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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내 몸을 던져 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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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내 몸을 던져 섬기다"

[오체투지 21일째]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을 생각하며

지난 23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 순례 첫 발을 뗀 지 20일이 지났다.

이날 순례단은 전북 남원에 있는 춘향 고개를 지나 대정리에서 하루 일정을 종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순례단은 목표 지점 대정리보다 약 1㎞를 지난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 삼거리를 목전에 두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이날 순례의 출발은 순례자와 진행 팀만이 참여해 지금까지 순례 길 중 가장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아침이었다. 대부분 출발 지점이 외지고, 이른 아침에 출발하니 일일 순례단원들은 오전 9시를 넘어야 하나 둘 모이기 때문이다. 단출한 출발에 이날 순례는 속도가 빨랐다. 이에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순례를 떠나온 지 20일째라 순례에 익숙해진 것인지 "10㎞도 갈 수 있겠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五체투지?…吾체투지!

하지만, 이날 두 성직자의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순례단은 "두 성직자의 장담에도 순례 내내 고통으로 얼룩진 신음 소리를 듣기에 바쁜 날이었다"며 "도로에 몸이 던질 때마다 '헉, 헉, 아이고'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오고, 문규현 신부의 마른기침 소리도 정기적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특히, 수경 스님의 몸 상태는 더욱 안 좋았다. 그는 무릎을 쓸 수 없어 팔에 온 힘을 싣고 오체투지를 했기 때문에 팔 근육이 모두 뭉쳐있었다. 이에 순례단은 두 성직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진행 속도를 줄이고, 매 쉬는 시간마다 수경 스님의 팔 근육을 풀어주는 일을 반복했다.

문규현 신부도 수경 스님을 위한 안마에 가세했다. 그는 자신의 피로도 풀기 부족한 휴식 시간이었을 테지만 수경 스님의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고 안마를 해주었다. 이에 한 순례단원이 "어, 이게 오(吾)체투지 아닌가"라고 말해 순례단은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체의 다섯 부위를 던져 절한다는 오체투지가 내 몸을 던져 섬긴다는 의미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또 이날 두 성직자의 상의를 들추자 상체에 온통 부황 자국이 드러나 순례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 밤 두 성직자는 서로 부황을 뜨며 순례의 노곤함을 이겨냈다고 한다.

순례단은 "함께 길을 가는 도반이자 동반자처럼 보이는 두 모습에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진리를 추구하며 이 땅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수경 스님의 몸 상태는 더욱 안 좋았다. 그는 무릎을 쓸 수 없어 팔에 온 힘을 싣고 오체투지를 했기 때문에 팔 근육이 모두 뭉쳐있었다. 진행 팀은 매 쉬는 시간마다 수경 스님의 팔 근육을 풀어주는 일을 반복했다. ⓒ오체투지순례단

▲ 문규현 신부도 수경 스님을 위한 안마에 가세했다. 그는 자신의 피로도 풀기 부족한 휴식 시간이었을 테지만 수경 스님의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고 안마를 해주었다. ⓒ오체투지순례단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을 생각하는 순례 길

이날 순례 길에 함께한 강원도 원주시 부론성당의 안승길 신부는 "남북통일, 사회 양극화, 물질의 노예화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이 길뿐이 없는 것인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문제"라며 "물질과 돈을 위해 우리는 생명을 쉽게 파괴하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지구 온난화, 자연 재해 등이다. 우리 모두 각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이라며 '말과 행동, 생각이 오도된 현 상황' 때문에 순례가 현실화된 것을 아파했다. 공업이란 저마다 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공동으로 고락(苦樂)의 과보를 받는 일을 뜻하며, 모두의 공통된 잘못을 말하는 불교식 표현이다.

또 다른 일일 순례단원으로 참가한 이세우 목사(평통사 대표)도 "두 분을 보니 참 짠하다"며 "꺼져가는 촛불을 밝히고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구도의 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깨우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순례 길은 우리 모두의 공업을 아파하고, 누구의 잘못이 큰지 잘잘못을 논하지 않지만, 한 번 더 자신을 되돌아보며 다른 속도와 가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서약이자 실천"이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어떤 힘도 가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혔던 촛불처럼 우리 시대의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롭고 사람답게 소통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상이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말하며, 권력자가 사과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냉혹하고 진심어린 사과는 없다"며 "그의 독선과 독단도 결국 우리가 만든 결과였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순례 21일째인 24일 현재, 순례단은 전북 임실군 용정리 오수로터리에서 순례를 시작해 오수관광농원을 지나 의견공원에서 순례를 종료할 예정이다.
▲ 이날 순례의 출발은 순례자와 진행 팀만이 참여해 지금까지 순례 길 중 가장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아침이었다. ⓒ오체투지순례단

▲ 오전 8시. 순례에 앞서 두분의 순례자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명상을 한다. 이 시간이 이 성직자에게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오체투지순례단

▲ 전북 임실군 오수면 대정리에 있는 '오수 가시연꽃 생태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세계적인 희귀 멸종식물로 알려진 가시연꽃을 보기에좋다. 이곳에서 문 신부는 명상에 잠겼다. ⓒ오체투지순례단

▲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생명. 순례단은 순례 길 곳곳에서 생명을 만나고 있다. ⓒ오체투지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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