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장에서 내가 아는 몇몇 선생님들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대저널>에 멋진 기고문을 써주신 선생님, 내가 2학년 때 여성학 분야의 흥미진진한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이 보였다. 그들은 강단에서 내려와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추운 날씨에 그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일일이 건네주었다.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나는 내 마음이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아는 '시간강사' 선생님들은 이럴 분들이 아니셨다. 전공 공부에 흥미를 잃고 교양 강의에 재미를 느꼈던 나에게, 교양 강의를 담당하시는 강사 선생님들은 특별한 존재였다. '교수'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위엄과 권위를 갖지 않은 대신, 선생님들은 좀 더 친근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했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했다. 언제나 빡빡하게 채워져 있는 강의 노트와 그것을 강의 시간 안에 반드시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강단이 아닌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일까. 학생 언론에서 활동하는 기자로서, 또한 선생님들에게서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파고 들어가야겠다는 책임감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눌러 왔다.
▲ 교수가 강단이 아닌 거리로 나선 상황이 우울하다. ⓒ김영곤 |
<서울대저널> 기자의 이름으로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취재에 들어갔다. 국회의사당 앞에 자리 잡은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농성장을 방문했고, 내가 다니는 학교의 시간강사 선생님들을 만나 시간강사로서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학생 단체와 여러 사회단체들과도 접촉했다. 특히 학내 언론이라는 특성 상 범위를 학내로 좁혀, 우리 학교에서의 시간강사 문제의 실태에 집중했다. 우리 학교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얼마나 고용 안정을 누릴 수 있는지, 교직원 사회 내에서 어떤 직위로 인정받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파고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취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모종의 기대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대학이 아닌 국립대학이고,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이름 있는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강사 문제를 어느 정도 비껴가 있지는 않을까, 다른 사립대학들과는 달리 국립대학이니 사정이 좀 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이런 기대는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서울대학교 시간강사들의 시간 당 강의료는 4만2500원으로 전국 각 대학의 시간강사 강의료를 놓고 보았을 때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강의료가 적정! 수준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3학점 강의 하나를 했을 때 한 달 급여는 50만원 내외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될 경우 우리 학교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 역시 '보따리 장사'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연구공간이나 강사 전용 휴게실도 턱없이 부족해, 직접 학교 건물 곳곳을 돌아다녀봤지만 시간강사를 위한 전용 휴게실을 설치해 놓은 학과는 한 손에 꼽힐 정도였다. 방학이 되면 강의료를 받지 못하는 것,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사회복지인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것 역시 서울대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강사들이 시달리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고용 불안 역시 서울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시간강사들의 근로계약은 종강 무렵 조교가 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강의 담당 여부를 통보하는 '구두계약'의 형태다. 임금 등 고용조건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도 없고, 근로계약 체결 뒤에도 강사에게 전해지는 계약서나 위촉장도 없다.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서울대학교 시간강사에 대한 규정'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러한 근로계약서나 위촉장 등에 대한 사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 인터뷰를 하는 선생님들마다 근로계약서의 존재 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종강 무렵에 조교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다음 학기에도 계속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전화를 못 받으면 강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최근 대학들은 대우교수, 강의전담교수 등 변형된 형태의 시간강사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분명 서울대학교에서도 역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이와 비슷한 명칭의 '변형 시간강사'를 조사했다. 학내에서 각종 기초교양 강의를 개발하는 기초교육원에서는 전임대우강의교수와 전임대우연구교수 등을 두어 대학국어, 대학영어 등의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기초교육원 내의 각종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름만 '전임대우' 교수일 뿐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이었다. 전임대우교수는 시간강사에 비해 그나마 나은 고용조건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기초교육원 내에 전용 연구실도 있었고, 급여도 조금은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임대우강의교수의 연봉은 3000만 원 선이며 일체의 연구비 지원은 없다. 급여에 만족하기 어려워 추가 강의를 하고자 해도 타교 출강이 금지돼 있다. 설령 학내프로그램참여를 통해 급여를 높이려 노력해도 그만큼 연구 및 논문작성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임대우 교수는, 계약제이면서 급여는 낮은 대신 연구시간이 많이 나는 각종 연구 프로젝트의 연구직으로 옮긴 강사도 적지 않다고 귀띔해 주었다.
한분 한분을 붙잡아 인터뷰를 요청하려는 내 마음은 결코 편할 수가 없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시는 선생님 역시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신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말을 아끼시다가도, 어느 정도 인터뷰가 진행되면 모든 것을 숨김없이 다 말씀해 주셨다. 시간강사로서 살아가는 학자로서의 어려움, 수많은 사연들, 수많은 응어리들이 내 취재수첩을 가득 채워 내려갔다. 학내에서 어떤 이름, 어떤 직위로 강의를 하든지 전임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들은 한결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 '그래도 이 직위에서는 나은 대접을 받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해 보면 항상 내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이쯤에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받아 온 교육을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전공과목만으로는 늘 배고픔을 느끼던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교양 강의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항상 나의 노트에 넘쳐났던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빡빡한 강의노트, 과제를 돌려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확인했던 선생님의 꼼꼼한 첨삭이 온전히 선생님 개개인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열성적인 강의의 이면에는 비정규직 시간강사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들이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며 무언가에 쫓기는 심정으로 만들어 낸 강의노트, 과제 첨삭을 나는 그저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교육의 수요자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시간강사를 착취해 왔는데도, 나는 내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내 등록금에 대한 당연한 수혜로서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교육을 누리고 있었다. 전공과목은 뒤로 미뤄두고 교양과목을 열심히 들어왔던 나의 대학 교육은 '착취'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시간강사 선생님들의 열악한 처우는 결국 나에게 주어지는 열악한 교육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은 본질적으로 탐구의 산물이며, 학문을 전달하는 학자는 많은 시간을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강사들은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1주일에 15학점 이상의 강의를 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이 학교 저 학교로 '보따리 장사'를 나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끼니조차 제때 해결하기 어렵다. 하물며 자신이 강의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는 얼마나 가능할까. 학생들의 과제에 대한 첨삭과 수업 준비 또한 어림도 없다. 전용 휴게실이나 연구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생들이 수업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해도 찾아갈 곳이 없다. 강사가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강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시간강사에게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제 2의 피해자가 되고, 열악한 처우가 열악한 교육을 낳고, 열악한 교육이 열악한 인재를 낳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의 학생들 중 누군가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이들 중 누군가는 교수의 꿈을 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시간강사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한 친구는 내가 취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털어 놓았다. 자신은 졸업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데, 교수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지만 자신 역시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지금도 많은 연구생들이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공부하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강사의 현재는 학생들의 미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시간강사는 대학생의 미래일 수 있다. ⓒ김영곤 |
이제 나는 선생님들을 교육 서비스의 생산자가 아니라, 한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다. 다음 학기에도 강단에 설 수 있을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감, 제대로 쉴 곳도 없이 이 학교 저 학교를 강의록을 들고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단함, 학자로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촉박함 속에서 시달려야 했을 선생님들의 고통을 나는 3년이나 대학을 다니고도 알지 못했다. 등록금을 냈으니 마땅히 누려야 한다며 그동안 편하게 수업을 듣고 이런 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던 나 자신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게 됐다. 왜 일찍이 선생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선생님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렇게 가까운 이들, 고마운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일까.
올해 초 시간강사 故 한경선 선생님이 자살을 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날아온 유서 한 장이 가져온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불과 1년 반 전에 수업을 받았던 선생님 또한 비슷한 시기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주일에 단 2시간, 2학점짜리 수업이었지만 나에게는 1주일을 기다리게 만들 만큼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프랑스어권 국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셨던 그 멋진 선생님이 자살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나는 한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마주해 보지도 못했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도 없었지만, 그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들었다는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선생님의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살을 택했던 우리 학교의 시간강사 선생님들,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故 한경선 선생님까지. 잇따른 선생님들의 죽음 앞에 수많은 학생들은 나와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떠나간 선생님들이 겪었던 고통과 남아있는 학생들이 감수해야 하는 슬픔은 대체 어느 누가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안에서 선생님들은 목을 매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는 모습,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지성의 전당에서 인간성의 파괴를 목도하는 대학생, 나는 과연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강의 시간에 선생님의 빽빽한 강의노트에서 비정규직의 불안한 현실을 보고 싶지도, 황급히 강의실 문을 나서는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보고 싶지도 않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대학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 앞에서, 학생 역시 시간강사 문제의 당사자임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 나아가 모든 대학이 빠른 시일 내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되찾기를 바란다.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은 학생들의 교육권 회복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학생들이 어느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 바로 '인간성'을 대학 안에서 충만하게 누리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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