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MB정부 정책 각론에 '악마'가 숨어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MB정부 정책 각론에 '악마'가 숨어 있다"

[우석훈 칼럼]50조 광역발전사업과 MB식 밀실행정

한국의 경제정책의 기본틀을 결정하는 사람이 기획재정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인 경우가 많다.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지방의 토호들이 이 기본 틀을 정하고,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 중앙정부의 관료들과 국회의원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지방토호들의 숙원사업이 '한국형 뉴딜' 혹은 지난 주에 발표된 5+2 광역발전사업이나 '선도형 국책사업'과 같은 형태로 형상화된다.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경제정책은 그렇게 움직였고, 경제가 좋으면 좋은대로 국책사업을, 경제가 나쁘면 또 나쁘다고 국책사업을 만들어냈다. 지난 노무현 경제 때에는 최소한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지방토호들이 경제부총리를 움직이게 해서 자기네 땅 앞으로 도로가 관통하게 하고, 그 사업에 자신들이 사장이거나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건설회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런 흐름으로 보면, 민주주의냐, 민주주의가 아니냐, 이런 질문들은 다 귀신 숫자놀음이다. 좀 투박하게 나누면, 호남의 토호들은 민주당을 밀고, 영남의 토호들은 한나라당을 밀어준다. 이 흐름 속에서 수도권이나 충청도 같은 곳들의 지방토호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이리저리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실체가 아닌가? 새만금이 그런 사업이고, 지금은 한풀 꺾인 듯이 잠복기를 지나는 대운하가 그런 사업이고, 경기도를 발전시키겠다는 김문수의 사업들도 사실은 튼튼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뒷받침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같다.
▲ 이명박 정부는 50조원 규모의 광역발전 계획에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슬며시 끼워넣었다. 사진은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주민들. ⓒ제주참여환경연대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야말로 철저하게 이런 토호들의 땅값 올리기가 만들어낸 정권 아닐까? 이렇게 보면, 다소 투박하기는 해도, 어쩐지 민주주의가 조금은 발전했을 것 같은 야릇한 프레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작은 눈 하나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기다리다 지친 이명박 정권에서는 결국 이 토호들의 입에 그대로 집어넣어줄 50조 원이라는 틀을 새로이 제시했는데, 염치없게도 전 정권에서 이미 한 번 써먹은 지방 토호용 틀인 균형발전을 다시 썼다. 물론 재활용은 자연보호의 첫 출발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쇼일 뿐인 종합대책이라도, 최소한 겉 페이지만큼은 새로 만드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지난 정권의 토호용 국책사업의 첫 페이지까지 그대로 가져다 쓰고, 여기에 살짝 속지 몇 장을 바꾸는 낡은 수법을 썼다.

50조든, 100조든, 어차피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이런 계획이 없다고 해서 토호들을 위해서 만들어줄 지방도로와 고속도로를 안 만들 것도 아니고, 새만금을 새롭게 포장한다고 해서 아직 가능한 '해수유통'이라는 기술적 대안을 선택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차피 이 돈은 재정사업이고 정상적인 건교부 사업으로 다 할 일들이고, 눈에 띄든, 눈에 띄지 않든, 매년 조금씩 하는 그 일을, 그냥 모아다가 새롭게 보고서 하나 만들어낸 언론 플레이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신경을 쓰든, 신경을 쓰지 않든, 노무현 정권도 이런 일을 계속 했고, 그 연장선 위에서 이명박 정권도 하던 일들을 계속하는 것이 이 일의 본질이다. 이런 '광역발전 계획'이 없다면 새만금을 지금이라도 해수 유통을 통해서 살려줄 것인가?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이미 환율 방어한다고 알려진 금년 상반기에만 벌써 20조 원 이상 달러를 날려먹은 이 정권에서, 5년에 걸쳐 매년 10조 원씩 쓴다고, 더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국토생태와 지역경제를 지킬 힘을 잃어버린 지역에서, 새롭게 "이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목소리가 생겨날 것도 아닌 듯 싶다. 그야말로, "니 맘대로 하세요!"에 가깝다. 새삼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는가?

그래도 짚어야 할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 자신의 지지기반의 하나였던 건설업계의 고충을 들어줄 정도의 여유도 없이, 시급하게 지방토호들의 정부 지지가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금년말 혹은 내년 초에는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토호들을 위해서 뭔가 근사한 것을 꺼내들었을 것일텐데, 지금은 시기가 정말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지금 꺼내든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매우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노무현 정권 중후반기에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대충 허가해주었던 신규 아파트들이 지금 미분양 사태를 심하게 겪고 있는 중이며, 이게 적절한 선에서 조절되지 않으면 곧 1/4 정도의 신규 아파트가 미분양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견되는 이 상황에서, 건설업 연착륙과 조정과 같은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정책 보다는 '강공 건설책'으로 간다는 것이 건설산업에는 상당히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노가다"라는 노가다 경제를 추진한다고 해도, 일단 발등의 불부터 좀 끄고, 산업 연착륙 정책에 대한 대책을 보여주고, 신규 건설물량에 대한 발표를 하는 것이 부드러운 정책 운용 기법인데, 이걸 이명박 정부가 지금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주목해볼 일이다.

이론적으로 얘기하면 과잉 공급에 의한 버블조정 국면에 엄청난 신규 공급을 늘린다고 하는 것은, 건설산업 입장으로 보면 "죽겠다고 하니 더 죽어라"하는 셈인데, 어쨌든 한국에서는 무조건, 무조건 건설만 하겠다고 하면 어차피 지방의 토호들이 "이제 돈 좀 풀리겠구나"라고 하면서 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들에게 정권을 지지하라고 알아서들 설득해줄 것 아닌가? 추석 직전에 나온 청와대의 이 얕은 노림수의 실체는 이것이다. 10년 이상 진행될 사업을 이렇게 추석 대책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으냐? 지금 이명박 정권은 소위 '금메달 반짝 효과'도 지난 마당에, 또 다른 연명할 대책이 급히 필요한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미분양에 의한 실물에서의 부담은 부담대로 쌓이면서, 새롭게 '중점 국책사업'에 지정될 지역에서의 땅투기는 또 땅투기대로 진행된다. 정권 한 번 하고 말 것이냐? 지금 이명박 정권이 선택한 것은, 한나라당의 장기적 정치계획과는 또 좀 다른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부동산발 실물경제의 위기를 키울대로 키워보겠다는 것인데, 1~2년 후에 그 정치적 부담을 도대체 어떻게 받을 것인가? 이렇게 해서 국민경제가 버블 폭탄으로 한발씩 차분하게 걸어가는 중이다.

50조 원짜리 이 정부 대책에서 실제로 의미가 있고 새로운 불씨가 되는 사업은 딱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50조 원의 규모에 사람들의 눈이 홀려 있는 동안에 슬쩍 끼워놓은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사업이다. 이 사업은 아직 예비타당성 검토는 물론 환경영향성 평가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과연 미국의 MD 계획에 맞추어 제주도를 해군기지 및 군사도시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리고 그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대안이 없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사업이다. 그런데 이걸 50조짜리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끼워넣었는데, '서귀포 크루즈항 사업'이라고 발표된 사업이 흔히들 미해군용 미사일 기지의 전초사업으로 의심하고 있는 바로 그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사업이다. 이런 엄청난 일을 크루즈항 사업이라고 슬쩍 끼워 넣는 이 밀실행정의 만행, 그것이 50조짜리 광역사업이 실제로 의미있게 새로 만들어진 정책적 결정이다.

아니, 이런 엄청난 일을, "50조원을 투자해, 이제 우리는 잘 살게 됩니다"라고, 슬쩍 묻어가면서 결정해도 좋은 일인가? 사실, 하나하나 사업들을 살펴보면, 지역에서 수많은 논의와 협의를 통해서 결정해야 할 일들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기정사실화'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민주주의? 이명박 정권에게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좀 너무 사치스러운 주문일지도 모르지만, 해군기지 건설 정도의 사건은, 국민들이 같이 논의해보고, 어쨌든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정책 최적화에 대한 시도 같은 것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경기부양책으로 국민경제가 버블 붕괴로 서서히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뉴시스

강만수 장관은 50조원에, 여기에 또 기업들의 민자를 연결시켜서, 100조 원 이상 되는 사업으로 하겠다고 했다. 규모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이, 이런 종합대책일수록 사업의 내부 사항 하나하나를 지역주민과 이해당사자 그리고 국민들이 천천히 대화하고, 협의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면서 해야 한다. 그러나 이걸 그냥 토호들이 어차피 지지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불도저 방식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현재 이미 지역사회에서 첨예한 갈등의 대상이 된 해군기지 사업 같은 것도 슬쩍 끼워 넣으면서 "당신들도 박수치지 않았는가"라고 하는 기만적 정책결정은, 왜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가의 한 단면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일이다. 제발 말 좀 하고, 상의도 좀 하고, 협의도 좀 하시라. 50조짜리라고 이것저것 다 집어넣고, 국민들에게 툭 던져놓고 박수치라고 협박하지만 말고.

국제협상에서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는 경구가 있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이명박 정권이 하는 일이야말로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50조짜리 광역발전계획에 숨어있는 악마들, 그것은 한국 경제의 적이며, 민주주의의 적이기도 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