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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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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새빨간 거짓말"

[위기의 습지 ①] 국내 최대 연산호 군락, 제주 강정 마을

28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내세우며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의 막이 올랐다. 환경부는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물장오리 오름, 오대산 습지 등을 새롭게 람사르 습지로 등재했다. '저탄소 녹색 성장'을 내세우며 이명박 대통령도 총회 자리에 얼굴을 내밀며 "생태", "환경"을 언급했다.

이렇게 람사르 총회가 '녹색 세탁(greenwash)' 역할을 하는 동안, 정작 한국 사회의 소중한 습지는 각종 개발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프레시안>은 녹색연합과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위기의 습지를 기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늘부터 연재할 7곳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습지 목록들'이다. <편집자>

▲ 제주도 서귀포 강정 마을 일대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연산호 지맨드라미. 이런 연산호 군락이 해군 기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녹색연합

제주도 남쪽 서귀포 강정 마을 인근의 범섬 일대에는 수중 사진 전문가의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연산호(soft coral)'의 국내 최대 군락지가 있다. 최근 국방부는 강정마을 일대를 매립해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물새 서식지와 중요한 습지에 관한 국제적인 보호 협약'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장이 위치한 경남 창원. 28일 30여 명의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과 환경단체 회원은 '고통의 습지, 고통의 인간' 만이 남았다며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제주 강정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지를 해군 기지 대신 '람사르 습지'로 등재하라고 요구했다.

환경 평가 예정일에 기지 건설 사업 발표한 국방부

국방부는 지난 9월 11일 제주도 강정 마을 일대를 매립해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날은 강정 마을의 해군 기지 입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전환경성검토회의'가 예정된 날이었다. 국방부가 사전환경성 검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발표한 것이다. 사전환경성검토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국방부는 자체적으로 조사, 발표한 '사전환경성검토 초안'에서 이 일대의 연산호 군락의 존재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달 환경부 조사 과정에서 연산호 군락의 존재가 밝혀지자 국방부는 "기지 건설 과정에서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또 다른 논리를 펴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동북아 군사 긴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자 제주도 해군 기지는 필수적이다. 경남 진해 해군 기지 만으로는 군사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것. 반면 해양 생태계 전문가들은 제주도 범섬 일대에 추진되는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은 연산호 군락의 서식 환경에 결정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이곳의 자연자원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진행되지 않은 만큼, 해군 기지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연산호 군락의 실체를 우선적으로 조명하자"는 말한다.

천연기념물,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도 매립 가능한가?
▲ 대표적이 연산호 분홍바다맨드라미. ⓒ녹색연합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 일원의 앞바다 해군 기지 건설 예정지에는 2㎞ 길이의 방파제 시설이 신설될 예정이다. 예상 부지 면적은 약 48만㎡로 축구장 67개를 합쳐놓은 넓이이며, 이 중 절반 정도가 매립 부지다. 논란의 핵심은 해군 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 앞바다가 국내에서 가장 해양 생태계가 우수한 곳이라는 점이다.

서귀포시가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강정 앞바다 연산호 군락의 중요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산 산호충류 132종 중 92종이 강정 앞바다에 서식하고 있으며, 이 중 66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 해역에만 서식하는 특산종이다. 또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식물Ⅱ급에 속하는 연산호 15종 중 강정등대에 서식하고 있는 연산호가 무려 8종이다. 얼마 전 환경부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자색수지맨드라미까지 포함하면 총 9종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녹색연합은 이 지역에 대한 수중 해양 탐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식물Ⅰ급인 나팔고둥(Charonia sauliae)과 Ⅱ급인 진홍나팔돌산호(Tubastraea coccinea)의 서식지임을 발견하였다. 대표적 연산호인 분홍바다맨드라미(Alcyonium gracillimum)와 한국미기록종인 갯민숭이류(Dendrodoris guttata), 열대바다 서식종으로 알려진 긴침얼룩성게(Diadema savignyi)도 관찰되었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등 5개의 각종 보호구역으로 중복 지정된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442호인 연산호 군락지로 해양 생물 군락지로는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의미 있는 곳이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강정마을 앞 바다를 비롯한 서귀포시 해양 일대는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와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는 연산호 군락의 핵심지역인 것이다. 람사르 협약에 따른 람사르 습지로 등재해도 하등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해군 기지 대신 '람사르 습지'로
▲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식물 Ⅱ급 진홍나팔돌산호. ⓒ녹색연합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이 발표되자마자 서귀포 해당 지역 주민들은 즉각 반발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방부는 건설 대상지를 "입지 타당성과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주민들의 동의를 득하여 선정된 입지"라고 밝혔다. 당시 강정 마을 이장이 주민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해군기지 유치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8월 강정 마을회관에서 실시한 주민투표 결과, 주민의 94%가 해군 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표를 던졌다. 서귀포 강정 마을뿐 아니라, 인근 법환 마을 어촌계까지 주민 반대가 확산되었다. 현재 강정마을 주민들은 종교인들과 함께 릴레이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세계적 해양자원인 연산호 군락의 파괴를 가져오는 어떠한 개발 시설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또 국책 사업이라도 사전환경성검토 등 최소한 절차를 지키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국책 사업의 논리로 해군 기지 건설을 밀어붙이지 말고, 환경부, 문화재청, 객관적인 연구기관 및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환경과 문화재 조사를 제안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번 창원의 람사르 총회장에서는 강정 앞바다를 해군기지 대신 람사르 습지로 등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해안 산호초 습지는 람사르 협약에서 인정하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다. 1996년 호주에서 열린 제6차 람사르 총회에서도 산호초의 보존이 중요한 의제로 채택되어 권고문으로 결의된 사례가 있다. 현재 람사르 습지로 채택되어 보호되고 있는 해안 산호초 습지는 일본을 포함한 4개국의 5개 지역으로 여의도 면적의 6165배에 이르고 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산호초 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되어야 할 지역이 바로 강정 앞 바다를 포함한 서귀포 해안 일대며, 이곳에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주 연산호 군락지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수 있다.
▲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식물 Ⅱ급 해송군락. ⓒ녹색연합

생물 자원이 바로 국가의 경쟁력

아무리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책 사업이라 할지라도, 국책 사업의 논리가 무조건 우위에 설 수만은 없다. 국책 사업도 중요하지만, 국가 자원으로서의 해양생태계 보전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은 생물 주권에 있다. 1992년 6월, '생물 다양성 국제 협약' 이후 국가 소유 생물 자원에 대한 주권이 인정되면서 생물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환경부는 '국립생물자원관'을 건립하며 국내 생물종다양성 유전자 확보와 연구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안보와 국력의 관점에서도 생물 자원의 보호와 생태계 안정을 추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최소한 국책 사업과 생태계 보전을 상호 우열 없이 바라볼 패러다임의 전환은 '개발과 보전의 조화'라는 기본적인 국제 요구 사항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는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 한마디에 바야흐로 '저탄소 녹색 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녹색 성장'이 결국 몇몇 대기업에 의한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핵발전소 확충으로 귀결되었다. 이른바 껍데기만 녹색 성장일 뿐 본질은 '포클레인 성장'인 것이다.

이번 람사르 총회는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란 주제를 내 걸었다. 그러나 지금 경상남도는 우리나라 연안 매립 일번지의 오명을 쓰고 있으며, 람사르 총회 버스 광고 반대편에는 '동·서·남해안 개발특별법 환영' 문구를 동시에 걸고 있다.

세계 5대 갯벌의 핵심인 전북 군산, 김제, 부안의 새만금 갯벌은 매립 후 '관광·복합·레저용지'로 불법 용도 변경되었다. 현재 평화의 섬인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과 대립에 휩싸여 있다.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 대신 한국의 주요 습지 목록에는 '고통의 습지, 고통의 인간' 만이 남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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