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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애자"…1주일 만에 1만여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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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애자"…1주일 만에 1만여명 참여

백기완·이소선 등 "세상은 좀 더 나아져야 합니다"

"내 나이 80살에 이런 일은 처음 봤다."

그 역시 평온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은 아니었다. '금쪽같던' 아들이 제 손으로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죽는 것도 보았다. 아들의 유언에 따라 서슬 퍼렇던 군사 독재 시절에 밑바닥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 쓰면서 온갖 고초도 당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얘기다. 그런데도 "내 평생에 지금 같은 일은 처음"이란다.

2008년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얘기였다. 2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만인선언, 만인행동' 기자 회견에서 이소선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철탑에 올라가고, 90일 넘게 단식을 하고, 한강 다리에 매달리고, 여의도 한복판에서 1년 가까이 노숙 농성을 하는데도, '힘 있는' 분들은 좀처럼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늘에 대한 얘기였다.

서울역 앞 철탑농성을 시작하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KTX 승무원, 가만히 있어도 힘겨운 한 여름날 90일 넘게 단식을 하며 "죽는 것 빼곤 다 해 봤다"던 기륭전자 노동자, "남들에겐 '비정규직의 상징'일지 몰라도 내 삶은 뭐냐"고 묻는 이랜드 아줌마들.

"이들의 싸움은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는 1만349명의 선언은 그들의 외로운 목소리에 대한 위로였고,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또한 "비정규직이 횡행하는 사회는 결국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안전하지 않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앞날로 향할 것이다"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가운데), 이소선 여사(오른쪽), 박순경 이대 명예교수(왼쪽) 등 사회 원로와 각계 대표가 참석해 23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만인선언, 만인행동을 선포했다. ⓒ프레시안

비정규직 문제,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5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함께 진행된 서명 운동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비정규직은 구조적 노동착취의 전형이며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반인간적인 제도"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들어볼 수 없었던 고용 형태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너무나 당연한 듯이 사회에 침투해 들어왔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는 미래를 박탈당한 채 노예와 다름 없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는 수백만 촛불 민심에 귀를 닫았듯 수백, 수천 일을 싸우고 있는 비정규 장기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과 이들이 대표하는 890만 비정규직들의 미래와 소망에 귀를 닫고 있다"며 "이러한 일터와 삶터에서의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행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귀 닫은' 정부를 향해 함께 외쳐달라고 호소했다. "'일터의 광우병'인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일에 국민 모두가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온-오프라인 오가며 구체적 실천으로…"비정규 문제에 새 국면이 열린다"

단지 말로만의 연대가 아니라 내 몸을 움직여 함께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1일 온라인에서 진행된 '블로그 행동의 날'과 22일 벌어진 각 사업장의 회사 홈페이지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온라인 수다의 날'은 바로 그런 다짐의 실천이었다.

만인선언, 만인행동의 날이었던 23일에는 청와대와 노동부 홈페이지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글을 남기는 운동도 벌어진다.

거리에서 직접 행동도 벌인다. 오후 4시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대회'에 이어 저녁 7시에는 청계광장에서 촛불 문화제도 열린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이 공기업 민영화 등의 영역으로 확대됐던 것처럼, '그들만의 문제'였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눈을 뜨고 있다는 얘기다.

시민들의 자발적 직접 행동이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라는 시민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청와대가 지금처럼 '법과 원칙'만을 얘기하며 외면할 수 있을까?
▲ 시민들이 직접 나서 비정규직 장기투쟁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 선언문' 전문

모든 인간에게는 노동의 결실을 누리며 미래를 꿈꾸고 개척할 권리가 있다.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기에, 이것은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 권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지고 있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들어볼 수 없었던 고용 형태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너무도 당연한 듯이 사회에 침투해 들어왔다. 그 그늘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은커녕 하루하루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모든 예비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의 공포라는 칼날 아래 떨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미래를 박탈당한 채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물신신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비정규직은 구조적 노동착취의 전형이며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반인간적 제도이다. 비정규직이 횡행하는 사회는 결국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안전하지 않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앞날로 향할 것이다. 비정규직 제도를 존속하는 것은 정신적·물질적으로 더욱 안정되고 풍요로워야 할 미래 세대의 꿈조차 훔치는 비도덕적이며 반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백만 촛불민심에 귀를 닫았듯 수백, 수천 일을 싸우고 있는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이들이 대표하는 890만 비정규직들의 미래와 소망에 귀를 닫고 있다. 상위 5%만을 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불필요한 언론장악 기도로 국민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획책하는 등 구시대적인 성장 드라이브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평범한 국민들의 선한 촛불을 공권력으로 짓밟으며 고소영, 강부자들만을 위한 정부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터와 삶터에서의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행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 지금 당장 '일터의 광우병인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일에 국민 모두가 나설 것을 요청하고, 결의한다. 모든 일터와 삶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런 범사회적 염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기륭전자, 코스콤, 이랜드, KTX-새마을호, GM대우비정규직 등 현재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전반의 문제를 하루 빨리 전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표시한다.

1. 비정규직을 모든 사업장과 사업 구조에서 전면 철폐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의 미래와 양심이 걸린 문제이며, 비정규직을 정당화하는 어떤 제도나 행동도 정당하지 않다.

1. 대한민국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성실하게 노동하는 국민의 안정과 미래를 보장하고, 사회의 민주적 화합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규탄과 퇴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 우리의 선언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다.

2008년 9월 23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일만 선언, 일만 행동' 참가자(10349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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