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년 전인 지난 2004년 12월에 '2005년 광복60년 기념사업위원회' 기획전문위원으로 국무총리실에 딱 2개월여 일한 적이 있다. 그 시절 노무현 정부에 국가행사 준비에 짧은 기간 참여하면서, 이제 겨우 출발 1년 된 정권이 망가져나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됐다. 나는 당시에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바로 잡고자, 사태의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글 "누가 노무현 정부를 고립과 위기로 몰아 넣는가" 라는 글을 발표면서 기획위원을 사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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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최측근 출신 총리실 특채 비서관의 전횡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들이 단단히 고장난 사람들이란 인상을 받았고, 총리실의 정상적인 시스템인 국무조정실, 심지어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한 명의 비서관이 일 삼는 월권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당시 일을 시작하고 며칠 후 어느 날, 출근을 하자 민간예술단체 출신 기획전문위원이 나에게 말하기를, 총리실 비서관 2인과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이 같이 국무총리에게 광복60년 행사와 사업에 관한 브리핑을 했고, 그 자리에서 메인 슬로건도 결정이 됐다는 말을 해 왔다. 갑자기 무슨 얘긴가? 기획전문위원으로 멀쩡하게 위촉되어 있는 나도 모르게, 또 공적인 시스템 안에서의 논의도 아니고, 외부에서 광고 문안 작성자를 불러다가 8. 15 사업 행사의 기획과 슬로건, 주제 언어가 결정되다니, 나는, 그래? 결정된 메인 슬로건이 뭐냐고, 물었다.
"'나라를 키우자' '큰 나라, 큰 사람이 되자' 로 정했으며 '디지털 코리아, 다이나믹 코리아'와도 상통하며 총리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 가는 게 도리이며, 특히 피고용인 신분인 기획전문위원은 고용주인 총리실 비서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는 등,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바보 같은 얘기를 주문처럼 나에게 말했다. "나라를 키우자!" 이 무슨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언제까지 이런 유치한 말장난이 국가 언표로 버젓하게 사용되어야만 하는가? 어떻게 무엇으로? "나라를 키우며", "큰 나라 큰 사람"이라니? 발육부진인 '작은 나라, 작은 사람인 한국인'은 서양인들처럼 "큰 나라 큰 사람"으로 '성장'을 해야만 한다는 얘긴가?
광복 60년을 맞는 2005년 8.15는 우리들 삶에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희망이란 허세를 유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당시에 생각했다. 공공건물이나 길거리에 '제2의 건국'이라고 쓴 깃발이나 걸어놓고 "다시 뛰자!"라는 구호나 슬로건으로 국민을 이끌 수 있다고 여겼던 바로 전 정권 김대중 정부의 '제2 건국운동'은 당시에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 해 2008년 광복절을 '건국 60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정권이나, 제2의 건국이라고 써 붙였던 김대중 정권이나 "다시 뛰자!" 라고 했던 노무현 정권이나 조바심이나 성급함, 가벼움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2004년 당시, 민주주의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권이 조악하고 거칠며 상투적인 억지 슬로건으로 "키우자!" "뛰자!" "하자!" 등으로 표현했으니, 정신을 다 빼놓고 마구잡이로 냅다 "키우고" "뛰고" "달려온" 개발독재시대 때 성장 패러다임의 언표처럼, 계속 "키우고" "뛰고" "달려서" 완전히 끝장을 내자는 얘긴가? 나는 되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키우자"는 것이고 어떻게 "큰 나라, 큰 사람" 이 되자는 것인가를 반문했다.
당시 나는 이 사람들이 과연 국민들이 뽑아 준 참여정부 사람들이 맞나? 또 8. 15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 것인가 의안이 벙벙했었다.
정말 이네들은 광복 60주년 8.15 입장과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100년 전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치욕의 근인을 똑바로 알고나 있기는 한가?
국가의 언표가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해야 하며, 국가지향성을 집약하는 지적 인식의 언어임을 알고나 있는가? 기업의 광고언어와 국가 언표의 차이를 알고나 있는가? 국민들에게 "나라를 키우자" "다이나믹 코리아!" 등으로 집단 최면이라도 걸려고 한다면, 국민들이 그 상투적인 주술에 걸려든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하며 자가당착이고 어리석다고 느꼈다.
뻥뻥 큰소리로 '나라를 키우자!' 고, '아! 대-한민국!' 이나 외치고 '디지털'과 '다이나믹'으로 '코리아! 코리아!' 라고 떠들면 저절로 나라가 '키워진다'는 얘긴가?
이런 어리석음과 조바심으로,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소득 2만 불'이란 캠페인을 들고 나왔다. 이미 일본은 1980년대 초에 달성한 ' 2만 불 시대'를 우리도 달성하자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 개발 성장주의 시대의 언표로 박정희 유령을 스스로 들추어냈고, 중국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오해를 산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등의 시대착오적이며 허망한 패권주의적 성장표어를 국가언표로 말하는 우(愚)를 범했다. 이젠 그만 "키우고" 그만 "뛰어야" 한다고 난 당시에 생각했었다. 이젠 제대로 찬찬히, 차분하게, 주위를 살피면서 잘 보고 착실하게, 우리 공동체의 내면을 다지고 충실하게 근본으로부터 현실을 반듯하게 딛고, 미래를 향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2004년 당시에.
나는 당시에 경제성장만이 나라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개발주의의 기대는 끊임없이 가시적인 생산의 효율성과 경제원칙 앞에서 국가제반의 모든 요소가 동원되고 우선시됨은 나라를 크게 그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내 심정은 어떻게 해서라도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된 민주정부가 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가까이 본 불과 1년차 정권은 내부부터 일찍 무너지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장차 반동(反動)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위험하다고 예감했으며, 급기야 오늘 이명박의 등장은 노무현 정권 집권 1년차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국무총리실에서 나를 기획위원에서 몰아내기 위해 총대를 멨던 노무현 최측근 비서관은 이후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2005년 1월 나는 광복60년 전문위원을 그만두고 책을 냈다. <식물의 열매를 실(實)이라고 한다 : 2005 광복60년, 21세기 국가 구상을 위한 단서(端緖)>라는 제목의 책에서 25개의 국가사업과 8.15행사를 기안했고 그 중 한 개의 항목으로 '지방을 살리는 지역학을 일으키자'는 제안을 했었다. 당시 그 제안은 광복 60년 시행사업으로 내가 구상한 것이었는데 사업은 실행되지 않았고, 그저 내 책에서만 정리된 안으로 그쳤다. 오늘 새삼 최원식 교수의 글을 읽고 다시 들쳐보게 됐다.
-개인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세계로
국토균형발전은 지금까지의 관성인 위에서 아래로 내려서 추진하는 식이 아닌, 지역의 조건과 특성을 고려, 지역의 판단과 지역의 역량을 이끌어내는가가 관건이다.
지역학이란?
작은 단위의 사회 규모에서부터 중간 규모의 사회규모(군, 시, 도)
지역사회가 지역 내의 인문, 지리, 역사, 환경, 교육, 산업, 등의 제반 사실을 지역 소재 지역 대학교에서 학으로 커리큘럼화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각 지역에 따른 특성을 지니게 되며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예시) 대전학, 밀양학, 강진학, 전주학, 부산학, 춘천학, 광주학, 대구학, 인천학, 충추학 등등
지역학은 지역 주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에 관여한다.
지역의 사람, 자연, 문화를 주제로 연구와 실천적 프로그램 안 안출
주민, 지역문화, 자연의 실질적인 조화를 의식한다.
지역발전 프로그램의 안출과 실현
산학협동의 실제적인 실현
전통적 문화의 복원을 통한 창조적 컨텐츠의 개발
지역학은 영속적 발전모델에 대한 모색
윤리적 생태적 질문들
지역학 계발-
국가 균형발전은 지역의 조건과 특성을 고려, 중앙과 지자체간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 질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종래의 방식인 중앙에서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형태일 수 없다.
지역의 판단과 지역의 역량을 키우고 아름다운 국토와 삶의 풍요를 지향하는 지역단위의 네트워크 일 때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지역문제 화두는 여하히 삶의 주체적 역량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각 지역이 배양할 것인가가 근본의 관건이다.
삶의 역량이란 문화적 삶을 일구어내는 주민주체의 지역 만들기와 상관한다.
전국의 대학이 특성과 개성 없이 종합대학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인구 국토 면적 단위당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그러나 빈껍데기 대학들,
이런 대학에 BK등 여러 명목으로 교육부는 국민의 돈을 막 함부로 집어주고 있다.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전문적 기술이나 실질적 학문보다는 서울의 일부 대학 형태를 획일적으로 모방하는 커리큘럼으로 채워져 있다.
지역학은 지역에 관한 총체적이며 입체적인 그리고 세부적인 DB를 통하여 지역전문가를 기르고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지역 스스로 창안하며 지역경제 지역산업을 창출하고 지역고용을 가능케 하며 지방성을 강화시킨다.
지역학은 작은 지역사회의 단위로부터 일정크기의 지역사회 규모로 구획되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학' 은 경상북도 전체지역을 대상으로 한 학문으로 경북대학이 학과를 만들어 성립되며 경상북도 내의 작은 도시인 경주시의 경우 경주대학이 경주시를 대상으로 보다 더 심층적인 연구를 하게 되는 식이다. 따라서 지역 행정 단위 상에 소재한 지역과 대학의 연계로 인한 수많은 학문의 탄생이 가능하며 지역학은 지역의 각 특성상 개별학문으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100개의 지역학이 나오게 된다.
구축과 실현방법 -
지자체, 지역대학들, 교육부, 행정부, 산자부, 지자체 등이 상호협력 주체가 되어 연속 세미나, 총 100회의 크고 작은 세미나, 백가쟁명식 토론을 시작하자. 세미나의 시작으로부터 여론과 연계하여 그 결과를 정책으로 형성한다.
지역학 내용-
지역학은 지역주민의 안정성을 확보하여 지역사회의 창조성을 전개시킨다. 지역학은 일방의 세계화로부터 지역의 붕괴를 막는다.
식물, 씨앗, 지식, 물과 식량을 지킨다. 식량과 물은 자구에 사는 인간들과 모든 종들의 삶을 가능케 한다. 지역과 지역학은 이를 담보한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생명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식량과 물, 그것들의 오염과 고갈에서 나오고 있으며, 또한 이 중요한 것들에 대한 독점적인 시장장악과 통제에서 나오고 있다.
지역과 지역학은 문제를 대처하고 관리해야 할 지역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지역학을 제창, 고양하는 대대적인 실천이 체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세계화에서 국가나 정부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점차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지역을 통해서, 지역을 넘어서, 보다 더 큰 지역적인 그리고 최선에 있어서는 전 지구적인 대응을 의식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학의 주제-
마을, 시민, 도민의 경제력을 위한 원동력은?
환경의 보존
쓰레기 재생처리
지역에너지 생산 문제
지역의 주제, 지역의 프로그램의 이해, 그리고 교육
여성의 사회적 역할
도시화와 균형물의 보존지역
문화예술의 창출과 전래 문화 보호경험
네트워크의 구축지역 세부화
산업전문화 및 협업 활성화연관 산업 DB연계 확대
지역지식, 지역전문가 지역전문가가 육성, 이들이 해당 지역의 공무원으로
지역학의 활용영역-
혁신적 산업클러스터의 공간적 밀도와 점진적 확산혁신
시스템(RIS)구축
지역과 중앙간의 제도적, 종합적 지원(Package)
중앙, 지방정부간 협력적 분권
산, 학, 연 기술개발자원의 결집
기슬개발, 창업보육, 시험생산 등 지역특화기술개발
차별적 기술력보유
지역특정업종에 대한 중소기업 창업지원
산업발전과 연계된 기초기술연구 및 첨단인력 양성
지역중점사업의 특정산업 기술개발 및 산업계 기술이전
소프트웨어 신기술 창업지역 역량 강화.
지역학 관계내용-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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