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 '친환경 기술'로 녹색성장?…"글쎄요" (下) |
어린 시절, 한번쯤 해봤음직한 공상이다. 어쩌다 친구와 싸움이 붙었을 때, 선생님께 회초리로 맞을 때면 들법한 생각이다.
"멀쩡해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오래 살기 힘들다.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상처가 나도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 곪아간 상처는 결국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아픔을 잘 느끼는 것은 신경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물론 신경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아픔에 민감한 것은 아니다. 절망으로 흐느끼는 사람 옆에 있는 아이는 눈물의 이유를 모른다. 무릎이 깨지거나, 코피가 흐를 때만 울었던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몸이 멀쩡한데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엉엉 소리 내 울거나 비명을 지르게 하는 아픔 외에도 세상에는 다양한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는 철이 든다.
"소리 없는 아픔을 느끼는 사회가 건강한 곳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피가 흐르고 비명이 터져야만,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회는 철이 덜 든 사회다. 비명을 질러도, 아픔을 모른다면 아예 병든 사회다. 신경이 고장 난 셈이니까.
어른스러운 사회라면 비명이 터지지 않아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안다. 꼭 다치거나 배가 고플 때만 괴로운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다가가 어루만진다.
소리 없는 아픔을 챙기는 사회. 그것은 건강한 복지를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다양한 아픔에 어울리는 다양한 처방을 내놓는 게 진짜 복지다. 외로워서 우는 사람이건 배고파서 우는 사람이건 똑같이 사탕만 안겨주는 사회라면, 제대로 된 복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사회는 그저 경직된 관료 체제일 뿐이다.
"민감한 사회가 오래 버틴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기획에서 네 번째 키워드로 '복지'가 아닌 '민감'을 꼽은 것은 그래서였다. 모든 사람에게 안정적인 빵과 교육, 치료를 제공하는 사회라고 해도, 고통 받는 이들은 늘 있다.
이런 이들의 아픔에 민감하지 않은 사회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신경이 고장 난 사람처럼, 상처가 곪아갈 수밖에 없다. 20세기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런 경우에 가까웠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결국 더 오래 버텼다. '조금 더 민감한 사회'였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북유럽으로 떠난 것은 그래서였다.
옴부즈맨, 건강한 신경을 위한 조건
막상 가봤더니? 북유럽 사회가 유독 더 민감한 사회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제한된 취재 일정상 애초부터 무리였다.
다만, 사회가 건강한 신경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애쓴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잘 발달된 옴부즈맨 제도다. 스웨덴어로 '대리자, 후견인' 등의 뜻을 갖고 있는 옴부즈맨은 권력기구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행정 감찰관의 일종이다. 1809년 스웨덴에서 처음 생겨난 옴부즈맨 제도는 북유럽 모델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단어로 꼽힌다.
스웨덴에서 옴부즈맨 제도는 인종, 성(性), 장애 등 소수자 및 약자의 권리에 관한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다.
"키 163~190㎝" 채용 조건 내건 볼보 자동차
▲ 피아 엥스트룀 린드그렌 야모 부위원장. 그는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했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 |
하지만, 성 차별에 관한 옴부즈맨 기구인 '야모(스웨덴 동등기회 옴부즈맨, JamO)'의 입장은 달랐다. '야모'는 볼보 측이 생산 환경과 채용 조건 가운데 하나를 바꾸라고 권고했다. 볼보의 채용 조건은 얼핏 보면 성 차별과 무관한 문제처럼 비친다.
그러나 탈락자 2명이 모두 여성이었던 점에서 드러나듯 이런 채용 조건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로막는 장벽이 돼 왔다는 게 '야모'의 판단이었다. 결국, 볼보는 이런 권고를 받아들여 신체조건에 관한 채용 규정을 없앴다.
성희롱, 소리 없는 상처
당초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옴부즈맨이 민간 기업의 채용 방식까지 개입하게 된 것은 소리 없는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이 스웨덴 사회에서 자라난 결과다. 이런 신경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뼈가 부러지거나, 피가 튀지 않아도 아픈 사례로 대표적인 게 성희롱이다. 팔이 부러진 사람을 보면, 누구나 아프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자에 대해서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아픔에 민감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셈이다. 물론 누구나 이런 아픔에 민감해져 있는 사회가 신경이 살아 있는, 건강한 사회다. 모든 사람이 아픔에 민감해져 있으면, 아픔을 주는 일도 덜 생기기 마련이다.
"여성 정치인·법관 나와도, 성희롱은 여전했다"
성희롱이나 성차별이 정부의 횡포 못지않게 시민을 괴롭힐 수 있다는 깨달음이 스웨덴 사회에 퍼진 지는 오래되지 않는다.
스웨덴 사민당 집권기인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며, 스웨덴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남성이 독점해 왔던 직업이 대부분 여성에게 개방됐다. 여성이 정치인, 법관, 의사, 엔지니어, 경찰, 군인 등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도 높아졌다.
그래서 스웨덴 사회는 남녀평등이 가장 잘 이뤄진 곳으로 꼽히곤 했다.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하는 문화 역시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다.
20세기 내내 미국 등 일부 서방 국가들에서는 "스웨덴은 성(性)적 자유가 넘치는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강화된 것을 놓고, 특정 측면만 부각시킨 해석이다.
스웨덴 여성들이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비치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라는 이미지와 성희롱이 덜 발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남녀평등 선진국'에서 '성희롱' 단어가 없었던 이유
스웨덴 사민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70년대 말까지도, 스웨덴 사회에는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성희롱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희롱을 가리키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스웨덴 사회에서 성희롱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다른 사회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여성에게 직업의 문호를 여는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성차별까지 없앨 수 없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남녀평등 선진국'으로 꼽히는 사회지만, 이런 면에서는 다른 서방 국가와 큰 차이가 없다.
남성 직업이 여성에게 개방된 뒤 남은 숙제
성 차별에 관한 옴부즈맨 기구인 '야모'가 1987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스웨덴 여성 노동자 가운데 약 17%가 직장에서 한 번 이상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손으로 더듬는 행위'를 겪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피해자 가운데 55%는 성희롱을 중단하도록 요구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상황이 개선됐다. 나머지는 상황이 여전하거나, 오히려 악화된 경우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군대, 경찰 등 남성이 주도해 왔던 직종일수록 성희롱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기 중후반 내내, 여성이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일하는 사회로 널리 알려졌던 스웨덴으로서는 부끄러운 대목이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는 사회와 여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성차별'과 '성희롱'은 한묶음
'야모'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1992년 성희롱 금지법이 제정됐다. 직장의 고용주가 성희롱에 대한 예방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도록 의무화하고,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은 1998년, 2005년을 거치면서 거듭 개정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법에는 성희롱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차별'까지 막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성희롱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여성 노동자와 여성 구직자를 향한 왜곡된 시선이 있으며, 사회에 만연한 '보이지 않는 성차별' 속에서 이런 시선이 견고해졌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성차별', '성희롱', '성에 관한 왜곡된 인식'은 한 묶음이며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성의 기준 따른 채용 조건, 여성은 취업 후에도 불편
"키 163~190㎝"라는 자동차 업체 볼보의 채용 조건에 대해 스웨덴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5년 기준으로 15~25세 스웨덴 여성의 평균 신장은 166.1㎝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 스웨덴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9.6㎝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 "키 163~190㎝"라는 채용 조건을 내걸면 당연히 여성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남성의 평균 신장을 일반적 기준으로 삼은 사례다. 게다가 공장 내부 역시 이런 조건에 맞춰 설계돼 있다면, 여성은 취업 후에도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된다.
스웨덴 사회에서는 68세 이하 성인 여성의 거의 전부(약 98%)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성인 전체가 아닌 남성만의 평균 신장을 표준으로 삼아 채용 조건을 내걸었던 볼보의 사례는 다른 측면을 보게 한다.
남성만의 기준에 무감각해지면, 바뀌는 게 없다
남성만의 기준이 보편적 척도로 통용되는 것에 둔감한 곳에서는 여성도 남성 흉내를 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처럼 살기 힘든 여성은 도태되기 십상이다. 1987년 '야모'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이 약한 여성이 자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흉내를 내기 어려워하는 여성일수록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남성의 평균 신장에 따른 채용조건이 당연시됐던 문화 속에서 성희롱 피해자는 사라지기 힘들다.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일터에서 일하는 여성은 매순간 크고 작은 불편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불편에 익숙해지면, 바뀌는 게 없다. 반대로 이런 불편과 고통에 민감해질수록 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에 가까워진다.
'강철 신경' 정부에게 복지는 없다
▲ 이명박 대통령은 건설업체 사장 시절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선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이런 평가는 바뀌고 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도 아랑곳 않은 강철같은 추진력보다 다양한 아픔에 반응하는 민감한 신경이 대통령에게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프레시안(조형·사진=손문상 화백) |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저학력자'와 '고학력자'를 각각 대입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두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를 꿈꾸는 정부라면,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수십만 명이 거리에 쏟아지고 비명을 질러도 꿈쩍 않는 '강철 신경'을 가진 정부를 가진 사회에서는 까마득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신경을 가진 사람은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도 자신이 건강한 줄 안다. 그래서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
'강철 신경'을 가진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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