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 지역에서 탈식민화는 1960년대에 대부분 끝났다. 2차대전 후에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 해방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과거의 식민국가들은 이제 제국을 유지하는 데 정치, 경제적으로 너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또 새로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된 미국과 소련이 그것에 우호적인 아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식민지를 유지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국제적 이익을 충분히 관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소련은 제국 내부에 식민지를 갖고 있어서 해외 식민지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식민지 해방을 옹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영국이 순순하게 물러났으나 힌두교 지역과 이슬람교 지역이 서로 충돌하며 정치적 혼란과 함께 무수한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특히 베트남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기간의 식민지 해방 투쟁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가 치졸하게 끝까지도 식민지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에 패배하여서만 할 수 없이 식민지를 포기했다.
그러니까 식민지 해방은 식민지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식민제국들의 국력 약화, 2차대전 및 냉전체제로 바뀌는 국제정치 흐름의 큰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 하겠다.
이렇게 새로 정치적 자주성을 회복한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냉전체제는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미 · 소의 양 대국이 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자립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 독립한 나라 안에서 여러 정치세력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의 유산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에 유럽국가의 분할통치로 인한 여러 종족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지금까지도 정치적 안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또 식민지시기에 형성된 기득권 세력도 큰 문제이다. 식민주의에 영합했던 대지주들이나 관리, 장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질서의 정착을 방해할 뿐 아니라 전복하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적 자립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식민모국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기형화된 경제구조 때문에 균형 잡힌 경제를 발전시키기도 어렵다. 과거의 식민지역인 오늘날의 제3세계가 아직도 과거의 식민국가들인 선진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198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엄습한 외채위기는 이런 상황을 더 심화시켰다. 미국 등 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제 3세계의 외채위기를 이들 국가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기구를 앞세우고 시장개방과 금융개방을 요구함으로써 이들 나라의 주권을 제한하고 경제적 예속을 강요했다. 이는 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냉전체제의 해체와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출범은 제 3세계 국가들의 전도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소련마저 해체된 마당에 제3세계를 도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과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공세 앞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처지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우, 실질적인 식민 상태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주의적 현실을 똑 바로 보아야
이런 상황이므로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있어 식민주의를 어떻게 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아직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에 따라 현실과 미래에 대한 대처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더 중요한 것은 특히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서양학자들의 잘못된 학문적 태도 때문이다.
이들이 유럽중심주의적인 이론을 갖고 계속 식민주의를 옹호, 정당화함으로써 제 3세계 사람들의 역사 인식을 파괴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갤러거와 로빈슨, 필드하우스, 베록, 오브라이언 같은 사람들이 한 일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들을 멋모르고 받아들일 때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바른 역사적 인식을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식민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다. 냉전체제 속에서 남한이 미국의 하수국가가 되며 식민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친일세력이 아직도 강력한 힘을 온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60년에 걸쳐 성장한 친미세력도 사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이 한국을 예속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냉전적인 이승만과 손잡으며 친일파를 등용했고 이들이 주인만을 바꾸어 친미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미세력의 정신적인 뿌리는 친일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주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미국만을 쳐다보고 미국이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 우익 집회에서 무슨 사안만 생기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것은 우익세력이 이런 노예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익세력이 이런 한심한 비자주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 이런 태도로는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가 더욱 거세어질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부 우익 학자들이 식민지 시대를 근대화의 시기로 미화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겠다는 만용을 부리는 것도 같은 정신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친일세력과 그 후예인 친미세력의 역사를 정당화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친일을 하건 친미를 하건 독재를 하건 잘살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이나 이런 식으로 건전한 국민의식를 형성하고, 바르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유치하고 천박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마치 대단한 역사관이나 되는 듯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걱정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주의는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계속 한국을 포함하여 제 3세계인들을 괴롭힐 악몽이다. 우리가 식민주의라는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필자의 말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잠깐 쉬고 추석 후에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추석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프레시안 연재는 다음번 주제인 '민족주의'를 마지막으로 끝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