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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심상치 않다

[고성국의 정치분석] '박근혜의 선택'과 '박근혜에 대한 선택'

박근혜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친박 세력의 복당문제로 몇 번 입을 연 것을 빼곤 지난 10개월여간 줄곧 침묵하던 그였다. 국무총리설에 대북특사설로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제안받은 바 없다"는 간단한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온 터였다.

그랬던 박근혜 의원이 입을 열었다. 비록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하고 한 말이었다 하나 이번 기자간담회 발언은 준비하고 작심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충격효과가 클 정치적 메시지들을 기자들을 상대로 쏟아내면서 정말로 이 말들이 비보도 될 것을 기대했다면 그는 누구말대로 부동의 대권주자, 4선의원 답지 않은 순진한 사람이다.

"정권을 교체했는데 어려움이 많아져 국민 앞에 면목이 없다." 이 한마디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촛불정국에서 국민과의 소통부족을 두 차례나 사과한 대통령의 사과담화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대국민사과다. 정권을 교체했는데 "오히려"어려움이 더 많아져 국민 앞에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그동안의 침묵을 "사사건건 말을 하면 불협화음이 나니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런 설명과 이번의 작심발언을 연결해 보면 "그동안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있었으나 어려움이 더 많아져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어지는 그의 발언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해당 분야에서 최고로 잘할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사라면 전정부인사라도 쓸 수 있어야 한다."
"국제금융이나 국내 상황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타워가 필요하다."
"규제는 무조건 다 푼다고 좋은 게 아니고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가 공정하게 돌아가기 위한 감독과 규제는 철저히 하고, 시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풀어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너무 갈라놓았다. 지방이 다 죽어가는데 어디 한 군데만 살린다고 가능하겠는가."
"북측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데도 우리는 제대로 된 예측과 파악을 못하고 있다."
"5년마다 바뀌니까 정책하나 뿌리내리는 것이 없다."
▲ ⓒ인터넷 사진기자단

인사문제, 정책컨트롤 타워 문제, 경제, 지방균형, 대북정책 등 주요 국정현안에다 대통령 임기조정을 포함한 개헌문제에 이르기까지 박 의원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매우 구체적, 적극적, 공격적으로 밝혔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부터 해왔던 얘기들이고 딱히 새로운 것이 없는 발언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정돈돼있고 분명해졌으며, 현장감 있는 정치적 메시지로 체현돼 있음을 느낀다. 지난 10개월여의 침묵이 단순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의원은 기자간담회에 만족했을까 아니면 다소 미진한 느낌이었을까. 그 직후에 있었던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던진 메시지를 보면 스스로는 다소 미진하게 느꼈던 것 같다.

"정치란 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나를 버릴 때 정치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고 비워진 바로 그곳에 국가와 국민을 채울 수 있다."

앞선 기자 간담회 내용이 주로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이른바 '차별화'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런 의미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메시지는 매우 선명한 포지티브 메시지다. 그것도 어떤 네거티브 캠페인보다 강력한 네거티브 임팩트를 겸비한. 이 자리에서 박근혜 진영의 참모장역을 맡고 있는 김무성 의원이 한 말이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이) 보여준 아름다운 승복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졌다면 국격이 한 단계 올라갔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김무성 의원의 프레임에서 볼 때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권의 핵심실세들은 국격을 한 단계 올릴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킨 '격 낮은 사람들'인 셈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승복을 한 박근혜계와 아름다운 동행을 거부한 이명박계라는 선명한 대립구도가 정치의 품위와 나라의 품격으로까지 확대 해석되는 상황에서는 이른바 '친이:친박' 대결구도의 근본적 해소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이다. 정치분석의 포커스를 다시 '친이:친박' 대립구도에 맞추게 되는 이유다.

10%대 지지율에서 장기간 정체하고 있는 민주당의 무기력증을 민주당과 박근혜 변수와의 길항적 역학구도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를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의원과 친박 세력은 여당인가 야당인가. 그가 집권 한나라당의 의원이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한나라당에 있으니 여당이라는 대답은 형식논리로는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좀 더 검증이 필요한 대답이다. 문제를 '여:야'가 아니라 '이명박 대 반이명박'의 정치대립 프레임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최대의 정치적 반대자는 여전히 박근혜 의원이라는 뜻이다.

같은 당이라 하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극단적이라 할 만큼 다르다. 성장배경, 태도, 마인드는 물론 내세우는 정책도 다르다. 이로 미뤄볼 때 정량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두 사람의 삶의 가치와 정치철학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당수의 국민들이 박근혜 의원을 이명박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잘하건 못하건 제1야당으로서 얻어 마땅한 일정한 수준의 지지율과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서 나오는 반사이익의 상당부분을 박근혜 의원이 잠식하는 바람에 이명박 정부의 지지부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바닥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20%대인데 비해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30%~40%대를 기록하고 있는 데에는 박근혜 의원의 대중흡인력이 보수층뿐만 아니라 민주당으로 갈 야성향의 대중 일부까지 한나라당으로 끌어모으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러한 구도가 극단화될 경우 이명박 정부에 대항할 대안수권야당의 자리를 두고 민주당과 박근혜측이 경쟁을 하는 구도로까지 발전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이 경우 승산은 어느쪽에 있을까? 두 가지 이유에서 박근혜측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국민설득력과 흡인력에서 박근혜의원이 앞선다.
둘째, 차기 대선승리 가능성에서 박근혜의원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더 설득력 있고 더 가능성 높은 박근혜 의원에게 국민의 지지가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이로써 상황은 한층 복잡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에서 박근혜 의원과 그 추종세력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라는 매우 민감하고 인화성 높은 문제를 임기 내내 감당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이명박계 의원들은 박근혜의원이 발휘하는 구심력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고 지지세력을 단속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재오 전의원의 복귀, 안국포럼의 공세적 집단행동과 그에 따른 부메랑 효과, 이상득 의원의 용퇴 가능성, 더 나아가 소장개혁파의 부상과 정치적 대립구도의 의도적 변형을 통한 '이이제이 전략' 구사를 포함한 '경우의 수'에 대한 엄밀한 점검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자신들의 대안을 부각시켜야 하는 3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효과에 편승하면서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수준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방식으로는 주요한 변수로 서기도 어렵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측이라고 마냥 속이 편한 건 아니다. 여당 내 야당의 길이 쉽지만은 않고, 이같은 어중간한 스탠스가 언젠가는 선명하게 정리되어야 할 텐데 그 계기와 명분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대통령 권력이라는 상수와 그 외의 변수들이 만들어내는 다차방정식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박근혜라는 상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라는 두 상수와 그 외 변수들이 만들어내는 다차·다층 방정식을 풀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는 상수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는 변수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박근혜가 발휘하는 힘과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각 변수들이 만들어낼 각각의 힘과 영향력 또한 어떤 경로로든 박근혜로 모아지게 될 것이다. 월박이니 복박이니 하는 최근의 경박한 권력양태들과는 별도로 박근혜의 선택과 박근혜에 대한 선택이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만들어감에 있어 핵심요소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져가는 2008년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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