실질적인 부실율이 50%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점검해보니까 20%가 부실이라고 발표했는데, 가장 작게 잡은 수치가 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면 부실율은 훨씬 올라간다. 특히 PF 부실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또 최근 신성건설, C&우방 등 건설업체들이 망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대출 부실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시작부터 따지면 거의 2년 가까이 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앞으로 몇 년 더 계속될지 모른다. 이걸 역전시키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각종 규제를 다 완화했지만 부동산 시장을 당장 다시 활성화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외환위기는 이미 발생하고 진전이 됐다. 지난 9월 리먼 붕괴 직후 유동외채 만기 연장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러자 은행, 금융회사, 외채가 많은 기업들이 외화자금을 얻기 어려워 경영난에 봉착했다. 그런 결과 외환수요가 급증해 환율이 900원대 초반에서 1500원 이상으로 두 번이나 올랐다. 11년 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보면 IMF 구제금융 받기 직전 상승 속도보다 훨씬 크게 지난 9-10월 환율이 올랐다.
정부가 10월말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세 차례 110억 달러를 인출했다. 10월과 11월에 외환보유액이 400억 달러 정도 감소했다. 미국과 스왑 자금 인출도 외환보유액 감소를 막기 위한 것이다. 지난 두 달은 외환위기가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 11월이 돼도 외환당국이 미국과 스왑만으로 부족하다고 인지하고 일본, 중국과 통화스왑을 추진했다. 외채 만기 연장이 계속 안 되면 이들 스왑 자금의 인출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발표되는 외환보유액은 2000억 달러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스왑이 단기외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효 외환보유액은 이미 1800억 달러 선으로 내려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게 외환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많은 기업이 고통 받고 금융기관들이 환차손을 크게 입고 있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총외채가 2.5배 규모다. 그만큼 기업들이 입는 피해가 크고 이런 피해가 실물로 전이되고 있다.
세 번째로 진행되는 것이 실물경기 악화다. 지난 11월 수출이 10월에 비해 20%나 감소했다. 중국이 최대수출시장인데 대중국 수출이 30% 가까이 감소했다. 내년에도 선진국과 중국 수출이 미진할 것이므로 당분간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다. 포스코가 감산한 것은 제1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하면서 고용에 대한 불안이 늘고, 민간소비가 계속 위축된다. 기업들도 장래가 불안하니까 설비 투자가 감소한다. 이런 일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아직은 발생 안 했지만,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기업 부실이다. 기업 도산이 급증하면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실업보험금을 탈 수 있는 기간을 최대 8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겠다는 발표가 나오는 것도 내년 고용사정 악화를 염두에 둔 조치 아니겠는가?
이런 세 가지 나쁜 흐름(부동산위기, 외환위기, 실물경제위기)이 모여져 나타나는 것이 금융위기다. 앞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과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 심화 과정 ⓒ프레시안 |
첫 단추가 건설 PF 부실이다. 실질적으로 50% 이상 부실화됐다. 이어 주택관련 대출 부실화, 소비자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부실화다. 거의 동시에 앞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중소기업대출과 대기업 대출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대출을 많이 해준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금융 대혼란까지 이어지게 되면, 결국 루비니가 얘기하는 마지막 12단계까지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다시 실물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런 악순환이 형성되면 공황으로 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 상태를 보건데 금융기관 부실화까지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 금융 대혼란을 피할 수 있나.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18일 은행에만 30조원 자금을 투입한다고 발표하였다. 그중 일부는 민간펀드형태도 있지만 대부분 공적자금이다. 정부 스스로 내년 초 금융위기 심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체율 급등 등이 현재화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의 대출자금 회수를 제대로 못하게 해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금융위기도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일 경제부처의 청와대 업무보고는 금융위기 진입을 공식화한 이벤트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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