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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지껄이는 사람들이 강의라니…"

강의실서 쫓겨난 정대협 할머니들…'현대사 특강' 논란 증폭

"자기가 어떻게 해서 교수가 됐나. 우리는 나라를 찾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뭐, 강제가 아냐? 나라 찾아놓으니 교수직 앉았다고 마구 지껄여도 되나?"

28일 서울 서대문구 인창고등학교 정문 앞.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이용수 할머니의 젖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졌다.

이날 오전 인창고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서울대 안병직 명예교수(시대정신 이사장)의 현대사 특강이 있었다. 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든 '교과서포럼'의 고문을 맡고 있는 안병직 교수는 "위안부는 자발적이었고,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놓고 정대협 할머니와 참교육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 등 10여 명은 특강이 열리는 시간, 인창고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역사왜곡 특강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역사 모르는 게 뉴라이트"

"15살 때였다. 한밤에 자는데 입을 막고 등에 총을 들이대면서 끌려갔다. 우리 동네 굴다리 밑에서 여자아이 다섯이서 차를 타고 끌려갔다. 신의주를 넘어 가미가제까지 갔다. 그런데…."

울분에 차 자신의 경험을 말한 이용수 할머니는 "역사도 모르고 학생을 가르치는 게 바로 뉴라이트"라며 "학교 돌아다니면서 가르친다는데 학생들은 배울 게 없다"고 한탄했다. 함께 자리에 선 길원옥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기자 회견을 마치고, 이들은 안병직 교수를 직접 만나야겠다며 강의실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학교 직원이 "누구 마음대로 학교에 들어오냐"며 할머니들을 거칠게 밀치면서 막아 고성이 오갔다. 할머니들은 끝내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양해해달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 정대협 할머니들과 참교육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 등 10여 명은 특강이 열리는 시간, 인창고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역사왜곡 특강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프레시안

▲ 이날 자신을 교사라고만 밝힌 이를 비롯한 몇몇 학교 직원이 "누구 맘대로 학교에 들어오냐"며 정대협 할머니들을 거칠게 밀치면서 막아 고성이 오갔다. ⓒ프레시안

"보수 생각을 알려주는 것"…"너무 치우쳤다"

한편, 안병직 교수는 이날 "진보 진영은 자주적으로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보수 진영은 국제 협력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가 처음 생길 때 대서양에서 생긴 게 내재적 발전이다" 등의 평소 자신의 주장이 담긴 내용의 강의를 70여 분간 진행했다.

안 교수는 "오늘 강의의 결론은 될 수 있으면 선진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나는 특정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분도 똑같이 주장하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보수'는 이렇게 얘기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며 "'진보'가 '김정일과 손 잡고 통일하자'고 하면 여러분이 잘 생각해보라"고 덧붙였다.

또 안 교수는 "'낙오자'로 불리는 북한보다 남한의 자살률이 더 높은 점에 대해 경제발전의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한 근·현대사 교사의 질문에 "지도를 잘 해서 자살률을 낮춰야 하는 건 맞지만, 그건 선진국병이라서 고치기가 참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날 강의에는 이 학교 3학년 학생 80여 명이 참석했다. 흥미진진하게 듣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졸거나 지겨워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짜증나"라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 서울시교육청의 주관으로 진행된 안병직 교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프레시안
윤모(19) 학생은 "미국 같은 선진국을 따라서 우리가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한 건 너무 치우친 것 같았다"며 "우리를 가르치신 역사 선생님들은 조심스럽게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오늘 강의는 파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런 주장이 담긴 교과서를 만든다면 다양한 관점이란 점에서 좋을 수도 있지만, 반대 관점을 가진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다"며 "그리고 지금 그런 교과서를 만드는 것 아무래도 시기상조 같다"고 덧붙였다. 함께 강의를 들은 이모(19) 학생도 "교수님의 의견을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다른 쪽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학교 측은 정대협 할머니들의 항의에 곧 강의 시간을 마련하겠다는 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항의도 필요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강의를 준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같은 시간 서울시내 7개 학교에서는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류근일(조선일보 논설위원), 강길모(인터넷신문 프리존뉴스 대표) 등의 강사가 특강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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