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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허드렛일 도맡아 했는데, 나가라니요?"

[현장]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눈물의 삭발식'

"밥하라면 밥하고, 빨래하라면 빨래하고, 연탄 갈라면 연탄 갈았습니다. 그러길 10년째, 그런데 이젠 직권면직, 떠나라니요?"

경찰서에서 사무보조, 생활보조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오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들이 머리를 깎았다. 길게는 10년 넘게 윗 사람 눈치보며, 무시당하며 일해왔지만, 오는 30일을 끝으로 직권면직을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5명의 삭발**

겨울 바람이 뼛속을 파고드는 22일 오후 국회 앞 방송차량으로 만들어진 무대위에 5명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들이 '직권면직 철회'라고 적힌 천을 몸에 두르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들 뒤로는 5명의 바리깡을 든 동료들이 서 있고, 앞에는 40명 남짓한 동료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조합원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기도 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해 입을 막았다. 가려진 입 사이로 누르고 누른 울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과 함께 자리를 했던 전국공무원노조와 금강화섬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결국 울음이 터져나왔다.

바리깡은 돌고, 머리카락은 땅으로 흘러내렸다. 대책없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처럼 이들 모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기저기서 통곡하는 울음소리,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취재 기자들 중에도 아픈 마음을 감추지 못해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도 보였다.

***"나가라는 사람, 먼저 내보내겠다"**

20여분 동안 각종 운동가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5인의 삭발식은 끝났다. 울음은 잦아들고 이들의 눈에는 말그대로 결연한 눈빛이 감돌았다. 그들의 마음가짐은 삭발 후 발언에서 다시금 확인됐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원 중 유일한 남성인 유금영 전북지부 총무는 "이번 계기(삭발)로 부당한 직권면직에 대한 강고한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고, 가장 많은 눈물을 보였던 문정연 부위원장은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자는 머리깎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삭발을 할지 꿈에도 생각못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싸울지, 어떤 위험이 있을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기 위한 상징의식이 나에게 필요했다.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숙 부위원장은 "머리가 아까워서, 서러워서 눈물을 흘린게 아니다"며 "민주노동당 당사 4~5층을 오르내리며 정부와 경찰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 함께 해준 동지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장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김향실 전북지부장은 "날씨가 추운데, 머리 마저 깎으니까 시원하고 좋다"며 너스레를 떨며 "단돈 3백만원에 나가라니 어찌 머리를 깎지 않을 수 있겠냐. 나가라는 사람 먼저 내보내겠다"고 다부진 결의를 보였다.

끝으로 김은미 강원지부장은 "보다 빨리 정부와 경찰청의 부당한 직권면직에 맞서 싸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같이 서울에 올라온 동지들이 경찰청의 갖은 회유에 괴로워하며 고향으로 내려갈 때, 조기퇴직서에 서명을 할 때 피눈물이 났다"고 아픈 심정을 토로했다.

***집회장 주변에는 사복경찰이 서성이고...**

이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무대 앞에 앉아있던 노조원들은 눈물을 닦으며,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치며 호응하고 결의를 다졌다. 이러는 와중에도 사복 경찰들은 집회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어 고용직 노조와 함께 연대하고 있는 공공연맹 간부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신분확인을 요청하며 실갱이를 벌이기도 했다.

집회와시위에관한법에 따르면, 허가된 집회장에는 경찰은 집회 추최측의 허가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는 다수의 정보과 형사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됐다.

윤춘호 공공연맹 선전차장은 "경찰청고용직 공무원들과 같이 일하던 각 지역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전국에서 함께 따라 올라온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수시로 전화해서 회유하는 것은 물론, 노조원들이 이런 현장에 나올 경우에는 직접 대면하며 압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복경찰들이 항상 따라다니니까 조합원들이 심리적 스트레스가 매우 커 21일에는 병원에 집단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연들**

경찰고용직공무원노조는 지난해부터 1천여명에 달하는 직권면직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7월경 결성됐다. 노조 경험이 전무했던 이들은 온라인상에 '다음 까페'를 만들어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전국 고용직 공무원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직권면직 최종 시한이 12월 말로 성큼 다가오자 상경을 결의했고, 현재 민주노동당 당사에서 3일째 거점농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단식 2일째인 최혜순 노조 위원장은 이날 발언에서 "경철청은 우리를 너무 우습게 봤다. 그 더러운 조직에서 십여년을 견뎌낸 독한 사람들이다. 직권면직의 칼날에서 물러설 수 있겠는가"라며 " 최기문 경찰청장이 나와 무릎을 꿇고 빌 때가지 물러서지 않겠다. 직권면직 철회되고 고용 보장 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경찰고용직 노조는 지난 21일에는 그간 경찰서에서 당했던 부당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이 발표한 사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1994년부터 경찰서 경리계에서 근무하다 직권면직을 3개월 앞두고 지난 9월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입니다. 올해 경리계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같은 부서에 있는 모 경장이 머리뒤통수를 때리며 "사람을 보면 인사도 못하냐 이년아!"라며 "이년은 시키는 것도 안해"라는 등 욕설을 했습니다. 저는 "결혼 했고, 애도 있는데 욕하지 말라"라고 하니 그 경장은 "너만 결혼했냐"며 계속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만 있는 자리가 아니고 저보다 나이 어린 여경이 있었기에 더 비참했습니다.

***사례 2**
경찰서에 귀빈들이 오면 청장과 과장의 식사 시중을 들었습니다. 경찰관들이 고용직이 마치 자신들의 몸종인냥 부리는 것을 그대로 당하며 여성으로서 수치감과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여성차별이고 신분차별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사례 3**
남편 될 사람은 경찰직원입니다. 그의 형님도 경찰입니다. 이번에 승진 심사자 명단에 나란히 올랐는데 어느날 남편될 사람이 사정을 하더군요. 제가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승진 심사 명단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한낱 고용직이 생존권을 찾겠다고 투쟁하는 것이 그들의 경찰인생에 그렇게 큰 위협을 줄 정도로 잘못한 일입니까?

***사례 4**
철모르던 어린 나이에 파출소에서부터 근무했습니다. 경찰들을 위해 시장 보고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었습니다. 김치 담고, 화장실 청소, 이불빨래, 관사 청소는 모두 제 일이었습니다. 경찰이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을 끓이는 것이 당연히 제 일인 줄 알고 참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취하는 직원 집 청소와 연탄불을 아침저녁으로 갈았고, 사적인 심부름도 했습니다. 이게 정말 제 업무였을까요?

이런 애달픈 사연이 있었기에 여느 삭발식과 달리 눈물이 많은 삭발식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오는 30일까지 조기퇴직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31일부로 직권면직 절차를 밟게된다. 이번 싸움에 함께 하고 있는 이상훈 공공연맹 비정규실장은 "노조활동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머리까지 깎으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부의 양극화, 빈곤층 확대로 인해 이제 운동가와 일반 시민의 구별이 사라진 것"이라며 "경찰청장이 이제 이들의 절박한 요구에 답을 할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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