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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금리인하, '원화 런' 부추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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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금리인하, '원화 런' 부추길 셈인가

[우석훈 칼럼]연기금 연가(戀歌)

결국 정부는 이자율을 낮추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거시경제의 조치이다. 우리는 한국이다! 이걸 잊은 바보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높은 자리까지 갔는지, 한심할 뿐이다. 한국은 국제 기축통화에 대한 발권능력도 없다.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는 유로는 나름 기축통화의 한 몫을 담당한다. 한국의 원화는 이도저도 아니다. 또 한국은 국제경제에서 정치적으로 뭔가 한다고 해서 소위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는 강대국도 아니다. 일본의 엔화도 지난 수년간 그리고 특히 지난 몇 개월의 위기 동안 나름대로 기축통화의 역할을 했던 화폐다. 원화, 이것은 '강한 원화'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강한 원화'에서도 우리가 수출을 하거나 혹은 국민경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국 경제가 국제적으로 최소한의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약한 원화'가 되면 수출경쟁력이 늘어서 '시장의 균형'을 통해 조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 착하고 순진하신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산업별로 최종 수출품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율들을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란다. 아니, 당장 그렇게 수출주의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핸드폰'의 수입품 비율을 보시기 바란다. 핵심 퀄컴칩의 수입부터 주요 부품의 외국산 비중이 80%가 넘는다. 철강, 석유화학, 그리고 전자제품 등 주요 품목들의 구조를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여기에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 침체를 더해서 생각해보자.

이 몇 가지만 생각해봐도, 결국 원화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가 '글로벌 협조' 보다 한국 경제를 지키기 더 중요한 1차 정책순위가 되는 것이 옳다. 즉, 한국이 경제 위기를 지키는 제 1의 원칙은 국제금융시장 즉, 원화 시장에서 얼마나 원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이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는 것은, 당분간 '약한 원화'로 가겠다는 것이고, 한국에 투자한 외국 자금들에게 돈 빼가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래서 바로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기계적 계산이다.
▲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취임 후 국민연금은 더욱 공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늘리고 있다. ⓒ뉴시스

여기에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불안감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오산이 더해진다. '9월 위기'에서의 외환보유액과 달리, 지금 외국에서 불안하게 보는 것은 바로 한국 은행들의 대출 총액과 예금 총액 사이의 격차, 그리고 그것을 외국에서 채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한 은행들의 자금 안정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게 한국 위기의 1차적인 불안감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지난 수 년 동안, 은행 융자로 부동산 투기를 지탱하면서 생겨난, 한국 금융의 고유한 약점이다.

이 상태에서 이자율을 낮추면, 당연히 은행으로 가던 현재의 예금이 주춤하고, 반대로 융자가 늘어난다. 정부에서는 이 방향이 실물경제 회생의 방향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불행히도 이렇게 가면 은행들의 예대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외국에서 위험하다고 보는 바로 그 문제가 더욱 심화되게 된다. 이 정도면, 외국에서의 은행채 발행은 불가능해지고, 남은 것은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밖에 없는데, 이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면서 이제 한국의 은행들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 것인지, 거의 투명하게 외국의 투자가와 분석가들에게 드러낸 셈이다.

이제 딜레마다. 은행 대출이 늘면 결국 '뱅크 런'의 위기가 오고, 은행 대출이 안 늘면 한국 정부의 카드가 바보가 된다. 이 구조에서 만약 당신이 외국계 투자자라면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무조건 원화를 팔고 시장에서 나가지 않겠는가? 뱅크 런 대신 '원화 런'이 지금 보고 있는 원화 평가절상의 효과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은 거시경제학의 교과서대로, 저축을 늘리고, 그 저축으로 새롭게 투자하는, 교과서에 충실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이자율을 낮춰? 내 거시경제학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외국 투자가들은 빠져나가고, 외롭게 개미투자자와 기관투자자만 남은 상황에서, 기계적 분석의 결과는 원화 폭등, 코스피 추락, 이것인데 이 뇌관을 누른 것은, 불행히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과감한 이자율 인하'라는 조치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의 경기진작을 책임져야 할 기축통화를 담당하고 있는 그런 G7 국가가 아니라, 자국의 화폐 가치라도 지키면서 이 폭풍우에서 돛을 가지고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세계 경제의 엄청난 기둥인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이 역풍에 돛을 꺾었으니, 한국에 난리가 난 셈이다. 멋진가? 어쨌든 대단한 스펙타클이다.

이 상황에서 실제로는 별 카드가 없는 정부가 한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연기금을 들이밀었다. 그것도 좀 눈치봐가고, 주변 상황 좀 봐가면서 하지, 너무 한꺼번에 연기금을 밀어넣어 상한측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무식하게 쏟아 부었다. 훌륭하다.

만약에 이명박 정부의 공약처럼 코스피 지수가 정말로 747까지 가면 이 연기금은 어떻게 될까?

두 가지 부정적 효과가 있다. 안 그래도 힘든 각종 연금보험을 비롯한 사회 보험들의 운용이 더 힘들어진다. 민초들의 월급에서 눈물나게 떼어간 돈들을 이렇게 한번에 날려먹은 기금 운용자들과 정책 결정자들. 모으기는 어려워도 날리기는 한 순간이다.

그러나 더 큰 부정적 효과는 정말 심각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한국은 증가율 1위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튼튼한 연기금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인데, 이게 모두 IMF 경제위기 이후 피땀 흘려 모은 돈들이다. 비록 원화 형태일지라도, 각종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큰 재원이고, 정부 재원으로 적자 재정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시장에 개입해서 막대한 돈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그 든든한 뒷심의 근원이다. 이걸 날려버리면? 정말 믿을 구석이 없는, 허수아비 정부가 되어버린다.

지금과 같이 연기금을 주식에 쏟아부을 수 있는 정책방향을 마련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걸 가지고 신나게 불장난을 하면서, "코스피가 기력을 회복했어요" 하는 것은 현정부이다. 누구를 탓하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현 연기금 사태에서는, 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일제 시대, 한국 문인들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구절이다.

"안해는 밭에 나가서 김매기하면서 힘들게 농사지으면, 술 취한 남편은 그 추수대금을 들고 나가 투전판에서 한 번에 날리고, 오히려 안해를 때리더라…."

민초들 피땀으로 만든 연기금을, 골프나 치고, 농지투기나 하고, 폭탄주나 마시던 경제 간부들이 한 번에 날려먹은 상황, 그리고도 "믿어주세요"라고 민초들을 협박하는 상황, 딱 그 상황이다.

"연기금의 독립적 운용"을 위한 법안처리가 최근 일각의 전문가들에서 나오는 지적이지만, 이걸 누가 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그리고 이미 날려먹은 최소 10조 원 이상의 돈들은 어디 가서 벌충할 것인가? 747되면? 그리고도 앞으로 수개월 내에 날려먹을 또 다른 수십조원은? 노동자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서 1조원 만들 때, 그 피땀이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갈 수가 있는가? 도대체 신문은, 방송은, 그리고 국회의원은, 투전판에 아내가 벌어들인 돈을 날려먹는 노름꾼 남편 앞에서 뭐하는 사람들인가?

그래도 이명박 정부가 날려먹은 이 연기금을 위해서 연가를 부르고 싶다. 딱 두 가지 조건이다.

기왕에 날려먹을 거, 아무 데나 투자하지 말고, 1등급 주식들인 블루칩에 투자할 것.

그리고 기왕에 날려먹었다고 하더라도, 능력도 없으면서 '데이 트레이드'니 '손절매'니 하지 말고 꾹 가지고 있을 것.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60% 즈음에서 40%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연기금에게 다른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포항제철, 혹은 주요 대기업이나 알짜박이 기업들의 주식으로 언젠가 지금 영국이 투자은행에 대해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국유화하면 된다. 그러면 날려먹은 연기금들이 사실은 국내 경제의 우량 분야 어딘가에 투자된 것이고, 그런 우량기업들이 4~5년 후 시장이 정상화된 후 벌어들일 이익에 대한 주식배당을 다시 연기금으로 돌려서 지금의 손해를 벌충하도록 하자.

그리고 최소한 포철이라도, 다시 정부가 소유해서 IMF 때 우량기업들을 헐값에 팔아버리며 국부유출이라고 했던 그 아픔을 다시 갚아주자.

자신이 마치 G7의 기축통화를 가진 국가인 것처럼 '글로벌 공조'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경기 진작'이라면서 이자율 인하로 실제로 은행의 위험까지 다 세계적으로 보여준 지금, 연기금의 상당 부분도 허공에 날라가는 이 현실에서, 연기금 투자가 유일하게 의미있기 위해서는 우량기업 국유화라는 프로그램 밖에는 없어 보인다.

국유화 무서운가? 미국도 하고, 영국도 하고, 어지간한 선진국들이 다 지금 하는 조치이다. 정부가 며칠 동안의 여론 공세를 피해서 날려먹은 연기금, 차라리 정부가 우량기업 국유화라는 큰 밑그림을 가지고 있고, 다 생각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연기금을 위한 연가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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