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부터 대학의 전임강사 제도가 폐지될 것이라고 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 16일에 발표한 대학 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계획에 따르면 '대학 강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전임강사 제도를 폐지하고 대학 교원을 교수, 부교수, 조교수의 3단계로만 구분하기로 했다고 한다. 명칭만 바꾼다고 사기가 진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간과되고 있는 직급은 소위 '시간강사'로 불리는 비정규 교수이다.
전임강사 명칭이 사라지는 것은 1963년 교육공무원법에 이 명칭이 규정된 이후 45년만이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 강사라는 명칭은 비정규직 교수인 시간강사만 남게 되었다. 또 9월 3일 교과부가 발표한 '2008 교육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4년제 일반 대학과 산업대학, 전문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기관의 전임교원은 7만3072명으로 지난해보다 2115명 늘어났다. 이에 비해 시간강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전임 교원은 13만8365명으로 지난해보다 4285명이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8년 대학 비전임교원의 비율은 65.4%로 지난 2000년의 62.1%보다는 3.3% 포인트, 지난해보다는 0.05% 포인트 각각 상승해 악화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 2008년 교육기본통계조사 결과발표 자료에 따른 연도별·설립별 비전임 교원 비율 추이는 다음 표와 같다. 이 표에 따르면 2008년 대학별 비전임 교원 비율은 4년제 일반대학이 61.1%로 2000년(57.0%)보다 4.1% 포인트 높아졌고, 전문대학이 72.6%로 2000년(69.9%)보다 2.7% 포인트 늘었다.
날이 갈수록 우리나라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에게 의존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비정규직 교수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교수는 시간강사를 비롯해 외래, 겸임, 객원, 대우, 강의전담, 연구 교수 등 정년보장을 받지 못하고 한 학기 혹은 일정한 기간 동안 임용되어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소위 임시직 강사를 말한다. 그런데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들 비정규직 교수의 공통점은 정규직 교수에 비해 임용 기간이 대개 학기단위여서 매우 짧을 뿐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보수가 열악한 특징이 있다.
'고등교육법' 제15조 (교직원의 임무) ②에 보면 "교원은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되, 학문연구만을 전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굳이 이 조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전임교수들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대학 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원으로서의 누려야 권리와 대우를 국가와 대학 당국으로부터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임 교원은 개인 연구실과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 그리고 정년보장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시간강사를 비롯한 비정규직 교수들은 대학 강의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정년보장은 언감생심, 생계비를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비정규 교수와 신추궁기(新秋窮期)
2008학년도 2학기가 시작되어 알고 있는 후배와 식사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금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 한 이 후배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아내와 3살 먹은 아들을 두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家長)이다. 식사를 하던 중에 이 후배로부터 생소한 단어인 '추궁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에, 농가생활에서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라는 의미에서 춘궁기(春窮期)라 불렀다는 말은 들어봤으나 추궁기(秋窮期)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 의미를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아직 강의료가 들어오지 않은 학기 초에 추석까지 들어 있으니 돈 나올 때가 없는 비정규직 교수들에게는 이때가 견디기 힘든 추궁기란다. 2008년도 추석은 다른 때보다 이른 9월 중순에 있어서 대부분의 비정규직 교수들에게는 아직 2학기 강의료가 지급되지 않았을 때이다. 이 무렵에 추석까지 끼어 있으니 만만치 않을 명절 비용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조적인 의미였다.
▲ 박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광수 |
실제로 2008년도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 추정액은 999만 원에 불과했는데, 이는 전임강사 평균 연봉 추정액 4123만원의 25%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나마 국공립대학 시간강사 평균 연봉은 1161만 원으로 사립대학 시간강사 평균 연봉 972만 원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었다. 이를 시간당 금액으로 확산해 보면 국공립대학은 평균 4만3000원, 사립대학은 3만4000원 꼴이다.
국공립대학에서 3시간 강의를 맡으면 한 달(4주)에 51만 6000원을 받는 꼴인데, 6시간에서 9시간을 맡으면 약 100여 만 원에서 150여 만 원의 강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금액이면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한 달을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강의료가 학기 수업 중에만 지급이 되고 방학 중에는 지급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강의가 진행되는 15주(3개월) 동안 번 돈을 가지고 반년(6개월)을 지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앞에서 예를 든 후배의 경우처럼 결혼을 한 가장의 경우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강의를 하는 비전업 비정규 교수나 아내 혹은 남편이 직업이 있는 비정규 교수들 같은 경우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오직 강의에 의지하여 삶을 꾸려가는 전업 비정규직 교수들의 경우는 '3개월 벌어 6개월 살다보면 손바닥 친다'는 말이 현실이다. 3개월 동안 이 대학 저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강의를 확보해 강의를 하고 받은 돈으로 강의료가 나오지 않는 방학을 지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음 학기가 시작할 때쯤이면 모아놓은 돈도 다 떨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맡을 수 있는 강의도 점점 줄어드는 형편이다. 교과부 자료에서 보듯이 갈수록 비정규 교수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으며, 강의를 맡을 수 있는 학위 취득자의 수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제도는 시간강사의 입장에서 보면 '고비용'을 지출했음에도 '저효율'밖에 수급 받지 못하는 제도이지만, 대학 측에서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보장하는 인력을 수급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박사학위 소지자는 늘고 있고, 고학력 전문 인력에 상응하는 보수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 직장과 기회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대학 강의를 맡을 수 있는 석·박사학위 취득자는 '08년 8만2293명으로, '07년 7만9174명 대비 3119명(3.9%) 증가하여 '07년 증가분인 431명(0.5%)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2008년에 9368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른 대학원 학위취득자수 추이는 다음 표와 같다.
이렇게 비정규 교수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한 학기에 맡을 수 있는 강의도 점차 줄어들고, 다음 학기에 강의를 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정규 교수들은 전임교수들과는 달리 자신의 전공과목과는 별 상관없는 강의를 맡게 되기도 하고, 전임교수들이 꺼리는 요일과 시간대에 수업을 맡기도 한다. 이러한 원인에 의해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이 담당하는 과목은 주로 교양에 국한되어 있으며, 일부만 전공과목을 맡고 있다.
지역 학문의 고사
이 같은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연구에 열성이어야 할 젊은 학자들이 연구보다는 강의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학문적 업적은 연령 증가에 따라 감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의욕 상실과 동기의 감소 현상은 경험적으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상황과 학문 분야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문적 수행과 연령은 곡선적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은퇴시기에 곡선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초기에는 상승하다가 안정을 이룬 후 하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흔히 얘기하듯 직선적인 하강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초기에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가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면 연구량이 감소한다는 의미이다.
▲ 대학 당국은 시간강사의 생존과 학문 발전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이광수 |
비정규 교수들은 전임교원이 되기 위해 많은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한 강의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학문적 성과보다는 강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물론 강의를 하면서도 학문적 성과를 쌓는 많은 비정규 교수들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안정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 학문 연구에 몰두할 수 없는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질 좋은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지역 학문의 토대가 되는 신진 연구자들의 감소를 뜻하며 바로 지역 학문의 고사(枯死)를 의미한다. 즉, 신진학자들의 연구역량이 학문 연구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강의에 치중함으로써 학문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역'에서 학문하는 연구자들의 처우가 점점 열악해질수록 자의든 타의든 '지역' 과 '학문'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지역 연구자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 자리는 또 지역연구자들의 후속세대들이 메우게 된다.
이처럼 지역연구자가 학문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혹시라도 정규직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지역 외부, 특히 수도권에서 공부하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이 독차지하게 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규직 교수가 지역대학에서 어느 정도 경력과 '능력'을 검증받게 되면, 다시 수도권 대학으로 진입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한편, 지역 학문이라는 말은 특정지역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나 특정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특정지역의 문화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자나 학문을 지칭함이 옳을 듯하다. 그러나 지역 학문은 그 지역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한 연구라는 관점에서 지역적 정체성을 갖는 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적 정체성을 갖는 강의의 감소 또한 지역 학문의 고사와도 관련이 있다. 제7차 교육과정은 지역적 특성을 살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자료를 토대로 재구성된 교육 자료로 학습함으로써 지역의식을 가진 동질성 있는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가까운 지역문화사를 통해 우리 문화 바로 알기를 하고, 주체적인 세계화 정보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지역 정체성을 가진 과목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전남·광주권 소재 한 국립대학의 예를 들어보면, 2008학년도 2학기 개설과목 중 호남지역과 관련된 교양과목은 '호남의 역사와 문화'(1강좌), '5.18항쟁과 민주·인권'(2강좌), '호남인의 가치관'(1강좌) 등 총 3과목 4강좌이며, 전공과목으로는 '향토사 교육(역사교육전공)'과 '지역문화정보론(문헌정보학과)' 정도가 개설되어 있다. 그 외에도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 '문학과 여행', '전통문화의 이해(2)' 또는 전공과목인 '한국민속학개론(국어국문학과)', '무형문화재와 축제(인류학과)', '한국구비문화론(국어교육과)' 등도 넓은 범주로 지역문화와 관련된 과목으로 포함될 수 있다.
물론 여타 다른 전공과목에서도 지역문화 과목을 따로 개설하지 않고도 지역문화에 대해 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양필수 과목을 포함하여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 전체 분반이 690개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극히 적은 수의 과목만이 지역문화와 관련된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 전공과목도 마찬가지여서 개설 전공과목 수에 비하면 지역문화와 관련된 과목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처럼 호남지역과 관련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과목은 극히 미미하고, 이 과목들 또한 전임교원들이 강의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에서 예로 든 대학 이외에도 호남지역에 있는 다른 대학들 또한 사정은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정규직 교수들에게는 자신의 전공을 찾아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지역적 정체성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하기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대부분의 교양과목들은 '글쓰기' 혹은 '졸업자격인정영어' 등과 같이 대학에서 기초과목 혹은 대학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꼭 수강하도록 하는 과목들에 치중되어 있다. 이들 과목들 거의 대부분은 비정규 교수들에게 맡겨진다. 이처럼 지역의 박사학위 소지자들과 학문후속 세대들이 학문 연구는 언감생심이고 강의 또한 본인의 전공과목보다는 '교양', '기초' 또는 '필수' 과목 강의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역'학문'을 담당하는 연구자의 역량 감소뿐만 아니라 '지역'학문을 담당할 학문후속 세대가 단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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