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째, 금메달 수(51개)에 있어서 중국이 36개를 딴 미국을 멀리 따돌리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금메달의 숫자가 그 나라의 국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 스포츠계에 있어서 미국의 독점적 지위가 중국에 의해서 무너지게 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이 올림픽에서 거둔 놀라운 성적은 그만큼 중국의 국력이 괄목할 정도로 증강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상식에서 무려 백번이 넘게 중국의 오성홍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중국의 국민들이 느끼게 되었을 자부심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애국심 또한 크게 고양되었을 것이다.
둘째, 올림픽 개막식에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여 90여 개 국가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부시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것은 미국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개최된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다. 2001년 미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략적 경쟁자', '잠재적 적대국'으로까지 지칭하면서 중국을 적대적으로 인식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바라는 중국의 기대를 무시하지 못하는 입장이 된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외에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후쿠다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총리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여 중국 지도자에게 눈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전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이 거의 모두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형국이다. 이는 마치 '중화질서'가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시기 주변 국가들이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던 것을 연상하게 했다.
셋째,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과 올림픽 개최 기간 중 드러난 중국인들의 편협하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적 성향이다.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나라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도중 국제인권단체 인사들과 중국인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인권단체들이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해하고 사르코지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한 후 까르푸 등 중국에 진출한 프랑스의 기업과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인 바 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성화 서울 봉송 과정에서 빚어진 불상사와 한국 선수단이 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했을 때 중국 관중들이 침묵하고, 한국과 다른 나라 시합에 한국팀을 응원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응원한 사실은 중국인들의 편협한 반한정서의 일단을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넷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지 30주년이 되는 시점에 개최된 것으로 그 동안의 개혁개방정책의 성과를 총결산하고 다음 단계 개혁개방정책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행사였다. 30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설계했을 때 그는 부국강병을 최종 목표로 삼고, 대내 경제건설을 위해 주변 국가들과 선린우호관계를 강화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협력을 추구하였다. 1980년대 동구 공산국가의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해 '평화적 이행전략'(和平演變)을 시도한 이후에도 중국은 의도를 감추고 실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지침 하에 대미 타협과 세계체제 편입정책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30년간 축적해 온 국력과 올림픽을 겪으면서 얻게 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숨소리를 죽이며 '와신상담'(臥薪嘗膽)을 꾀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국제사회에 던져 준 이러한 잔상과 메시지는 올림픽이 중국의 대외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에 큰 관심을 갖게 한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피해자 또는 소외된 국가로서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 또는 책임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올림픽 도우미들이 보여 준 에티켓과 친절함, 개막식과 폐막식 행사를 통해 보여 준 문화적 우월감과 자신감, 올림픽 경기에서 거둔 놀랄만한 성취들은 중국의 지도자와 인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국이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음을 각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중국으로 하여금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발언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할 전망이다.
그러나 1936년 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 이후 유럽침략을 도모했던 것처럼 중국이 당장 미국의 패권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국제질서의 규범과 게임의 법칙을 철저하게 변화시키려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당분간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기존의 국제규범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일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화려한 축제가 끝난 후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성장세의 둔화와 인플레 그리고 산업구조조정 압력 등 쉽게 해결하기 곤란한 내부문제들은 '중국식 국제규범' 창출 일정을 지연시킬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에 짐바브웨, 수단 그리고 미얀마 등 불량배국가 지도자들의 참석을 요청하지 않았던 사실을 통해서도 기존 국제질서를 준수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가진 이들 나라와의 관계보다는 부시를 초청하여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7년 동안 거국적으로 준비해 온 '인문올림픽'과 '녹색올림픽'을 중국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계속 활용할 것이므로, 중국은 군사력과 같은 강압외교 수단 보다는 '매력외교'와 '조화외교'(和諧外交)를 통해 대외정책 목표를 실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1996년부터 강조해 온 '신안보 개념'을 핵심 외교안보 개념으로 삼고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유엔 등 다자외교 중시 원칙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발언권이 커지는 만큼 중국이 책임을 다하는 강대국의 모습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림픽 개최 기간 중 베이징 시내 3개 공원을 시위 허용장소로 지정한 점, 올림픽 폐막식 다음날 한국을 방문하여 한·중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들은 국제체제에 더욱 편입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치체제의 문제점은 중국이 진정으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갖도록 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정권의 안정유지와 국민통합에 필요할 경우 편협한 민족주의 정서를 고취하는 경향을 보여 왔으며, 중국사회 내에는 감정적이고 공격성을 띤 민족주의 정서를 완화시킬 진정한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올림픽 성화 서울 봉송 과정에서 나타난 불상사와 단오제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확산되고 있는 중국 내 반한감정을 완화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진실하고 성의 있는 노력을 보여 줄 때, 한국인들은 중국을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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