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대한민국이 GNP가 낮은 개발도상국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국근대화의 기치 아래 단순한 즐거움마저 유예해야 했던 군부독재의 철권통치 속에서 대형 음악 축제라든가, 해외 음악 스타의 내한 공연 같은 것은 사치와 낭비의 퇴폐풍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비로소 축제의 시대가 되었다고, 너무 축제가 많은 것이 아니냐고 했던 김대중 정권 시기에도 사실 대형 대중음악 축제라곤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정도가 전부였다. 록 담론의 과잉부흥을 끼고 한국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자유콘서트의 영광은 너무 짧았고, 트라이포트의 야심 찬 시도는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 잔인하게 씻겨져야 했던 것이 불과 10년 전이었다.
그런데 2008년, 이게 어찌된 일일까? 관록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 10년을 맞이하게 되고, 트라이포트를 계승한 펜타포트가 상종가를 치고 있으며, 극소수 매니아들의 장르였던 재즈 음악의 페스티벌이 지자체의 공식 사업으로 수년째 열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두천과 부산의 '형님스러운' 록 페스티벌이 건재하고 '언니스러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 여성 음악팬들의 필수 가을소풍 코스로 공인받게 되었다. 저주받은 땅이었던 난지도가 거대한 그루브의 난장이 되었으며, 경기도 어디에 붙어있는 줄도 몰랐던 광명시가 음악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전무후무한 음악영화축제가 수년째 호황 속에서 진행되기까지 하고 있다. 실로 궁핍했던 지난날은 이제 추억 속에 묻어두고 그저 영광된 미래를 즐기기만 하면 될 만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대가 되었다고 확신해도 좋은 것일까?
최근 한국 대중음악 음반시장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이러한 음악 페스티벌의 호황은 실로 기이하기까지 하다. 음반이 아니라 음원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다고 한들 이러한 음악 페스티벌의 번창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다만 몇 개의 가설이다.
예를 들어 음악을 소비하는 매체가 LP에서 CD로 바뀌고, CD에서 MP3로 바뀌면서 음악에 대한 태도 역시 바뀐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음악을 듣는 일이 더 이상 골방에서 진지하게 음악적 계보를 외우고 연주의 아름다움에 취해 눈물 흘리며 듣는 지적 순례가 아니라 가볍게 다운 받아 소비하는 놀이가 되어버린 지금, 단순히 듣는다는 수동적 행위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의 음악 체험이 더 큰 판의 광장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저 귀로만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자신의 스타를 눈앞에서 보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블로그에 올리며 일련의 행위 자체를 인터넷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집단적 놀이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대단위로 사람들이 모이는 행위 자체를 즐기며 취향의 연대감으로 함께 놀 줄 알게 된 음악 소비 방식의 변화는 문화비 지출에 거침이 없는 2-30대의 소비 행태와 맞물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을 확장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버 그라운드 음악씬의 급속한 10대 중심 재편은 2-30대 음악팬들을 더욱 한국 인디씬이나 해외 음악씬으로 경도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고, 이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후지록이나 썸머소닉 같은 축제를 직접 찾아가거나 최근 2-3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내한공연의 거침없는 주소비층이 됨으로써 대형 음악페스티벌의 흥행을 보장하는 안전판과도 같은 역할을 담지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보다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근원적 열망의 확장은 한국에서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여러 내한공연을 거뜬히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음악 소비층의 타깃을 분명히 하며 여러 장르의 다른 축제가 분화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냈다. 재즈 페스티벌의 안착과 월드 뮤직 축제의 등장은 이러한 열성적인 팬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지 음악페스티벌의 순항만은 아니다. 대형 음악페스티벌의 확장 가능성을 엿보이며 기대를 모았던 썸머브리즈페스티벌의 돌연한 취소와 몇몇 페스티벌의 안일한 기획, 그리고 다른 축제와 확연히 비교되는 낮은 국가 주도성은 음악 페스티벌의 미래를 결코 낙관하지 못하게 만드는 냉정한 적신호이다.
사실 음악페스티벌에 와서 열광하는 관객들 가운데 몇 명이나 그 뮤지션의 음반을 샀겠냐는 냉소적인 질문처럼 음악을 다운받아 소비할 뿐, 음반을 사는 일이 뮤지션에 대한 지원과 투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 음악 팬들의 근시안적 시각은 세계 최고급 뮤지션들의 내한공연과 더 다양한 음악페스티벌이 이뤄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당대의 트렌드가 되는 일부 장르에만 냄비 끓듯 몰려드는 얄팍한 한국 대중음악 팬덤 문화로는 롤링 스톤즈 같은 노장 록 밴드들의 내한공연이나 비주류 장르 중심의 페스티벌 같은 것은 결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 자체의 규모가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현실에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수용규모의 포화점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환상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썸머브리즈 페스티벌의 취소는 어쩌면 그 냉정한 현실의 증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약속한 공연을 일단 뚜껑부터 열었다가 흥행이 안 되면 취소해버리는 일부 기획사들의 얍삽한 '간보기' 행태 역시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대중음악씬의 발전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몇몇 페스티벌의 안일한 기획 역시 외화내빈의 허약체력을 만드는 주범이다. 음악 페스티벌이 단지 내한공연을 중심으로 한 한국 뮤지션들의 들러리서기 무대라면 그것은 기획사의 돈벌이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씬의 발전을 고려한 사려 깊은 기획과 책임감 있는 진행, 음악팬들의 적극적인 팬덤문화가 함께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2008년 음악페스티벌의 호황은 반짝 경기의 추억으로 끝나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더더욱 영화 축제나 특산물 축제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국가적 지원은 대중음악의 산업적 효능과 문화적 가치에 둔감한 관료적 마인드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영세한 민간 자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낙관과 기대가 아니라 자라섬, 쌈지, 제천 같은 의미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몇몇 페스티벌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이며, 작지만 개성 있는 페스티벌의 장르적, 지역적 산개(散開)와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국가와 자본, 기획자, 매개자, 평론가, 팬층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과 소통이다. 파이가 커지지도 않았는데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10년 중도우파 정치가 무너지는 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면 3년여의 핑크 무드가 무너지는 시간은 훨씬 더 짧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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