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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규모 슬럼까지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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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규모 슬럼까지 만들 셈인가

[우석훈 칼럼]뉴타운과 그린벨트 해지, 분리의 정치학

지난 주는 세계금융이 숨 가쁘게 돌아갔고, 이명박 정부 역시 숨 가쁘게 건설자본을 위한 계획들을 숨가쁘게 토해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은 없는 듯하다. 그의 친척과 교회 장로 친구들의 주머니에 그래도 몇 푼 더 챙겨주는 것 외에는.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로 불거진 21세기 세계경제체계의 위기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대통령은 어차피 그래도 한탕 해서 식구들과 친구들 지갑을 불려줄 시간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쎄, 지금 늘어나는 지방의 미분양 사태를 생각하면, 주택공급론이야말로 심각한 '모럴 해저드'에 가까운데, 이렇게 해서 투기경제의 붕괴가 전면화된다고 하면, 이 정권은 더 이상 통치불가능한 상태로 들어갈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국민경제의 기조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그 친구들이므로, 이걸 지금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제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여전히 대통령은 경제는 심리라고 보는 것 같고, 'MB노믹스'라고 스스로들 부르고 싶어하는 그 경제학은, 내 눈에는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신학의 한 종류인 것 같다.

지금 한국 정부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한국은 상당히 양극화가 진행된 상태라서, 아무리 주택을 싸게 공급을 한다고 해도 살 수 있는 '유효한 수요자' 즉 적절한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88만원 세대' 중에 5년 내에 아파트를 구매하거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 이명박 정부의 그린벨트 해지 정책은 도시 빈민의 분리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분리정책은 대규모 슬럼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키베라 슬럼가. ⓒ뉴시스

그런 상태에서 정부가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급은 늘리고, 규제는 줄인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해서 임대하면 될 것 아니냐는 메시지이다. 결국 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고, 그래서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중산층까지를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상위 5% 미만의 돈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할 수 있게 해줄 것인가가, 지난 주에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정책의 본질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서브 프라임보다 더 무서운 투기 장세로 국민경제를 몰아넣지 않아서 안달이 난 형국이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미국은 보유세가 1% 정도 되기 때문에 개인들이 괜히 투기적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개개인에게 위험이 분산되어 있으므로 지금 이 정도인데, 지금 이명박 정부가 열어보려고 하는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은 시늉만 내고 있는 보유세를 더 낮추고, 다가구 주택보유의 투기 장세라서 한국 경제가 더 취약해진다. 미국과는 다르다? 물론 다른데, 좋은 방향으로 다른 게 아니라, 위험한 방향으로 다르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 정도의 상황은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지난 6개월 동안의 일관된 흐름을 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렇게만 하면 집 없는 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으니까 살짝 끼워놓은 것이 '그린벨트 해지'라는 것이다. 이 정책은 부자들에게 여러 집을 보유하게 해주는 일관된 정책에 대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린벨트를 왜 보호해야 하는가? 우파들은 그린벨트를 '그린하우스 벨트'라고 부른다. 어차피 망가진 곳이니까, 그냥 밀어버리는 편이 낫지 않은가? 이것은 생태계의 '수용능력'이라는 중요한 개념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발상인데, 그린벨트는 비록 그것이 그린하우스 형태로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한정된 공간에 지나치게 인구와 교통 그리고 생태적 부하가 밀집되지 않는 중간 안전판 노릇을 해준다.

어쨌든 박정희가 했던 여러 가지 정책 중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이 그린벨트를 이명박이 결국 없앤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데, 여기에는 생태적 문제 외에도 도시빈민과 주거복지라는, 약간 오래된 논쟁이 하나 더 개입한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도시가 생겨나면 자연스럽게 도시 빈민들이 생겨난다. 이 도시 빈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삶을 보장할 것인가가 바로 국가의 실력인데, 이들에게 가장 큰 복지는 의료와 상하수도, 그리고 일거리 중에서도 역시 주거복지라고 할 수 있다. 하여간 어쨌든 먹고 살겠다고 도시로 몰려온 사람들이 잠은 자게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문제는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모든 나라가 골머리를 앓던 문제였다.

철학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서 같이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문화적으로도 섞이지 못할 것, 아예 분리시켜 버릴까? 이것은 주거정책의 중요한 철학적 질문인데, 지금 선진국들은 오래된 시행착오 끝에 분리시키지 않는 편이 사회적 부작용을 줄인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전통적으로 부자와 도시빈민을 완벽하게 분리시키지 않는 방향이 기본 방향이었다. 우리의 60~70년대를 생각해보자. 부자들은 2층 집에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1층 집에 살았다. 그리고 더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국민주택에 세를 들어 살았다. 집의 양식으로는 분리되어 있을지 몰라도, 공간적으로 완전한 분리 정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달동네라는 것이 있었지만, 이를 정책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이 주거의 분리정책을 적극 도입하게 된 것은, 불행히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기였다. '뉴 타운'은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을 분리시키는 공간 분리정책이고, 이미 은평 뉴타운과 같이, 뉴타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원주민 재정착률 같은 수치로 충분히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그린벨트를 풀어서, 이곳을 가난한 사람들의 임대주택 단지로 하자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 시기만 해도 아직 국민들이 환경 의식 같은 게 좀 남아있어서 전면적 해제가 불가능했었다.

뉴타운과 그린벨트 해제는, 사실 공간 분리라는 쌍둥이 정책이다. 부자들은 새로 조성한 뉴타운에서 살게 하고, 여기서 입주할 수 없어서 사실상 쫓겨난 도시빈민들은 시의 외곽에 있는 그린벨트로 보내겠다는, 역사적으로 부작용이 상당히 심할 분리정책이다.

70~80년대 프랑스에서 추진했던 임대주택 정책은 상당히 우수한 사회복지 정책이기는 했었는데, 그 치명적 약점이 바로 이 '분리정책'에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지자체에서 덜 신경을 쓰게 되고, 병원이나 학교 시설 같은 공공시설은 물론 교통수단도 취약해지게 된다.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 시절 상당히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공공 임대주택단지가 슬럼화되었고, 열악한 곳에서는 외국인 2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면서, 슬럼을 거쳐 우범지대화되었다.

사르코지 정권이 지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 중의 하나가 '외곽지 계획(Plan Banlieue)라는 것이다. 이런 슬럼지대에 어떻게 대중교통을 제대로 만들어주고, 학교와 공공시설들을 설치해줄 것인가가 지금 우파 프랑스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이다.

그린벨트를 열어서 그곳에 도시빈민들의 집단 거주지를 만들겠다는 것은, 뉴타운과 쌍둥이 정책인 공간 분리정책인데, 도시생태라는 관점의 시각과는 상관없이 도시빈민 정책의 근간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시각 하나가 지금 논의에서 빠져 있다.
▲ 부유층 주거지의 상징이 된 서울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입구. 이명박 정부의 주택 정책은 '두 개의 대한민국'을 지향하는가. ⓒ프레시안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산기슭으로 몰아내자라는 이 정책은, 한국에서 도시빈민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예 부자들이 뉴타운에서 땅장사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임대주택이라는 형태로 주거권이라도 확보해주자는 말이 그럴듯해 보여도, 10년, 20년 후, 이것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치안은 물론 공적인 복지 장치가 전혀 움직이지 않을 거대한 슬럼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런 정책적 실패 뒤에 아직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분리정책에서 비분리 정책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문화적으로 어렵고,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부자들과 도시빈민들이 같은 지구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이 슬럼을 막고, 또 사회적 통합과 함께 도시 빈민들의 복지를 더 값싸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정책적 판단의 추세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부자들의 정부라도, 지금 이렇게 공간 분리정책을 전면화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상식을 가진 교양인이 박수치고 찬성해서는 안 된다. 도시빈민의 주거복지라는 미명하에 분리정책을 추진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그보다 훨씬 많은 부작용이 생겨난다. 힘들어도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껴안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훨씬 더 좋은 나라이고, 여기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 정도는 한국 정도의 민도라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지금 귀에 달다고 해서 뉴타운-그린벨트, 이런 쌍둥이 분리정책을 추진하면, 더 이상 경제 상층부와 경제 하층부가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국민들이 공간적으로 분리된 중남미형으로 더 빠르게 전환될 것이다. 한국은 드물게 아직 슬럼이 없는 나라이다. 역대로 이명박처럼 공격적인 분리정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것이 아직 한국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볼 수 있는 기반이었던 것이 아닌가?

혹시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마이크 데이비스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돌베개, 2007년)를 권해드리고 싶다. 쉽고 재밌는데,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열어 보일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지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최소한 상식있는 교양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이다.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이들을 공간적으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 말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상식적 교양인을 위한 도시빈민에 대한 기본 시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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