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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나고 파괴는 계속된다"

[위기의 습지 ⑦·끝] 습지, 이렇게 보호하자

지난 28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내세우며 시작했던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지난 4일 막을 내렸다. 람사르 총회에 앞서환경부는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물장오리 오름, 오대산 습지 등을 새롭게 람사르 습지로 등재했다. '저탄소 녹색 성장'을 내세우며이명박대통령도 총회 자리에 얼굴을 내밀며 "생태", "환경"을 언급했다.

이렇게 람사르 총회가 '녹색 세탁(greenwash)' 역할을 하는 동안, 정작 한국 사회의 소중한 습지는 각종 개발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프레시안>은 녹색연합과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위기의 습지를 기록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간 6곳을 소개했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습지 보호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소개한다. <편집자>

▲ 인천 옹진군 습지 보호 지역 장봉도의 밤게. ⓒ녹색연합

제주 연산호 군락, 새만금, 시화호 형도 습지,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 한강 하구, 동해안 석호 등 앞서 기록한 습지는 역사에서 사라질 목록들이다. 한국 사회의 습지는 '고립된' 자투리 습지만 홍보용으로 남게 되었다. 전체 습지 시스템이 상호의존을 멈추고 '화석화된 습지 박물관'만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우포늪과 순천만이 단적인 예이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 이름 없는 습지를 발굴하고 생물종 다양성을 복원해야 한다. 생명의 공존을 꿈꾸는 '지구호'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지 연재 글을 마무리하면서 습지보전의 단초가 될 몇 가지 고리를 제시해본다.

'습지'의 범위는 어디까지?

습지는 '축축한 땅'이다. 그러나 이 말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때 고흥만을 가득 채웠던 '잘피 군락'은 변변한 습지 유형에 포함되지도 못한 채 육상으로 매립되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 마을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과 동해안 석호는 환경부의 습지 유형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방치, 훼손되었다.

습지보전법이 규정하는 습지의 정의와 유형은 람사르 협약과 다소 차이가 있다. 1998년 제정된 습지보호법이 생물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법안이었지만, 조속히 습지보호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서라도 람사르 협약과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습지보전법과 람사르 협약의 습지 정의와 유형을 비교해보자. 습지보전법에 의하면 습지란 "담수·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 내륙 습지 및 연안 습지"를 말한다. 람사르 협약에서 습지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물이 정체되어 있든, 흐르고 있든, 담수이든 기수이든 염수이든 관계없이 소택지, 습원, 이탄지 또는 물로 된 지역을 말하며 여기에서 간조시에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

한국의 습지보전법은 람사르 협약의 습지 유형에서 잘피·연산호 군락과 같은 간조선 아래 부분의 해양 습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또 어류 양식장, 염전, 저수지, 논과 같은 인공 습지도 '물새 서식지', '어류 산란·번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지만 빠져 있다. 그렇기에 국가의 중요 습지 지정과 습지 정책 수립 과정은 늘 람사르 협약에 배치하거나 협소하게 진행될 여지가 있다.

개발 포장용 환경 평가 제도

지율 스님 도롱뇽 소송과 천성산 무제치늪으로 유명한 경부고속철도 원효터널 구간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예로 들어보자. 경부고속철도 사업 시행자인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동아대학교와 유신코퍼레이션에 용역을 의뢰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다. 1994년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는 사업 구간의 생물상에 관해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야생 동·식물 없음"이라고 명백히 기술한다.

이 환경영향평가서가 논란이 되자 대한지질공학회가 용역을 받아 2004년 '천성산 환경 실태 조사 보고서'를 다시 제출했지만 누락된 멸종위기종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다. 사업 시행자와 용역업체가 천성산 일대의 멸종위기종을 고의로 빠뜨린 혐의를 받은 것이다.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인 군남 홍수 조절지 사업의 경우, 한국수자원공사 사후환경성평가에는 사업 대상지 주변에 서식하는 두루미 개체수가 단 3마리뿐이라고 보고했다. 올 초 녹색연합은 같은 장소에서 두루미 총 171마리를 관찰했다. 환경부는 시화호 형도 습지 내 멸종위기종의 존재를 사전에 확인했음에도 자연환경보전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전환경성검토서를 통과시켰다. 올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은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하면서 새만금 용도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모두 불법인 것이다.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 등 환경평가 제도의 일차적인 문제는 사업 시행자가 평가서를 작성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데서 시작한다. 사업 시행자가 본인의 입맛에 맞는 업체에 용역 의뢰할 것은 당연한 이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차원의 개발 계획인 SOC 확충 사업에 대해 환경평가 제도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사업 시행자뿐 아니라 국가 또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로 작성하거나 조작했을 때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강력한 조항이 신설되어야 한다.

습지 훼손의 보상, 대체 서식지

지난 8일간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총회'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는 예산, 협약의 법적 지위를 포함해 물새 비행 경로 보전을 위한 국제 협력, 습지와 바이오연료, 기후 변화와 습지, 논 습지 등 총 32개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논 습지를 람사르 습지로 인정하느냐 여부였다. 즉 "습지를 논으로 변경할 때 지역의 생물 다양성 및 관련 생태계 서비스에 악영향이 있음을 우려하며 현재의 자연적인 습지를 인공 습지로 전환"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람사르 총회 참가국들은 논 습지가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라는데 인식을 함께 했지만, 결코 논 습지가 기존 자연 습지를 파괴해 대신하는 '대체 서식지'는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금 현재도 시화호 형도 습지와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에 관한 '대체 서식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람사르 총회에서 우려했던 것이 이미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김포 지역은 택지 개발을 위해 재두루미 먹이터인 홍도평을 훼손하고 대신 먹이 주기를 통한 재두루미 대체 서식지를 구상하기도 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대체 서식지가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 충청남도 당진 왜목 마을의 낙지잡이. 연안 습지는 1987년과 비교했을 때 2005년 현재 20.4%가 상실되었다. ⓒ녹색연합

대한민국은 '매립'공화국이다

올해 한국 정부는 조선 시설 용지, 항만 시설 용지, 도로 등 공공시설 등을 이유로 남해안 연안 습지 15곳의 매립을 결정했다. 1061만7000㎡ 정도의 면적이다. 람사르 총회 유치 지자체인 경상남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 1996년 당시, '대통령자문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연안 매립과 하구 개발을 막겠다는 요지의 '간척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새만금 사업 이후에도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연안 매립 계획을 원천적으로 재검토하고, 국가 차원의 대단위 하구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시화호 매립, 새만금 간척 사업 등 대규모 매립 사업이 갯벌의 가치와 상충되며 지역의 해양 문화를 말살시킨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습지가 생태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자원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과 습지의 조화로운 공존'과 '습지의 현명한 이용'은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습지에 기댄 '생명 공동체의 안정과 아름다움'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간 우선에서 자연을 배려하는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약간의 '생태'로 포장하고, 전통적인 습지의 '문화종 다양성'을 거세한, 경제이익 만을 목표로 추진되는 정책은 바르지 않다.

생태는 연결망이다

'살아 있는 모양새'란 말의 생태(生態)는 상호 의존의 관계가 기본이다. 무지개의 빨강은 주황이 존재해야 비로소 인식되는 이치다. 서해안 조기떼의 생존은 갯벌의 산란지가 필수적이기에 이 둘은 서로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생태학적 상상력'은 막연히 자연의 한 단면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 말미잘을 보면서 흰동가리돔을 기억하는 것이다. 생태는 이른바 '시스템적 사고'에 바탕을 둔다. 즉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역동적 전환이고, 분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종합적 사고다.

'시스템적 사고'는 습지 정책을 입안하는 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 낙동강 하구의 상부 모래톱인 을숙도의 일부분이 변형된다면, 필연적으로 하부 모래톱인 장자등과 도요 등의 모양새가 달라지며 연속적으로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한강 하구 재두루미의 먹이터와 잠자리를 분리해 그 일부분만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면, 재두루미는 한강 하구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동해안 석호는 유입 하천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제10차 람사르 총회의 주제인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은 습지와 인간이 각각 독립적인 개체군이 아니라 "습지가 건강해야만, 인간이 건강할 수 있다"는 상호의존의 관계로 설명된다. 우리나라 습지 보호 정책은 한 마디로 '개체의 고립'이라 말할 수 있다.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파편화된 생태만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면 그뿐이라는 식이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와 신두리 해역, 배후습지인 두웅 습지를 별개의 보호 지역으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 사고'를 적용해 해안~모래갯벌~사구식물~1차 사구~배후습지를 하나로 묶고 전체를 보며 보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앞서 습지 보전에 관한 몇몇 단초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습지 보전의 보다 중요한 열쇠는 한국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개발 사업 요구에 맞서 '공공재'인 습지 보전의 주도권을 행사할지 여부다.
▲ 과거 새만금 갯벌에 있었던 김 양식장.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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