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람사르 총회가 '녹색 세탁(greenwash)' 역할을 하는 동안, 정작 한국 사회의 소중한 습지는 각종 개발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프레시안>은 녹색연합과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위기의 습지를 기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재할 7곳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습지 목록들'이다. <편집자>
과거 55년간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거부해 온 비무장지대. 한국전쟁의 상흔과 군사적 긴장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생태계의 축복으로 이어졌다. 155마일, 248㎞를 동에서 서로 연결하는 산, 하천, 습지는 뛰어난 생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례로 겨울철,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로 날아드는 두루미의 비행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나 민통선 지역과 비무장지대는 행정의 사각지대로 남아 각종 난개발의 '비무장지대'이기도 하다.
민통선 일원은 19개의 관통 포장도로가 개설돼 자연 생태계 서식지를 매 13㎞마다 단절한다. 강원도 고성의 남북교류타운은 정부가 위촉한 환경생태공동조사단의 사업 부적절성 지적에도 지금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최대 독수리 월동지인 경기도 파주 장단반도에는 환경영향평가 없이 송전탑이 들어섰다.
남북 교류 이름 아래 정부 주도로 건설된 개성공단은 이미 서부 비무장지대 최대 습지인 사천강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무리한 농지 개간과 불법 영농으로 인해 경기도 민통선 지역의 산림과 습지는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 민통선 일원의 대표적인 난개발 사례들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사안이 있다.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유역의 군남 홍수 조절지 개발 사업으로 인해 민족의 영물 두루미가 수몰위기에 놓인 것이다.
2800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 위기의 두루미
1000년을 산다는 두루미는 키가 무려 130cm에 이르는 한국에서 키가 가장 큰 새이다. 고고하고 아름다운 자태,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하며 새끼를 정성껏 돌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장수를 전하는 새로 연하장에 늘 등장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28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국제적 멸종 위기종이며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급,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두루미의 번식지는 러시아와 중국 북부의 국경 지대 지역이다. 주로 아무르강과 송화강 유역의 넓은 습지에 번식을 하며, 중국의 자롱, 삼강평원과 러시아의 킨간스키 자연 보호구 등이 주 번식지다. 겨울을 보내는 월동지는 중국 남부와 한국, 일본 홋카이도 세 곳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최근의 대략적인 생존수는 한국 800마리, 일본 홋가이도 1000마리, 중국 800~1000마리 내외로 약 2600~2800개체 정도 된다. 이 중 번식 가능한 개체는 1000쌍 정도다.
우리나라는 1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600여 마리, 연천 지역에서 150여 마리, 파주, 강화 지역에서 50여 마리가 겨울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원, 파주, 강화 지역의 두루미 서식지도 안전하지 않지만, 특히 연천 지역은 임진강 수해 방지 목적으로 한국수자원공사가 군남 홍수조절지를 건설 중이다.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 출입이 철저히 제한된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인 장군여울과 빙애여울도 머지않아 댐 건설로 수몰될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사후환경영향조사에는 불과 3마리 뿐
군남 홍수 조절지, 일명 군남댐의 사업 시행자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이 일대 두루미 개체수를 조작하면서까지 사업의 타당성을 홍보했다. 사업 시행자가 작성하는 사전환경성검토, 환경영향평가의 허점을 교묘히 활용한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환경영향평가서에는 2003년 50~60마리로 조사됐던 두루미가 2004년에는 불과 6마리밖에 관찰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2006년 1월 한국수자원공사의 사후환경영향조사에서는 불과 3마리의 두루미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이곳을 현장 모니터링한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이석우 대표의 증언은 다르다. 연천 민통선 임진강 유역의 두루미 개체수는 해마다 증가해 2007년 200여 마리의 두루미가 임진강 장군여울에서 빙애여울까지 서식하고 있다는 것.
한국수자원공사의 조사와 같은 시기인 지난 2006년,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이 실시한 겨울철 조류 동시 조사에서도 두루미 141마리, 재두루미 86마리가 이곳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녹색연합이 조사했을 때는 무려 171마리의 두루미와 57마리의 재두루미, 1마리의 흑두루미가 발견되었다. 사업 시행자에 의해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악용되는지 확인되는 순간이다.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은 수몰될 것"
군남 홍수 조절지 건설 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상에는 본 사업으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판단되는 종으로 두루미를 언급한다. "두루미의 휴식 장소로 조사된 지역인 삼곶리 장군여울에서 횡산리 빙애여울 구간의 하천변 자갈밭과 여울은 조절지 담수로 인해 불가피하게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또한 "유일한 대책으로 두루미의 주요 취식 장소인 농경지와 율무 재배지는 최대한 보호하도록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두루미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이 지역이 수몰될 경우 연천 두루미의 핵심적인 잠자리와 서식지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홍수 조절지 건설 이후 먹이터의 80% 이상이 수몰되며 그마저도 율무밭 위로 포장길이 새롭게 나기 때문에 예민한 두루미가 이 지역을 먹이터로 계속 이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조류 전문가들은 연천 지역의 두루미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지역이 두루미에게 안정적인 서식지를 제공하는 이유도 있지만, 철원, 파주, 강화 지역의 두루미 서식지가 인간의 간섭으로 월동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안의 임진강 여울은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아 두루미들이 안심하고 쉬면서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다.
임진강 주변의 민통선 산자락에 펼쳐진 넓은 율무밭은 두루미들에게 충분한 양의 먹이를 공급한다. 이 같은 조건이 유지된다면 연천 임진강 유역의 월동 두루미 개체수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예측이다. 그런데 올해 한국수자원공사는 군남댐 수몰지의 농경지에 농민의 출입을 막고, 경작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올 겨울 두루미의 밥줄을 끊어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뜻이다. 올 겨울은 두루미에게 유난히 잔인한 계절이 될 것이다.
홍수 조절댐인가? 대북 방어용댐인가?
연천군 군남면과 왕징면 일원에 건설 예정인 군남댐은 임진강 유역의 홍수 피해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홍수 조절 전용댐이다. 1996년, 1998년, 1999년 임진강 유역의 연천 지방과 경기 북부 지역에 집중 호우로 인한 수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한국수자원공사는 2006년 10월 임진강 본류의 홍수 조절능력을 확보하고 임진강 유역의 수방 대책의 일환으로 군남댐 사업을 시행하게 된다.
군남댐은 임진강 홍수 대책 전체 중 5%의 역할로 계획된 것이며, 나머지 홍수 대책은 임진강 하류의 제방과 천변저류지가 담당하게 된다. 사실 임진강 홍수 조절의 5% 역할을 위해 람사르 습지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을 수몰시켜야 되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군남댐 건설을 포기하고 임진강 유역의 천변저류지 확대를 고려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군남댐은 비홍수기인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연천지역 상수원확보를 위해 담수 계획도 세우고 있는데, 현재 수위에서도 상수원은 부족하지 않다는 게 지역 주민의 의견이다. 동절기 담수 계획은 괜한 연천지역 두루미 서식지를 수장시킬 뿐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내세우는 군남댐 건설 목적에는 임진강 북측 지역에 건설 중인 황강댐과 4월5일댐의 대응도 있다. 사실 한국수자원공사가 군남댐을 계획할 당시에는 북한 황강댐의 존재도 몰랐다. 이후 국가정보원의 대북 정보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군남댐의 건설 목적에 황강댐과 4월5일댐의 '대응댐' 역할이 추가되었다.
현재 약 7000만 톤 담수 규모인 군남댐으로 총 3~4억 톤 규모의 황강댐을 대응하기란 역부족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밥줄이 걸린 군남댐 건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사업 타당성을 추가할 수 있다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어처구니없는 자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밥도 잠자리도 빼앗는가?
우여곡절 끝에 올해도 겨울이 찾아왔다. 그러나 연천 두루미 먹이터인 율무밭은 이미 사라진 상황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두루미 먹이주기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책정한 먹이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민한 두루미가 기러기나 멧비둘기와 경쟁해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10월 한국수자원공사는 북한 황강댐에 대응해야 된다며 갑작스럽게 공사기간을 14개월 단축시키겠다고 밝혔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추가협의를 마치고 야간 공사 계획을 추진 중이다. 두루미의 밥을 뺏고 사탕을 물려주더니, 이젠 야간 공사로 잠자리까지 없애겠단다.
한때 두루미는 전국의 넓은 갯벌에서 흔히 보였고 전라도 진도나 완도에서도 월동을 했다. 내륙에선 청주, 음성, 진천에서도 겨울을 보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제 남은 곳은 철원, 연천, 파주, 강화 남단 네 곳 뿐. 한국의 습지는 두루미가 생존하기에 너무도 치열하고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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