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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노동 위해 싸우는' 오바마와 '조직노동과 싸우는' 이명박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오바마 시대, 미국 노사관계에 불 새 바람

내가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본 곳은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다국적기업을 위한 국제기준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그 호텔 사람들은 관리자부터 말단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당선 소식에 흐뭇해 했다. 오마바가 어린 시절 자카르타에서 산 적이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오바마를 "인도네시아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었다.

오바마의 첫 노동정책은? '노동자자유선택법' 제정

미국 노동계는 대선 기간 내내 천문학적 액수의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등 오바마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 노동계의 고위인사 몇 사람이 장관급 지위에 발탁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부시 집권 8년 동안 '친기업-반노동' 색채가 유난했던 미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며 상하원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월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첫 번째로 취할 노동정책은 노동조합 결성권과 단체교섭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 제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美 현행 노동법, 노조 결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첫 번째로 취할 노동정책은 노동조합 결성권과 단체교섭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 제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로이터=뉴시스
미국의 현행 노동법상 노조 결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30~50%가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내용의 카드에 서명한 경우다. 그 서명 카드는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에 보내지고 이를 근거로 연방노사관계위원회는 해당 사업장에 대해 노조 가입 여부에 대한 비밀투표를 실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절반 넘게 노조 가입 의사를 밝혔다면 노조는 역시 노조 결성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사용자는 노조 결성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카드 서명 결과를 인정할 필요가 없으며,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연방노사관계위원회에 노조 인정을 위한 비밀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연방노사관계위원회가 주관하는 노동조합 인정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연방노사관계위원회의 선거 과정과 행정 절차는 그 시한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져 그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거나 해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송이라도 할라치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뿐 아니라 그 기간도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린다.

부시 행정부 아래 '비즈니스 프렌들리'였던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

우여곡절 끝에 노동조합 결성에 성공하더라도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회피하거나 질질 끌면서 노조가 와해되기만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단체협약 한번 체결하지 못하고 노조 활동이 무력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노동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방노사관계위원회의 이사회 구성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이뤄진 점도 한몫했다. 이사회는 모두 5명으로 공화당 2명과 민주당 2명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의장 1명으로 구성된다.

부시 정권 하에서는 연방노사관계위원회의 주요 결정들이 "단체교섭을 방해하고, 노조 결성을 어렵게 하며, 사용자 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미국 노동계는 연방노사관계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에 대한 규제 철폐와 단체교섭권의 강화가 열린다

미국 노동계가 요구하고 오바마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그 제정을 약속한 노동자자유선택법에 따르면, 과반이 넘는 노동자가 노조 가입 카드에 서명한 경우 연방노사관계위원회는 비밀투표 같은 성가신 절차를 요구하지 않고 해당 노조를 공식적인 교섭 대표기관으로 인정해야 한다.

노조 가입을 위해 종업원들은 카드 서명이나 비밀투표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사용자는 종업원이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간에 그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노조 와해를 기도하면서 단체교섭을 회피하기도 어렵게 됐다. 노동자자유선택법은 교섭 개시 90일 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사 누구나 연방조정화해위원회(FMCS)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고, 조정 개시 30일 후에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분쟁을 강제중재(binding arbitration)에 회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자에게도 조정과 중재를 신청할 권한을 줌으로써 노사 합의가 안 될 경우 정부의 중재(仲裁)를 통해서라도 단체협약 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노조 결성 이후 단체교섭을 무한정 지연시키던 사용자들의 관행이 줄어들고, 사용자들이 성실하게 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자유선택법은 노조 가입과 결성에서 사용자의 개입을 막고 노동자의 선택권을 회복시킴으로써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쟁취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 사용자 75%, 노조파괴 전문가 고용

노동자자유선택법은 2005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미 의회에 제출된 적이 있다. 2007년 3월 1일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찬성 241표 반대 185표로 통과되었으나, 그해 6월 26일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는 법안에 대한 토론 종결을 선포하자는 동의안이 찬성 52표 반대 48표로 통과되어 법안 비준에 실패했다.

코넬대 학자인 케이트 브론펜브레너(Kate Bronfenbrenner)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려 할 경우 민간부문 사용자의 92%가 종업원들이 반(反)노조 선동 모임에 참여토록 강요했으며, 80%의 사용자가 관리자들로 하여금 노조 때리기를 주제로 하는 훈련과정에 참여토록 요구했고, 75%의 사용자는 노조파괴를 위해 외부 전문가를 고용했으며, 절반의 사용자가 부분 혹은 전면 직장폐쇄로 위협했다. 또한 25%의 사용자는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해고했고, 노조 결성에 성공해도 1/3의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2006년 12월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노조원이 아닌 미국 노동자 가운데 6000만 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의 노조원 수는 1500만 명이다). 이들의 노조 가입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사용자들의 협박과 탄압이었다.

오바마 "노동자자유선택법 국법으로 만들 것"

미국노총(AFL-CIO)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계기로 노동자자유선택법을 법제화함으로써 노동기본권의 핵심인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대폭 강화시킨다는 계산이다.

미국 노조는 대선운동 마지막 4일간 모두 25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민주당 진영에 제공했다. 노조 활동가들은 1000만 가정을 일일이 방문했고, 2700만 장의 유인물을 일터에 돌렸다. 7000만 통의 전화를 걸었고, 5700만 통의 우편물을 발송했다. 무엇보다도 노조원 유권자 가운데 67%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2007년 11월 행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조직노동(organized labor)을 위해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말문이 막힌 적이 없는 대통령을 가질 때다. 우리는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우리의 노조를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 다수가 노조를 원한다면 그들은 노조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간단하다. (…) 나는 상원에서 노동자자유선택법 통과를 위해 싸웠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상원에서 싸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 법안을 국법으로 만들 것이다."

오바마와 민주당의 약속대로 '노조에 가입하고 싶은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간단한 원칙이 법제화된다면, 1990년대 중반 이래 노동자 조직화에 심혈을 기울여온 미국 노동운동은 큰 활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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