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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와 '친미성'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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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와 '친미성' 사이에서

[손호철 칼럼] 오바마 시대의 이명박 정부

타부는 깨졌고 역사는 새롭게 쓰여졌다. '세계의 대통령'인 미국대통령에 유색인종이, 그것도 가장 소외된 인종인 아프리카계가 당선된 것이다. 노예가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다. 오바마 민주당후보의 승리는 이 같은 상징적 의미에서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나아가 오바마의 승리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벌거벗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무장한 세계화를 상징하는 부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바마와 민주당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우리처럼 오랫동안 진보정당이 매우 취약하고 보수정당들이 지배하는 '보수양당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을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즉 우리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처럼 소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미국의 민주당도 자유주의 정당에 불과하며 예를 들어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클린턴 이후 나타난 소위 '신(新)민주당노선'은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에 수렴한 지 오래이다. 사실 오바마는 첨단자본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상 최고의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인종문제만 해도 오바마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문제는 아직 심각하기만 하고 오바마가 심각한 인종문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 같은 큰 전제아래,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부시와 오바마가 일정한 차이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와 관련해, 대북정책에 있어서 그러하다.
▲ ⓒAP=뉴시스

주목할 것은 지난 십수년 동안 나타난 한국과 미국 간의 엇박자이다. 특히 대북정책에서의 엇박자이다. 김영삼 정부도 초기에는 양심수인 이인모 씨를 북한으로 보내주는가 하면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김 주석이 사망하고 냉전적 언론들이 조문파동을 일으키면서 냉전적 노선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반면에 클린턴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터지자 민주당의 전통적인 데탕트 논리를 발전시켜 한반도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추구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와의 엇박자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이후 1997년 경제위기의 덕으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코드가 맞는 두 자유주의 정권(클린턴 정부와 김대중 정부)간의 짧은 밀월기가 있었다. 그 결과가 북한 경수로 지원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밀월은 2001년 부시정부 출범과 함께 깨어졌고 이후 엇박자가 다시 시작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겉돌기 시작했다. 한국 자유주의정권의 데당트 논리와 호전적 미국정권의 냉전적 논리간의 엇박자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긴 엇박자를 끝낸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다.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총격사건을 핑계로 당초 약속했던 실용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냉전적 노선으로 돌아서 부시 정부와 밀월을 구사했다. 그리고 이 같은 밀월은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굴욕적 협상으로 귀결됨으로써 유례없는 촛불시위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등으로 인기가 바닥을 치면서 부시 정부가 임기 중에 북한 문제만이라도 해결하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공언해온 오바마 후보가 승리를 했다. 다시 엇박자가 시작된 것이다. 오바마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할 수도 없고 정연주 KBS 전 사장처럼 감사원을 시켜 해임할 수도 없고, 이명박 정부로서는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그간의 '친미성'을 발휘해 냉전노선을 포기하고 오바마의 데탕트 노선과 공조체제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자 혈맹인 미국과의 공조체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다른 하나는 갑자기 DNA에도 없는 '자주성'을 발휘해 김영삼 정부처럼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 노력에 딴지를 거는 것이다. "친미냐? 반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으로는 둘 다 버릴 수 없는, 뼈 속까지 배어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또 다른 엇박자의 가능성도 있다. 경제정책에서의 엇박자이다. 대북정책과 달리 경제정책에 있어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간의 차이는 별로 없었고 한미 간에도 갈등이 거의 없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신자유주의였다. 사실 1997년 경제위기 당시 한국에 혹독한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강제한 것은 공화당 정부가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 특히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클린턴 정부였다. 이후 클린턴 정부와 김대중 정부, 부시 정부와 김대중 정부,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며 별 갈등이 없었다.

사실 최근 다시 국내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합의한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후보시절 "반미면 어떠냐"고 있는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며 일갈을 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었다. 이후 부시 정부와 이명박 정부도 모두 신자유주의 정부였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오바마 후보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고 진보적 정치인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최근 일어난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와 관련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미국, 나아가 세계적으로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오바마가, 그리고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일이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이미 파산선고가 난 레이건식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더욱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뒷북을 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등 소수를 위한 감세정책, 규제완화 등을 고집하고 있으며 오바마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한미 FTA까지 국회 조기비준을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 재개발 규제완화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를 추구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가져온 경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역시 IT시대의 '노가다 CEO대통령'답다.

이제 우리가 희망을 거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친미성이다. 이들의 뿌리 깊은 친미성이 언제나처럼 제 힘을 발휘해 이들이 탈냉전과 탈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나가기를 기원해본다. 친미성이 우리를 배신이야 하겠는가? 친미, 만만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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