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 같은 흐름을 놓고 윤영만 한국가스안전공사노동조합 위원장, 조승수 에너지정치센터 대표, 김철홍 인천대학교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집담회를 가졌다. 이 집담회는 <프레시안>이 안전노조협의회와 함께 진행한 연속 기획 '안전은 생명이다'의 마지막 편이다.
비록 안전 관리 기관 가운데 완전한 민영화 대상으로 '간택'된 곳은 없다. 하지만 윤영만 위원장은 "이미 안전 기관의 경우 상당수 주요 업무가 민간 시장으로 넘어가 있다"고 밝혔다. "기관이 공중 분해된 것은 아닐지라도, 사실상 민영화와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가스나 승강기, 선박, 한강 다리와 같은 대형 시설의 안전을 담당하는 이들 기관에 대해 정부는 똑같은 '경영 효율성'의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이들이 "아이들도 그렇게 통계도 없이 비과학적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정부 정책이 계속 이어질 경우, 우리 국민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들은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말로 그 답을 대신했다.
다음은 지난 2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집담회의 전문이다.
"안전 관리 분야, 이미 민영화가 깊숙이 진행됐다"
윤영만 :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3차까지 발표를 마쳤다. 312개 공기업 가운데 100여 개가 그 대상에 포함됐다. 여전히 문제는 많지만 촛불 시위와 금융 위기로 인해 당초 예측보다 보수적으로 나왔다. 나머지 200여 개 기관을 모아서 연말까지 경영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3차까지 발표된 것만 놓고 보면 안전 기관들이 선진화 대상에 깊숙이 포함돼 있지는 않다. 다만 전기안전공사가 저압 부문 안전관리를 민간에 돌리기로 했다.
안전 기관에 대해 규제가 강화되지는 않겠지만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안전 관리 대상을 조금씩 바꿔 전환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큰 그림에서는 그렇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결국 인력과 예산의 감축이다. 여러 부처 얘기를 종합해보면 정부의 투자기금을 10% 정도 줄이고 효율은 3% 늘려, 종합적으로 효율성 13% 향상을 목표로 한다.
더 답답한 것은 소통의 채널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업무가 민영화되는 곳은 없지만 이미 안전관리 기관의 대부분은 민영화가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공단은 가장 산재가 많이 일어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는 근거도 없고 인력도 없다. 관련된 여러 협회나 민간 대행사들이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승강기 안전 관리 업무도 승강기안전관리원 외에 2곳이 나눠서 하고 있다. 가스안전공사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용 LPG 검사가 업무의 절반이었는데 지금은 이 일을 민간 기관에서 다 하고 있다. 도시 가스 사용 시설이나 냉동 제조 시설도 민간과 검사 경쟁을 하고 있다. 즉, 기관이 공중 분해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각 기관의 업무에 민간이 침투해 있는 것이다. 민간이 하면 더 좋을 것 같지만, 검사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더 떨어진다.
"민영화되면? 모든 시설이 검사만 하면 '안전하다'고 나올 것"
김철홍 : 산업안전공단은 이미 민간에 이양이 정말 많이 돼 있다. 사업장에서 8시간 일을 할 때 소음의 법정 허용 노출 수준은 90데시벨이다. 그런데 민간 기관이 와서 조사해 보면 89.7데시벨, 89.8데시벨, 이렇게 나온다. 전혀 걸리지 않는다. 모든 사업장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다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가서 조사하면 100데시벨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절묘하게 기준 아래도 나오는 것일까? 검사 비용을 기업이 부담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해할 수 있다. 돈 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 관리 기관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제일 중요하다.
윤영만 : 민영화나 검사 기관의 다원화, 복수화로 안전 관리가 과연 가능할까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이미 검사 기관이 다원화돼 있는 승강기의 경우 처음에 승강기관리원이 독점했을 때의 불합격률은 3~4%였다. 이 말은 승강기 한 대가 30년 동안 고장이 한 번 난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불가능한 수치인 것이다.
그런데 검사 기관이 다원화되고 소위 검사가 시장 경쟁으로 넘겨지면서 불합격률이 0.5% 미만으로 떨어졌다. 200년 마다 한 번씩 고장이 난다는 얘기다. 검사 기관이 다원화되고 시장 경쟁 논리에 맡겨지면서 검사 의뢰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끔 진행될 수밖에 없다.
가스도 동일한 시설의 검사를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이 있다. 민간 검사 기관의 불합격률은 0에 수렴한다. 가스안전공사의 불합격률은 2%대다. 그런데 이 2%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이다. 시장에 완전히 맡겨지면? 당연히 0에 가까워진다. 사고는 계속 나는데 검사만 하면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말이다. 당연히 단시간에 효과는 안 나타나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터질 것이다. 그 때는 돌이킬 수 없다.
김철홍 : 승강기는 1990년도에 2만4000개였다. 지난 2004~2005년에는 30만 개가 넘어섰다. 증가율이 매년 10~20%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승강기의 안전을 감시‧감독하는 사람의 숫자는 정체돼 있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한다. 그러니까 실제 한 사람당 담당해야 하는 승강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조승수 : 유명한 민영화의 피해가 바로 영국의 철도다. 독일도 그렇다. 독일 철도가 원래 정확하기로 굉장히 유명한데 독일이 2000년 이후 부분적으로 민영화를 시작했다. 지난 2005년 독일에 갔을 때 독일인들의 엄청난 불평을 들을 수 있었다. 반면 우리 국민들은 민영화라고 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담론 싸움에서 우리가 이미 진 것이다. 민영화 대신 의식적으로라도 사유화라고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MB정부, 통계에 근거한 정책 아니라 아이들도 안 하는 사고를 한다"
윤영만 : 안전 기관에 대해서도 정부가 장기적 관점이 없다. 오랜 통계를 바탕으로 그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최근에 큰 사고가 났느냐 안 났느냐가 중요하다. 사고 나면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해당 기관이 잘 관리해서 사고가 줄어들면 없애야 한다고 난리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만들어진 시설안전관리공단도 생긴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공단이 일을 열심히 해서 대형 시설 사고가 줄었다. 그러면 시설안전관리공단이 이제 필요 없는 것인가? 사고의 사례가 없으면 없애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다. 가스안전공사도 지난 1995년 대구 지하철, 아현동 폭발 사고 이후 조직이 2배로 늘었다. 가스 사고는 1995년 기준으로 연간 530건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건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안전 관리 대상 가스 시설은 3배나 늘어났다. 인력은? 오히려 그 당시보다 100명 줄었다.
이런 통계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대형 사고가 있었냐 없었냐만 따진다. 요즘은 아이들도 그렇게 비과학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경영 효율화만 하더라도 담당 업무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관리 대상은 얼마나 늘었는지를 봐야 하는데 '이 기관은 나태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것이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된다.
김철홍 : 공공기관의 평가 잣대의 80~90%가 모두 경영 성과가 기준이 된다. 공기업의 전문성 기준은 거의 없다. 기업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민영화 대신 '선진화'란 용어를 쓰는 것도 시장의 논리다. 하지만 안전은 사후 대처가 아니라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성과로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 공공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다. 공무원 숫자만 비교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작은 정부'다. 국민 1000명 당 공무원의 숫자가 북유럽은 150명, 일본도 우리의 3배를 넘고 심지어 멕시코보다 적다. 지금보다 2~3배는 늘어나야 한다.
안전 관리 영역도 우리나라의 위치가 전 세계적으로 아주 재밌다. 산업재해 발생율은 0.7%로 세계에서 제일 낮다. 유럽은 보통 4~5%수준이다. 그런데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높다. 일본에 비하면 우리가 100배나 높다. 산재 발생은 최저인데 사망자는 최고다? 죽지 않는 사고는 모두 은폐되거나 조작된다는 말이다. 공상 처리를 하고 회사가 자체적으로 보상하고 치료해 주면 산업재해로 안 잡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 시스템이 부실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조승수 : 공상 처리는 정말 많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도 많이 봤다. 나도 손가락이 쇠구조물에 끼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는데 공상 처리하자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 한 번은 대형 철골을 다루다 쇠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한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나중에 근로감독관이 현장 조사를 왔는데, 안전보호모를 안 쓴 것이 문제가 될까봐서 회사 관계자가 그 자리에서 안전모를 깨서 사고 현장 옆에 두는 것을 봤다.
윤영만 위원장이 말한 것은 이른바 '냄비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생명을 두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시절 공기업 관련 보고를 많이 받았지만, 공기업 경영 평가의 모든 초점은 인력과 예산을 얼마나 절감했는가 뿐이다. 공공서비스의 확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든지 숫자로 장난칠 수 있는 항목이다. 이 잣대를 가지고 예산의 배정까지 이뤄진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다.
"잘못된 경영 평가 기준으로 기관은 인력 줄이기에만 혈안"
윤영만 : 경영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계량 평가다. 올해까지의 평가 항목을 보면 노동생산성이라는 것이 있다. 인력을 분모로 놓고 총 검사 수행 횟수를 분자에 두는 것이다. 작년보다 월등히 높아져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관리 대상 시설이 늘어나도 기관장들이 인력을 뽑지 않으려하는 것은 바로 이 노동생산성 지표 때문이다. 즉, 분모를 그대로 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결국 검사가 엉망이 된다.
또 하나의 기준이 작년보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나이다. 안전관리기관이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기관이 아님에도 돈 벌이를 하라고 정부가 부추기는 것이다. 결국 갑의 입장에 있는 기관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강요할 수 있다. 고유의 일은 등한시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런 평가 기준에 장기간 시달리다 보니, '검사를 대강하면 할수록 기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조직 내에 퍼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인질극을 벌이는 셈이다.
김철홍 : 결국 노동생산성 지표에서 제일 놓치는 것이 바로 질이다. 기업의 노동생산성과 안전관리기관의 노동생산성은 그 기준이 달라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다. 박정희 식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원진 레이온 사태 때 '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은 일시 담보될 수 있다'는 기막힌 발언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부에서 만들어졌지만, 시혜적인 성격이 짙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의 바람을 타고 그마저도 바꾸려고 한다.
조승수 : 공기업의 비효율이나 방만한 경영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보수 이데올로기에 의해 착시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직접 느끼는 부분도 있다. 각 부처의 산하 기관이 전반적으로 보면 일정 정도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위 공직자들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서다. 공무원 노동조합이 그런 것을 스스로 견제해야 한다.
"안전 관리 기관 인력,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
윤영만 : 규제완화는 이명박 정부의 철학인데 이를 제대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안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부동산 규제들이 한 몫을 했다. 특히 안전은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인데 규제가 없으면 기업은 당연히 안전에 투자 절대 안 한다.
중앙대 윤기봉 교수가 1000명의 국민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용역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0% 이상이 안전 분야는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는 정부의 몫이라는 것을 국민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안전노조협의회에서 진행한 용역 결과를 보더라도 안전기관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영 효율화가 아니라 기술력 강화를 통한 전문성 확보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규제가 완화되면 자본이 고용이나 세금으로 국민에게 그 이득을 돌려줄까? 지난 10년의 경험으로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자본만 살찌우는 규제완화다.
안전 관리 기관은 기본적으로 지금보다 인력이 더 필요하다. 이 분야는 대부분 사람이 품을 팔아 관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 관리는 오랜 경험이 필수적이다. 장비나 프로그램이 못 찾아내는 것을 사람이 감각적으로 알아낸다.
실업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나눠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안 좋은 일자리만 늘리고 좋은 일자리는 줄이라고 한다. 지금 공기업이 대부분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전기안전공사는 지난달 162명 채용 계획을 취소했다. 다른 기관이 아무도 안 뽑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김철홍 : 국제노동기구(ILO)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서비스의 수요가 매년 5% 이상씩 늘어난다고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국제 평균에 비해서도 너무 낮다. 공공 서비스 영역이 더 늘어나야 한다.
특히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가 얘기한 유명한 원리가 바로 '1 : 29 : 300'의 법칙이다. 인명 피해가 있는 재해가 한 건이 나면 같은 종류의 인명 피해가 없는 사건이 29건이 존재하고 그 밑에는 300건 이상의 불안전 상태가 있다는 얘기다. 말로만 '안전 제일' 운운할 것이 아니다.
조승수 :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 진영도 무감각하다. 안전 캠페인이라고 하면 회사나 정부가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안전은 의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한 진보 진영 내부의 새로운 인식 전환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 구체적인 연대도 해야 한다.
김철홍 : 안전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이다. 학교에 있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느낀다. 바로 노동자가 되는 실업계 고등학생에게조차 노동자의 기본권이나 안전의 문제, 산업재해의 문제가 전혀 교육되지 않고 있다. 인식 전환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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