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3㎞ 정도 이동했던 것과 달리 이날 이동 구간은 길었다. 이는 전날 광치 나들목에서 순례를 마쳤지만, 그곳의 좁은 가변차로, 고가차로, 급커브 등이 순례를 하기에 위험했기 때문에 500m를 차량으로 이동해 광치동에서 출발한데다가, 춘향터널도 200m 전에서 차량으로 이동하고, 터널 200m 후방에서 다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날 순례단이 지나간 남원-전주 간 17번 국도는 주로 대형 화물차가 지나다니는 구간이었다. 순례단은 "오체투지 때문에 땅에 몸을 밀착할 때마다 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찔한 착각이 들어 몸이 움츠러들었다"고 말했다.
차도의 굉음에도 명상하는 두 성직자…"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하지만,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그 와중에도 휴식시간에 고요히 앉아 명상을 했다. 이 모습에 순례단은 "법정 스님의 '설해목(雪害木)'이란 글이 생각난다"며 "부드럽게 눈을 지그시 감고 고요히 명상을 하는 두 성직자의 모습에서 세상을 강하게 설득시키려 하지 않아도 우리의 잘못된 마음을 이내 항복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설해목'을 보면 한 겨울 밤중의 산사에 흰 눈이 사뿐사뿐 부드럽게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쌓이다 보면 커다란 소나무들이 우지끈하고 부러지며 천둥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조용한 산사에서 노곤하게 자는 사람들이 놀라 깰 정도인데, 법정 스님은 이를 통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다. 오체투지 순례 길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길이 아닐까.
길 잃은 자벌레…"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순례단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가지만, 그곳에서 자연을 벗어나 길 잃은 생명을 만나기도 한다. 지난 18일 순례단은 도로에 말라 죽은 지렁이를 보며 인간이 만든 환경에 죽어가는 생명을 생각했다. 이날 순례단은 또 우연히 길 잃은 자벌레를 만났다.
순례단은 출발지인 광치동 태양원룸에서 100m를 이동한 후 휴식 시간에 아스팔트에서 갈팡질팡 길을 잃은 자벌레를 보았다. 이내 자벌레를 들어 풀 섶에 놓아줬지만, 이를 통해 순례단은 "그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며 "어쩌면 길 없는 길에서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오체투지 순례 길도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는 자벌레처럼 우리 사회의 가야 할 길을 찾는 우리 모두의 모습 같다"고 말했다.
"두 성직자의 고행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
이날도 많은 순례자들이 함께했다. 두 성직자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한 노인이 오체투지를 해 그 의지에 순례단원들이 감동하기도 하고, 진주와 광양 교구의 원불교 교무 몇 명이 과일과 물품을 주고 가기도 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10여 명이 오체투지에 참여하려고 왔으며, 지리산의 시인 이원규 씨는 진행팀 '명호' 씨를 대신해 이날 순례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원규 씨는 "두 성직자의 행보는 소신공양과 같다"며 "자신을 촛불처럼 불살라 누구를 설득하지 않아도 두 분의 고행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배종열 씨도 오체투지를 직접 하며 "평화와 생명이 넘치는 세상을 위해,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오체투지를 함께 하고 있다"며 "두 분 노력의 결실이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되돌아보는 단초가 됐으면 좋겠다, 정말 우리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오체투지 순례 20일째인 23일 현재 순례단은 오리정 휴게소에서 300m 떨어진 춘향 고개에서 시작해 17번 국도를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대정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도보순례 일정과 수칙은 '오체투지 온라인 카페'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
* 매주 일요일에 순례를 쉬는 관계로 지난 20일(순례 17일째)에 이어 22일에 다시 순례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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