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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안 됐으면 여러분은 '북한 여학생' 돼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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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안 됐으면 여러분은 '북한 여학생' 돼 있을 것"

[현장]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생뚱맞은 반통일교육"

"오늘 아침에 선생님에게서 '가치관 교육'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왔어요. '가치관 교육'이라길래 인생 철학이나 삶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생뚱한 '반통일'교육'이네요? 게다가 별로 객관적인 거 같지 않고요."

27일 서울 천호동 성덕여자상업고등학교 시청각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의 '현대사 특강'이 끝난 직후 박미연(가명·3학년) 학생은 '오늘 특강 어땠느냐'는 질문에 "다른 역사 수업보다 구체적이기는 했지만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야무지게 답했다. 그는 주변에 있던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이거 서울시 교육청이 시킨 거라서 하는 거에요"라고 속삭였다.

이날 수업은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생의 건전한 가치관과 올바른 역사관, 국가관을 확립하겠다"며 마련한 것. 성덕여상 외에도 구정고, 효문고, 대동세무고 등 총 10개 학교에서 특강이 이뤄졌으며 강위석 <월간 에머지> 발행인, 이석복 전 보병 제5사단장 등 보수 인사들이 대거 강사로 나섰다.

"그동안 '국·영·수'만 하라더니 웬 '역사' 특강?"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이동복 대표는 90분간 우파 시각에서 본 해방, 분단, 통일 문제를 길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의 성과에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에서 여러분을 가르쳤다"며 "그로 인해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강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흔히 '분단'은 나쁜 일이고 '통일'은 가장 좋은 일처럼 이야기하지만 만약 38선이 그어지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김일성 광장에서 모여서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것 하는) '북한의 여학생'이 되었다"며 "분단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에 따른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을 하려면 북한 체제가 무너지든, 변하든 대한민국 체제를 받아들일 때까지 신념을 가지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북한 동포가 불쌍하더라도 도리가 없다"며 "북한을 도와주는 것도 '통일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북한의 변화가 전제될 때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독도 동독과 통일한 이후 2위였던 경제대국이 6위까지 떨어졌다"며 "통일은 여러분의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꼭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 성덕여자상업고등학교 강의실에 들어서는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연합뉴스

그러나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현대사 강의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부분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학생은 "통일을 꼭 해야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한다"면서 "그렇지만 오늘 수업을 갑자기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강 직후 강의실 옆 매점에 모인 학생들은 "대학 가려면 '국·영·수'만 하면 된다고 국사 수업, 세계사 수업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더니 왜 갑자기 특강까지 하고 그러냐"고 꼬집으며 떠들기도 했다.

학생들 중에는 이 대표의 논리를 직접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박미연 학생은 "표현은 '통일은 선택의 문제'라고 했지만 실은 '통일이 되면 안 된다'는 주장인 거 같다. 앞뒤가 안맞고 또 편파적이다"라면서 "예를 들면 이 대표는 서독이 동독과 통일하고 나서 나쁜 점만 들었는데, 왜 좋은 점이나 다른 사례는 이야기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날 강의는 성덕여상 3학년 2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날 특강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지루함을 숨기지 못했다. 조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담당 교사는 "수능이 끝난 뒤라 아이들이 풀어져서 그렇다"고 민망해 했다.

"교육을 정치적 세뇌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

한편, 이날 오전 성덕여상 앞에서는 서울시 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참가자들이 기자 회견을 열고 "'역사 왜곡 특강'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미친교육 반대, 청소년 인권보장' 청소년 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기자회견 참가자 10여 명은 학교로 들어서는 이동복 대표의 차를 가로막고 20분 여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 이동복 대표의 차를 가로막은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 ⓒ연합뉴스

이들은 기자 회견에서 "특정 인사들이 공교육기관의 교단에서 서서 검증되지 않은 생각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것은 큰 문제"라며 "그토록 자신들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면 그런 내용의 교과서를 집필해 검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특별히 선정하여 교단에 세우는 것은 권력을 동원해 교육을 정치적 세뇌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면서 "더욱이 이들 인사들은 최소한의 학문적 검증이나 사회적 합의조차 깡그리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교육이라면 좌도 우도 아닌 최소한의 객관성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며 "특강은 아이들의 가치관을 좀먹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군사독재시대보다 못한 정책이다. 공정택 교육감은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비판했다.

김민석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오늘 특강이 진행되는 10개 학교는 어제 오후 3시까지 자기 학교에 강의하러 오는 교사가 누구인지, 무슨 주제로 수업을 할 것인지 전혀 몰랐다"며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느냐. 학교의 자율권을 이렇게 침해할 수 있느냐"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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