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주노총, 조직이기주의 버려야 산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주노총, 조직이기주의 버려야 산다"

[인터뷰] 수배 중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지금 이 시대가 민주노총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정치 투쟁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정치 파업'으로 3개월 넘게 수배 생활을 하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일성은 다시 '정치 투쟁'이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경찰의 체포망을 뚫고 조계사에서 탈출한 뒤 처음으로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 민주노총의 역할이 임금 및 단체 협상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정치 투쟁'을 강조했다.

"지난 촛불 집회에서 민주노총에 기대했던 촛불의 마음도 그것이었다. 국민의 건강권, 공공 부문 사유화를 통한 물가 폭등 등은 결코 노동자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조합원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이 '정치 투쟁'이라면 민주노총은 그 길을 가야 한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정치 투쟁이 합법이니 불법이니 운운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정부가 불법이라 한다면, '정치 파업 합법화' 투쟁도 같이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오는 9일 노동자대회에서 이 민주노총의 새로운 노선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대회 참석 여부를 놓고도 그는 "반드시 간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조계사에서? 차 타고 나왔다"
▲ 조계사에서 농성 중이던 촛불 수배자 6명이 동시에 사라진 것은 지난달 29일이었다. 이 위원장은 "차를 타고 나왔다"고 간단히 답했다. ⓒ프레시안

수배 중인 이석행 위원장을 만나는 길은 쉽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일찌감치 꺼둬야 했다. 지난 5일, 제3의 장소를 거친 후에야 서울 도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모처에서 간신히 이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 장소까지 오기 위해 그는 여장(女裝)을 했다. 여장을 위해 화장을 한 탓에 입술을 비롯한 얼굴에는 화장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예민했다. 차를 타고 인터뷰를 하는 중에 조금만 길이 막혀도, 멀리서 경찰이 보여도 바로 얘기 속도가 느려졌다.

건강도 좋을 리 없다. 조계사에서 나오기 며칠 전부터 위경련이 일어나 지금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얼굴은 푸석 푸석했다.

조계사에서 농성 중이던 촛불 수배자 6명이 동시에 사라진 것은 지난달 29일이었다. 어떻게 그날 조계사를 나왔을까? 이 위원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차 타고 나왔다."

경찰도 조계사 내 CCTV 분석을 토대로 수배자 6명이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조계사를 빠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었다. 이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지금 그 과정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며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했다. 그는 "나오는 과정에서 경찰의 검문·검색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움직인 게 벌써 다섯 번째다. 체포 영장이 떨어진 직후 민주노총에서 빠져나올 때부터, 중앙위 진행을 위해 기아차 화성공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조계사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그 과정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조계사의 도움은 전혀 안 받았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조계사 측에 미리 언질도 주지 못해 죄송하다."

"민주노총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선" 이유는?…"9일 노동자대회, 반드시 간다"
▲ "조계사에 있으면서 투쟁의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프레시안

그는 왜 조계사를 나온 것일까?

그는 "조직 실무자 5명과 80만 조합원의 대표자인 나는 다르다"며 "힘 있는 노동자대회를 준비하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맞선 투쟁을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는 것.

조계사에서 나오자마자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바로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선 이유도 그것이었다.

"'민주노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안에 있으면 11월 대회 자체를 못 할 것 같았다. 사무총국 간부 등이 나를 지키는 데만 매몰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경찰이 민주노총을 에워싸는 것을 다 지켜본 뒤, 끝내 발길을 돌렸다."

그는 "조계사에 있으면서 투쟁의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조계사로 들어가기 전에는 YTN 조합원의 아침 출근 저지 투쟁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직접 봤다. 마음은 뛰어들어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2002년에 수배 됐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수배되면 늘 투쟁의 현장 주변을 서성인다."

그러나 그가 노동자대회에서 무대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그는 "무대 위에 올라설지 여부는 조직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의 마음은 무대 위에서 직접 대회사를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것. 그는 "무대 위에 올라서든 참석만 하든, 그날도 경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002년에도 경찰을 잘 피해 다녔다"며 자신감을 피력한 이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6일 새벽 박원석 대책회의 상황실장 등 촛불 수배자 5명이 동시에 검거됐다. 인터뷰 후 다른 경로를 통해 이와 관련한 이 위원장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탄압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안다. 몇 사람 잡아간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9일 노동자대회 참가는 변함이 없다."

"사회적 대화? MB의 정책 기조 변화가 우선이다"
▲이 위원장에게 이번 노동자대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 ⓒ프레시안

이석행 위원장에게 이번 노동자대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1%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부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노동자 등 국민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너져가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선택이다. 지금처럼 1% 강부자·재벌 정권으로 남을 것인지, 99%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로 탈바꿈할 것인지는 이명박의 선택에 달렸다. 그에 따라 민주노총은 투쟁도 할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

이번 노동자대회의 기조는 바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변화 촉구이다. 최근 민주노총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및 TV 공개 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민주노총 "MB가 '잘'하면 임금동결도 가능")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투쟁 일변도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회적 대화로 가는 수순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나는 처음부터 대화를 거부한 적이 없다. 대화를 먼저 거부한 것은 경영계와 정부였다. 신자유주의보다 한 발 더 나간 천민자본주의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 특히 노사정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처럼 들러리 서는 대화는 절대 안 한다. 정부가 정책 변화 의지가 없다면, 5년 내내 투쟁이다."

그는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이 얘기한 '임금 동결'을 놓고도 "함부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된다면 고려해볼 수는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임금 동결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최저임금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까지 동결? 그건 말이 안 된다. 임금 동결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등에 대한 대책이 담보된 다음에, 연봉 어느 수준 이상에 대한 단계적 동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정부가 민주노총과 대화에만 나서면 동결하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는 한국노총과의 연대도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 비정규직법 개정 등 정부가 잇따라 경영계 입맛에 맞게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양대 노총은 갈 길이 다르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부와 정책 협약을 맺고 아직도 파기 선언도 안 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말이다. 선별적 지지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역량대로, 한국노총은 그 나름대로 해 나가야지 같이 무엇인가를 도모할 상황이 못 된다."

"MB 정부의 태도라면, 경제 쓰나미 와도 노동계, 국민 역할은 없다"
▲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 그가 생각하는 최우선 문제는 무엇일까? 그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를 얘기했다. ⓒ프레시안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는 비정규직법을 얘기했다. 현재 2년인 사용 기간 제한을 4년으로 늘리려고 하는 현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천박하다는 것.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즉 비정규직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아직도 저임금으로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현 정부가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특히 "과거엔 전쟁을 하더라도 청와대와 민주노총 사이에 '비선'은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 없다"는 이 위원장의 말대로 정부는 민주노총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청와대가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민주노총 출신 한 인사에게 '조만간 큰 역할을 하게 될 테니 준비하라'고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주장했다. "제3노총을 청와대가 직접 조직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가 "지금과 같은 청와대의 태도라면, 아무리 경제 위기가 더 심해진다 하더라도 노동계 뿐 아니라 국민도 할 역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 있다.

"정부가 귀담아 들을 자세가 안 돼 있는데 노동계가 무엇을 말하는 것도, 제안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자기 조직이기주의 못 벗어나면, 민주노총 존재감 사라질 것"

이런 사정 탓일까? 이석행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을 답답해 했다. 그는 상반기 투쟁을 놓고도 "아직 민주노총의 각 산하 조직이 기업주의, 자기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에 화물연대와 덤프연대의 파업을 묶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실패했다. 민주노총만으로도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반이명박 국민전선'을 얘기했던 것인데 사실 민주노총도 여전히 기업별 대응에 머물러 있다. 공기업 사유화에 맞선 투쟁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노조 가입안 부결도 마찬가지다."

그는 "비정규직 등 소외된 노동자를 버리고 가는 순간, 정규직도 죽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해법 중 하나로 간부들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위에서 결정해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은 중간 간부들이 '물 먹는 하마'가 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다시 본격적인 '정치 투쟁'의 길을 선언하는 이 위원장의 고민에는 그런 내부 상황도 작용한 것일까?

이 위원장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이대로라면 경제 위기라는 쓰나미 속에서 (민주노총의)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수배 중이라 한정된 활동밖에 할 수가 없지만, 그런 절박함으로 노동자대회부터 준비하려고 한다."
▲ "이대로라면 경제 위기 속에서 민주노총의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