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2차 선진화 방안'과 관련하여 SBS와 KBS에서 토론회를 각각 개최하였다. SBS 토론회의 경우 인천공항공사 민영화를 중심으로 진행하였고, KBS는 민영화 전반을 다루었지만 결국 물, 전기, 가스를 둘러싼 민영화 여부가 논의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방을 벌이고 찬성과 반대에 각각 전문가를 대동하는 양식의 전형적인 토론회였는데, 한나라당은 노골적이었다.
물, 전기, 가스와 같은 공공재를 왜 민영화하냐는 궁색한 민주당의 반박, 지난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해온 일이 있기 때문에 민영화를 '하긴 해야 하지만 왜 하필 이 시기냐'는 지속적 물타기식 반박에 대해 한나라당은 일갈했다. 팔려면 돈이 되는 것을 팔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적자나고 돈도 안되는 기업을 시장에 내놓아봤자 팔리지 않을 것인데, 돈 되는 공기업 팔아서 대학 등록금도 깎아 주고 해야 한다는 어이없지만 전형적인 시장주의 논리를 폈다. 물론 대학 등록금을 깎아 주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더욱 노골적이었던 바는 이 대목이다. "1, 2차 선진화 방안은 국민정서를 고려해서 상대적으로 쉽고 말이 많지 않을 대상을 중심으로 발표했다"고 했다. 향후 돈 되는 기업, 말이 많더라도 밀어부쳐야 할 사유화 정책을 확고하게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3차 선진화 방안이던, 4차 혹은 5차이건, 공기업 효율화 방안이건, 구조개편이건. 다른 이름이건, 정부의 사유화(민영화) 의지는 확고하다. 그 사유화(민영화)의 핵심 대상에 돈도 되고, 매각의 장점도 높고, 살 사람도 이미 정해진 에너지 사유화 정책이 핵심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 전기, 가스를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몇 번 주장하고 심지어 사과까지 했던 정부는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물산업 지원법"을 "상하수도 서비스 개선 및 경쟁력 강화"로 이름을 바꾸어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 분야는 발전과 배전의 패키지 매각, 민간회사의 가스 직도입 확대와 직도입자의 소매 판매 허용으로 대략 가닥을 잡고 있으면서 발표 시기를 잠시 보류하고 있을 뿐이다. 촛불 민심의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그 시간이 짧았다. 민심이 원하지 않으면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던 한반도 대운하는 요 며칠 사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으며, 대운하 관련 기업의 주가는 뛰고 있다.
발전의 경우 '한전의 판매부문을 발전회사로 이관하고 민간 신규 판매회사의 진입을 허용해 소매부문의 경쟁체계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발전회사 간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한국전력으로부터 인사, 경영, 평가를 분리할 것'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득 간 편차를 고려해 도입하고 있는 교차보조제도 등 할인혜택을 대거 완화'하는 등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야기되고 있다. 지난 8월 27일 확정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기존의 요금체계를 전면 개편하여 전압별 요금체계로 재편할 것이라는 정책과 맞닿아 있다. 가스 산업의 경우 민간회사의 가스 직도입을 확장하고 직도입자에 대해 소매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말하듯이 계절 간 격차를 고려한 요금제도 개편과 함께 추진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파편적인 듯이 보이는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가.
발전 산업의 경우 10년 전, 외환위기를 빌미로 매각에 용이한 방식으로 분할하였고, 당시 영미식 신자유주의 민영화 방식을 답습하여 발전-송변전-배전의 수직 분할, 발전과 배전의 수평 분할을 통한 매각 방식을 채택하였다. 발전 1개사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 대략 3조2000억 원에 맞추고 기저-중간-첨두를 고려하여 분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직-수평 분할 방식은 영국, 미국 등의 사례와 같이 분할 이후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국유화, 공적지배, 규제 강화 등으로 회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이런 분할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노무현 정부 들어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노동이 잘 싸워서라기보다 폐해가 증명된 상황을 맞이하여 정책적 수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사유화 반대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그리고 일정 기간 '지대효과'를 누린 것이다.
그러나 발전 및 전력 분야를 포함하여 에너지 산업 전반에 지난 5년 동안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소위 이권을 둘러싼 매입자가 분명해지고 있으며 발전, 가스를 넘나드는 에너지 전반의 시장 통합 혹은 통폐합, 역설적으로 수직-수평적 통합이 가속화될 전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즉 발전을 따로 매입하고 배전에 개입하여 에너지 산업 사유화의 특혜를 누리기보다 발전 매입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발전과 배전(송변전 망 산업은 대다수 공기업으로 존치하는 특수성이 존재함)을 묶어 지역적 독점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발상이다. 발전과 배전 패키지 매각이 바로 이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면 발전 매각과 특정 지역, 즉 기력 발전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배전을 함께 매각한다는 것이 유력한 방향으로 대두될 것이며 이는 배전과 발전을 중심으로 한 지역 독점 형성의 길이다. 이와 관련한 현 발전 부문의 재편, 배전 부문 재편이 어느 정도 시작될 것이다. 배전은 이미 돈이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본부제가 실시되고 있는 시점이다. 발전 역시 배전 패키지 매각을 위해 배전과 연결된 특정 지역 혹은 매입자가 거점으로 지목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저 발전을 중심으로 일정한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스의 경우 어떠한가. 전형적인 판매자 시장에서 일시 간 구매자 우위 시장으로 돌입하였던 시기가 SK와 포스코가 직도입 특수를 맞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유가 인상과 더불어 직도입의 메리트가 약해진 조건이 도래하여 이들 주요 사유화의 행위자들이 직도입을 포기 혹은 중단하였던 것이 지난 3-4년의 시기였다. 그러나 향후 한국가스산업의 특수성인 계절 간 격차(가정용 소매의 경우 겨울철 수요에 따른 요금 문제 존재)를 요금체계 개편으로 해소하고 직도입자가 균등한 물량으로 도입해야 할 물량을 산업용 소매 수요로 해소하거나 혹은 발전 매입으로 인한 안정적 구매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기존의 가스산업 사유화 정책이 가졌던 한계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더욱이 발전회사를 매입하는 자본이 가스 산업에 동반 진출하게 된다면(이 가능성은 100%이다) 물량 배분과 수급 조절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 이로써 직도입이 가졌던 기존의 한계가 수급 조절 문제, 요금 체계 문제로 충분히 해소되기 때문에 현재 정부가 언급하는 '소매 경쟁 시장 도입을 전제로 한 직도입 확장', '요금체계 개편'은 가스산업 구조개편의 완성태로 나아가게 된다. 기존의 가스공사는 도매 관망을 유지하고 기존의 장기공급 물량을 어정쩡하게 해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면 되는 것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직도입 확장과 요금체계개편, 소매 시장 경쟁 진입을 전제로 한 직도입 확장을 명시해주고 있어 가스산업 사유화 방향의 가닥을 총체적으로 완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너지 현장은 '선진화'에 속고, 지침이 없는 말바꾸기에 속고 있다. 그러나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고 싶은' 심정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지난 3개월 '속아주었지만' 이제 그 국면은 종결되었다. '속을 수도 없고' '속고 싶어도 속지 못할' 명확한 이유가 형성되었다. 선진화의 이름이 대다수 공기업에 닥칠 구조조정, 에너지 사유화의 궁극적 깃대는 명확히 세워졌다. 오해하고 싶고 곡해하면서 행복을 가장할 시기는 안타깝게도 끝이 났다. 사유화의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3차 선진화 방안에 무엇이 언급될지 점치고 두근거려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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