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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비디오 족쇄법안, 바꿀 건 빨리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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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비디오 족쇄법안, 바꿀 건 빨리 바꿔야

[이슈인시네마] 제한상영가, 등급보류 법안 개정논의 본격화

충무로, 곧 국내영화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사 가운데 하나가 '월드시네마'다. 1975년에 수입해 내놓았던 <쇼킹 아시아>는 지금은 사라진 대한극장에서 상영돼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다. <쇼킹아시아>는 아시아의 희귀한 풍습을 서유럽인들(이 영화는 독일産이다)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월드시네마'는 이 작품이 성공하자 수입당시 러닝 타임이 길어 잘라놨던 '자투리 필름'들을 엮어 이듬해 다시 <쇼킹 아시아2>를 내놨고 이 작품 역시 대박을 쳤다. 영화사는 이 두편 아닌 한편의 영화로 지금으로 따지면 수십억원의 돈을 번다. 이후 '월드시네마'는 그때 '번 돈'으로 거의 그냥 간판만 유지한 채 잊을 만하면 영화를 한편 수입해 극장에 걸곤 했다.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됐던 윌 패럴의 코미디 <엘프>가 월드시네마의 수입 작품이었다. 오래 전에 크게 번 돈으로 절대 '무리'하게 영화사업을 하지 않았던 관계로여전히 재력가로 알려져 있는 '월드시네마' 대표는 2005년에 다시 한번 대박의 꿈을 한고 멕시코 영화 한편을 수입한다. 이름하여 <천국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럴 섹스, 남성 성기에 대한 클로즈업, 여성 성기 묘사 등등의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국내 개봉이 원천 금지된다. 영화사와 심의기구 간에 장장 3년에 걸친 법적 소송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쇼킹 아시아> 등의 영화로도 알 수 있듯이 극단적인 상업영화로 돈을 벌어 온 한 영화사가 창작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서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천국의 전쟁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이 정당한 사유없이 영화상영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수입사인 '월드시네마'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영등위'의 심의규정은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으며 또 그를 위해서는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대한 법률' 자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게 됐다. 그런데 도대체 이 제한상영가라는 것은 무엇인가. . 제한상영가, 사실상 상영금지 제한상영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등급심의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한국이든 할리우드든, 혹은 프랑스든 세상의 모든 나라는 영화에 대해 사전심의라는 것을 받게 한다. 이 '심의'는 '검열'과 다른 것으로 검열은 말 그대로 영화의 일부 장면이든 아니면 영화 전체든 사전에 '가위질'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는 이 검열이 일반화돼 있다. 1996년 이전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한국에서는 영화에 대해 가위질 검열이 자행됐다. 어떤 때는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또 어떤 때는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에 앉아있는 심의위원들이 싹둑싹둑 가위질을 해댔었다.(김수용 감독의 1986년작 <허튼 소리>는 수십군데가 잘려 나가 한마디로 누더기가 된 채 상영됐다. 김수용 감독은 이 일로 사실상 영화 계를 은퇴했으나 이후 영상물등급위원장을 지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그 같은 행위가 창작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으며 이후 그 같은 검열행위는 사라지게 됐다,고 하면 정말 얘기가 단순하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는 바람에 지금까지 문제가 복잡해졌다. <천국의 전쟁>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은 그때문이다. 검열은 없어졌지만 사전심의는 당연한 조치다. 모든 영화는 사전에 연령별 등급심의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 영화는 몇살 이하가 보면 안되고, 몇살 이상은 볼 수 있다 등등을 특정 심의기구가 사전에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기구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되는 것이고 몇 살 이하, 몇 살 이상 등등은 바로 연령등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내의 연령등급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내용들이다. 일단 ▲전체관람가가 있고 그 다음이 ▲12세이상 관람가 그리고 ▲15세이상 관람가 ▲18세이상 관람가가 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은 바로 그 위에 ▲제한상영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한상영가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상영에 제한을 두겠다는 것으로서 18세 이상 성인이 보더라도 위해한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인 경우 법률에 의거해, 제한된 상영관, 곧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을 허가한다는 것이다. 제한상영이기 때문에 TV는 물론, 일반 인쇄매체 등에서도 광고를 엄격하게 금지하도록 돼있다. 형식논리상으로는 그렇게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위해한 요소 가운데는 시각에 따라 극도로 음란한 영화들(여기에는 하드코어 포르노가 포함되지 않는다. 포르노는 국내에서는 일반 공중이 모이는 공간에서는 상영이 허가되지 않는다.)이 있을 텐데 그 같은 작품을 일반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이를 특정 공간에 묶어, 볼 수 있는 사람, 혹은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관람을 허용케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국내에 제한상영관 설립이 '실질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제한상영관 설치와 관련한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1년에 몇 편 안되는 제한상영가 작품을 걸기 위해 광고도 할 수 없는 극장을 운영하려는 사업자들이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법률은 만들어 놨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운영될 수 없는 극장, 곧 '유령극장'이 바로 이 제한상영관이다. 때문에 현행 등급 심의제도에 있어 '제한상영가' 등급의 존치는 궁극적으로형식논리가 맞지 않는 것이 된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개봉을 해야 하는데 그 같은 극장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으니 사실상 영화상영을 하지말라는, 상영금지 조치와 같은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어찌 되겠는가. 외화 수입업자나 국내 영화제작자의 경우 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특정 장면, 혹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장면을 잘라내게 된다. 1996년에 헌법재판소가 가위질을 하지 말라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스스로들 알아서 필름을 잘라내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영화법이 사실상 검열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던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 우리가 못 본 영화들 이 제한상영가 등급 때문에 국내 관객들이 아예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가위질(난도질)을 당한 채 봐야만 했던 작품들 수는 꽤 된다. 이번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멕시코 카를로스 레이다가스 감독의 <천국의 전쟁>은 물론 존 카메론 미쳴 감독의 <숏버스>나 영국 마이클 윈터바텀의 <나인 송스>, 대만 차이밍량의 <흔들리는 구름>같은 작품 등이 그것이다. 좀 더 멀게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도 있다. <거짓말>은 결국 제작사인 '신씨네' 측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 문제되는 장면 세군데를 자진 삭제한 후에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문제는 이런 영화들이 등급위에서 우려하듯이 일반인들 정서를 크게 위해할 요소가 있는 작품들이냐는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영화평론가들, 해외 영화제에서는 일부의 외설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성과 예술성을 크게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나인 송스
예를 들어 <나인 송스>를 보면 이렇다. 이 영화는 분명 지금의 우리사회 통념상 표현 수위가 높은 영화이긴 하다. 인터코스(intercourse)는 기본이고 남자의 사정 장면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가리켜 '포르노적'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포르노는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얘기한 것처럼 포르노의 특징이 '지루함'에 있는 것이라면 윈터바텀의 <나인 송스>는 전혀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영화는 윈터바텀이란 영국의 문제적 감독이 왜 이런 '포르노적'인 이야기를 찍었을까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런던에 유학 온, 리사라는 이름의 미국 여학생이 영국남자 매트와 벌이는 과격한 섹스행각이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이들은 두세 가지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섹스와 록콘서트에 가는 것, 그리고 음식을 먹거나 가끔 마약을 하는 일이다. 추측컨대 윈터바텀은 디지털 6mm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면서부터, 영화라고 하는 것이 매우 '사적인' 공간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영화는 개인의 어디까지를 다룰 수 있는가,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란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인 송스>는 한마디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극단적이면서도 끝없는 주장을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이렇게 얘기한다. "섹스(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내세우고 싶은 주제다. 섹스나 외설이 아니고. 영화 한편의 예를 더 들어보자. 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 <숏버스>는 언시뮬레이티드 섹스(Unsimulated Sex)를 근간으로 한 영화지만(연출되지 않은 섹스가 아니라 리얼 섹스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들 진짜 섹스를 보여주며 무엇보다 남자들의 쓰리썸, 남녀의 그룹 섹스들이 나와 18세이하 관람은 '절대' 어려운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그 누구도, 포르노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으로 야하고, 거칠고, 도발적이며, 파격에 파격을 가하는 장면들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든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따로 하려는 얘기를 펼쳐 보인다. 미첼 감독은 극중 인물인 숏버스(영화제목이기도 한 숏버스는 뉴욕 브루클린에 실제로 있는 언더그라운드 동성애 섹스바의 이름이다)의 마담 저스틴 본드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한다. "이 방엔 폭탄 같은 건 없어. 여긴 그저 섹스의 궁전일 뿐이지." 펑크족이자 SM플레이어인 세브린이라는 여자가 채찍으로 남자들의 엉덩이를 후려치는 호텔방도 대개가 '그라운드 제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남편과의 과격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성문제 카운슬러인 소피아(한국인 배우인 이숙인이 맡아 흥미롭다)란 여자가 저스틴 본드와 나누는 대화의 상당 부분은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는 주제로 모아진다. 호모 커플인 제이미와 제임스는 또 한명의 남자 게이를 만나 동성애 쓰리썸을 시도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세상의 관습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자유연애를 시도하기 위해서다. 극중 인물들의 섹스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도 영국의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말이 떠오른다. 로빈 우드는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자, 성의 혁명을 치르라'고 말했다.
숏버스
그래서인지 영화 <숏버스>는 점점 정치적인 내용으로 변해간다. 영화 <숏버스>는 한마디로 성정치학을 통해 급진좌파의 이데올로기를 스크린에 슬쩍 얹으려고 시도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된 캐릭터들 옆에서 이야기의 양념거리를 맛깔스럽게 뿌려대는 숏버스 마담 저스틴 본드는 한껏 우아한 트랜스젠더의 자태를 뽐내며 이렇게 얘기한다. "한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했도다. 하지만 이제는 퇴장할 때를 스스로 알도다." 저스틴의 얘기대로 한때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자들은 이제 숏버스처럼 이상야릇하지만 하지만 자기들만의 공간으로 도피해 9•11이후 불어대는 광풍의 세상 분위기(국토안전법처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법안이 공화,민주 양당 합의로 통과되는 시대를 의미한다)가 끝나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불쾌한 것과 금지된 것의 차이 사람에 따라 위의 영화들은 불쾌할 수 있다. 이런 장면들을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느냐는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쾌하다고 해서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불쾌한 것을 스스로 보느냐 안보느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최소한 '안 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한 창작표현의 자유가 백퍼센트 보장되는 사회라고 할 수가 없다. 창작표현의 자유가 백퍼센트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없으며 열린 사회가 아닌 곳에서 문화가 꽃피울리가 없고 산업이 확장될 수가 없다. 창작자들이 자꾸 움츠러들게 되는 상황에서 사업자들 또한 그러한 창작자들을 독려해 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의 의식을 누른다는 것은 결국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이 모르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며 보수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을 보호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의 전쟁>이 수입된지 3년동안 개봉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자본의 낭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대로 국내 영화등급의 '제한상영가'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 영화계의 주장대로 '완전등급제'를 실현시키는 것이 옳다. 완전등급제란, 모든 영화는 일단 상영의 기회와 자유를 허용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있는 영화일 경우 상영된 후 형법 등 실정법(예컨대 미풍양속법 등)을 통해 사후 판단을 받는 것이 옳다. 금과옥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는 연령별 등급을 어떻게 규정해 놓고 있는지를 참고하면 좋다. 할리우드는 등급제를 철저하게 운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논란을 불식시킨다. 할리우드 등급심의 역시 총 5개로 나뉘어진다. 일단 ▲G(General audiences:전체관람가)가 있고 그 다음으로 ▲PG(Parental guidance:10세 미만의 경우 부모동반 관람가) ▲PG-13(13세 미만의 경우 부모동반 관람가) ▲R(Restricted:17세 미만의 경우 보호자 동반 관람가) ▲NC-17(No children under 17:17세 미만 관람불가) 등의 순이다. 보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금은 고인이 된 잭 발렌티 미국영화협회 회장조차 등급심의 목적에 대해 "등급심의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부와 정권이 바뀌면 늘 논란이 되는 몇가지 법안이 있다. 그 가운데 국민 개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구속하는 국가보안법은 항상 뜨거운 감자가 된다. 국가보안법은 정권의 색채를 강화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될 때가 많다. 지식인들은 줄곧 국가보안법이 폐기되거나 폐기될 만큼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제한상영가를 규정하고 있는 '영비법'의 조항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계에서는 이 법률 조항이 하루빨리 없어지거나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언젠가는 문화산업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요지는 2009년 12월까지 관련 법률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문제가 있는 법률은 하루라도 빨리 고치는 것이 좋다.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영화계다. 숨쉴 공간을 자꾸 열어 줄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미디어전문지 '미디어미래'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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