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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불행한 인생, 〈노자〉를 껴안다"

[철학자의 서재] 〈행복한 인생〉

정신 나간 '10년' 타령

올해 이 나라에서 정권을 얻고 득의양양한 사람들은 걸핏하면 '잃어버린 10년'을 말해왔다. 취임식에서 눈과 귀를 열고서 국민을 섬기는 종으로 살겠다고 선서한 새 대통령은 손을 내리기가 무섭게 미국에 건너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조지 부시에게 'cool'한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었다. 그 대신 '미친 소'의 공포를 선물로 받아들고 돌아왔다. 단단히 화가 난 국민들에게 며칠간 고개를 숙이는 척했지만 그는 스스로 부른 재앙을 신앙의 힘으로 넘겠다며 청와대에 예배당을 차려 놓고 날마다 하나님께 이 나라를 봉헌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들 안에서 서로의 사랑과 굳은 '의리'를 확인하는 듯하다.

지금 미국 금융자본주의가 그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고 크게 흔들리는 사이에 벌써 미국은 몇몇 대기업과 많은 중산층 사람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계는 미국 경제라는 초대형 공룡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넘어질지 불안해하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들 중에 미국과 더불어 한국 경제도 파산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1997년에 한국이 겪은 외환 위기는 장차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는, 외국 전문가의 경고도 이미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그러나 신앙과 의리로 무장한 이 정부는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러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모양이다.

1980년대 말 군사독재 정권 때 절정에 달했던 '반정부' 투쟁은 문민정부 이후로 점점 잦아들더니 김대중과 노무현이 집권한 10년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이 나라의 큰 도시들을 매일 밤 환하게 밝힌 수백만 명의 촛불 행진 속에서도 '민주 쟁취', '노동 해방', '조국 통일'과 같은 옛 구호는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미친 소'와 '미친 교육'에 찬성할 수 없는 수많은 학부모와 학생들, '강부자·고소영' 정부의 대운하와 민영화 계획을 참을 수 없는 너무나도 많은 시민이 광장에 나와서 거대한 파도 같은 노여움을 작은 '촛불'로 대신 밝혔을 뿐이다. 촛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평화롭고 낙천적이었으며, 그 불빛에 비친 얼굴들은 한결같이 지금보다 행복한 세상, 행복한 인생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왜 불행해졌나?
▲ <행복한 인생>(안은수 지음, 문사철 펴냄) ⓒ프레시안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는 변혁운동의 격한 몸짓이 가라앉은 대신에 성·생태·환경과 같은 문제를 중심으로 생활 속에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두드러졌다. 인류가 차별과 폭력 없이 살아가는 화해와 평화의 세상,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기대는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격렬한 사회·정치 운동이나 반정부 투쟁보다는 일상생활로 돌아와 도덕적이고 인문적인 가치를 차근차근 실천하는 '진보'를 더 소중하게 여겼을 것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자그맣고 예쁜 책이 한 권 있다. <행복한 인생>(안은수 지음, 문사철 펴냄)이 책은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며 적잖은 연구 성과를 낸 한 여성 철학자의 <도덕경> 에세이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철학 고전인 <도덕경>을 읽으며 자신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때로는 그이의 삶을 '엿보는' 두근거림을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이가 몹시 자존심 상하고 슬펐던 사실들까지 스스럼없이 들려준다. 이 책을 달리 부른다면 나는 '생활철학 에세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제목은 '행복한 인생'이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파란색 표지가 얼굴이라면, 손에 잘 잡히는 문고판 크기를 몸집으로 가진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2005년 가을부터 2006년 봄까지 썼다고 하고, 그 때가 그이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은" 때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행복한 인생>은 '불행한 인생'의 역설법이다.

이 책 제목처럼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나친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면서 이 세상에 인문적 가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고 살고 싶다. 그렇지만 어림없는 꿈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늘 불행을 느끼면서 산다. 내가 불행한 것은 굳이 '미친 소'나 '경제 위기'와 같은 사회·정치적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 '가짜' 양성 평등론자이며 '가짜' 생태주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여성 해방이 안 되면 남성 해방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다가도 남녀가 불평등한 이 구조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먹는다. 그리고 날마다 소비사회에서 길들여진 저 팔색조와 같은 갖가지 욕구를 채우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가 TV 다큐멘터리나 인터넷 뉴스를 통해 '죽음'의 그림자가 내 발목까지 덮쳐온 것을 보고는 새삼스럽게 놀란다. 나는 아직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그릇된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매일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고, 그렇게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나와 비슷한 이웃들과 함께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래서 나는 불행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틀린 삶'을 더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후회에서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사람들 숫자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난날 가족과 타인을 지배하거나 착취하며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이들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별 생각 없이 꺾고 밟아 죽인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굽이쳐 만물을 두루 적시고 발밑을 흐르는 냇물에게 침이나 뱉었던 철없던 시간을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먼저 자신에게 겸손하고 타인과 자연에게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이다.

부끄럽고 미운 책

그런 생태적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야말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인류의 오랜 지배의 역사로부터 마침내 인문적 '반성'에 도달한 이들이다. 철학의 '사투리'를 빌려서 말한다면, 그들은 실천이성의 도덕적 명령을 '천국'이나 '피안'과 같은 종교적 목표나, 존재론(형이상학)적 '사유'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바로 역사와 사회를 지닌 '땅' 위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지구 곳곳에서 '불편하지만 옳은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참된 인류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고맙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자유'를 실천하지 못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나'가 나는 부끄럽고 밉다.

한문을 배울 때 선생님을 따라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야(義之端也)요…" 하고 소리 내서 읽었다. <노자> 곧 <도덕경>이 지어진 때와 엇비슷한 전국시대에 살았던 맹자는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씨를 네 가지로 나누었다. 그 중 하나가 '수오지심', 곧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허물을 미워할 줄 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끌고 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온갖 물질적 욕망이 곧 '미덕'이다. 지구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품들을 소비하게 만드는 이 욕망이야말로 '대중문화' 또는 '다양성'이라는 어여쁜 이름을 달고 다니지만, 실상 인간과 자연을 고갈시키고 오염시키며 파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비사회를 과감히 '탈퇴'하여 그간 몇 겹이나 껴입었던 욕망의 껍질들을 훌훌 벗어던져버린 인류를 만나면 나는 스스로 부끄럽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미운 감정을 느낀다.

이 <행복한 인생>도 그런 뜻에서 '부끄럽고 미운'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허물과 고민과 소망을 저자도 비슷하게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읽는다. 저자는 특별히 생태주의자거나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더욱이 사회·정치적인 면에서 진보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 '옳은 삶'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붙잡지 못하고 양쪽을 기웃거리는 '회색인' 또는 '설익은 먹물'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자신은 '고수'가 아니며, 다만 "고수들의 향연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식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 곳곳에서 그런 부끄러움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날마다 먹는 밥처럼 꼭꼭 '씹으며' 읽었다. 그이가 노자의 '도'를 '밥'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이처럼 그이는 <도덕경>이라는 '무위'의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열쇠로 일상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렇게 '나'와 타인과 사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꺼내온 이야기는 마치 '보물찾기'처럼 흥미롭다. 그이의 글쓰기는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 독자는 부끄러움과 미움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나머지 '세 가지 마음'도 함께 움직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곧 저자와 함께 세상살이의 '슬픔과 측은함'을 느끼고, 때로는 '절제와 경건함'도 배우게 될 것이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그이 생각에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도 일어날 것이다. <행복한 인생>의 저자는 81장(章)으로 이루어진 <도덕경>에서 자신이 뽑아낸 짤막한 키 워드를 '열쇠'로 삼아 영화, 소설, 드라마, 사람, 물건을 가리지 않고 이성과 감성의 씨줄과 날줄로 짜낸 자신만의 그물망에 걸린 세상을 길어 올려서 오늘날의 '도'와 '덕'을 이야기한다.

저마다 다르게 읽는 <노자>

본디 <노자> 또는 <도덕경>은 현대의 자유시, 서정시처럼 짧은 호흡과 분량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철학 시집이다. 그러나 그 책에 담긴 내용을 따라가 보면 서정적이지도 않고 서사적이지도 않다. 어떤 이는 이 책을 통치술에 관한 책, 곧 '정치서'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전쟁과 병법을 가르친 '전쟁서'라고도 한다. 자연 친화적인 '되살림' 문화와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책이 '인류'라는 유적(類的) 관점에서 사람과 사물, 사회와 자연을 바라보는 데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편견'과 '착각'을 깨우치는 책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내 이런 생각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며 나 혼자만의 독창적 해석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도 처음 <노자>를 만났을 때에는 전공자가 쓴 해설을 따라서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인 <행복한 인생>은 저자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작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은 <도덕경>에 실린 문장 전부를 우리말로 고스란히 풀어낸 번역서도 아니고, <도덕경>과 도가철학에 관한 학술정보를 해설한 입문서도 아니다. <도덕경>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을 두루 읽고 노자와 도가의 철학사상을 깊이 있게 다룬 전문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대중적인 교양서다. 차지하는 분량도 <도덕경> 원문보다는 물론 길지만, 운문 아닌 산문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꽤나 절제된 문체로 금방 다 읽을 만큼만 썼다. 그래서 한 번 읽는 호흡으로 한 편씩 술술 읽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상상해 본다. 어느 날 FM 라디오 프로그램을 돌리다가 '책 읽어주는 사람'과 같은 코너에서 이 책이 읽혀지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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