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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은행 국유화'…어떻게?

"공적자금 투입, 10년 전 실패 반복해선 안 돼"

'은행 국유화'는 더 이상 좌파들의 과격한 주장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일부 은행을 국유화했다.

한국도 아직은 아니지만 공적자금 투입이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한국은행이 4분기 한국경제가 전기대비 마이너스 1.6%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은행들의 사정이 크게 좋아질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들에게 연말까지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을 12%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주문했지만, 후순위채 발행 등 빚을 내서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을 동원해 '유사 공적자금'의 형태로 국민들의 세금이 은행들에 들어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은행들이 BIS 비율 등 건전성을 이유로 돈을 풀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극약 조치가 필요하다. 해가 바뀌면 공적자금 투입은 정해진 수순이다.

경제위기로 은행들이 부실해지고, 은행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사태는 10년 전에도 동일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 168조 원 중 87조 원이 금융권에 투입됐다. 그러나 10년 만에 또다시 위기가 왔다.

국유화, 만병통치약 아니다

▲ ⓒ프레시안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의 절반가량이 투입된 은행들에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나? 10년 전 공적자금 투입의 대가로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방만한 경영의 책임을 경영진이나 주주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진 셈이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정리해고로 살을 뺀 은행들을 다시 민간에 팔았다. 이때 외국자본이 대거 샀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들의 높은 외국자본 비율은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주인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은행들은 고수익을 추구하는 경영으로 일관하다가 또다시 부실해지게 됐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2일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주최한 외환위기 1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은행 국유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면서 "특히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치중할 경우,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부가 했던 것처럼 정부가 민간 주주보다 더 무서운 형태로 수익률을 올리라는 극단적인 주문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마저도 민영화하겠다던 정부다. 이런 정부에서 위기에 몰려 시중은행들까지 부분 국유화하게 생겼으니, 최대한 포장을 할 것이다. 현재 은행들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더라도 경영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이 요구를 수용할 태세다. 조 연구위원은 현재 진행되는 방식대로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10년 전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이런 식으로 갈 경우 은행의 부실에 대해 사실상 면책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면서 "재발 방지 대책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이익에 부합하는 구제금융 및 부분 국유화 원칙이 명확히 제시돼야 한다"며 "특히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공정한 고통분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방만 경영과 위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은행 경영진들에게 물어야 하고, 주주들에게도 감자 등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관료들에게도 금융 관리·감독 실패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 정부 목에 '방울 달기'

조 위원은 또 "정부의 직접 개입이 특정 이익집단 보호를 위한 산업정책적 목적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건설회사를 다 살려주겠다고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불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정부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 위원은 따라서 '건설업 지원 중단' 등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하고, 공적자금의 조성과 집행에 대한 국회의 감시감독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의 운용을 관리감독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있었으나, 재경부 산하에 설치돼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은행 국유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공공성에 기반한 자금중개기관으로써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소유의 주체'만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

그는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모델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 선진화' 정책의 전면 포기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 이후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개혁 노선의 포기를 의미한다. 외환위기 직후 국가가 주도한 금융구조조정의 방향은 미국식 시스템을 따르는 것이었고, 그 결과 미국 시스템 이식에는 성공했지만 우리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더 심화됐다. 단기적 수익성 논리에 더 매몰되면서 결과적으로 10년 만에 다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경제관료들에게 맡기면 나라 망한다

'은행 국유화'가 명분과 당위 차원의 논란을 넘어서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은행들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내놓고 현실적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책 노선의 변경만 해도 정권 뿐 아니라 현재 상층부 경제관료들의 상당수가 물러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경제관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정말 나라가 망할 수 있다"며 "그렇다면 현 경제관료들의 인적 청산이 가능한가. 털끝도 못 건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민간에 맡기면 될까"라고 반문하면서 "국민연금 운용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는데,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이들이 시장논리로 접근하게 될 경우 시스템 위기를 촉진하거나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은의 독립성을 강화해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처럼 은행들에 대한 감독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국은행의 목표를 현 통화가치 안정에서 자산가격 안정까지 포함된 좀더 포괄적인 통화금융시스템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은행을 소유해도 '메가뱅크'라면…

그는 또 중소기업, 소상공인, 서민가계 등 금융약자들을 위한 은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층적 금융 산업구조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행이 커질수록 이들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은행들 입장에서 이들은 대출을 떼일 위험이 크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들 집단도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대출을 떼일 위험이 높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혼재해 있다. 은행이 이들을 일일이 구분하기 어려울 뿐이다.

정 교수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역에 기초한 풀뿌리 금융기관을 여러 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소규모 은행에서는 지역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대출 위험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연구위원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정부 출자 풀뿌리 서민금융기관이 필요하다"며 "서민금융 관련 특별법을 제정해 민간 시중은행과 차별화된 서민금융기관의 경영원칙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치금융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공감한 사실은 "조만간 국내 은행들에 공적자금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정부가 직접 은행 경영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관치금융 찬반 논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의 측근들이 시중 은행장 자리에 오르는 등 이미 관치금융 논란을 불러온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조혜경 연구위원은 "공적자금 투입을 계기로 정부가 은행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치금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제한장치를 구체적으로 제안하지 않는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적자금은 받지만 관치금융은 안 되므로 은행 경영에는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채언 전남대 교수는 "관치금융과 국유화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라면서 "관치금융은 국유금융과 민간금융이 병존하며 각종 금융정보가 극소수에게만 공개되지만 국유화는 그 반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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