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無矢無弓無的과 有矢有弓有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無矢無弓無的과 有矢有弓有的

[남재희 칼럼] 무풍지대적 정치분위기가 MB 轉身의 適期

며칠 전 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헌정회(憲政會)의 이철승 회장이 회원들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그 안에 '유시무적(有矢無的)'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들어있었다. 대중성 있는 정치 조어(造語)를 잘 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화살은 있으나 겨눌 표적이 없다'고 들고 나왔으니 어떻게 해석할지 당혹스럽다. 정치적 소신은 있으나 이미 고령이 되고 보니 그것을 실천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인지, 단결로 유명한 대학의 후배인 MB가 대통령이 되고 그의 정치노선도 보수라는 점에서 같으니 이제 투쟁할 상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인지…. 어느 쪽으로 풀이해야 할까.

그 서한을 보고 곧바로 유시무궁(有矢無弓)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정치소신은 있으나 그것을 현실화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철승 씨보다 많이 젊고, 생각도 다르지만 역시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이니 '무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사고의 비약이 일어났다. 과연 '유시'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 이른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고서 정치신념이 흔들리면서 이리저리 계속 모색하던 터에 엄청난 경제위기를 당하게 되니 더욱 암중모색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무시무궁무적(無矢無弓無的)'인 니힐하기까지 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본래 둔감해서 그런가. 아니, 국민들도 숨을 죽이고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단어가 적도(赤道)의 무풍지대(the doldrums). 적도를 배로 통과할 때는 그 무풍지대같은 기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의 가봉 같은 적도 상의 나라들을 가보았으나 배편이 아니어서 실제 그런 경험은 없었다.

민주당이나 열린당 세력은 대통령 선거에서 일패도지하였다. 즉, MB는 기세등등하게 압승하였다. 그래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측은 국민의 호응을 얻을 뚜렷한 이슈도 거머쥐지 못한 채 맥빠진 상태에 있고 정치는 실종되다시피 되고 있다.

한국일보의 장명수 논객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당은 "'영혼'은 사라지고 전술만 남아있다"는 평이다. 좀 심한 듯 하지만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거기다가 경제위기의 강타를 맞게 된 것이다.

모두가 경제 이야기다. 귀가 쏠리는 곳도 모든 정치인들이 아니라 김종인, 박승 씨 등 경제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요즘 들어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상정 전 국회의원의 한미 FTA를 놓고서의 논쟁이다. 매우 좋은 일로 본다. 그런 논쟁이 심화되는 것이 국민 교육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적도의 무풍지대를 비유로 말해보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폭풍전야라는 흔히 쓰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 듯하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위기는 아무래도 2, 3년간의 기간으로 장기화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사회의 제반조건도 악화되어 서민생활의 고통은 매우 심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뻔히 내다 보인다. 우리는 미국의 1930년대 초 대공황에 관하여 그 비참함을 <분노의 포도>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까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게 아닌가.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것은 마치 전세계의 대통령 선거가 되는 것처럼 관심을 끌었으며 미국 역사는 물론 세계사적인 대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침 대공황에 버금하는 경제위기를 당하여 미국에서는 FDR(프랭크린 델라노 루즈벨트)와 그의 뉴딜(New Deal)이 다시 되살아 나온 듯 여론의 관심사다.

공교롭다 할까, 한국과 미국은 역 코스다. MB측은 "비전은 닮은 꼴",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운운하지만 'Change'라는 구호에서는 혹 비슷할지 몰라도 그 방향은 반대방향이다.

언론에 왜 정반대인가 하는 점을 또박또박 지적하는 글들이 많이 나와있다. 쉽게 말하여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대 이래 기류가 되었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FDR시대와 비슷한 경제정책으로 가려고 하는데 우리는 참 운이 없다 할까, 노무현 정권의 실책들이 탄력을 주고, 시계추의 진동과 같은 역사의 사이클에도 영향을 받아, 이제 말하자면 레이건 식의 신자유주의에 돌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할 자료들은 너무나 많지만,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고, 보수 본류로 분류되는 <타임(Time)>지(11월 24일)의 한 에세이를 살펴보자.

<새로운 리버럴 질서>라는 제목의 장문의 에세이는 "오바마 대통령 시대는 시작일 뿐이다. 정부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민주당을 한 세대 동안 집권당으로 만들 이유"라는 설명으로 뒤이어지고 있다. 리버럴이란 '보수적'에 대비하여 개혁적·진보적이란 뜻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막무가내로 좌파 운운 하다가 곧잘 친공좌파 운운하고 비약하는 언론의 폭력을 행사하지만 미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도 리버럴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치에 있어서는 여야가 서로 닮아가기도 한다. 표를 먹는 조직이기에 표를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비록 상대방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피하지 않는다. 우리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영국에 있어서 보수당과 노동당은 서로가 좋은 정책을 흡수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있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대처 보수당의 이른바 대처리즘을 대폭 수용하여 '제3의 길' 운운하며 장사를 잘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상대 당의 정책을 모방하여 채택했다고 뭐 나쁠 게 없다. 좋은 것이라면 모방이 아니라 슬쩍 도용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MB정권도 경제위기 이후 달라진 상황에서 오바마와 'change'라는 구호가 같다고 모든 정책이 같은 것처럼 시치미를 뗄 게 아니라 내막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정책을 수정했다 해서 나무랄 사람이 있겠는가. 좋은 게 좋은 것인데…. 정치란 본래 그런게 아닌가.

그리고 다행히 이 적도의 무풍지대와 같은 분위기가 그러한 전환에는 매우 알맞다 할 것이다. 별로 표가 나지 않게 전신할 수 있다. 이때 신문의 제호 자체(字體) 변경의 수법이 생각난다. 조선일보건 동아일보건 제호의 자체를 변경할 때 절대로 눈에 띄게 단번에 많이 바꾸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몇 년을 두고 살금살금 바꾸어 몇 년이 지나면 거의 새로운 이미지의 자체가 된다. 살금살금 전법이다. MB정권도 신문사 제호의 자체 바꾸듯 살금살금 전법으로 변신하기 바란다.

① 도깨비처럼 정체가 아리숭하고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파생상품(디리버티브)을 핵무기와 같은 WMD(대량파괴무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위에 인용한 타임의 에세이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의 정글'을 '보통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잘 보살펴진 정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시장,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감독을 축소하는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뒤늦게 따라가지 말고 오히려 알맞게 강화해야 하는 게 아닌가. 부유층에 대한 감세가 아닌 실업대책과 사회 안전망 확충이라는 공공지출 확대에 힘써야 한다.

② 영재교육의 길은 터야겠지만 공교육은 대폭 강화·개선해야 하는게 아닌가. 사적 의료보험 도입은 부자 병원과 서민 병원으로 사회를 양분할 우려가 있다. 공적 의료보험은 아직 훨씬 확대·강화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③ 쿠데타의 유산으로 군·정보복합체(military-security complex)가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눌러 왔다. YS문민정부는 하나회 척결 뿐만 아니라 KCIA 개혁에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MB 이후 국정원이 개입이 금지된 곳에 촉수를 뻗치고, 또한 권한을 확대하려는 기도가 계속 언론에 보도된다. 그래서 항간에는 MB정권은 DJ·노 시대 뿐만 아니라 YS시대까지도 극복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럴 듯한 익살이 나돌기까지 한다.

④ 노사간에 공정한 중재자여야할 정부가 사측에 편중되어가며 노동운동을 불온하게 보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 정부가 앞으로 예상되는 노동위기에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지 걱정이다.

⑤ 오바마정부의 대북한정책이 부시정부의 그것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오바마정부를 그냥 추종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도 지금의 대북정책은 지양·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6자회담의 프레임만 믿고 있어서는 대단히 불충분하다. 남북간의 프레임을 확립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당면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풍선에 의한 북한에의 삐라 살포 문제를 이야기 해야겠다. 남북간에 상호비방을 하지 않기로 한 합의에 따라 정부가 민간단체를 설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강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삐라 정도에 흔들릴 정권이라면 그 사회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남북간의 현실은 현실, 삐라를 설득으로는 몰라도 강압적으로 금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충분히 하여 우리 측의 성의를 보임으로써 적대관계의 상승 확대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MB정권에 재사가 많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에 상황의 변화에 눈 감은 채 완미한 고집을 한다면 틀림없이 앞으로 경제상황의 악화에 따라 국민, 서민, 하층민은 점차 과격화될 것이다. 그러면 정치도 과격화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무시'는 '유시', '무궁'은 '유궁', '무적'은 '유적'이 되어 '유시유궁유적(有矢有弓有的)'의 정치상황이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