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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언니는 죽으려까지 했다. 예서 멈출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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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춘희언니는 죽으려까지 했다. 예서 멈출 순 없다"

[현장] 한원 C.C 경기보조원들의 잡초 같은 '259일 투쟁'

24일로 투쟁 2백59일째를 맞은 한원 C.C 노조 경기보조원들은 지난 9일부터 서초동 한원 C.C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중이다. 지난 3월초 원춘희 조합원의 자살 기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은 그후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들었지만, 한원 C.C와의 투쟁을 끈질기게 계속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 맞은 편 한원 본사 앞에 천막 두 동을 치고 입구에는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펼쳐 놓았다. 한 켠에는 이들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방송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차량에는 "경기보조원, 용역반대"라는 글귀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때아닌 눈이 내리고 있어 냉기가 감돌 줄 알았던 천막안은 예상밖으로 훈훈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조합원 대여섯명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김치, 깍두기 몇 조각과 고추장이 반찬 전부였지만, 커다란 그릇에 슥삭슥삭 비벼, 불청객인 기자에게 "먹어봐요, 맛있어요"라며 한 숟가락을 내민다.

황미경(35) 조합원은 "따로 취사할 곳이 없어서 조합원 별로 돌아가며 집에서 밥과 반찬을 가져와서 함께 한끼를 떼운다"고 말했다. 돌아보니 좁은 천막안에는 커피나 끓여먹을 수 있는 블루스타 한 대와 양철 냄비만 있을 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은 전무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한 잔씩 먹으며 2백59일째 접어든 그들의 싸움 이야기를 들었다. 긴 시간이었던 만큼 그들이 내뱉는 이야기들은 다소 두서가 없고 중복됐지만, 그 시간 동안 가슴속에 묵혀 왔던, 눈물을 삼켜야만 했던 심정은 오롯히 기자에게 전달됐다.

***용역전환, 투쟁의 시작**

이들이 싸움을 시작한 날은 지난해 7월9일이었다. 이날은 사측이 '용역 전환'을 거부한 조합원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당시 골프장의 용역 전환은 한원 C.C가 처음이었던 만큼 각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용역 전환이란 한원 C.C 직원이었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용역회사 직원으로 강등되며 소속이 바뀌면서 '하루살이 인생'이 됨을 의미한다.

김옥렬 노조 조직부장은 "7월5일부터 보조원들에게 백지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어떤 내용도 적혀있지 않았다. 용역전환을 위한 서명이냐고 물었지만 사측은 부인했다. 일부는 서명했고 42명은 끝내 서명을 거부했다"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용역전환용이 아니라던 백지 서명은 결국 용역전환을 위한 것이었다. 서명한 1백여명 경기보조원은 그날로 용역회사의 직원이 돼 일감을 받았고, 나머지 42명은 해고됐다. 배성태 민주노총 경기본부 사무처장은 "해고란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경기보조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지위가 없고 별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일감을 주지 않는 것이 곧 해고다"라고 말했다.

몇 차례의 회유가 있었고, 교섭이 있었다. 회유로 42명 중 10명이 노조 탈퇴서와 용역전환 계약서에 동시에 서명했고, 교섭으로 사측은 스스로 부인할 약속을 했다. 배 처장은 "경기본부 본부장이 단식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교섭이 성사됐다. 당시 사측은 용역전환을 중단한다고 약속했다"며 "근로감독관이 입회했던 만큼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의 약속은 "부당한 강요로 합의된 것인만큼 인정할 수 없다"며 합의사항을 며칠 뒤 휴지종이 쪼가리로 만들었다. 부당한 강요란 "입회한 근로감독관이 용역전환 중단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법도 개의할 바 아니었다.

합의가 번복되는 동안 10명의 조합원이 회유에 나가떨어졌다. 배 처장은 "교섭을 하는 동안, 사측은 소위 프락치를 통해 조합원 회유작업을 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용역전환, 안 가르쳐 줘도 잘 알아요"**

용역 전환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길래, 해고를 마다하고 투쟁에 나섰을까. 이들은 "골프채만 십수년 날랐지만 용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옥렬 조직부장은 "출근길 사람들이 용역회사 앞에서 하루 밥 벌이를 위해 그것도 용역비 명목으로 일당의 얼마간을 떼어주고 몇 만원 벌고자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매번 봤다"며 "(보조원들이) 용역 전환되면 구체적 처우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는 모르지만, 사측이 용역전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출근길 봤던 이들이 곧바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황미경 조합원은 "수년간 골프백만 지고 다녀서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 물론 용역이 뭔지도 몰랐다"며 "하지만 회사 소속이란 자부심으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용역회사 직원으로 신분이 바뀐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배성태 경기본부 사무처장은 "사측은 용역 전환이 돼도 근로조건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공언하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며 "용역회사도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데, 어떤 수수료도 받지 않을 리가 없다. 단적으로 공에 맞아 다쳐도 치료비 전액을 보조원 스스로가 충당해야 할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아직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을 용역전환한 사례가 없는 만큼, 이들이 용역전환이 됐을 경우 구체적으로 얼마마큼의 근로조건 저하가 초래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저기 난립하고 있는 용역회사와 증가하는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들의 참담한 삶을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용역전환의 의미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약자에 너무 멀리 있는 법**

투쟁은 만만치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인 경기보조원들에게는 더욱 힘겨운 싸움이었다. 사측은 "관계법상 노동자가 아닌 이들과 대화할 수 없다. 법대로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측은 교섭 대신 말 그대로 법을 '활용'했다.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잇따라 제기한 것. 법원이 이들의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조합원들은 한원 C.C 앞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칠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현수막을 내걸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합법적 법집행'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다.

황미경 조합원은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가슴이 저려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입을 열었다. 황 조합원은 "입구에 붙였던 현수막과 벽보를, 농성장을 우리 손으로 떼어낼 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며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정당한 주장조차 불법으로 내몬 '지엄한' 법의 냉정함을 느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국 짧게는 3년 길게는 16년 동안 일했던 일터를 나와야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밥벌이를 위해,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드나들던 골프장 입구가 멀찌감치 보이는 곳에서 노숙을 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밀리고 밀리는 싸움에 조합원들은 의기소침해져 갔고, 사측의 탄압은 그만큼 강해졌다.

***용역깡패, 무기력한 공권력...그리고 원춘희**

사측은 '정당한' 법 집행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용역 경비를 동원한 물리적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7월23일 새벽, 용역경비들은 느닷없이 노숙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들이 닥쳤다. 통상적인 욕설은 물론,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이란 점을 이용, 성적 모욕이 담긴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고 조합원들은 전했다.

조합원들은 우악스런 용역경비의 손에 잡혀 땅바닥에 내던져져 의식불명상태로 일주일 이상 병원 신세를 졌고, 어깨 뼈가 빠지고, 심지어 달리는 트럭에 끌려가거나, 칼에 찔리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인권단체(다산인권센터, 경기여성단체연합 등)들이 지난해 10월6일 발표한 진상조사 보고서는 이같은 사실을 자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용역 경비들은 조합원들에게 "애기를 죽여버리겠다", "전과만 없었으면 니네들 다 죽었을 거다"라는 말로 협박했다.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만, 관할서인 용인경찰서는 수사를 회피했다고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김옥렬 조직부장은 당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여성조합원들이 노골적으로 용역깡패에게 폭력을 당했지만, 경찰들은 모른 척 하기만 했다"며 "정당한 법집행은 힘없고 소외된 우리 같은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모양"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무기력한 공권력, 사측의 노골적인 탄압은 이들의 투쟁을 점점 수세로 몰아갔다. 힘들더라도 '희망'만 있다면 버티고 싸우는 장기투쟁 사업장 투쟁에서 한원 C.C 노조의 투쟁은 절망의 기운이 강하게 맴돌았다.

이 때 지난 3월초 원춘희 조합원이 자살을 기도했다. 손목을 수차례 자해해 죽고자 했던 원 조합원은 "누군가 죽어야 문제가 풀릴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원 조합원은 신속히 사고현장에서 발견돼 현재 건강상태에는 이상없는 상태다. 하지만 원 조합원의 자살기도는 한원C.C 동료 조합원들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일반인에게 깊이 각인시키는 사건으로 기억됐다.

***"동지애가 우릴 버티게 한다"**

원 조합원의 자살 기도는 의기소침해졌던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다시 북돋았다. 이들은 지난 10일 한원 C.C 서초동 본사 앞으로 투쟁 장소를 옮겨 천막을 쳤다. 장소 전환은 이들에게 새로운 싸움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김옥렬 조직부장은 "춘희 언니는 죽음을 담보로 저항하려고 했다. 장기 투쟁이 힘들다고 여기서 멈출 수가 있겠는가"라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다른 조합원도 "쑥스런 말이지만, 동지애가 없었다면 2백59일 장기 투쟁이 가능했겠느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거다"라고 말을 받았다.

배성태 경기본부 사무처장은 "수많은 투쟁 사업장을 돌아다녀봤지만, 한원 C.C 노조만큼 융통성 없는 곳은 못봤다"며 "천막농성을 해도, 몸이 아프면 잠시 집에서 쉴 수도 있고, 추우면 눈치껏 다른 곳에서 몸을 녹이다 와도 되는데, 이곳은 이런 융통성이 없다"고 장난섞어 말했다.

완연한 봄. 각박할 것 같은 농성 천막안에도 따뜻한 봄볕이 아낌없이 내리쬐고 있다. 2백59일, 녹록치 않은 기간 동안 쌓아온 따뜻한 동지애가 봄볕과 어우러져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 24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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