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금융위, 공정위의 경제·금융·기업활동에 대한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오는 22일에는 SOC와 지역경제 대책 업무보고가 이뤄지고 24일과 26일에는 서민대책, 산업대책 등이 이어진다.
경제 부처 업무 보고 내용은 지난 16일 발표된 '2009년도 경제운용방향'과 큰 틀에서 다른 점이 없다. 취약계층 지원대책 등 경기충격 완화 방안과 동시에 정권 철학인 기업 규제 완화, 성장기반 확충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중 내년 정부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정책을 간추려 봤다. 정책의 실효성, 실현 가능성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 예산은 쓰라고 있는 것
내년도 정부 재정의 화두는 '많이 쓰기'이다. 경기침체가 가장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상반기에 역대 최고 수준인 예산의 60% 집행 목표를 내걸었다. 일자리 창출 부문 예산은 70%를 상반기에 배정했고 금융 관련 예산은 전액 상반기로 집행 시기를 잡았다.
정부는 예산을 배정만 해 놓고 쓰지 않는 행태를 감시하기 위해 감독반까지 만들었다. 기존 '재정관리점검단'을 '예산집행특별점검단'으로 이름을 바꿔 상반기 동안 집행상황을 집중 감시하겠다는 게 목표다. 각 부처의 예산집행심의회는 차관 주재 특별점검반으로 격상 운영키로 했다. 연초에 계획한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아 연말 실효성 없는 일에 버려지는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물론 채찍만 드는 것은 아니다. 당근도 따라붙는다. 적극적으로 재정집행을 결정한 공무원에게는 포상 등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다만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전면에 나서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어붙일 자가 많을지는 의문이다.
■ 접대비 마음 놓고 긁으시라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규제하는 모든 '쓸모없는' 규제를 해소한다는 데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규제를 풀어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이 앞장서서 한 푼이라도 더 써줘야 경기가 살아난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풀었다. 기업이 마음껏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내년 1월 말이면 기업의 접대비 지출내역 보관제도가 폐지된다. 접대비 지출내역 보관제도는 지난 2004년 과도한 접대비 지출이 부정·부폐의 고리로 이어진다는 이유로 만든 정책이다. 건당 50만 원 이상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일자와 금액, 접대장소, 접대목적, 접대자의 부서명과 이름, 접대상대방 정보 등을 기록할 의무를 부과한 제도다.
재정부는 제도 폐지 이유로 "소액 분할결제나 기업 간 카드교환 사용이 이뤄지는 등 변칙운용 사례를 감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접대에 나서는 기업 관계자는 카드 여러 장을 준비하거나 개인 카드로 긁은 후 회사에 청구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겠다. 접대 규모가 늘어날지는 의문이다. 재정부가 이야기했듯 기업은 제도가 막으면 다양한 '꼼수'를 써서라도 접대는 항상 과도하게 해 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갑-을' 관계의 기본 생리다.
■ 재벌 보채기, 뭐든 받아준다
재벌 규제 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접대에 나서는 직원의 편의를 위해 접대비 관련 규제도 풀었는데 경영 부문 규제는 더 과감히 풀어야 격에 맞다.
일단 경영진과의 정기적 의사소통 통로가 구축된다. 정부는 경제 5단체와 매달 한 차례 실무협의회를 가지기로 했다. 기업의 애로 요인을 파악하고 재계 의견을 듣겠다는 소리다.
기업의 경영 활동은 시장논리에 맡기겠다는 '시장주의'를 표방한 정부가 감시 대상에 불과한 기업과 너무 자주 만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장주의'를 표방한 정부의 최대 협의 상대자는 시민, 기업의 상대자는 노동자라고 알고 있다. 정부와 시장이 만나는 것을 두고 보통 '관치경제'라고들 한다.
만나지 말아야 할 자들이 만나면 보통 사회에서는 '불륜'이라고 말한다. 이러다 정말 '애로'틱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벌써부터 정부가 재계에 안겨주기 위해 바리바리 싸든 선물보따리가 넘쳐난다.
법인세 인하 추진이 대표적이다. 나라 빚을 늘리면서도 법인세수를 줄여주겠다니 정성도 보통 정성이 아니다. 이에 따라 현재 과세표준 1억 원 이하 13%, 1억 원 초과 25%인 법인세 징수 기준이 2010년에는 2억 원 이하 구간 10%, 초과 20%로 완화된다. 사업조정이나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의 경우 자산양도 차익에 대해서 과세이연도 검토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18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년 경제부문 업무보고를 했다. (사진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2009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 FTA, '일단 지르고 보자?'
시장주의를 표방한 정부의 경제 위기 해법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빠지면 곤란하다. 왼쪽 깜박이를 키고 오른쪽으로 나선 전 정권에 뒤져서는 안 된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FTA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먼저 미국, EU와의 FTA를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거대 선진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한시라도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인도와 남미 등 신흥경제권과의 교역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페루와 FTA 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나아가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와도 FTA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중동이라고 빠져서는 곤란하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걸프협력기구(GCC)와의 FTA도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최근 통화스왑 확대 과정에서 "상대방 요구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 탓인지, 중국·일본과의 FTA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사뭇 비장미가 흐른다.
해외 진출에 FTA만이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도 강화해나간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중국도 수십 년 전부터 아프리카 원조를 늘리는 마당이니 당연한 말씀이다. 그런데 '정상급 자원외교', '호혜적 자원외교' 등 이전 어느 정부나 하던 방식, 선언적 수사를 걷어내면 사실 별다른 게 없다.
내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승인 목표액을 올해보다 1000억 원 더 많은 1조3000억 원으로 설정하고 경제 발전경험 공유사업(KSP) 예산을 50억 원으로 증액한다는 게 구체안의 전부다. 글쎄, 재벌정책 등과 비교하면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데….
■ 이게 다 지자체 때문…?
종부세 완화 등으로 인해 '수도권 공화국' 따위의 수사가 워낙 많은 탓일까.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방안이 쏟아졌다. 정부는 부동산교부세 수입 감소분에 더해 6000억 원을 지자체에 추가 지원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내년 균특회계 예산도 올해 대비 13.3% 증가한 8조7000억 원으로 잡아 놨다.
대신 지자체보고 '책임지라'는 큰소리도 같이 쳤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자체도 팔을 걷어붙이라는 말씀이다. 가장 특이한 사항은 시·군·구별 일자리 통계를 개발해 e-지방지표 사이트에 공개, 기초자치단체장의 재임 중 성과지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자치단체장이 일자리를 재량껏 늘려 내년 정부의 일명 '한국판 뉴딜' 혹은 '녹색 뉴딜' 사업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자리 늘어난 수치를 보여주지 못하면 다음 총선 때 자리 없다는 얘기다.
참고로 정부는 내년 강바닥 파내기, 도로 건설 등 국가판 토목사업으로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만 늘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부는 화를 낼까? 아니다. 보고서의 일자리 창출 부문을 보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과정에 도움이 되는 단기적 일자리를 적극 발굴'이라고 써놨다. '단기적 일자리' 부분에는 굵은 표시까지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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