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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에 빚진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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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에 빚진 자들

[송기호 칼럼] 다우너 소, 앤드루 그리고 <PD수첩>

미국 정부는 지난 주에, 서지 못하는 소를 식용목적으로 도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이 내년에 실제로 시행돼, 주저앉는 소를 미국의 푸드 시스템에서 예외없이 걸러낸다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학교급식을 먹는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다행스럽다.

미국 정부의 입법예고 관보를 보면, 서지 못하는 소는 식용 부적합 취급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광우병 원인물질을 인간 식생활에 유입시킬 위험(sufficient risk)이 있다고 나왔다.

애초, 미국은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를 식용에서 일체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미국 축산업계의 끈질긴 반대 때문에, 주저앉는 소라도 식용으로 도축될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 다우너 소를 식용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새삼스럽게 왜 그랬을까? 나는 촛불이 이룬 성과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PD수첩>이 이바지한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미국 농무부 샤퍼 장관은 미국의 조치가 미국과 '해외 시장'의 소비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외국 소비자의 가장 큰 부분이 바로 한국의 소비자이다. 일본 시장을 사실상 잃어버린 미국의 쇠고기 산업에 한국 소비자만큼 중요한 해외 소비자는 없다. 결국 한국의 소비자들이 미국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PD수첩>의 역할이 컸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PD수첩>에 큰 빚을 졌다. 한국인에게 좀 더 안전한 쇠고기가 공급되도록 이바지한 <PD수첩>과 문화방송(MBC)에 감사장을 주어야 한다. 설령 <PD수첩>의 송일준 PD가 생방송에서 다우너 소를 일러 '광우병 소'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받아들일 만한 실수이다. 작년 5월에, 미국이 광우병 위험 물질을 한국에 보냈을 때의 한국 정부의 표현을 빌면 인간적 실수(human error)다. 더욱이 다우너 소에 대해선 한국의 농림부도 정부 문서에서 '고위험군 소'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송 PD는 후속 방송에서 자신의 발언을 바로잡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부는 감사장은 주지 못할망정 <PD수첩>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민사 소송을 걸고, 형사처벌을 위협하고 있다. <PD수첩>을 만들었던 김보슬, 이춘근 PD는 체포에 대비해서 방송국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우리 사회의 뿌리와 저력을 믿는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광우병이 에이즈보다 더 위험한 병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출연자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검찰은 윈프리를 처벌하겠다고 위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법원은 오프라의 손을 들어 주었다. 법원은 방송에서 과장이 있다고 해서 이를 비방이나 중상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미국 축산업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벗겨보면,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축산업에 가장 호의적인 내용으로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소송도 <PD수첩>이 정부에게 가장 호의적인 내용으로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우너 소의 위험성은 미국 농무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나는 <PD 수첩> 항소심 법원이 법의 원칙과 정신을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신 MBC에겐 1심 법원이 결정한 반론 보도문은 방송을 해 주는 것을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반론 보도문은 말 그대로, 그리고 법 조문에 의하더라도 정부에 발언할 기회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론 보도를 한다고 해서 <PD수첩>의 보도가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1심 재판 결과 가운데 반론 보도문은 방송하는 것이 좋겠다.

미국 정부가 다우너 소 도축 금지 입법예고를 하던 지난 주에, MBC는 인간 광우병에 걸려 스물넷의 나이에 작년에 사망한 영국 청년 앤드루의 실화를 다룬 <MBC스페셜>의 방송을 연기했다. 아들의 사망이라는 큰 불행을 겪은 앤드루의 어머니는 인간 광우병 위험성을 영국 사회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앤드루의 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보내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꼭 MBC의 전파에서 앤드루의 어머니가 직접 겪은 진실을 보고 싶다.

앤드루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리며 만든 홈페이지(☞바로 가기)에서 "거짓이 사람을 죽였다>(Killed by lies)"라고 썼다. 그녀가 말한 거짓은 영국 정부가 인간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을 알리지 않았고, 예방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아들을 인간광우병으로 잃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원했던 직업이 바로 PD였다. 나는 MBC에서 앤드루의 삶과 꿈을 보기를 원한다. 사실, <PD수첩>의 PD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앤드루의 슬픔을 겪지 않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PD수첩>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두의 자식들이 앤드루가 되는 일이 없도록 애썼을 뿐이다.
송기호 변호사가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한 앤드루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메일의 일부를 소개한다.

안녕하십니까? 따뜻한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9월 2일은 제 아들 앤드루의 스물 다섯 째 생일이었답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들이 어린 시절에 즐겨 놀던 장소에 가서 아이를 그리며, 4개의 풍선을 하늘에 띄워 보냈습니다.

저는 제 아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세상에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서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겐 한국인들은 훌륭했습니다.

<MBC스페셜>에서 제 아들에 관한 방송이 방영될 때, 아름다운 한국을 방문하려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제 아들 앤드루의 비극을, 그리고 정의를 위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 가져야 저의 아들과 같이 청년의 나이에 끔찍한 방식으로 죽는 일이 다른 청년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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