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하수 처리장으로 전락한 강릉 경포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하수 처리장으로 전락한 강릉 경포호"

[위기의 습지 ⑥] 동해안 석호

지난 28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내세우며 시작했던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4일로 막을 내린다. 람사르 총회에 앞서 환경부는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물장오리 오름, 오대산 습지 등을 새롭게 람사르 습지로 등재했다. '저탄소 녹색 성장'을 내세우며 이명박 대통령도 총회 자리에 얼굴을 내밀며 "생태", "환경"을 언급했다.

이렇게 람사르 총회가 '녹색 세탁(greenwash)' 역할을 하는 동안, 정작 한국 사회의 소중한 습지는 각종 개발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프레시안>은 녹색연합과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위기의 습지를 기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재할 7곳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습지 목록들'이다. <편집자>

▲ 1980년대부터 한국남동발전소의 폐탄 처리장으로 활용된 동해안의 석호 가운데 하나인 풍호. ⓒ녹색연합

8000년 역사가 불과 10년 전,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담수도 아니고, 해수도 아닌 이상야릇한 생태계가 동해안에 즐비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동해안 석호에 관한 이야기다.

지형·지질 전문가 사이에는 석호의 존재나 세계적 보전 가치가 오래전부터 확인된 사실이었다. 1996년 강릉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동해안 석호 보전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시민·사회단체가 한발 앞서 훼손된 석호의 복원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동해안 석호는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 관리의 사각지대였다. 물론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석호의 신비가 벗겨졌다.

8000년 해안사(史) 복원의 열쇠

석호(Lagoon)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모래톱을 형성해 만들어진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연 호수다. 석호의 육상부는 담수 하천이 유입되고, 반대로 모래톱을 범람해 해수가 유입되기도 한다. 담수 생태계와 해양 생태계가 공존하는 석호는 어류와 철새의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다. 석호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보전 가치가 충분하다.

동해안 석호의 생성 연대는 8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호를 시작으로 강릉시 풍호까지 동해안에는 현재 18개의 석호가 남았다. 환경부는 2007년부터 화진포호, 송지호, 광포호, 영랑호, 매호, 향호, 경포호 등 7개의 석호를 중심으로 가치 발굴을 했다. 그나마 기본적인 생태 조사만 했을 뿐이다.

석호 생성의 지형적 조건을 밝힐 연대 조사, 퇴적 조사도 전무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보전 방안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석호에 대한 국가 관리가 공백 상태인 동안, 동해안 석호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한 풍호는 매립되었다. 세계적 자연 유산인 풍호가 1980년부터 한국남동발전소 폐탄 처리장으로 활용돼 무연탄재 360만 톤으로 매립된 것이다. 갈대밭 군락과 자투리 습지만이 옛 풍호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강릉시는 이곳에 다시 골프장 조성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마나 남아있던 흔적도 사라질 위기다.

경포호의 명성도 옛 이야기

동해안 대표적 석호인 강릉 경포호의 경우는 어떨까?

경포호는 강릉 안현동, 조동, 초당동에 걸쳐 형성된 자연 석호로, 강문교를 사이에 두고 담수와 해수가 교차한다.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 예전 강릉 사람은 경포호에서 생산된 어패류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경관 또한 뛰어나 해안과 유입 하천 곳곳에 열두 채의 정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곳은 강릉 시민의 애정 속에 강릉 관광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경포호의 명성도 옛 이야기다. 과거 12㎞였던 경포호의 둘레는 이제 4㎞만 남았다. 각종 폐수로 인해 거울처럼 맑지도 않고, 철새도 드물어 예전과 같은 풍류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경포호 생태계 훼손은 국도 7호선이 담수와 해수의 경계인 모래톱 위로 건설된 이유도 있지만, 유입 하천 관리 실패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2006년 환경부는 '물 환경 관리 10개년 계획'에 동해안 석호를 포함시켰다. 환경부의 석호 보전 대책 수립 계획에 따르면, 경포호 생태 복원 사업은 송암천과 경포호 합수 지점에 2010년까지 76억18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수질 정화를 위한 인공 습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즉 경포호 유입 하천인 송암천 하류 지역의 생태 복원은 추진하지만 중·상류 수질 관리는 하지 않겠다는 것..

상류 지역에는 오염 발생이 예상되는 건설 폐기물 처리장을 허가하고, 하류 지역에는 예산을 들여 유입하천의 오염원을 잡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다. 지금까지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형 하천 정화 사업 등을 이유로 석호에 투자한 예산은 총 300억 원 이상이다. 그러나 수질 개선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석호의 특성을 무시한 복원 사업으로 인해 석호 생태계만 더욱 교란된 상태다.
▲ 폐수 유입으로 경호포의 명성도 옛 이야기다. ⓒ녹색연합

하류는 습지 복원, 상류는 폐기물 처리장

강릉시 대전동 송암리 즈므 마을에 위치한 송암천은 경포호로 유입되는 3개의 주요 하천 중 수질과 생태계가 가장 양호한 하천이다. 하천 1급수 지표종인 가재와 참게, 멸종위기야생동물 I급인 수달이 서식하는 건강한 하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경포호로 유입되는 나머지 2개의 하천이 택지 개발 등으로 심각히 훼손된 상황에서 송암천 유역 관리는 경포호 수질 관리의 핵심이다. 동해안 석호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유입 하천의 관리가 필수적인 상황인 것이다.

강릉시는 송암천 상류에 건축 폐기물 처리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2002년 건축 폐기물 사업 계획서가 제출된 이후, 즈므 마을 주민의 반대가 거세지자 강릉시는 2004년 건축 페기물 사업 부결 통보를 내렸다. "소음, 비산먼지로 인해 농작물 피해와 지역주민 생활 불편이 우려되며, 우기 시 사업장에서 발생한 침출수 등으로 하천오염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2007년 강릉시는 다시 사업 변경 계획을 받아들여 사업 적합 통보를 내렸다. 강릉시에만 3곳의 건축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섰지만, 모두 가동률이 저조해 현재 존폐 여부가 논란 중이다. 즈므 마을 주민은 "깨끗한 자연을 가진 것이 죄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것이 죄다!"며 송암천 건축 폐기물 처리장 건설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역사에서 사라진 석호들

그나마 경포호의 경우는 양호하다. 화진포호, 송지호, 경포호 등 관광 효과가 높은 지역은 주변 경관 시설 정비와 확장에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라도 배정되기 때문이다. 풍호, 염개호, 순개호, 순포개호, 봉포습지, 봉포호, 광포호, 천진호, 청초호 등 나머지 석호들은 과거 8000년의 역사를 채 밝히기도 전에 방치, 매립되었다.

동해안을 남북으로 가르는 국도 7호선은 석호 파괴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도 7호선이 바다와 석호의 중간 모래톱을 가로질러 건설되면서 해수 유입을 단절시켰고, 그 결과 석호의 수질이 악화되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석호의 원형을 상실했던 것이다.

녹색연합에서 2007년 강원도 18개 석호 지역을 조사한 결과는 참담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풍호는 올해부터 골프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쌍호는 유입수가 줄어들어 호수에서 늪으로 변형되었다. 경포호는 1930년대에 비해 면적이 50% 이상 감소했다. 염개호와 순개호는 군 폐기물과 어망 등이 석호 곳곳에 방치돼 있고, 순포개호는 쓰레기 처리장과 별 다름없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가평리습지는 매립된 지 오래다. 쌍호는 박물관 호수로, 봉포호는 대학교 호수로 사용되었다. 광포호, 천진호, 청초호 등은 최악의 부영양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선유담은 조사도 되기 전에 내륙화 현상으로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 호수에서 늪으로 변해가는 순개호. ⓒ녹색연합

석호의 풍류를 즐길 수 있을까?

현재 동해안 석호는 공식적으로 18곳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8곳 외에도 원형이 심각히 훼손돼 존재를 확인하기 힘든 석호가 더 많을 것이란 의견이다. 후대에 석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인위적으로 훼손돼 사라진 것이다. 동해안 석호는 지각 변동과 모래톱에 의해 매우 독특한 담수, 해수 생태계를 동시에 간직한 '기수호'다. 약 4000년 전에 형성된 생물상이 동해안 석호에서 독특하게 적응한 것이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10년 간, 동해안 석호 보전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늦게나마 석호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보전 의지를 보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면적이 큰 호수나 관광 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7곳에 국한되었다. 나머지 공식적인 11곳 석호는 환경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버려졌다.

과거 경포호에는 '달이 다섯 개 뜬다'는 풍류가 있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바다와 술잔, 연인의 눈에도 똑같은 달이 하나 뜬다는 것이다. 호수와 바다의 환상적 결합. 언제쯤 원형 그대로 간직한 석호에 한 자락 배를 띄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