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21일 일제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조선>은 사설을 통해, <중앙>과 <동아>는 주필 등의 기명 칼럼을 통해 경제수장의 교체 필요성을 언급했다.
요구 수위는 신문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간 '이명박 정부 감싸기'로 일관했던 <동아일보>마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하면서 '경제수장 교체'에 동참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논리로 자기 사람을 감쌀 만큼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앙> 문창극 "이제는 말을 바꿀 때"
강 장관 경질을 가장 강도 높게 주장한 것은 <중앙>이다. 이 신문의 문창극 주필은 이날 '문창극 칼럼'을 통해 "번영을 기대하던 시대의 리더십과, 고난이 예고된 시대의 리더십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 경제논리를 주장하던 리더십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공동체를 살리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강 장관의 경질을 촉구했다.
문 주필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경제적 번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747'(7% 성장, 4만 달러 시대, 세계 7위)이니 뭐니 했지만 다 깨어진 꿈"이라며 "지금은 오른 환율 때문에 오히려 국민소득이 더 떨어지는 지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7.4.7을 핵심으로 하는 'MB노믹스'의 밑그림을 그린 강 장관이 '7% 성장률' 달성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쓰다가 실패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문 주필은 "이제는 허황된 꿈이나 현란한 구호로 사람들을 들뜨게 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난을 이겨낼 각자의 단단한 마음준비와 성을 지켜낼 공동체의 단합"이라며 "지금 이명박 정부에는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을 건널 때는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지만 금융위기의 급한 불길은 일단 잡혀가고 있다. 이제는 그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지금은 후폭풍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도 강 장관 경질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개각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불거졌던 강 장관 경질 요구에 대해 "강을 건널 때는 말을 바꿔타지 않는다"는 말을 앞세워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강 장관을 경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강 장관 뿐 아니라 '고소영' '강부자' 내각의 전면 쇄신을 요구했다. 그는 "선거 논공행상으로 선택된 양지만 좇던 인물들, 자기 이익을 먼저 앞세웠던 약삭빠른 사람들로는 국민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없다"며 "이 정부에는 재산형성 과정에서 약점이 많은 인물들이 왜 그리 많은지… 미안하지만 '고소영' '강부자' 인물들로는 고난을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 "루스벨트, 공화당 출신 장관 임명하기도"
<조선일보>는 이날 '인사(人事)도 수사도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 맞춰야'라는 사설을 통해 "인사가 새로워져야 경제 위기 돌파에 필요한 리더십도 힘을 얻게 된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최근 금융위기 상황과 관련해) 정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시장(市場)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정부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후 월요일 다시 개장한 국내 증시는 소폭 상승에 그쳤고 환율도 잠깐 멈칫했을 뿐"이라며 "경제 위기는 국민적 에너지와 관심이 하나로 모일 때 넘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게 인사"라고 거듭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 신문이 "이 대통령이 최근 부쩍 관심을 보인다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 때 야당인 공화당 출신을 가장 중요한 직책인 전쟁부 장관과 해군부 장관에 임명했다. 영국의 처칠 총리 역시 전시 내각을 구성하면서 자기를 요직에서 소외시켰던 정적(政敵)인 전(前) 총리를 내각에 머무르도록 설득하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옛 정적이 갑자기 예쁘고 소중해져서가 아니라 그래야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 거국내각의 수립을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 배인준 "관치 신뢰성 높여야"
<동아>의 배인준 논설주간은 이날 '금융 신관치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금융정책과 시장 대응을 지금보다 훨씬 과단성 있게 적시(適時)에 펼칠 수 있는 신관치 시대의 적임자가 있다면 새 금융 사령탑에 못 앉힐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 주간은 정부가 19일 발표한 금융위기 관련 대책에 대해 "사실상 강력한 금융관치(官治)를 공식화한 것이다. 세계 각국도 미증유(未曾有)의 신뢰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신(新)관치가 불가피하다면 '관치의 신뢰성'이라도 최대한 높여야 금융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장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정부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둔 지적으로 볼 수 있다.
배 주간은 정부 정책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발표하기로 예정된 정부의 건설산업 지원대책에 대해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정부가 한 달 전 '10년간 주택 500만 채 공급계획'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미분양 주택이 16만∼25만 채를 헤아리고, 이것이 경제운용의 심각한 짐이 돼버린 상황에서 장기 공급확대계획부터 꺼냈으니 시장에선 '앞뒤가 안 맞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축은행 부실도 뇌관인데, 뇌관이 터져 결국 국가부채를 더 키우는 상황이 되기 전에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도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최근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방향은 옳지만 가계부채 문제를 비롯한 긴급과제들을 밀쳐놓고 '매크로 금융정책'만 주무른다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에 대한 지급보증 등의 정부 지원은 사실상 공적자금에 준하는 국민부담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은행의 경영 실태(失態)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11년 전 외환위기의 교훈을 잊은 채 되살아난 은행 경영상의 모럴해저드와 키코(KIKO) 영업에서 여실히 드러난 부도덕성을 그냥 덮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 장관 경질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야당의 강 장관 경질 요구에 대해선 "불이 나 집이 타들어 가는 판에 '소방수를 안 바꾸면 소방차가 지나갈 수 없다'고 하는 소리나 비슷하다"고 비난하면서도 "경제팀 교체가 모든 협조의 대전제라면 민주당이 인사(人事) 대안을 한번 내보면 어떨까. 그걸 보고 많은 국민이 큰 희망을 느낀다면 이명박 대통령도 생각을 고쳐볼 수 있지 않을까. 금융정책과 시장 대응을 지금보다 훨씬 과단성 있게 적시(適時)에 펼칠 수 있는 신관치 시대의 적임자가 있다면 새 금융 사령탑에 못 앉힐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