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통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직접 추수한 햅쌀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처음 짓는 농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가을걷이를 했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축하드리고만 있기에는 나라의 사정이 너무도 어렵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경제의 위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거꾸로 가는 정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 마음은 벌써 한겨울입니다.
종부세와 수도권 규제완화, 그리고 참여정부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간신히 잡아놓은 부동산정책마저도 마치 전봇대 뽑듯 뽑아버리고 있으니 노 전 대통령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미 FTA에 대해 세가지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한미FTA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형편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직하고 통 큰 고백만이 나라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저의 화두입니다.
우선 어제, 그제 '민주주의 2.0'을 통해 한미FTA협정에 대해 쓰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비준을 서두르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조기비준 대신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미FTA 협정 비준문제를 맹목적으로 밀어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민주당은 앞선 책임에 갇혀 옹색한 처신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이 긴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한미FTA에 관한 견해는 참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비준과 재협상에 대한 논란이라면 현정치권의 갑론을박에 맡겨둬도 될 일이겠지요. 무분별한 개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경제위기로 공포에 떨고 있는 민초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 기대했던 것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재협상 '훈수'가 아니라 한미FTA 협정 체결에 대한 '고해성사'였을 것입니다.
'내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은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 국민여러분들께 사죄드린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모든 것이 분명해진 지금, 대통령시절 '구국의 결단'으로 밀어붙였던 한미FTA 협정이 나라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고백하는 용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왕에 노 전 대통령께서 나서시기를 작정하셨다면 한미FTA 협정이 지난 정권의 오류였음을 인정함으로써 한미FTA 협정 폐기전략으로 국론을 모아가는 물꼬를 터주기를 갈구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묻겠습니다. 참여정부가 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밀어붙였던 한미FTA협상의 명분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질적 도약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제조업 가지고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선진국처럼 금융, 서비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하고 그를 위해 미국의 선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동북아 금융허브론' 그것은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미국금융자본의 탐욕에 편승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또 미국과의 FTA라는 '외부충격'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제도의 선진화는 결국 '투기와 거품'의 온상을 만들었던 위기의 주범이었음이 확인된 거 아닙니까? 또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외의존도가 70%가 넘는 나라에서 개방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사냐고 반문하셨지요? 이명박 정부가 외환보유고 많이 갖고 있어 IMF 구제금융 시기와는 다르다며 위기는 없을 거라고 강변했지만 그럼에도 외환보유고 세계6위인 나라가 왜 사색이 되어 난리인지 그 까닭을 국민들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분별한 개방 때문 아닌가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걸 이미 시장 참여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한미FTA만이 살길입니까?
이명박 정권에게는 '한미FTA는 당장의 경기와는 관계없고 5년 10년 15년 기간이 지나야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라는 충고를 하면서도, 한미FTA 협정 이후에 금융위기가 왔다는 점을 강조하신 대목은 굳이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위험을 느꼈다면,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했던 무모함을, 금융자유화를 제도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체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방과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의 오류를 반성하고 이제 내수기반의 강화를 통해 세계경제에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뚜렷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권의 폭주가 머지않아 역사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결자해지를 촉구합니다. 구국의 심정으로 한미FTA는 역사적 오류였다고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십시오.
둘째, 기왕에 한미FTA협정 폐기전략을 주장을 하는 김에 노 전 대통령이 주장하신 '재협상'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조기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전대통령의 말씀처럼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제적인 금융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오바마 정권이 금융, 의약품, 지적재산권, 자동차배기규제 등 많은 분야에서 정책의 변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한미FTA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정부제소권을 비롯한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포함해서 한미FTA 협정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FTA의 재협상'이 아니라 '한미FTA 폐기'를 위한 준비이어야 합니다.
실제 오바마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한미FTA 재협상이 아니라 자동차부문의 협상입니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식 FTA의 모체인 나프타의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그것은 1-2년 이내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오바마에게 한미FTA는 상당기간 관심밖에 일이 될 것입니다. 오바마에게 급한 것은 자동차협상입니다. 따라서 한미FTA 재협상의 요구가 아니라 '한미자동차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정부의 한미FTA 대한 맹목적 집착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협상해본 학습효과가 그 방향의 선택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쇠고기 수입개방 들어주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 해주지 않는다' 하니 이명박 정권이 통째로 내주었지 않습니까? 또 자동차 안 들어주면 한미FTA 비준 없다하면 또 기꺼이 구국의 결단을 하리라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조기비준시도를 통해 한미FTA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질 않습니까?
핵심은 오바마 시대에 한미FTA는 자동차협상의 종속변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와 정치권이 한미FTA 가지고 비준이니 재협상이니 엄한 데를 긁는 소모적 논란을 하지 말고 머지않아 요구될 자동차협상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유색인종차별을 해소할 계기를 만들고, 재정확장정책을 통한 내수경제육성에 힘을 쏟고, 국제 깡패로 이름을 날린 일방주의 외교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자유무역주의자니 보호무역주의자니 논란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제조업 중심의 공격적 자유주의정책을 펼 가능성이 많습니다. 보호무역의 측면만이 아니라 자국의 자동차산업과 노동자를 위해 우리나라에 자동차시장 개방을 공격적으로 강요할 것입니다.
만약에 미국의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그 요구를 수용한다면 그것은 곧 가장 넓은 고용기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그리고 내수기반의 궤멸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를 안내주면 한미FTA 협정은 물 건너 갈 수 있습니다. 자 어느 편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자동차 다 내주고 미국 대기업 이익을 위한 한미FTA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동차 보호하고 미래의 재앙인 한미FTA를 폐기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결자해지를 하셔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셋째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한미FTA 한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자유주의 강력한 추진자'라고 비판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댄' 것은 아닙니다. 나프타식, 미국식 FTA가 신자유주의 전형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턱없이 미숙하고 힘없는 정치인입니다만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에 맞서 '젖먹던 힘'까지 보태 맞섰던 한사람으로서 근거와 내용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란 소리가 '빨갱이지?'란 소리로까지 들리셨다니 오늘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미FTA를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제겐 감당하기 한참 벅찬 일'이라며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전임 정권의 책임자가 가진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은 기회에 꼭 토론의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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