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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서툰' 실험, 언제까지 두고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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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서툰' 실험, 언제까지 두고볼 건가?"

[김상수 칼럼] 위기의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2008년 여름은 갔다.

연일 30도가 넘는 지열에 아스팔트가 푹푹 패이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 가운데서도 경찰의 물대포와 몽둥이에 맞서던 시민들은 이제 '법치'를 들먹이는 이명박을 주시하면서 최대한 인내하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그저 '떼 지어 살면서' 부당한 권력에 복종하며, 거품 같은 안정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시민들의 '촛불' 저항은 이제 깊이 내면화되기 시작했고 일상에서부터 점차 구체적인 불복종 실천 운동으로 넓혀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의 심지는, 곧 굳은 불화살이 되어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어 표적을 맞힐 준비를 한다. 이는 폭압에 반동(反動)해온 인류의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어김없는 반응이자 작용이고 성질((性質)이다. 자연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오늘의 사태에 한숨 쉬며 포기하거나 절망할 이유도 없고, 갖가지 저열한 방법으로 강제한다하여도 억지로 수그러질 수 있는 '성질'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민주주의 '성질'이란 본디 인류에 선천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답이다. 시간을 내용으로 채우는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의 강도에 따라 시간은 유동적일 뿐이다.

가을이다.
▲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의 심지는, 곧 굳은 불화살이 되어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어 표적을 맞힐 준비를 한다." ⓒ프레시안

2008년 여름에 경험한 혹독한 민주주의는 가을의 햇살 속에서 안으로 영글어가고 있다. 가을을 맞는 우리 시민들은 보다 더 '속이 찬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20년 전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에 따른 반작용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민주주의를 향한 본래적 '성질'이란, 격(格)을 통해, 깨달음에 의해, 민주주의 그 본래적 가치에 맞게 현실에서 제대로 다듬어낼 것을 요구한다. 법이나 제도의 정비도 물론이지만 먼저는 주권시민으로의 철저한 자각이 우선이다.

이는 피를 흘리며 찾은 민주주의를 대통령을 뽑기만 하고 책임을 묻지 않거나, 대통령을 잘못 뽑고도 대통령이란 자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한다면, 이런 식의 민주주의는 죽은 민주주의고 '격'이 있는 민주주의라 말할 수 없다. '성질'만 있고 '격'이 없는 민주주의란 오늘 현실에서 보듯 위험한 민주주의이고 진짜로 민주주의라 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대체 무엇이 어떻게 지난 시간에 막 굴러왔기에 오늘 이 지경으로 까지 우리가 사는 사회국가가 망쳐지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실존의 위기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 역사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계속 만연되었고 그 결과 오늘과 같은 사회적 파국을 초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사회적 파국의 정체는 곧 우리 사회 위기의 본질이 오직 경제만의 위기가 아님을 나는 거듭해서 말한다.

보다 깊고 지속적인 위기는 사회의 위기이고 문화의 위기이며, 인간의 위기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문화의 위기, 인간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는 실존의 위기이며 경제위기 또한 이것에서 파생했고 경제의 가치인 경세(經世)의 제민(濟民)까지 더한층 어려움을 맞고 있는 실정임을 또 한번 더 강조하고자 한다.

비정상적인 욕망을 품고 돌진하는 기이하고 이상한 인물의 등장

이런 위기, 가치관과 정신의 혼돈, 이런 어처구니없는 위기상황의 연속에서 그 위기의 틈새를 비집고 보수로 가장한 뿌리 뽑힌 기득권층은 '경제를 인질'로 이명박을 내세워, 경제를 살릴 구세주로 국민 대중을 현혹하고 착각하게 만들어,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이란 지위까지 차지하게 만드는 역사적 기현상을 빚었다.

이런 가속적인 위기에서 급기야는 비정상적인 욕망을 품고 돌진하는 기이하고 이상한 인물인 이명박과 국민 일반은 대면하게 됐다. 전혀 견제되지 않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경제 살리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사회 정의와 경제원칙, 외교 원칙까지 일시에 무너뜨려 국가를 대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지게 하면서, 안 그래도 고통스런 남북간 지역간 계층간 갈등에다 급기야는 불교계까지 '헌법파괴중지 불교차별 종식' 서원을 하기에 이르게 했다. 온통 국민을 분열과 이간으로 여론을 가공하고,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으로 위난의 사태를 무조건 모면하겠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행위들로 인해 가일층 국가 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를 뽑은 유권자의 선택은 너무나 어리석은 결과로 참담한 시태를 맞았다.

지난 대선 중에 보았듯이 갖가지 의혹으로 일관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태어난 출신조차 불분명하게 자주 말을 바꾼 혼란스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점에서 시민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명박은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책에서 자신의 이름자에 대해 말하기를, "모친이 환한 보름달이 치마폭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뒤 지은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태몽과 연관시켜 작명을 했든 어쨌든 간에 '명박'이란 이름은 당시 보통의 가정에서도 지을 수 있는 한국식 이름이 절대 아니다. 일본식 이름이다.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도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이명박은 일제시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스기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1941년 12월 7일 새벽에 있었고, 이명박은 그 직후에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막강한 미국 해군을 격파시켰다는 자신감에서 일본인들은 열광의 도가니로 일본 열도가 다 흔들릴 만큼 기고만장할 때다. 그때만 해도 일본에서 산 이명박의 부모 같은 사람들은 일본이 미국을 무릎 꿇게 했으니,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를 넘어 완전한 속지(屬地)가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게끔 되었다. 이명박의 부모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서 태어났던 형제들은 '상'자 돌림을, 일본에서 태어난 이명박은 일본식 이름인 '명박'으로 작명했고 '이'씨 성도 '월산'으로 바꾸었다.

(이 대통령의 출생지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자신의 출생지를 간접적으로 일본이라고 밝혔었다. 이 책에는 "이명박 전 시장의 선친(이충우)은 1935년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근교 목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일시 귀국해 결혼한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이 시장 부모는 여섯 남매를 낳아 키웠는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해 11월 오사카에서 짐을 꾸려 귀국했다. 그때 이 전 시장은 네 살이었다. 이후 그는 포항의 달동네, 서울 이태원의 판자촌 등을 전전하며 그 누구도 겪지 못한 가난과 힘든 세월을 극복해 나간다"고 기술돼 있다. 하지만 대선을 전후해 이 대통령의 출생지 문제가 논란이 되자 포털 등 인물검색사전에 '포항'으로 통일돼 표기됐다. <편집자>)

여기서 나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이름자나 출생에 대한 문제를 시비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국가 최고의 공인으로 그의 정체성과 근거를 묻는 것이다.

1941년 같은 시기에, 나라의 독립운동을 하면 처자식들이 헐벗고 굶주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독립운동을 하러 사지(死地)로 떠났다가 목숨을 나라에 바친 사람들, 해방 이후 그들이나 그들 가족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리고 국가의 역사 정체성에 입각한다면, 스기야마 아키히로가 2008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동안 한, 일 관계의 크고 작은 충돌이야 있었지만 해방이후, 수교이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새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명기하는 초유의 일은, 왜, 무엇 때문에 벌어질 수 있을까?

1965년 박정희 때 한일협정이 한일합방을 '원천무효'임을 명시하지도 못했고,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조차 문서로 받아내지 못한 채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여기에 2008년 취임하자마자 이명박은 일본에 가서, 오사카에서 태어난 식민지 후손답게 일본국 천황에게 확실하게 머리를 숙이고 바로 그 날 "과거에 대해 묻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주제에 한참 넘는 호언장담을 했고,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 일본은 독도를 자국영토라 명기했다.

두 개의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熊)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를 스스로 선택한 박정희의 정신적 서자(庶子)가 21세기 초입에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이고 대표성을 갖는 국가원수가 된 현실 때문인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선열(先烈)들이 땅을 치고 호곡(號哭)할 일이다.

정의가 사회 원칙의 근간임을 제대로 세우자

오늘 우리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존재방식에서, 대통령이란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회적 규범으로 바른 사회생활을 해 온 사람을 뽑아야 하고, 그래서 정의나 원칙이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를 아주 하잘것없는 것으로 함부로 여겼던 지난 대선의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할 것을 주문한다.

오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권력의 일방적인 폭력이나 재벌 삼성이 권세를 독자치하여 제 멋대로 하는 전횡(專橫)에서 비롯되는 자본의 이기적인 사용 행태가 죽은 법으로 치우쳐 흐지부지되고 마는 현실 등에서, 우리는 우리사회 인간관계가 어떻게 기형적인 사태를 연쇄적으로 유발하고 있는가를 속수무책으로 쳐다보면서, 여전히 공동체의 기반에 대한 의문은 등한시되고 사회, 문화, 인간의 위기가 더하고 있음을 생생히 목격한다.

이제 위기의 현실을 명징(明徵)하게, 서로 다급하게 일깨울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더 지체하기 전에, 이명박의 서툰 실험은 그치게 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나라가 머잖아 결단난다. 국민의 정신은 더 피폐해지고 사회 가치나 인륜은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이명박 이후로도 여간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시민의 처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오늘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실없는 고통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 대강 '땜질'로 오늘의 상황을 거둘 수는 없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기필코 승리하며 정의가 사회 원칙의 근간인 제대로의 민주주의 가치를 기필코 실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오늘의 현실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어야만 한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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