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위험하다. 이명박 정권에서 위기해법이라고 내놓은 대책이란 걸 보면 이 위험은 이제 속도를 더하고 있다. 건설업자들에게 9조 원의 공적자금을 던져주고 수도권 72곳의 투기지역을 선별 해제한다는 식으로 경기부양을 기대하는 식이라면 거두절미, 한국경제는 위험의 구렁텅이로 곧장 직통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에서부터 크게 어긋난 틀린 해법이다.
건설업자들이 생각 없이 막 지어 비싼 값에 내놔 팔리지 않는 아파트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사 주고, 폭리를 취하겠다는 욕심으로 짱박아 둔 민간업자들의 주택용지도 세금으로 구입해 주고, 기업들이 부동산 투기로 사들인 비업무용 부동산도 국민들 돈으로 매입해 준다는 발표를 보면서, 정말 이 정권을 끌고 가는 이들은 국가경제나 국민경제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이네들은 작심하고 나라를 망치겠다거나 아니면 어떤 '복심'이 있는 건 아닐까, 별별 의구심이 다 들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가 만능이라고 그렇게 떠들던 이명박 정권이 먼저 나서서 시장의 경제를 망치고 있잖은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는 외국자본의 이탈은 뭘 말하는가. 아무리 글로벌 위기라지만 이 나라 환율이 유독 출렁대고 급속한 유동성 위기에 실물위기까지 화급한 징후는 바로 시장의 왜곡에서 시장의 위기로, 이는 곧 이명박 정권이 보이는 신뢰의 위기가 가장 큰 경제위기의 단서로 진전된 것이다.
민생이 경제의 근본이다
경제란 무엇인가? 아무리 떠들어도 경제의 본질과 핵심은 민생(民生)에 있다.
민생이 무너지면 나라경제는 밑둥치가 내려앉고 볼 장 다 본거다. '펀더맨털', 웃기자고 하는 얘긴가? IMF 때나 지금이나 맨 날 멀쩡하다던 그 '펀더맨털'이란 대체 뭔가? 민생이야말로 경제의 기초이자 바로 '펀더맨털'이다. 민생의 경제가 바탕에서부터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이자 근본인데, 민생은 제쳐두고 건설사만 배를 불려 투기경제를 일으켜 경기만 부양되면 위기는 해법을 찾는가. 말짱 헛발질이고 미몽(迷夢)일 뿐이다.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제대로 구출하겠다면 민생의 경제, 서민의 경제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민생이 버텨주고 서민경제가 살아나야만 경제는 서서히 순환되면서 위기의 경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마리도 찾는다.
지난 97년 IMF 때를 보자, 나라가 거덜이 났을 때 결국 나라를 지킨 건 누굴까? 당시 김대중 정권? 정치인들? 대기업? 건설업자? 아니다. 똑바로 말하자, 비록 삐뚤어진 입이지만 본말과 본심은 그나마 정직해야 한다. 과연 누구? 누굴까? 바로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시민들이고 국민들이다. 길바닥에 나앉고 가족이 해체되며 피울음으로 어려움을 버텨내고 나라를 지켜낸 건 바로 민이었다. 백성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재벌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그래서 '법리'를 따져서 이건희가 무죄라고? 착란이다. 따질건 어쭙잖은 '법리'가 아니고 법의 공평한 원칙적 집행이고 법사실의 엄정한 실천이고 법 정의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국민대중이 있었고 백성들이 삼성을 키웠다는 건 삼성도 부인 못한다. 삼성이 저 혼자 잘나고 똑똑해서 삼성 혼자서 해낸 게 결코 아니다.
못보고, 못 읽고, 안보면서
이렇듯, 근본이 뒤바뀐 경제위기 대책이란? 자꾸 떠들어야 소용없다. 나가서 봐라, 두 눈으로 제대로 보란 말이다. 어떻게 어떤 지경으로 사람들 삶이 지금 무너지고 스러져 나가는 현실인지를 똑바로 보고나서 말들을 해라. 본말(本末)이 거꾸로 뒤집혀도 한 참 뒤집혔고, 주인인 국민의 녹봉(祿俸)을 타먹는 머슴이 상전이 되어 높은 자리에 앉아서 분수도 다 일그러지고 다 깨져, 몰라도 너무 모르고, "세상물정 모르는 잡것들이 설쳐도 너무 설치고", "잡것들이 힘을 가지고 도둑질하면서 세상을 망치고 있소"라는, 내가 강진에서 만난 한 나이 드신 농민의 얘기가 한 치도 틀림이 없다.
강진 읍내, 절기가 바뀐 가을인데도 30도가 넘는 한 낮 아스팔트 뙤약볕에 노인네들이 벼를 말린다고 비닐 위에 쭈그리고 앉아 땀범벅인 처지인데, 노인들이 허리춤에 꿰찬 수두룩한 약봉지만으로 과연 노인들 병인(病因)이 치료가 될까. 강진 읍내를 돌아다녀도 웃는 얼굴을 볼 수가 없는 현실인데, 뭔 경제대책이고 헛소리들인가.
지난 수십 년, 아니 지난 백년간, 정치와 정책이란 이름으로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 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를 살필 수만 있다면, 정치나 정책은 일찍이 구실을 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줄곧 가난한 이들 중에 가장 낮은 포복으로 위치한 농민들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뭔 정치고 정책이며 경제대책 타령 운운이란 말인가. 말의 성립이 애초에 불가능이다.
부농 또는 대형 영농 법인에 거금의 직불금을 줬고, 엉뚱한 땅을 쌀 농지라고 속여 직불금을 타먹게 했고, 공장용지임에도 직불금은 지급됐고, 농지면적을 100배나 부풀려 직불금은 타먹으면서도 정작 농사짓는 농민은, 논 주인이 직불금 마저도 자기가 챙기겠다고 하면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법을 어기는 억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기막힌 현실을 제대로 못보고 못 읽고 안보면서, 무슨 제도와 정책과 대책과 대안을 만들 수 있는가 말이다.
여기 강진군만 해도 인구의 대개가 농민이고 가장 큰 산업이 농업이고 논밭과 바다에 생명줄을 대고 산다. 깨지고 엎어져도 오직 믿는 건 계절과 땅과 바다다. 그런데? 이제 논에 생명줄을 댄 농민들한테까지 대놓고 모욕을 일삼았던 것이다. 논 투기가 극성인 수도권만큼은 아니지만 여기 강진도 제대로 조사를 한다면 실제 농사를 지으면서도 직불금을 못 받은 농가는 있을 것이다.
강진 군수는 어디에 있는가?
난 사흘을 다산 정약용의 역사 현장이었던 강진에서 잠을 잤다.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애초에는 강진의 자연 풍광을 사진으로 찍어보겠다는 목적으로 서울에서 강진으로 내려왔지만, 자연정경을 찍는 건 첫날 도착에서부터 지워버렸다. 아름다운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찍는 건 지금은 사치라고 느꼈다.
직불금 사태가 났고 사람들 시름이 꽉 찼는데, 강진 이곳 사정이라도 조금이나마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강진 군내 이 마을 저 마을로 나섰던 것이다.
강진 사정에 눈 밝은 몇 분이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길 안내를 해주셨다. 채소농사를 지어 직접 판매망까지 개척하고 나선 농민도 만났고, 농민들의 어려움에 29년이나 같이 한 농업관련 현장공무원이 농민들로부터 반가운 인사를 받는 모습에서는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도 보았다. 그렇다. 이곳 강진은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의 고장이 아닌가.
그러나 이 나라 국토 구석구석 어디에도 마찬가지 문제지만 강진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전국 232개 군마다 당장의 경제적 유혹이 훨씬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는 방책은 여기 강진에도 남용되고 있었다. 바로 그 몹쓸 골프장 건설 타령이었다.
<조선일보>가 2005년 10월 10일자에 "자치단체와 주민이 함께 나섰던 골프장 유치사업이 열매를 맺었다"는 낯간지러운 기사에서 "이 골프장은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기온이 따뜻해 사계절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춰다"면서 "일반적으로 주민 반대가 많은 골프장 건설사업에 민·관이 함께 투자유치에 나선 끝에 얻은 결실이어서 의미가 있다"며 골프장을 "친환경적으로 건설해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군관계자의 말을 기사로 내보내고 이후 3년이 지나서 드디어 토지수용이 끝나가고 곧 2개의 골프장 건설공사에 착수한다는 골프장 건설 소식은 강진의 자치를 책임지고 있는 강진의 군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자체의 어려움은 이해할 수 있다. 지방 군수의 각고의 노력도 익히 안다. 특히 강진 군수의 부지런함은 유명하다. 하지만 골프장 건설을 통해 지방세 세수 증대와 골프장 연관 고용을 통해 군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은 너무 생각이 짧은 것이고 실효성도 적을 뿐 아니라, 거의 비전이 없는 비현실적인 발상이고 사업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골프장수는 영업 중이거나 영업예정인 곳이 404곳, 허가를 받아 신규 골프장 공사를 준비하는 곳이 104곳 등 모두 508곳에 이른다. 지난 노무현 정부 들어 수년 만에 한국은 골프장 개수 세계 12위, 국토면적 대비 골프장 넓이가 세계최고인 0.3%로나 차지하는 세계최다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전용된 산지면적은 상반기에만 6103㏊로 지난 8월 '저탄소녹색성장' 비전 제시를 내세운 이명박 발언은 미루어 짐작했지만 벌써부터 틀어지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지난 2006년 말 골프장 수요예측 보고서와 국회 예산정책처가 낸 골프장 지역경제효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골프장 홀 당 내장객은 2004년엔 4782명에서 2005년 4443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또 회원제골프장의 내장객도 2002년 9만6255명에서 2007년엔 8만6560명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경남지역의 경우 13개 골프장중 6곳이 적자, 대구경북 지역은 18곳 중 10곳이 적자운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업계에선 2000년 일본에서 발생한 골프장 줄도산이 한국에서 재현될 것이란 우려는 곧 현실이 된다.
올해 초 세계적인 곡물가격 상승으로 해외식량기지 건설을 다급하게 표방하기까지 했던 이 정부가 "농민들에게 농지의 골프장 전용을 유도하겠다"는 노무현정부의 정책과 골프장 건설에서는 어떤 판별성이 있는지 아직 제대로 확연한 구분도 없다. 농지의 절대 확보가 너무나 절실한 현실과 농지의 골프장 유도를 정부가 뒷받침 한다? 이도 착란이다.
강진군에서의 골프장 건설은 강진군 관계자가 조선일보에 한 말처럼 "친환경적으로 건설해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일뿐더러 곧 드러날 거짓말임이 불문가지다.
골프장 건설예정지인 강진군의 도암, 송학리 일대와 신전, 사초리 일대는 강진군의 중요녹지지역이며 바다와 연결된다. 잔디를 키우기 위해 고독성 농약을 뿌려 산림생태계를 파괴하고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강진만의 최대보물인 자연갯벌에 치명적인 피해가 가면서 결과적으로 강진군이 얻고 구하고자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절단날 것이 너무나 확연하게 보이는 골프장 건설은 두고두고 강진군의 큰 멍에가 될 것이다.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는 황주홍 강진군수는 노무현 정부시절 3.1절 골프소동으로 물러나 골프총리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이해찬 전총리로부터 반면교사를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마침 <프레시안>에 홍성태 교수의 칼럼, "파국을 부르는 그 소리…'나이스 샷!'" 을 군관계자들과 같이 읽기를 권한다.
거듭 얘기하지만 지하수를 고갈, 오염시키고 흐르는 물을 망치며 숲을 벗겨내고 독성 농약이 일상사가 되는 골프장 건설 이외 대안은 없는가? 천만이다.
지역으로부터 변화를
우연한 기회에 내가 연속으로 찾게 된 전라남도 강진은 벌써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산과 강과 들판과 갯벌과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 환경은 전국에 군 단위 행정구역상 최고의 천혜의 청정지역이고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을 다녀본 내 눈에는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이미 풍요가 약속된 고장이다.
자연생태계를 망치고 위화감을 일으키며 지역에 백해무익한 골프장 건설보다는 강진은 역사 문화의 고장으로 정약용을 배경으로 한 다산학(茶山學)을 통해 강진학(康津學)을 일으켜 국가 지식산업 체계를 리드할 수 있는 역량을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옛 문헌과 강진 출신 시인 영랑 김윤식을 빗댄 시문학의 발산으로 대한민국 남단의 출판기지, 책방 거리 등, 문학 출판 산업을 일으키며, 고부가가치 자연농업과 수출농업으로 농업을 미래 산업으로 개척하고, 어떤 바닷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천연갯벌의 유용성과 가치를 널리 홍보하여 이를 이용한 천연관광산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등,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역사 문화 자연의 조건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입체적이고 효율적인 '강진미래 10년 비전'을 차분하게 세울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 더하여 고려청자의 산실인 강진 청자문화(青瓷文化)를 산업으로 육성시켜 국내외에 다양한 생활도자기를 생산 보급 판매한다면 세계적인 수출품으로 확연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강진군 특유의 문화적 자산을 이미 확보하고도 있다.
무너지고 스러져 뒹구는 것들을 보는 마음
명색이 도자기 종주국이라 말하면서 고려청자의 산실인 강진군 내 식당들을 가보면 거의 하나같이 건강에 해로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FRP 식기가 전국에 여느 지역 식당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포장마차에서 라면 하나 시켜도 구운 도기(陶器) 그릇에 담아 나온다. 고려청자의 전통은 너무나 쇠약한 정도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완전히 무용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전통방식의 청자가 무겁고 사용하기 불편하다면 그건 생활도자기로 개발하면 된다. 왕년에 질 좋고 아름다운 최고의 도자기를 우리는 빚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부터 도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도자기 산업이 일어난다. 이 산업을 유도하는 게 정책이고 역량이다.
청자로 식기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은 인상적인 식당은 '마량항'에 '청자골 횟집'이 있었다. 객지로 떠나 있다가 고향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젊은 주인은 강진의 문화를 외지인들에게 소개하는 자부심으로 강진의 음식과 전통문화를 같이 내놓고 있었다.
다산이 말하는, 사는 법
다산은 그의 문장 중 '퇴계 선생을 기리며에서' 말하기를,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은 큰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허물이며,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허물"이라 했다. 또 "남에게 받은 은덕을 잊는 것도 옳지 못하지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은 허물이며,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도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는데, 여기에 꼭 맞는 처방이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했다.
그렇다. 자꾸 스스로를 제대로 고치는 것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출세하고 더 잘난 척하는 것이야말로 한편으론 큰 부끄러움일 것이다.
이 가을, 무너지고 스러져 뒹구는 것들을 보는 마음엔 꼭 슬픔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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