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모악산 밑 구릿골에서 주로 활동한 강증산(姜甑山) 선생의 공생활(公生活) 기간은 서기 1901년에서 1909년까지의 8년 또는 9년간이다.
1871년 전북 고부 출신이다.
젊어 동학에 입도했으나 1894년 갑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이 혁명은 실패할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혁명실패 후 산같이 쌓인 시체와 살아있어도 이미 넋이 나간 사람들의 불행 앞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 낮 사흘 밤을 통곡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평화적 후천개벽 즉 '정세개벽(靖世開闢)'의 서원을 세우고 1897년부터 3년간 주유천하하던 중 충청도 비인(庇仁) 사람 김경흔(金京訢)으로부터는 태을주(太乙呪)를 얻고 연산(連山)에서는 김일부(金一夫)로부터 정역(正易)의 지식을 얻었다고 전한다.
1901년 모악산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그해 7월 한 밤 오룡(五龍)이 포효하는 폭풍과 비바람 속에 수운 최제우 선생의 깨달음인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吾心則汝心)'의 계시를 보다 신비주의적으로 '내가 한울님이다'로 확대 자각한 뒤 천지 대변동의 후천진리를 또한 깨닫고 하산하여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모악산 밑 구릿골을 중심으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한다.
구릿골 이외에 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함열 등 전북 각지를 순력하며 이른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선포하고 1909년 갑자기 죽은 뒤 그 추종자들은 아내 고판례(高判禮)의 용화교(龍華敎) 이외에 차경석(車京石) 보천교(普天敎)의 육백만 명으로 계승되었고 후천세계에 관한 그의 예언집인 '현무경(玄武經)'이 뒤에 남았다.
그의 사상은 1901년 구릿골에서 첫 제자 김형렬(金亨烈)에게 한 첫 가르침 속에 압축되어 있다.
'수많은 아낙들이 구천을 향해 밤낮으로 끊임없이 염주 굴리는 저 소리를 들어봐라. 수천년을 부엌데기, 천덕꾸러기로 내내 구박만 받던 아낙들의 쌓이고 쌓인 한(限)이 구천에 받아들여졌다. 이제 후천개벽이 일어날 터인데 그것은 분명 아낙을 앞세운 음개벽이다. 그러나 어디 아낙만의 세상이겠느냐, 남녀동등의 세상이겠지.'
음개벽!
이것이 강증산 사상의 핵심내용이다. 여성, 여성성과 혼돈성이 핵심가치가 되는 우주 대변동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는 분명 사랑, 혼돈, 모성의 시대다. 서양사의 경우 희랍신화에서 일찍이 이성(理性)과 질서와 가부장의 주신(主神) 제우스(Zeus)에 의해 집단 살해당한 성가족(聖家族) 에로스(Eros), 카오스(Chaos), 가이아(Gaia)가 되살아나고 있고 시몬느 보브아르로부터 헬렌 피셔, 크리스테바, 이리가라이의 이름을 앞세운 페미니즘과 젠더 투쟁이 한창이다. 바야흐로 생명과 평화, 혼돈적 질서, 색정과 친화력의 시대다.
다름아닌 음개벽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여성을 후천개벽의 주체로 드높인 이후 음개벽·상생시대(相生時代)는 강증산 선생의 중심 명제가 되었다.
강증산 사상에서 연대기는 별로 의미가 없다. 선형(線形)적 발전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시점이든 중요하다.
여러 연구자들이 강증산 선생을 가리켜 '촌놈'이라고 부른다. 혹세무민(惑世誣民)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점을 중요하게 본다.
다만 오늘날 그분을 고태종교(古態宗敎)적 양식으로 '계승(繼承)'하는 것은 어떤 한계가 있고 새 시대·새 세대의 문화, 즉 우주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새롭고 광활하게 해석(解釋)해야 된다는 것이 조건이다.
강증산 선생은 일관되게 자기 자신을 '옥황상제(玉皇上帝)' 즉 '한울님'이라 칭했다. 바로 이것을 두고 '촌놈'이라고 비하(卑下)하는 것인데, 나는 도리어 이런 점이 그분의 위대성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평생을 그렇게 살았고 사귀었고 주장했던 바가 다름 아닌 '촌놈'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울님인 그가 촌놈이고 촌놈의 친구고 촌놈으로 살았음은 그야말로 촌놈과 촌놈의 친구와 촌놈의 삶이 한울님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강증산 선생은 분명 수운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의 계승자이니 '사람이 한울님(人乃天)'이라는 동학의 근본 명제를 가장 솔직하고 대담하고 촌놈답게 실천한 셈이다.
그 한울님인 남성 강증산이 후천개벽의 주체를 여성 한울님에게 넘긴 것이 바로 음개벽이다.
훗날 보천교를 창설하는 제자 차경석의 정읍(井邑) 대흥리(大興里) 집에서다. 선생은 여러 제자들이 둘러앉은 한가운데에서 누운 채로 자기 아내 고판례로 하여금 식칼을 들고 자기 배 위에 타고 앉아 자기에게 칼을 겨누고 '하늘, 땅, 사람의 삼계대권(三界大權)을 당장 나에게 넘기시오'라고 호령하라고 이른다.
고판례가 그대로 하자 선생은 밑에 깔린 채 즉각 두 손을 싹싹 비벼 크게 잘못을 빌면서 '네. 당장 넘기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말하길 '이대로 하라!'
그 밤에 선생은 마당에다 성경, 사서삼경, 불경과 공명첩(空名帖), 빚문서, 계산서를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서 널어놓은 뒤 수부(首婦, 으뜸여성) 고판례를 앞장으로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밟으며 밤새 춤추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다름 아닌 후천이요 음개벽이라고 하였다.
생활의 구체적 실천에서의 음개벽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이 전주 가장자리 김주보(金柱甫)의 주막에 들렀을 때다. 주보의 아내가 말한다.
'지금 전주시내에서는 큰 술도가 주인들이 모여 자그마한 주막의 작은 술장사들이 제 쪼대로 제 째대로 장사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저희들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야단 야단이랍니다. 어찌하지요?'
선생이 즉시 대답한다.
'작은 술장사 아줌마들이 모두 모여 손을 잡고 전주시내에서 매일 매일 시위(示威)를 하쇼.'
아까 정읍 대흥리 마당에서 온갖 경(經)들을 찢어놓고 밟으며 밤새 춤추었다고 했다. 그때 어떤 음악에 따라 춤추었을까?
춤이 실천이라면 음악, 즉 소리는 그 원리다. 이 세상 동·서의 온갖 진리를 내동댕이치는 무시무시한 그 대혼돈의 질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명 양반들 소리나 중국 소리는 아니었을테고 농민들의 풍물가락이었을까?
어림없다.
'걸뱅이·각설이 타령'이었다. 이른바 '품바품바 들어간다'이다.
농민 근처에도 못 가는 밑바닥 천민들의 참으로 누추한 혼돈의 소리다.
그런데 선생은 이것을 무엇이라 자리매김했을까?
선생은 평소 수운 동학의 첫 번째 강령주문(降靈呪文)인 '지기금지(至氣今至)'를 가장 높이 모시며 '으뜸가는 율려주문(律呂呪文)'이라 평하고 '후천사상은 율려가 통치한다'고 가르쳤다.
율려는 선천(先天, 지나간 역사 시대) 5만 년 동안 우주와 삶을 지배해왔던 이성, 질서, 남성성, 제왕, 율법의 통섭(統攝)적 음악원리를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극한 기운(至氣)'이란 반대로 태초의 혼혼탁탁(昏昏濁濁)한 혼돈적 에너지(混元之一氣)를 뜻한다. 그러니 '혼돈이 곧 통섭한다'는 의미가 된다. 가히 개벽적 반어법(反語法)일 수 있겠다.
선생은 한 발 더 나간다.
바로 그날밤의 그 '걸뱅이 각설이 타령' 자체를 다른 것 아닌 율려라고 부른 것이다. 선생은 여기서 다시 한 걸음 크게 더 나가고야 만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웃는 놈은 그 자리에서 직사하리라.'
이래서 점잖은 학자들이 선생을 가리켜 '촌놈'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촌놈'일까? 표현이 촌스럽다는 까닭이라면 상관없지만 그 내용이 그야말로 틀렸거나 빈약하다면 참말로 '촌놈'이란 말에 하자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하자다. 앞으로 '강증산 촌놈론'은 즉시,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 왜?
'걸뱅이 각설이 타령'이 음악으로서의 단순 혼돈, 즉 무질서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제(黃帝) 이후 4천5백 년 역사를 가진 질서정연한 중국 우주율로서의 율려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동아시아라 해서 중국 고대의 율려만이 음악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래된 것 존중하는 중국이라 해도, 또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도 4천5백 년 전보다 더 오래된 1만4천 년 전 한민족의 신화적 모태(母胎)인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麻姑城) 나름의 우주율, 즉 우주 음악질서가 황제류의 율려가 아니라 놀랍게도 그 정반대인 여율(呂律), 그것도 팔려사율(八呂四律)이란 점을 착안해야 한다.
어떤 중국 미학자 가라사대 '1만4천 년 전이면 신화시대인데 그것을 오늘에 와서 어떻게 미학적 기준으로까지….'
허허허허허.
내 대답은 이것이다.
'4천5백 년 전 역시 신화시대다. 황제가 신화적 제왕이 아니라면 어떻게 신농(神農)과 함께 삼조당(三祖堂)에 앉아있는가? 역사에서의 신화와 문화에서의 신화는 실증차원에서는 서로 거리가 멀다.'
팔려사율이 무엇인가?
여(呂)는 여성성, 혼돈성, 신화성, 우발성, 창발성, 개체성, 영성, 감성 등이고 율(律)은 남성성, 질서성, 역사성, 필연성, 규격성, 전체성, 이성, 과학성 등이다. 그것이 하나는 여덟이고 다른 하나는 넷이라는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혼돈적 질서(混沌的 秩序)'다. 유식한 서양말로하면 저 유식하고 또 유명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카오스모스(chaosmos)' 또는 '카오스모시스(chaosmosis)'다.
그래도 시비 건다면, 시간의 아득함을 들어 계속 시비 건다면 또 말하자. 1879년에서 1885년 사이라면 명백히 신화시대가 아니다. 그래도 신화시대던가?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시기에 충청도 연산사람 김일부(金一夫, 강증산 선생은 그에게 후천개벽론을 배웠다고 한다) 선생이 그의 '정역(正易)'에서 후천 시대의 정악(正樂, 바른 음악)을 분명히 율려가 아닌 '여율'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것은 미친 소리에 불과한가?
그보다 20년 전 동학 최수운의 '지기(至氣)'의 뜻인 '혼돈한 근원의 우주질서(混元之一氣)' 또한 미친 소리에 불과한가?
대개 그것을 '미친 소리'라고 매도하는 진짜 미친 소리의 주인공은 엉터리 마르크시스트거나 서구 중독자거나 중국 깡통들이겠는데, 그러면 대개 그들이 존경하고 사모하는 중국의 개화주의자 담사동(譚嗣同)의 '인학(仁學)'이나 모택동의 스승인 마르크시스트 이대교(李大釗)의 '폭류론(暴流論)' 역시 미친 소리인가? 반론(反論)에 자신 있는가?
중국 깡통들과 동양 마르크시스트들에게 하는 말이다.
서구 중독자에게 또 한마디 하자.
현대 독일의 우주음악 '스톡하우젠'은 피타고라스 이후 서양 고전음악의 우주 율격 그 자체인 바하와 현대 서양 대중음악의 혼돈률인 비틀스를 결합한 것이다. 스톡하우젠도 역시 미친 소리인가?
현대 신세대 한국의 퓨전이나 크로스오버 전문가들에게도 한마디 하자.
금년 초 중국에서 오래도록 음악 공부하고 돌아온 서태지가 귀국 콘서트 계획을 말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태고의 소리 위에 나의 소리를 살짝 얹어보겠다'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태고의 소리'라면 서태지가 중국에서 여러 해 공부했을 것이 분명한 율려요 그 위에 살짝 얹겠다는 제 자신의 소리는 신세대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카오스 소리 '록'일게다. 그럼에 그것은 다름 아닌 '여율'이 틀림없다.
아직도 감(感)이 오지 않는가?
이야기를 좀 엉뚱하게 바꿔보자.
율려는 요즘 대유행인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두목인 미국 사회생물학(다윈주의)의 에드워드 윌슨의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망상적 우주전체주의 통섭(統攝)이론과 똑같은 것이거나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엉터리 생명학인 온생명론의 전 지구적 종속신경계 이론과 별로 다른 게 없다.
개체 생명의 중요성, 창조성, 혼돈성, 우주성을 참으로 하잘 것 없는 것으로 경멸하고 전 유전자 체계나 중추신경계 같은 전체주의적 통제력만을, 그것도 남성중심적, 수학적 이성주의만을 숭배하는 이들의 반생명성, 반영성, 반혼돈성, 그 낡아빠진 에코 파시즘을 아가리를 떠억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존경하고만 자빠졌을 것인가?
똑같은 이야기가 너무 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마도 음개벽과 함께 강증산 사상의 핵심을 이루니 조금만 더 나가자.
이야기의 코드가 거꾸로가 된다.
요즘의 촛불세대, 요즘의 디지털 세대는 매우 훌륭한, 탁월한 새 문화의 창의력을 지닌 새 문명사 창조의 전위임에 틀림없으나 첨단 전위 나름의 한계가 또한 분명하다.
왜?
앞으로 디지털 네트워크와 웹문화 이외에 아날로그 문화, 종이, 책 같은 것은 다 싸그리 망해서 자취도 없을 것이라는 혁신적 신념에 불타오르고 있는 바로 그 점이 오류라는 것이다.
문화의 역사는 그렇게 단선적, 단절적인 것이 아니다. '디지로그'라는 말이 이미 유행하고 있듯이
물론 디지털이 중심이요 초점이 되면서도 바로 그 중심성에 기준을 두고 해체, 재구성되는 조건 속에서 아날로그가 다시 각양각색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곧 문화의 역사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 혁명 이후 신문이 나타나고 곧 이후 극히 대중적, 통속적인 신문 연재소설이 대유행했다. 예부터 내려오던, 그리고 중세에도 르네상스기에도 왕성하던 시는 마침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멀지 않아 신문 연재소설의 통속성이나 가벼움 때문에 미학적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지식대중(고등교육의 보편화와 문화산업의 일반화와 연결된) 사이에 고급 시예술이 부활한다.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발레리 등이 그들이다. 소설은 이 상징주의 시예술의 미학적 영향력을 제 나름으로 받아들여 질적인 변혁을 꾀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어떠했는가? 처음의 활동사진 '기차의 도착'은 그 유치증에도 불구하고 파천황의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나 금방 지루해지고 빠리짱들은 사이렌트를 토키로, 흑백을 컬러로, 무음(無音) 영화에 음악과 드라마와 회회와 문학을 끌어들여 다 죽었다고 사형선고 받았던 전통적 기초예술이 다 자기 나름대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관계는 과연 여기에서 예외일까?
해월 최시형 선생은 왈,
'진정한 후천개벽은 후천을 세우고 선천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을 중심에 두되 그 후천원리에 의해 새롭게 의미가 인정된 선천을 거기 배합하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오만 년 후천개벽의 첫 멘토인 최제우 선생의 옥중시(獄中侍)가 있다.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등불은 물 위에 밝아 의심할 틈이 없고
기둥은 다 낡은 것 같으나 아직도 힘이 남았다.)
수운 선생의 동학에서 후천 생명의 '수심정기(守心正氣, 고대 풍류선도)'와 선천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함께 있다. 가장 중요한 부적도 후천 혼돈인 '궁궁(弓弓)'과 선천 질서인 '태극(太極)'이 함께 있다.
혼돈은 질서와, 생명은 평화와, 여성은 남성과, 부드러운 사랑의 어머니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아버지와, 그리하여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팔려사율'의 비율로 결합하는 것이 후천개벽이요 음개벽의 새 시대다.
그러나 이때 두 가지 패턴이 나타난다. 하나는 전형적 선천인 남성적 이성 중심의 전체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후천의 여성적 혼돈 중심의 해체주의의 결합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남성성과 여성성, 중심성과 해체성 사이의, 이성과 영성 및 감성 사이의 이러저러한 상생(相生) 상극(相克) 사이의 생극(生克)이라는 드러난 질서의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 밑에 숨어서 그 드러난 질서를 추동(推動), 조정(調整), 비판(批判), 수정(修正)하다가 드디어 어느 날 그 스스로 드러난 질서로 열고 나오는 숨은 질서의 생성 즉 '복승(複勝)'이라는 또 하나의 존재다.
바로 이 새로운 복승의 존재는 선천 후천 사이 생극의 모습이 아니라 애당초부터 새로운 근원적 생명인 법이다. 한민족의 신화망에서는 바로 이것을 '한'이라고 부른다.
'걸뱅이 각설이 타령'은 그럼 어디에 속하는가?
애당초 그저 '촌놈'의 싸구려 단순 혼돈물 자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생극 쪽인가? 복승 쪽인가?
생극 쪽에 익숙한 것이 한국학의 전문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아니라도 불교나 동북방 샤머니즘 등을 공부하는 서양 지식인들 역시 이 방면엔 체계적 이론들을 갖고 있는 시절이다.
'걸뱅이 각설이 타령'이 과연 복승이라면 이제 문제는 아주 복잡해진다. 바로 이래서 강증산 사상에 있어서의 '율려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여율'을 길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다름 아닌 오늘 우리 문화, 오늘 세계 문화의 핵심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른바 '한'이다.
그것이 팔려사율(八呂四律)임은 이미 말했고 그밖에 또한 하늘ㆍ땅ㆍ사람의 삼재(三才)와 음양의 양지(兩之)의 결합이 곧 한이다.
아주 복잡해졌다.
인류 생명사상사, 생명과학사의 새로운 대전환점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통섭'이라는 이름의 유전자 전체주의나 온 '생명'이라는 이름의 중추신경계적 에코 파시즘 따위와의 날카로운 대각(對角)에 연결되기 때문이고 동서양 문화와 문명의 후천 대개벽의 핵심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4.19혁명을 맞았다. 1960년이다. 1961년 5월에는 군부 쿠데타가 터졌다. 그해 5월 16일 직전 판문점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남북학생회담이 계획되고 있었는데 그 회담 중 남북학생 민족미학회의에 남쪽 대표 두 사람(다른 한 사람은 조동일 교수) 중 한 사람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쿠데타가 터지자 나는 열세 살에 떠나온 내 고향 목포로 피신했다. 목포에서 가난한 친척집에 얹혀 도로 공사장의 스테바(삽질)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할 무렵이다. 내 곁엔 먼 친척의 괴짜 한 사람이 늘 붙어있어 한번은 '소리'로 이야기가 몰리자 그의 인도로 가까운 임성(林城)-일노(一老) 사이 한 벌판에 쭈그리고 앉은 걸뱅이 마을을 술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늙은 걸뱅이 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각설이타령 얘기를 내 평생 내내 결코 잊을수가 없다. 그때의 문답이다.
'품바타령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소리가 아니라 춤이다.'
'무슨 춤인가?'
'들어가는 춤이다.'
'들어간다가 그 뜻인가?'
'그렇다.'
'어디로 들어가는가?'
'그 집 살림 속으로 들어간다.'
'살림 망해먹으러 들어가는가?'
'반대다.'
'반대?'
'그 집 살림 살려주려고 들어간다.'
'어떻게?'
'그래서 소리가 아니라 춤이라고 한다.'
'춤이 살림속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그렇다.'
'춤 속에 돈이 들었나?'
'비슷하다.'
'돈 비슷하다면?'
'목숨 같은 것. 재수 같은 것. 좋은 아들딸 같은 것. 산신령 같은 것. 한울님 같은 것.'
'더 쉽게 설명해달라.'
'품바품바는 장단인데, 두 다리와 아랫도리를 흔들며 들었다내렸다 앞으로 뒤로 오금질하는 장단이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살림춤이다.'
'그 춤이 어디서 나오는가?'
'꽁무니에서 나온다. 그래서 걸뱅이 각설이타령, 품바춤을 꽁무니타령이니 똥구멍춤이라고 하지.'
'왜?'
'춤이 거기서 나오니까!'
'정확히 말해다오.'
'사타구니가 춤의 첫 샘물이다.'
'사타구니라면?'
'똥구멍하고 불알 사이 조금 안쪽에 있는 것. 씹 하는데, 애 갖는데, 애 모시는데, 애 낳는데. 거기가 목숨의 첫 샘물이고 산신령, 한울님의 자리라고 하더라.'
'누가?'
'어른들이 그랬어. 다 그랬어.'
'거기서 춤이 나와?'
'타령도 거기서 나와!'
'거기가 살림의 자리라?'
'그렇지. 그것을 집 안에 깊숙이 디밀고 잘살라고. 애 많이 낳고, 돈 많이 벌고, 재수 좋으라고 소리와 춤으로 축수하고는 밥 한술 얻어먹는 거지 뭘!'
'아항!'
이른바 회음(會陰) 이야기다.
나는 이미 나의 <프레시안> 기고문 '유모차부대 엄마'에서 회음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글이 여기에 이르니 내 아랫배로부터 나지막한 흐느낌과 함께 그때의 한 날카로운 기억이 뒤를 치고 올라온다.
'당신 이야기 듣고 있자니 여자들 이야기 같다. 왜 그런가?'
'본래 이 품바타령 춤이 옛날에 여자들이 시작한거다.'
'사당패?'
'비슷해.'
'아항!'
'한마디 더 해줄게. 옛날엔 그 사당패하고 손을 잡거나 그 사당패하고 잠을 자면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데! 힘도 좋아지고 재수 있고 돈도 잘 벌고 얼굴도 좋아지고 농사도 아주 잘된대!'
'아항!'
회음혈(會陰穴)은 전통동의학(東醫學)이나 단전학(丹田學)에서 공식 인정되는 단전 자리가 아니라 18세기, 19세기 이래 몸 안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천응혈(天應穴), 아시혈(阿是穴) 같은 혼돈혈(混沌穴) 등과 함께 갑자기 그 기능이 활발해지고 강렬해지고 다양해져서 상중하 삼단전 중심의 전통 단전수련자들도 예외적으로 크게 중요시하게 된 기이한 역사를 갖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이쯤에서 이 부분, '촌놈'과 '율려주문'과 '품바타령'과 '웃으면 직사한다'에 대한 결론 비슷한 것을 내리겠다.
현대 율려는 결코 대뇌 중심의 유전자 통섭력이나 온 생명의 중추신경계 집중력이 아니라 그 기능의 원동력까지를 모두 함축한 회음, 특히 여성의 회음, 노동, 생식, 포태, 태교, 출산, 육아, 춤, 예감, 신경, 유전자 기능과 우주 대변동의 원형적 움직임이 모두 함축된 회음이며 이 회음을 각 개체 생명의 중심으로 하는 개체-융합의 화엄개벽적 여율(呂律)이 율려 기능을 배합하면서 후천 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이 바로 나의 결론이다.
사회생물학이니 온 생명이니 하는 에코 파시즘에 그 문을 크게 벌리고 앉아 있는 낡아빠진, 더럽고 데데한 이성과 남성 중심의 전체주의 생명학을 근본에서 무너뜨릴 '회음의 새 생명학'이 탄생할 때가 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생명 평화와 혼돈질서와 개체-융합의 화엄적 자기조직화에 의한 후천개벽을 기초로 각각 일체의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을 모두 다 거룩한 우주공동주체로 드높이는 <모심>의 원리 위에 전 인류의 각 종교와 사상 사이의 통일신단(統一神壇)을 구축하고 그것을 토대로 한 세계조화정부(世界造化政府)를 창건하자는 것이 바로 대혼돈에 빠진 현실 지구와 인류를 위한 참다운 새 UN구상에 연결되는 강증산 선생의 놀라운 우주 정치적 상상력이다.
이미 여러 가지 기고문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촛불(촛불을 위장하는 숯불이나 횃불과 명료하게 구분해야 한다. 전혀 다르다.), '쓰나미' 이후의 지구 자전축 북극이동, 지리극(地理極)과 자기극(磁氣極) 상호이탈과 재결합에 의한 기존 북극해체, 동토대 메탄층 폭발, 대빙산 본격해빙, 난류한류 복합의 대규모 남반구 해수면 상승, 북극 해빙과 적도 결빙, 온난화와 간빙기의 교차생성에 따른 더위ㆍ추위의 겹침, 대전염병 창궐, 생명계 괴변, 재진화(re-evolution), 지진, 해일, 화산, 토네이도, 산불, 침강, 융기, 생태계 오염, 멸종, 유전자 변질사태, 새로운 생물종 출현 등 우주와 지구 변동.
미국, 유럽으로부터 시작된 전세계 금융위기, 국유화 등에 의한 중도적 시장문명의 파급, 거대 자본의 아시아 이동, 호혜(互惠)-교환(交換)-재분배(再分配)의 새로운 고대 신시(神市)의 네오 르네상스.
이 모든 것이 후천개벽이요, 여성, 어린이, 쓸쓸한 대중 등 짓밟히고 소외된 <꼬래비> 등 어둠(음, 陰)이 빛으로 뒤집히고 상극(相克) 중심이 상생(相生)으로 중심 전환하는 후천 대개벽을 예언한 강증산 선생의 예언은 매우 신비적 형태의 개벽 로드맵으로 <현무경(玄武經)> 안에 전개되어 있고 또한 이 대개벽기의 우주적 소통 매체로서, 새로운 크립토그램, 픽토그램의 암호문자의 상형적 방향성, 그 디자인 원리가 역시 현무경 안에 제시되어 있다. 이 안에 함축된 신비한 비밀은 참으로 창조적 발상에 의한 근본적 새 해석이 아니면 밝혀낼 수가 없다.
나는 이 해석과 발상 과정에 '콘셉터(Concepter)', 즉 '창조적 발상 지원 시스템'을 걸도록 제안하는 바이다.
콘셉터는 일본 문명의 첨병인 노무라 종합연구소(野村綜合硏究所)의 '창조전략' 안에 나타난 아이디어로 컴퓨터와 정보화가 아니라 그것의 내권(內捲) 운동으로서의 창조화(創造化)를 위한 발상과 논의, 회의구조다.
한 문제의 전문가를 가운데 앉히고, 즉 '모시고' 그를 둘러싼 각 방면 관련 전문가들의 각양각색의 질문이 집중되는 중에 중심 콘셉터인 화자(話者)의 전문적이면서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하는 중에 그것을 다방면 다방향에서 현실적 어젠다로 즉각 즉각(컴퓨팅, 네트워킹 과정에서) '살리고', 그에 연속하여 학술적으로 심층논의와 보도와 대중적 코멘트의 확산 속에서 전 대중적 창의적 문화의 현실화로 크게 '깨치는' 과정이다.
이것을 <현무경>을 비롯한 증산 개벽사상과 진행 중에 있는 기위친정(己位親政)의 후천개벽(김일부 정역이론)을 함께 연계하여 그 '창조적 발상'을 '개체-융합'과 '내부공생(endosymtiosis)' 원리에 따라 자기조직화하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야 한다.
속류 민주주의적 세미나나 패널 구조로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수운 선생의 '각지불이(各知不移, 해체적 중심원리인 화엄경의 실천)'에 의해서만 창조적 내용에 도달한다. 콘셉터는 <현무경>만 아니라 통일신단과 조화정부의 회의와 논의, 합의과정, 즉 고대 화백(和白)의 세계사적 전개에서도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닌 '모심'이다.
수운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주문은 '모심'을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 기화(氣化)가 있으며 현생 인류가 우주 화엄을 각자각자 제 나름나름으로 선적(線的)으로 인식, 실천한다(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라고 수운 선생 자신이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모심'이 바로 수수억천 년 우주의 지속적인 창조적 진화와 그 완성으로서의 화엄적 개벽의 기본동력임을 말하고 있다.
강증산 선생은 바로 자신의 평화적 후천개벽(後天開闢) 노선 천명과 그 실천으로 '촛불'에서 나타난 생명ㆍ평화의 새로운 후천개벽의 강렬한 예감의 형태를 제시하였다.
선생은 평화적 개벽의 실천방안과 동력을 생명의 명제로 강조했으니 '의통(醫統)'이 곧 수운 동학의 '모심과 살림(侍天主 造化定)'에 해당한다.
수운 동학의 '살림' 즉 '造化定'이 '무위이화(無爲而化)에 일치하고 마음을 비운다(合其德 定其心)'인 까닭이다. 치료와 정신수양, 안심 등 이외에 일상생활과 농사에서의 여러 가지 기적은 결코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 '함이 없이 아니함이 없는(無爲無不爲)' 한울정치 즉 창조적 진화에 일치하면서 거기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얼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살림'인 것이다.
나는 이 원리가 지난 4월 29일에서 6월 9일까지의 '첫 촛불'과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의 '새 촛불' 사이의 '모심-살림 관계' 즉 '十一一言'과 '十五一言' 사이의 역동적 신비로 본다. 그리고 그 신비는 보다 높은 차원, 압축된 형태로 지난 9월 4일부터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오는 이달 10월 26일에 계룡산에서 마치는, 그리하여 내년 봄 다시금 묘향산까지 진행되는 신부-스님의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사랑-생명-평화 기원의 촛불 행사로 승화되어 계승되는 새 시대의 정세개벽(靖世開闢)으로 본다.
여전히 이 모든 개벽 실천에서 핵심은 애틋한, 열심한, 그러나 자제되고 조용한 '가운데도 아니고 양 가장자리도 아닌(非中離邊)' '모심선(侍禪)'이다.
모심선, 선(禪)으로서의 애틋하면서도 단정한 참선법으로서만 화엄개벽이 가능하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강증산 선생은 초기 '나, 즉 한울님은 후천개벽을 위해 먼저 최수운을 이 땅에 보냈으나 수운이 너무 유교에 매달려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스스로 왔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유교, 선교와 기독교를 불교의 큰 틀 안에서 결합하고자 애썼다.
비폭력, 평화에 의한 후천개벽, 즉 정세개벽은 분명 불교적 배경을 가진 개벽사상이요, 실천이다.
후천개벽의 남조선 사상사, 즉 동학, 정역, 증산과 남학, 오방불교 및 소태산의 원불교까지의 모든 사상이 예외 없이 유불선과 기독교를 선도 즉 한민족 전통의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창조적 통합을 이루었으되 그 우주적 크기, 넓이, 깊이 그리고 개체 중심의 해체적 융합의 현대적 접근성에서는 거의 모두 다 불교, 그것도 화엄경적인 배경을 잊지 않고 있다.
강증산 선생이 수운 동학의 유교적 제한성을 선각적 한계로 지적한 것은 수운 동학의 당대 현실적인 시국관이나 혼돈적 질서라는 기본 철학의 구조 안에서 바로 그 선천적 질서의 문제에 한해서는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운 동학의 핵심인 강령주문, 본주문, 후문(後文) 38자(字) 안에 의미심장하고 무궁무궁한 창조적 진화론과 대화엄 사상의 오묘하고 절묘한 압축까지 간파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문수련이 태부족했던 것이다.
그 대신 강증산 선생은 자기 나름의 독특한 광활한 상상력과 우주적 신비주의 차원에서 화엄사상이나 고대 회귀의 진리관을 여기저기서 펼치고 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증산 사상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갈래와 차원, 수많은 주체와 그 기본사상의 다양성 및 확산관계, 현실 역사적 의미연관 등의 초점에서 여러 가지 천지공사(天地公事) 즉 우주 재판을 분석 검토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개벽은 전 세계적 차원, 다양한 복층적 구조 안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전(道典)> 안에 수집된 수많은 어록 가운데 전문 과학자, 신비가나 미학자 이외에 서민 대중이 후천개벽의 대혼돈과 과도기를 통과하는 데에 참으로 절실한 나침반 노릇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남조선 뱃노래'는 어떠한가?
강증산 선생은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지식인들처럼 망국(亡國)이나 개화(開化)로도, 화물숭배(貨物崇拜)나 동도서기(東道西器) 따위 짧은 안목으로 보지 않고 서방의 거대하고 장구한 물질문명의 중심이 동방으로 이동하는 장엄한 대 문명사 전환의 중심이동과정으로 보았다. 그 문명이 배를 타고 남조선으로 남조선으로 몰려들어와 드디어 동방에 온 세계와 인류와 전 중생계와 온 우주를 후천개벽하고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대전환, 즉 음개벽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강증산 선생이 목숨을 거두며 자신은 이제 서천(西天) 서방(西方)으로 건너가 그곳의 거대한 물질문명의 정수(精髓)를 모두 몰고 다시금 동방 한반도에 와 5만 년 후천개벽을 완성하고 미륵불의 용화세계(龍化世界)를 현실적으로 완성하겠다는 인식의 초과 달성이었다.
바로 그 이동이 지금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방 시장의 대위기와 동방의 새로운 가능성 사이의 자본과 마음의 장엄한 중심이동이 바로 선생의 남조선 뱃노래 안에 절절히 예감의 우담바라 꽃을 만개시키고 있다.
선생은 '나는 한없이 악하고 한없이 선하다'는 한울님의 양가성(兩價性)을 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목하 한국사회와 세계 현실에서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선악(善惡) 불가 융합성에 대해 본디 예수의 원수사랑에 입각한 선악의 상대성이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도성(中道性), 그리고 불교의 근본 중도와 동학의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 역(易)의 생극(生克)의 상보성(相補性)이나 복승(複勝)의 은현교차성(隱顯交叉性) 모두를 압축하여 오늘 '한울님이 곧 부처님'이라는 근본적 화해에 목마른 민족 앞에 일찌감치 큰 빛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옥황상제 즉 한울님임에도 동시에 미륵을 자처함으로서이다.
선생은 분명 예언자였다.
19세기 이후 민족이 겪어야 했던 그 참혹한 고통과 침략과 분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와 한울의 가르침을 여러 비유로 제시해주었다.
그 중에도 가장 기억에 뚜렷한 것이 오선위기(五仙圍碁)와 대병겁(大病劫)이다. 민족의 분열과 동북아시아 사강(四强)의 포위에 관한 것이다.
네 신선 즉 사강이 내기바둑을 두는 데에서 주인 신선은 내내 바둑판만 공부하며 자리를 지키다가 네 신선이 드디어 자리를 뜰 때 그 네 신선의 바둑지혜를 모두 다 총괄하여 분열된(정지된 바둑) 자기를 통합하여 가장 뛰어난 세계 바둑꾼으로 몸과 지혜를 솟구치리라는 예언은, 참으로 가슴 후련한 우리의 미래관이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바로 그 바둑판으로 가고 있고 우리가 그 바둑 수를 다 아울러 우리 자신의 신령한 수를 내어놓을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13년 내지 17년 안에 대규모 전염병 창궐로 세계 인구의 삼분지 이가 죽으리라는 대병겁의 예언이다.
현실의 진행과정이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운 선생의 예언처럼 그 악질(惡疾)의 대공격 대상이 맨 먼저 우리나라라는 것이고 그때 수많은 사람이 죽고, 그 과정에 살아남은 민족이 세계를 구하고 우주를 바꾸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생은 그때 민족을, 그리고 인류와 전 중생계를 공격할 괴이한 병들을 미리 자신의 몸으로 다 앓으며 긴긴 시일을 독한 소주만 마시면서 미래에 고통 받을 민중의 아픔을 스스로 감당하였다. 그것은 곧 예수의 고통이었고 그것은 바로 모두를 놓아버린 석가모니의 해탈이었다.
우리는 지금 선생의 희생과 저 무수한 질병 앞에 자신을 드러낸 선생의 용기 위에서 후천혼돈을 맞이하는 진리의 촛불, 그 통과의례를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 뒤로 다가올 용화세계, 유리세계, 미륵세상과 만물해방의 하늘나라, 만사가 만사를 자력과 타력의 합반으로 깨닫는 화엄개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현대 서양의 최고의 지혜자였던 신비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말한다.
'인류 역사의 대전환기에는 반드시 다가오는 새 시대의 삶의 원형(原型)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 민족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심오한 영성과 눈부신 지혜를 지닌 민족으로서 세계를 구원할 이상을 애초부터 제 안에 갖고 있는데 거듭되는 외침(外侵)에 억압되어 그 이상이 어두운 내상(內傷)으로 변해버린 그늘진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대전환의 때가 다가오면 어떤 형태로든 그 성배를 인류와 세계 역사 앞에 제시하고야 만다.
로마나 지배하던 지중해 문명의 쇠퇴기에 그 민족은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그 때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전 인류문명사의 대전환기인 현대에 와서 그 성배의 민족은 과연 어디에 와 있는가?
분명 그 민족은 지금 동방에 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바로 그 민족을 찾아내어 깊이 경배하고 널리 배우고 힘써 도우라.'
자기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의 일본인 제자인 다카하시 이와오(高橋 巖) 씨는 그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며 그 성배가 바로 최수운과 강증산의 후천개벽사상이라고 바로 나에게 알려준 바 있다.
어찌 할 것인가?
이미 촛불이 켜지고 촛불의 짝퉁인 숯불도 횃불도 켜지는 판이다.
어찌 할 것인가?
나는 자주 젊은이들에게 질문받는다.
'강증산이 누구인가?'
내 대답은 대개 한가지다.
'대순진리회나 증산도에 가서 물어라.'
그런데도 계속 나에게 똑같은 질문이다.
어찌 할 것인가?
고태적(古態的)인 종교의 양식으로 계승함도 또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이 켜지고 지구 자전축 북극 이동과 적도에 눈이 내리며 서방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 태평양 및 동방 전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생명 평화의 물결이 사방에서 드높은 이 대혼돈의 시대에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서 파천황의 해석과 활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바로서도 강증산 선생의 <도전(道典)>은 여러해 전 이미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그곳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캄차카, 시베리아, 바이칼 모두 다 러시아다. 뒷날 그 영향은 어떤 형태로 현실화될 것인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TSR, TCR에 앞으로 타게 될 엄청난 수의 배낭여행 젊은이들의 이마 위에 거대한 우주적ㆍ지구적ㆍ신문명사적 예감과 상상의 별, 유목민의 저 눈부신 지도성, 금성(金星)으로 빛나는 날이 오지 않을런지?
그 여행객은 틀림 없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젊은이들이기도 할 것이다.
바이칼의 알혼섬과 몽골의 성산(聖山) 토토 텡그리에 매년 모여드는 57개국 명상가들이 우리의 부르함(不咸) 문화를 세계 문화 재구성의 원리로 재창조하려고 노력하는 영적 창의력과 이 여행이 연속될 때 그 '불함'과 증산사상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그때 구릿골 광제국 문설주에 붙은 후천 새의 팩토그램은 과연 어떤 이미지가 되어 그들을 이끌 것인지?
나는 재작년 캄차카에 갔을 때 이뗄 민족의 늙은 무당 '비에라 고베니크'에게 굿판이 끝난 뒤 다음과 같은 피맺힌 하소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이뗄 민족은 이제 망한다. 천명 밖에 남지 않았다. 캄차카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 당신은 광활한 대륙을 달리는 장수의 기운을 가졌다. 부디 우리 민족을 구해달라!'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그 다음 다음 날 캄차카를 떠나며 나는 가져간 먹으로 흰 종이 위에 아까의 그 광제국 문설주에 붙은 선생의 새 부적을 그려 비에라에게 보내주고 돌아왔다.
무엇을 생각하며 그렸는지 지금은 잊었다. 그것은 이뗄 민족의 캄차카에 대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것은 동북아시아에 다가올 한민족발 후천대개벽 전후에 과연 그 새와 연관된 어떤 운명의 변활르 맞이할 것인가?
'지기금지(至氣今至)'인가?
선생은 자주 후천대개벽의 우주적 변동은 아주 작은 일, 작은 사물, 작은 경우에서 마치 '먼지 한 톨 안에 우주가 살아 있는' 화엄개벽처럼 드러난다고 했다.
그것은 우선 늙은 샤만카(여자 무당) 비에라 고베니크 자신의 여성성, 혼돈성, 제 민족에 대한 치열한 사랑 속에서 거대한 계시와 큰 능력으로 나타나는 '음개벽'일 것인가? 음개벽의 폭발을 상징하는 것인가?
이뗄 민족의 신화에서 새가 상징하는 것이 다른 문명이나 민족 신화와는 아주 달리 독특하게 있음을 그때 들어서 안다. 지금 그것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바로 그것인가?
내 식의 역(易), 내 스타일의 팔괘 해석으로는 캄차카는 '땅', 즉 '곤괘(坤卦)'다. 이뗄민의 새는 이 坤卦 안에서 과연 무엇인가?
이곳은 그쪽 러시아 말로 '포그리니즈나야 체리토리야' 즉 경계지역이다. 아시아ㆍ아메리카 사이, 알타이ㆍ바이칼과 알래스카ㆍ캐나다 사이, 그리고 투르크ㆍ몽골 등 고대 아시아 문화와 아즈테카ㆍ마야ㆍ잉카문명 사이, 그리고 고대와 현대 사이의 여러 경계들의 복합.
이뗄 민족은 여성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하면서 샤먼을 집전한다. 즉 음양 이축(二軸) 변화와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삼축(三軸)이 원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제 안에 샤먼이 있어 언제든 신과 소통한다. 바로 '한'이다.
아!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신화 7000개의 땅 캄차카가 한민족 신화망과 연결되는 곳에 바로 이 새, 인간과 신 사이를 연결한다는 암컷 새 '보로나'가 있다.
역(易)은 그것을 '검푸른 하늘', '싯누런 돼지', '굳센 암말', '기이한 무늬', '누런 치마'로 해석한다.
드디어 끝에 이른다.
이 글도 끝에 이른다.
아!
그 새는 새는 새로되, 캄차카 신화의 중계자인 까마귀가 아니라 닭머리다. '계두(鷄頭)'였다.
닭머리는 동북방에서 떠올라 정동쪽 간방(艮方, 한반도)의 대개벽의 여명을 반사하는 첫 별자리의 상징이었다.
그때 7000개의 신화가 비에라 고베니크의 닭머리에 반사하는 정동방의 새벽빛 속에서 저마다의 7000가지 서로 다른 빛깔로 눈부신 월인천강(月印千江)의 암캐벽을 들어올려 이윽고 온 천지에 대화엄의 만사지(萬事知), '지화지기 지어지성(至化至氣 至於至聖)'을 실현할 것이었다.
강증산 선생의 가르침으로는 바로 캄차카의 수부(首婦) 고판례이니 화산 위의 '굳센 암말'이었다.
언젠가는 나,
아니면 나의 사랑하는 아우들이 반드시 가까운 세월 안에 1000명이 이뗄 민족을 멸망에서 구하고 그 7000개의 신화를 그들과의 협동으로 한반도의 후천개벽, 음개벽의 비전과 연결하여 동북아의 대한류(大韓流)로 꽃피울 날이 있을 것을 굳게 믿는다.
이 과정이 또한 우리 나름의 또 하나의 풍요한 콘셉터가 될 것임을 날카롭게 예감한다.
이 글을 끝내는 내 뇌리에 굿골짜기 '빔차' 입구에서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는 '비에라'의 서성거리는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
그 분은 김주보네 주막의 다부진 아줌마, 혹시 그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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